[PDI 워킹페이퍼 NO.12] 정의의 관점에서 본 전쟁과 평화: 롤즈의 정의로운 전쟁과 시민성의 의무

인지훈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5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서론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발상은 A Theory of Justice (1971; TJ)에서부터, “The Law of Peoples(1993)”, “Fifty Years after Hiroshima(1995)”를 거쳐, Law of Peoples (1999;LP)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발전되었다. 비록 단계마다 중요한 차이를 보이지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원칙이 국제정의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은 일관된 형태로 지속된다. 더 나아가 롤즈에게 국제정의는 정의론의 전체적 구조의 한 축으로 기능한다. 즉, 롤즈의 정의론은 적용 범위에 따라 사회제도들과 연합체에 적용되는 ‘특정 영역의(local) 정의’, ‘사회 기본구조(basic structure)의 정의’, ‘지구적(global) 정의’로 나뉜다.¹ 서로 다른 영역에는 각기 다른 고유한 원칙들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들이 상호 분리된 체 독립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족, 직장, 학교, 교회와 같은 작은 규모의 결사체들(associations)의 일원인 동시에 특정한 경계를 지닌 사회의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구성원이고, 그러한 사회의 대외적 표현인 ‘만민(people)’²에 속해 있다. 이 세 영역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좋음’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그 한계를 부여하기도 한다.³ 한 마디로, 세 영역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안정성과 국가 간 전쟁의 도덕적 특징에 대한 롤즈의 견해를 해석하는 일은 국제정의, 더 나아가 그의 사상체계 전반에 대한 고려 속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점에 특히 유의하면서 다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견해는 TJ, PL의 내부로부터(within) 연속성을 지닌 체 발전된 것이다. 둘째, 롤즈는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이론적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셋째, 정의로운 전쟁 이론4의 세 가지 구성요소 –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 – 는 롤즈의 사상체계 내에서 충분히 개념적으로 구분되지만, 전쟁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이와 같은 의도 속에서 우선 정전론의 지적 전통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의 이론적 구조에 따라 롤즈의 만민법을 분석하도록 한다.

2. 정전론의 지적 전통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초기 발상은 사회 정의의 일부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조건을 논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다(TJ §58). 롤즈에 따르면, 전쟁의 이유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전쟁 중에 도덕 법칙이 반복적으로 위반될 때 시민들은 전쟁 참여를 거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참여를 거부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TJ 334-335). 여기서 확인되는 사실은, 롤즈가 ‘전쟁 개시를 위한 정당한 이유(jus ad bellum)’와 ‘전쟁 중 준수되어야 하는 법칙(jus in bello)’5의 두 기둥에 의해 뒷받침되는 오래된 정전론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러한 사상사적 전통을 간단히 개괄하도록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철학에서 ‘전쟁의 도덕성(morality of war)’에 대한 발상은, 한편으로는 전쟁의 문제에서 도덕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의 본질적인 악을 허용하는 도덕론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평화주의 사이의 비좁은 길을 걸어왔다. 국제관계에 대한 전자의 관점은 투키디데스의 멜로스 대화를 통해 인상적으로 제시되어 오랜 기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정의에 대한 그럴싸한 말 보다는 … 실현가능하고 필연적(feasible and necessary)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 인간의 영역에서 정의에 대한 판단이란 이를 강제할 정도의 동등한 힘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다. 강자가 권력에 의해 용인되는 것을 실행하고 약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Thucydides vol. 5, para. 89).”6 이와 대조적으로 후자는 초기기독교의 강한 평화주의에 의해 대변되었다. 고대 로마의 초기 기독교는 산상수훈에서 제시된 예수의 평화 메시지7를 충실하게 따랐다. 이 시기 신학자들은 신앙인이 칼을 드는 순간 교회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퀘이커교를 비롯한 기독교 개별 교파들을 통해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김병곤 2019, 27).8

지금과 같은 정전론의 체계는 역설적이게도 고대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중세 . 기독교 세계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기존의 교리에 포함시켜 전쟁법(jus ad bellum)과 전시법(jus in bello)을 두 축으로 ‘기독교적 정전론(Christian Just War Theory)’을 전개시켰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적대적인 상대의 악행(wrongdoing)으로 말미암아 현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1887, Bk 19, ch. 7)’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참여하는데서 오는 종교적 딜레마를 해소하고자 했다. 전쟁은 여전히 유감스러운 악에 해당하지만, 때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Moellendorf 2014,
379). 전쟁에 대한 기독교적 정당화는 이후 아퀴나스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발전하게 된다. 그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첫째, 전쟁은 최고의 정치적 권위(sovereign political authority)에 의해 수행되어야만 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복수심이나 욕심에 의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 전쟁은 정당한 이유(just cause)가 존재할 때에만 허용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이때의 이유는 상대방이 저지른 악행과 관련된다. 셋째, 전쟁의 의도는 올바른 것이어야만 한다. 즉, 전쟁은 선을 증진시키거나 적어도 악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Thomas Aquinas 1920, [1265-1274]).

이후 Grotius와 Pufendorf와 같은 저술가들은 근대적 자연법에 기초하여 전쟁의 정당한 이유와 수단을 논함으로써 정전론에 대한 논의는 세속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Grotius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은 정당한 원인과 더불어 비례성(proportionality), 성공 가능성, 공적인 전쟁선포, 합법적 권위,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의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곧 이은 근대 국가의 등장과 주권(sovereignty)에 대한 법적 승인으로 말미암아 정전론은 잠시 무대 뒤로 밀려나게 된다.

Walzer(2004)에 의하면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이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정전론은 한편으로 부당한 전쟁에 대한 비판적 기능과, 다른 한편으로 정당한 전쟁에 대한 옹호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학계 뿐만 아니라 정치가들과 군인들의 주된 언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 윤리학과 법학의 영역에서 정전론은 ‘정당한 명분’, ‘최후의 수단’, ‘합법적(legitimate) 권위’, ‘비례성’, ‘올바른 의도’, ‘성공 가능성’, ‘전쟁목적의 제한’ 등의 다양한 세부적 기준들을 둘러싼 폭넓은 논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이종원 2008).

정리하자면,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여러 이론적 입장들은 일부 전쟁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전쟁의 목적과 수단을 제한하려는 이중의 목적을 지닌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Ramsey 1961). 이에 대해 Walzer(2004)는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정전론은 옹호와 비판을 동시에 견지할 것을 요구한다. …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표현의] 형용사와 명사 사이에는 심원하고도 영구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 정전론은 어느 특정한 전쟁에 대한 변론이 아니며, 동시에 전쟁 그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도 아니다. 이는 계속적인 사찰과 내재적인 비판을 가능케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22).

롤즈는 이상과 같은 정전론의 지적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다. 다만 그의 독창성은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그의 설명이 정의론의 전체적인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3. 원초적 입장과 만민법

롤즈는 국내 사회에서 ‘정의의 두 원칙’을 도출할 때 사용했던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을 국경 밖의 사회에 확장시킨다. 이제 고립된(closed) 사회를 전제했던 TJ에서와는 달리 각각의 사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부족한 자원에 대한 상이한 요구들은 때로는 심각한 갈등으로,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롤즈의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기준은 원초적 입장을 한번 더 사용하는 방식으로 도출된다. 내부적으로 각자 (합당한 정도로) 정의로운 사회 기본구조를 지닌 만민들의 대표들은 무지의 장막(the veil of ignorance[TJ §24; JF §6) 속에서 서로간의 요구와 갈등을 조정할 근본적인 원칙들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회발전 수준, 자원보유량, 지정학적 위치, 상대적 국력의 크기에 대해 알지 못하며, 오로지 합리적 선택이 가능할 정도의 일반적 지식만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된다. 그럼으로써, 당사자들은 자신의 특수한 처지가 줄 수도 있는 “위협의 이점(threat advantage[JF 16])”9을 합의의 절차 속에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무지의 장막으로 인해 계약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실제 상황에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TJ 11), 이를 통해 합의된 원칙들은 모든 만민들에게 공정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10

이처럼 LP에서의 원초적 입장은 국내 사회의 경우와 동일한 목적과 원리를 지니고 있지만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규명하려는 LP의 동기로 인해 국내의 경우보다 다소 복잡한 구조11를 보여준다. LP의 두 번째 원초적 입장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일단 첫 번째 단계에서 자유적 만민들의 대표들이 무지의 장막 속에서 만민법의 원칙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 적정수준의 만민들이 동일한 원칙들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롤즈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유적(그리고 적정수준의) 만민들은 다음과 같은 만민법의 여덟 가지 원칙들(LP 37)에 합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만민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다. 다른 만민들은 이들의 자유와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만민은 조약과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만민은 평등하며 자신들을 구속하는 약정에 대한 당사자다.
넷째, 만민은 불간섭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다섯째, 만민은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방어 외의 이유로 전쟁을 일으킬 권리는 없다.
여섯째, 만민들은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일곱째, 만민은 전쟁 수행에 있어 특별히 규정된 제약 사항들을 준수하여야 한다.
여덟째, 만민은 정의롭거나 적정 수준의 정치체제와 사회체제의 유지를 저해하는 불리한 조건하에 사는 다른 만민을 원조할 의무가 있다.12

그런데 만민법을 위한 원초적 입장은 방법론적 순서상 국내 사회의 원칙들이 정해진 이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원칙들의 조합은 다소 의문스러운 점을 안고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만민들이 상호 불간섭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자유적(혹은 적정 수준의) 만민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영토 확장이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른 침략 전쟁은 개념상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정의로운 내부 사회구조를 유지하려는 동기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이 정당하다’는 다섯번째 원칙과 전쟁 수단의 제약을 언급한 일곱 번째 원칙은 비록 앞선 네 가지 원칙들과 충돌하지는 않을지라도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여섯 번째 인권 존중의 원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롤즈는 인권이란 자유적 만민들의 국내 사회에서 보장되는 권리들의 부분집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최소주의적 인권의 목록은 별도의 만민법에 의한 제약이 없더라도 만민들의 사회의 구성원들 스스로 국내의 사회적 정의관에 따라 충분히 보장하고 있을 것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을 넘어 임의적으로 선별한 것처럼 보이는 만민법의 여덟 원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LP에서 ‘비이상적(nonideal)’ 이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상적 이론만을 고려하자면,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 모두 상호 간에 전쟁을 도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얼마든지 합당한 만민법의 원칙들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만민법의 최종적인 형태는 이러한 비이상적 상황에 대한 대응을 포함하게 된다. 만민법에 포함되어 있는 정전론의 요소들을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로 나누어 분석하고, jus post bellum에 담겨진 실천적 함의를 덧붙임으로써 롤즈의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4. Jus ad Bellum

롤즈의 만민법은 크게 ‘이상적(ideal) 이론’과 ‘비이상적(nonideal)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적 이론은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이 안정된 만민들의 사회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두 단계의 원초적 입장은 그러한 조건들을 도출하기 위한 이론적 장치이다. 하지만 “중대한 부정의와 광범위한 사회악이라는 극도의 비이상적 조건 때문에(LP 89)”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에 롤즈는 LP에 ‘비이상적 이론’을 추가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어떤 정체들은 합당한 만민법에 대한 준수를 거부할 것이다.13 이들은 합리적인 이익의 증진이 전쟁 수행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여긴다. 롤즈는 이러한 정체들을 “무법 국가(outlaw states)”로 부른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경우도 특정 정체는 무법 국가로 분류될 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질서 정연하지 않으며 인권을 침해한다. 그러나 주변국들에 대해 공격적이지 않으며 침략할 계획을 품지도 않는다. 이들은 불리한 여건 때문에 고통을 겪지는 않지만, 단지 그 국가 내에 특정 소수파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정책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국가들은 합당하게 정의로우며 적정 수준의 만민의 사회에서 권리로 인정된 것을 침해하기 때문에 무법 국가로 간주된다(LP 90n1).

정리하자면, 1)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전쟁을 벌이거나, 2) 자신의 국경 내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무법국가’는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제재의 대상이 될 것 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정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롤즈에게 전쟁의 권리는 합리적(rational) 이익이 아니라 합당한(reasonable) 이익에 기초한다. 이때 합리적인 것이란 일차적으로 행위자가 자신의 고유한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판단과 숙고의 능력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목적과 이익들에 우선성을 부여하고 목적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채택하거나, 다른 사항이 같다면 보다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선택하는 행위자의 특징을 일컫는다. 이와는 달리 합당한 것은 공정한 협동의 조건으로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채택된 조건들을 기꺼이 준수하려는 도덕적 덕목을 의미한다(PL Lect. Ⅱ. §1). 만민들의 대표들은 무지의 장막으로 말미암아 ‘다른 만민들이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각 만민들이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제안하게 된다. 롤즈의 추론에 따르면, 만민 상호간에 합의할 수 있는 합당한 제안은 전쟁의 권리를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에 제한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자.

일단 침략을 받은 만민과 그 동맹(LP 91n2)은 자연스럽게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할 정당한 권리를 지닐 것이다. 이때 자유적 만민과 적정 수준의 만민은 자기 방어의 권리를 해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자유적 만민은 “자신의 영토를 수호하고, 시민들의 안보(security)와 안전(safety)14을 확보하고, 자신의 자유로운 정치제도와 시민사회의 기본적 자유와 자유로운 문화를 보전(LP 29)”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유, 즉 경제적 부나 천연 자원의 확보, 권력과 영토 확장 등의 이유는 정당한 전쟁의 이유가 되지 못 한다. 만민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 서술에 따르면 그들은 그러한 동기 자체를 지니지 않는다. 만민의 근본적인 이익에 대한 고차원적인 관심은 한편으로 자신의 사회 제도들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가 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이익과 무관한 이유로 전쟁을 해
서는 안 되는 의무의 근거가 된다(인지훈 2021a, 205).

적정 수준의 만민 또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전쟁할 권리가 있다. 롤즈에 따르면, 그들의 사회 제도들은 비록 자유적이지 않더라도 수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적정 수준의 만민은 사회 내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자신의 협의 위계체계 속에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합당한 만민법을 수용하고 준수한다(LP 92). 따라서 그들은 만민들의 사회 내에 규정된 의무와 권리의 담지자로서 자기 방어를 위한 경우라면 정당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15

이와 같은 자기방어 외에도 인권 보호를 위한 군사적 개입은 전쟁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된다 이때 롤즈에게 . 인권은 “특별한 종류의 긴급한 권리들(a special class of urgent rights[LP 79]”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여기에는 ‘노예와 농노 신분에서 벗어날 자유, 양심의 자유,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로부터의 보호’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하는 무법국가는 비난 받아야 하며, 중대한 경우에는 강제적 제재와 심지어 내정간섭을 받을 수도 있다(LP 81).” 따라서 자신 혹은 동맹의 방어를 위한 전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가들은 롤즈의 인권 개념이 지나치게 협소하다16고 비판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롤즈의 추론에 비춰보더라도 원초적 입장에 참여하는 자유적 만민들은 만민법의 원칙에 더 많은 자유주의적 권리들을 포함시키려 할 것이다. 롤즈의 인권 목록은 국제법과 규범에 의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온 것보다도 협소하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원초적 입장을 합리적 모델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의 방법론적 목적은 계약의 당사자들이 서로의 정치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는지를 반영하는데 있다. 이 때문에 롤즈는 원초적 입장이 ‘대표의 장치(a device of representation[JF 17])’17라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따라서 만민들의 대표가 참여하는 국제적 원초적 입장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만민들’의 관계를 조형(model)하려는 롤즈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만민들의 대표는 합리성에 기초하여 특정 합의에 도달하지만, 이때의 합리성은 만민들의 상호성에 기초한 합당성의 제약에 놓이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만약 자유적이지는 않지만 관용할 수 있는 만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롤즈의 가정에 동의한다면, 인권의 목록은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권리들을 배제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비판가들(Teson 1998, Buchanan 2004)은 롤즈의 인권 개념에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지 않은 점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들에 따르면, 적법한(legitimate) 정부를 가진 국가들만이 불간섭의 권리를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적법성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에, 민주적 정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군사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민주 평화”에 대한 가설에 의해 뒷받침된다. 롤즈 역시 M. Doyle과 B. Russett에 의해 제시된 경험적 근거들을 인용하면서 “입헌적으로 안정된 자유적 국가들이 상호 간에 전쟁을 해야 할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에 대한 칸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수용한다.

칸트의 가설인 평화적 연합(foedus pacificum)이 충족되는지는, 일군의 입헌정체들이 지닌 조건들이 입헌민주정체를 지탱해 주는 요인들을 갖춘 그러한 체제들의 이상에 도달한 정도에 달려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민주적 만민 간의 무력 갈등은 이러한 만민이 이런 이상에 근접하면 할수록 사라질 것이다(LP 54).

롤즈의 말대로 “민주평화”가 만민법을 지지해준다면, 모든 만민들의 정체가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하게 정의로운 만민들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jus ad bellum의 정당한 이유가 자기 방어와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democracy)”가 인권의 목록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롤즈가 인권에 자유주의적 기본권들과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만민법에서 인권이 담당하는 특별한 역할(LP §10.2) 때문이다. 롤즈에게 인권은 국가의 자기결정권이 지닌 자율성의 한계이자 개입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

첫째, 인권의 구현은 한 사회의 정치제도와 법질서의 적정성(decency)에 대한 필수조건이다. 둘째, 인권의 구현은, 정당화되고 강제적인 타 만민의 간섭, 가령 외교적·경제적 제재나 중대한 경우에 군사력을 통한 간섭을 배제하는 충분조건이 된다. 셋째, 인권은 만민 간의 다원주의에 대한 한계를 설정한다(LP 80).

즉, 롤즈의 인권은 국내의 정치 사회적 제도들의 적정성에 대하여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필수적인 기준들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롤즈의 인권론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의 문제는 ‘민주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정 수준의 만민이 존재할 수 있다’는 롤즈의 전제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설령 이러한 전제를 거부하더라도 또 다른 실천적인 문제 역시 고려해야만 한다. 국제관계에서 평화와 안정이 지닌 무게감을 고려해 볼 때 만민법에 광범위한 권리의 목록을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인권의 목록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각종 제재의 폭도 그 만큼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18

게다가 만민법에 제시된 최소주의적 인권 개념이 포괄적인 인권 개념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롤즈는 만민법에 언급된 권리들이 “여러 인권들 중에(Among the human rights are…[LP 65])” 일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롤즈는 사회적 안전이나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과 같은 경제적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가 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Brock 2014, 348-350). 그의 의도는 인권의 본질과 토대를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위한 확고한 지침을 마련하는데 있다. 만민들의 사회에서 좀 더 포괄적인 인권들은 대외정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시민단체들과 학계, 언론 및 개인 등의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국가들의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롤즈는 인권을 jus ad bellum의 맥락 속에서 다루고 있다. 이로써 만민법의 다섯 번째 원칙(만민은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가 있다)과 여섯 번째 원칙(만민들은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이 jus ad bellum에 대한 원칙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리고 일곱 번째 원칙(전쟁 수행에 있어 특별히 규정된 제약 사항들을 준수하여야 한다)은 jus in bello를 반영하고 있다. 만민법의 여덟 원칙들이 임의적을 선택된 것이라는 의구심은 정전론의 전통적 구조를 통한 분석을 통해 해소된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반대 방향에서 제기되는 비판에 대한 대답도 제공해준다. 즉,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이 애초에 타 만민들의 내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가? 무법 국가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섭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심지어 무법 국가들이 다른 만민들에게 위험하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매우 약한 경우에도 정당한 개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LP 93n6)? 인권의 토대를 인간성 자체에서 발견하는 인도주의적 정당화의 방식에 따르면, 보편적 인권에 대한 침해는 국제기구, 국가, 개인들 모두의 이해관계와 결부된 문제가 된다. 이 경우 인도주의적 개입은 국경과는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요청될 것이다. 하지만 만민법은 하지만 만민법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포괄적 교리가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 따라 제시된 것이다.

5. 전쟁수행법(Jus in Bello)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로 정의 내린다. 그에 따르면, “전쟁이란 한층 더 규모가 큰 전투에 불과하다. 전쟁 당사자 각각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물리치고, 상대방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전쟁이란 무력행위이고, 무력을 사용함에 있어 한계란 없다.”19

쌍방이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혹은 발포 이후 전면전에 돌입한 상황에서조차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군사적 수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롤즈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군사적 고려는 왜 만민법의 제약에 놓여야만 하는가? 롤즈에 따르면 군사적 고려에 따라 특정한 조치들과 정책을 결정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수단-목적 추론이나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공리주의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TJ에서 롤즈는 제 아무리 더 많은 양의 복리를 가져오는 사회정책일지라도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지닌 불가침성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원초적 입장의 논증을 포함하여 TJ의 많은 부분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할애되었다. 마찬가지로 제 아무리 높은 군사적 효용을 가진 수단이라고 할지라도 만민법의 도덕적·정치적 이상(ideal)이 침해되는 것을 자유적(적정 수준의) 만민들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롤즈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 행위의 한계는 무법 국가의 ‘지도자들과 관료들’, ‘군인들’, ‘민간인’을 구분하는데서 시작된다. 무법 국가는 정의상(by definition) 질서 정연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의 민간인 성원들은 전쟁 준비와 개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참여자일 수 없다. 그리고 질서 정연한 사회와는 달리 이러한 사회는 공지성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하므로, 민간인들은 그러한 정책적 결정 과정에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사전에 알 수도 없을 거라고 가정된다. 그러므로, 전쟁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 기관을 통제하는 지도자들과 관료들에게 있다(LP 94).20 마찬가지 이유에 의해 상위 계급이 아닌 대부분의 군인들 역시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들은 대개 징집의 대상이며 군인으로서의 덕목을 (강제로) 주입받는다.21

적대국의 민간인들과 군인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인권 보장의 대상으로 남는다 . 따라서 전쟁 계획과 전략 및 교전 행위는 만민법에 명시된 “특별한 종류의 긴급한 권리들(LP 79)”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민간인들과 군인들은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거나, 양심의 자유를 제한받거나, 학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민법에서 인권은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 더 나아가 이후 설명할 jus post bellum에서 정확하게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22

jus in bello에서 롤즈의 설명이 독특한 점은 위와 같은 전쟁 행위를 제한하는 원칙에 중요한 예외사항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롤즈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인들에 대한 직접 공격이 허용되는 “최고 비상 상황으로 인한 면제(Supreme Emergency Exemption)”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함락된 1940년 6월부터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과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 사이의 기간이 이에 해당한다. 롤즈가 보기에 이 시기는 독일의 우월한 전력을 격퇴할 만한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었던 시기이므로 독일 도시들에 대한 폭격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롤즈의 논거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나치즘은 모든 지역의 시민 생활에 대해 무수한 도덕적, 정치적 악행의 전조”라고 판단되었다. 둘째, “유럽 역사에서 입헌 민주주의의 위치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위협 앞에서는 입헌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질서 정연한 사회들이 최고 비상 상황으로 인한 면제에 호소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다(LP §14.3).

정전론의 본질이 특정 전쟁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전쟁의 이유를 제한하려는 이중적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 비상 상황의 개념은 정당화될 수 없는 호소를 부각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45년 2월 드레스덴 폭격과 1945년 봄부터 이루어진 일본 폭격과 연이은 원자폭탄의 사용은 ‘최고 비상 상황의 면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LP 99-101).

롤즈가 핵무기의 사용 자체를 반대한다는 문헌적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최고 비상에 해당하는 시기에 원자폭탄, 수소폭탄, 중성자탄과 생화학무기 등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롤즈는 이러한 무기의 사용을 허용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Sterba(1987, 123)는 핵무기의 사용이 명백히 비도덕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jus in bello에 대한 롤즈의 기준은 이와 같은 비례의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높지는 않지만 롤즈는 만민의 정의로운 사회제도의 존립 자체가 위태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오로지 그러한 경우에만 핵무기의 사용을 받아들일 것이다. ‘최고 비상’이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에 따른 상황을 의미한다.

롤즈의 이러한 주장은 만민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한다. 만민법은 일차적으로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위한 기준과 원칙을 제공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민법의 목적은 “모든 사회가 결과적으로 ‘질서 정연한 만민들의 사회’의 완전한 성원이 되도록 유도(LP 93)”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자유적 만민들은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자신의 정의로운 사회 기본구조를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러한 목적은 현존하는 적국과의 관계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전쟁은, 적국 국민들에게 그들이 어떤 처우를 받게 될지 알려 주고 향후 지속적이며 우호적인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들로 개방적이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적국 국민의 입장에서 보복과 복수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나 공상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 현재의 적국을 공유되고 정의로운 평화 체제에서 미래의 동료로 분명하게 여겨야만 한다(LP 101).

전쟁 수행의 방식은 전후 관계에 대한 전조가 되기(foreshadow) 때문에 jus in bello는 전쟁 이후에 적국과 어떠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만 한다.23 따라서, jus in bello와 jus post bellum은 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사고될 수밖에 없다.

6. Jus post Bellum

 

정치 철학에서 jus post bellum은 앞선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까지 국제법과 정전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살라망카 학파(Escuela de Salamanca)의 비토리아(Francisco Vitoria)와 수아레즈(Francisco Suarez)는 정당한 전쟁의 단계를 ‘개시-수행-승리 이후’의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이들은 전쟁의 승리를 반드시 기독교적 미덕과 겸손에 일치되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칸트에 의해 계승되어, 영구평화를 위한 법체제 확립의 근간이 될 정의로운 전쟁의 권리(혹은 법)를 유사한 삼분법에
기초하여 발전시킨 바 있다.24

현대에 들어, 법학의 경우, 국제법상 전쟁 자체가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동시에 법실증주의가 대두되고,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현실주의가 지배적 사조의 지위를 점하면서 정전론의 영역은 교전법규에 대한 제한된 논의로 축소되었다. 특히 현대전의 특징상 ‘전후(post-war)’의 시점이 갈수록 불분명해지는 현실은 jus post bellum이 과연 개념적으로 유용한지에 대한 의문을 지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Walzer(2006)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25은 비전통적인 전쟁과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jus post bellum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전후 상황에 대한 기존 법체계의 한계26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27

비록 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LP 적은 없지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설명에 비춰 봤을 때 그가 jus post bellum의 근본적인 발상을 충분히 지지하리라 판단된다. 지금까지의 추론에 따르면,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주변 국가를 침략하거나 심각할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는 군사적 개입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적절한 절차28에 의해 대상 국가의 정권이 제거된 뒤에는 얼마간의 (적어도 중앙의) 권력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이제 정전론의 남은 과제는 어떠한 전후 체제가, 어떠한 절차를 거쳐 건설될 것인가에 답하는 일이다.29

LP는 전후 교전국이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지니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자원들을 담고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만민들의 자기결정권과 불간섭의 권리에 대한 롤즈의 강조는 비자유적 사회에 대한 관용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도 자유적 만민들은 ‘적정 수준의’ 만민들을 정치적 제재를 통해 변화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LP 122-123).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건데, jus post bello와 관련된 롤즈의 첫 번째 원칙은 “가능한 짧은 기간의 점령”이 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단 평화가 확실하게 재확립되면 적국 사회도 자율적인 질서 정연한 체제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 적국의 국민들은 항복 이후 노예나 농노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일정 기간이 지난 뒤라면 완전한 자유가 거부되어서도 안 된다(LP 98).

다음으로, 롤즈에게 jus post bellum은 jus in bello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전쟁 수행 시 준수해야 하는 원칙들에 대한 다음의 언급은 분명하게 ‘전쟁의 종식(ius post bellum)’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질서정연한 만민들은 실행 가능할 때 자신들의 행위와 선언을 통해 전쟁 기간에 자신들이 지향하는 평화의 종류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관계의 종류를 사전에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어떤 종류의 만민인지를 공개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과 전쟁을 끝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그 사회들의 역사적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아 미래의 전쟁을 위한 무대를 설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LP 96).

그리고 더 나아가 이 jus post bellum과 jus in bello의 두 요소들은 jus ad bellum의 필수적 부속(addendum)이라 할 수 있다(Bass 2004, 389). 전시와 종전은 시간 상 연속된 것으로 전자의 기간이 후자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동시에 전쟁의 정당한 이유 – 자기방어 혹은 인권 침해의 방지 –의 지향점을 달성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전후 민주 정체를 세우려는 정치적 시도가 정당화 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롤즈의 생각을 유추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만민법의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목적을 고려해야만 한다. jus post bellum의 핵심은 질서정연하지 못한 국가가 만민들의 사회에서 우호적인 일원이 되도록 지원하는데 있다. 따라서 새로운 만민의 정치체제가 반드시 자유적 민주주의의 특징을 지닐 필요는 없다. 롤즈는 다만 이들이 적어도 ‘적정성(decency)’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Walzer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히 민주적이면서 연방주의적인 이라크의 수립’을 추구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jus post bellum은 최소주의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정치 이론은 전쟁 이전과 전쟁 중의 정의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후 정의에 관한 설명에 있어서는 중심적인 원리들을 제공한다. 그 중심적 원리들은 자기 결정, 대중적 정당성, 시민권, 그리고 공동선의 관념을 포함한다. 우리는 패전국에 민주적으로 선택된 정부 – 혹은 적어도 국민들이 정통성을 갖는다고 인정하는 정부 – 그리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정부가 전쟁 이후에 수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 국가 내 소수자 집단이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이웃 국가들이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이 빈곤과 기아로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란다(Walzer 2004, 164).

만약 민주적 정치 구조가 지나치게 생소하여 대중들에게 손쉽게 이해되거나 포용되지 못 한다면? 전후 정치체제의 가장 주요한 전제는 작동가능하고, 안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이해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빈번하게 그들은 ‘공공선(common goods)’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롤즈에 따르면, 이것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포괄적(comprehensive)’ 교리를 토대로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적 삶이 가져다주는 경건함, 전통에 대한 고수, 근대적 권리가 아닌 시혜와 자비의 원리 등 각자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에 기초한 ‘좋은 삶’에 대한 사회적 지향점이 존재한다.

전쟁으로 인해 붕괴된 정치·사회적 체제의 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정당한(legitimate)’ 해야만 한다. 첫째, 그 사회의 성원들이 새로운 정체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다른 만민들이 새로운 사회가 정당한 정체를 지닌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롤즈는 이를 위해 LP에 ‘적정성(decency)’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정당성(legitimacy)’의 조건은 jus post bellum를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평화구축활동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설령 당장의 대량학살을 인적 바리케이트 등의 방법을 통해 일시적으로 중단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가 장기적으로 볼 때 자유롭고 독립된 성원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적정성(decency)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실현가능한 정부의 형태들 중 자유주의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체제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민주적 체제를 강제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정당화될 수도 없다(Bernstein 2006, 293). 롤즈의 만민법은 다만 그 사회가 적정 수준의 만민이기를, 따라서 새로운 법체계가 공동선의 정의관과 함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고 요구할 뿐이다.

이상의 논의는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 그리고 jus post bellum이 개념상 상호 구분될 수는 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으로 현대에 들어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적 구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평화구축이 단순히 충돌의 종지(conflict termination)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사안을 포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전론의 세 체계는 종종 중첩되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7. 결론 : 정의로운 전쟁과 시민성의 의무(the duty of civility)

 

전쟁 행위는 특정한 정치집단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도로 조직화된 인간 집단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다. 정치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은 도덕이 아니라 정치적 신중함(prudence)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에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주장은 기껏해야 국가이익 추구를 위한 가면에 불과하거나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군사적 모험주의의 불쏘시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본질적으로 ‘죽이는(killing)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정전론은 도덕과 정치의 이와 같은 심대한 간극을 메꾸기 위한 이론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클라우제츠의 말대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전쟁은 도덕적 판단의 제약에 놓이게 된다. 전쟁과 관련된 정치적 결단이 공동체 다수의 정의감the (sense of justice)에 의해 통제될 때 전쟁은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롤즈는 전쟁을 포함한 대외정책 역시 다른 국내의 사회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 정당성(legitimacy)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적 만민들에게 전쟁의 원칙들은 입헌적 민주주의의 일부가 된다. 롤즈는 이를 ‘시민성의 의무(the duty of civility)’를 통해 강조한다.

만민의 시민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무가 요청된다. 첫째, 만민들의 사회에서 “공직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행정 수반, 입법가들은 만민법의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며 이를 준수하고, 다른 사회들과 관련된 자신의 대외정책이나 국가 업무를 추진 혹은 변경하는 이유를 다른 만민들에게 설명(LP 56)”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민들의 대외정책은 다른 만민이 합당하게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들, 즉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유들에 기초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전쟁 수행과 종결 과정에서 분명하게 전쟁의 목적을 천명해야 한다. 그것은 전후 체제에 대한 공식적 약속이 될 것이며,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둘째, 시민들은 “자신을 마치 행정 담당자나 입법가인 것처럼 간주하고, 어떠한 대외정책이 무슨 근거로 지지될 수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는 존재(LP 56-57)”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자유적(혹은 적정 수준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정부가 다른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대외정책을 오로지 정책을 입안하는 소수에게 맡겨두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국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방면에서도 시민들은 집합체로서 정부의 권력에 대한 저자(author)가 된다.30

중요한 점은 전쟁의 원칙들이 전쟁 이전에 충분히 제시되고 알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원칙들은 단순히 다른 사항들과 저울질되는 여분의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군사적 고려가 도덕적 판단을 압도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도한 바 있다. 바로 이러한 필요로 인해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 아직 미완의 초고이니 인용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1.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가족, 교회, 학교, 직장’과 같은 단위에 적용되는 정의, 둘째, 사회의 기본 구조(사회의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에 적용되는 정의, 셋째, 만민들 간의 합당한 관계에 대한 정의로 나뉜다(Justice as Fairness: Restatement[JF], 11).

2. 롤즈는 LP에서 전통적인 ‘주권국가’가 아니라 ‘만민(people)’을 주요 행위자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이익에 따라 설정된 국가 목표”에 따른 전쟁을 허용하고, 자국민을 대하는데 있어 일정한 자율성을 허용하는 전통적 주권 개념은 국제 사회의 공정한 협력을 위한 원칙을 구성하려는 LP의 목적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만민’은 ① 합당하게 정의로운 입헌 민주 정부 ② 공통된 감정(common sympathies)에 의해 결속된 시민들 ③ 상대방에게 공정한 조건을 제시하는 도덕적 특징을 지니는 행위자로 묘사된다(LP 23-27). 롤즈의 ‘만민’이 지닌 존재론적 특징에 대해서는 인지훈(2021b)와 Pettit(2006) 참조.

3. 롤즈가 구성주의적 방법을 통해 ‘옳음’과 ‘좋음’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인지훈(2021c) 참조.

4. 이후부터는 이를 ‘정전론(just war theory)’이라 줄여서 부르도록 한다.

5. 이 두 가지 항목에 대한 공통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종원(2008)은 이를 각각 ‘전쟁결정시 충분조건’과 ‘전쟁수행조건’, 선우현(2016)과 조의행(2018)은 ‘전쟁 개시의 정의’와 ‘전쟁 수행의 정의’, 김형구(2009)는 ‘전쟁 개시에 관한 법’과 ‘교전법규’로 옮기고 있다. jus는 어원상 ‘법’과 ‘권리’를 동시에 의미하며, 정당화(justification) 혹은 정당성(legitimacy)과 관련된 광의의 의미로는 ‘정의’라고 옮길 수 있다. 윤리철학과 법철학에서 서로 다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는 김형구(2009)의 134쪽 각주1 참조.

6. 이 부분은 Jeremy Mynott(2013)과 Johanna Hanink(2019)의 영문 번역을 참고하여 한글로 옮겼다. Walzer(2006, 5-6)에 따르면, 이때의 ‘자연적 필연성(necessity of nature)’은 멜로스인들 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장군들에게도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즉, 능력이 있는 모든 곳에서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은 강자에게 조차도 선택이 아니라 필연의 영역에 속한다.

7. 강한 평화주의에 대한 다음의 구절들을 참고하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9-10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38-39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3-44절).”

8. 물론 이상과 같은 평화주의에 대한 설명은 다소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있다. 폭력배제의 정도에 따라 ‘비폭력적(nonviolent) 평화주의’, ‘치명적(nonlethal) 평화주의’, ‘반전적(antiwar) 평화주의’로 구분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Sterba(1998)의 151-154 참조.

9. 만약 이러한 것이 허용된다면 부유하고 강한 권력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유리한 협동의 조건들을 이끌어낼 것이다. 그로인해 정의의 원칙은 개개의 환경에 대한 지식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되고, 당사자들의 합의는 공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Freeman 2019).

10. 이러한 방식으로 무지의 장막은 “사회적, 역사적, 자연적 경향성이 축적되어 발생하는 사회 세계의 우연성이 사회의 배경 제도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구조적으로 방지(JFPM 400)”한다.

11. 국내사회의 경우를 첫 번째 원초적 입장, 국가들(혹은 만민들)의 대표들이 참여하게 되는 경우를 두 번째 원초적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의 전체적 구조는 다음 표와 같다.

12. LP가 출판된 직후부터 학계에는 위와 같은 롤즈의 결론을 놓고 숱한 비판과 반박들이 진행되어왔다. Beitz(2000), Pogge(2004), Caney(2006)와 같은 자유적 코스모폴리탄들(liberal cosmopolitans)은 롤즈가 차등의 원칙을 국제사회에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고 원조의 의무(여덟 번째 원칙)에 머무르는 태도를 주로 문제 삼았다. 하지만 만민법에 대한 연구가 충실하게 축적됨에 따라 최근에는 국제관계에 대한 롤즈의 입장을 단순히 분배적 정의의 문제에 한정시키지 않고 좀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지하게 다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대표적으로 Williams 2014, Audard 2007, Lehning 2009). 롤즈의 정전론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경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13. 이처럼 ‘비이상적 이론’은 “특정한 시점에 우리 세계에 발생하는 특정한 조건들 ― 현 상황(status quo) ―”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이행(transition)의 문제”에 답하기 위한 것이다(LP 90).

14. 여기서 만민 자신의 안보와 안전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5. 아울러 “자애적 절대주의(benevolent absolutism)” 역시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 이 사회는 비록 모든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정치적 역할의 기회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인권을 존중한다. 따라서, 만약 대외적으로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대내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누구나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LP 92).

16. 대표적으로는 Pogge(1994), Moellendorf(2002), Macleod(2006), Buchanan(2006), Ashford(2013) 참조.

17. LP에서 롤즈는 이를 “대표의 모델(a model of representation)”이라고 표현한다. 맥락에 따라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기는 하지만 ‘model’과 ‘device’를 통해 롤즈가 강조하고자 하는 요점은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는 LP §3.1과 “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1985)”의 400쪽 참조.

18. 게다가 만민법에 제시된 최소주의적 인권이 포괄적인 인권 개념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롤즈는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형식적 평등’ 등을

19. Von Clausewitz, On War, in War, Politics and Power, 63-72. 레이첼스, 『사회윤리의 제문제』, 357쪽에서 재인용.

20. 더 나아가 롤즈는 “종종 무지에 사로잡히고 국가의 선동에 동요하고 전쟁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 열광적이었다고 할지라도 민간인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LP 95)”고 덧붙인다. 최종적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그 국가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21. 얼핏 보아 롤즈의 이러한 관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된 전쟁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전시 잔혹 행위들에 대한 책임은 지휘체계에 따라 경중이 다를 수 있지만, 문제시되는 직접적 수행자로서 일반 병사 역시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롤즈가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국의 군인들 역시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대안이 존재할 경우에는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울러, 전시 ‘민간인 면제(immunity)’ 역시 적국의 민간인이 전쟁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전쟁 결정 자체에 대한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이 없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설령 민간인들이 전쟁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고 정치인들이나 고위 군인들보다 더 열광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언제나] 그 국가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지도자들(LP 95)”이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에서 일본군과 대치한 미군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LP 95n9 참조.

22. 이러한 점은 롤즈가 최소한의 인권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시 포로에게 광의의 인권 개념에 나열된 권리들을 보장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전후 국가건설의 기준과 원칙에서 인권이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해 봐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3. “Fifty Years after Hiroshima(1995[Fifty])”, 567 참조.

24. 현대의 전후법 연구에 대한 칸트의 기여는 Orend(1999) 참조.

25. 대표적으로는 Orend(2006)과 Bass(2004) 참조.

26. 김형구(2009, 141-144)는 이러한 한계로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의 이분법적 구분을 언급한다. 이러한 접근법에 기초하여 관련 규정을 담고 있는 헤이그협약(1907)과 제네바협약(1949)은 현대적인 평화구축활동의 특징들을 반영하지 못한다.

27. 이와 관련하여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된 jus ex bello의 개념도 존재한다. Moellendorf(2008)에 따르면,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의 삼분 체계는 이와 같은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없다.

28. 예를 들면, 각종 인권협약에 근거한 UN 혹은 지역 국제기구들의 협의와 결의 절차, 사안의 경중에 따라 외교적, 경제적 제재 수단의 단계적 사용 등.

29. Pattison(2013)은 여기에 ‘누가 건설의 책임을 질 것인가’를 덧붙인다.

30. 롤즈의 정의론이 고려하는 것은 ‘개연성(probability)’이 아니라 ‘가능성(possibility)’의 영역이다. 이 때의 이론적 목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 비춰 봤을 때 우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정의이지, 실제의(actual) 현실적 조건들에 의해 일어날 것 같은(probable) 정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의무’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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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11] 미디어에 나타난 코로나 19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규정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5에서 발표되었습니다.

 

Ⅰ. 起

2019년 12월 중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세계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2021년 8월 초 현재 약 20억 명의 확진자를 양산했으며, 사망자 역시 약 424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류사 초유의 대확산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두 가지 중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 국제 협력보다 자국의 안보 확보를 위한 자조(self-help)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국제적 차원에서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축을 위한 논의는 비전통 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부 국가들의 개별 행 동은 환경 문제나 난민 문제 등 지구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여 주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전통적 안보 논리와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기를 초래하였다. 2002년 사스(SARS)와 2012년 메르스(MERS)의 유행으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감염 확산이 조기 차단되면서 공중보건 분야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논의도 제한적인 수준에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전염병 확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이 드러나게 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거듭된 발전은 지리적 경계를 허물고 국가 간 이동의 자유를 극대화시켰다. 지리의 종말은 개별적으로 분리되었던 국가들이 세계화라는 단일한 구조에 통합되는 효과를 만든 것이다. 코로나 19의 급속한 확산은 병리학적 측면에서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성과 함께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작용한 것이다. 또한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의 피해가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세계화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남녀노소와 같은 생물학적인 차별을 하지 않고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사 람들에게 전염병의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과정은 국가의 부와 능력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방역 관련 행정 능력과 시민들의 협조와 같은 국가 능력에 따라 피해 정도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면서 코로나 19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백신의 개 발은 주로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백신의 보급이 제3세계 빈국에게까지 골고루 이루어지지 못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생성되고 다시 우선 백신 도입국에게 새로운 피해를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즉 단일한 구조의 통합과 끊임없는 상호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는 코로나 19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된 것이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코로나 19의 확산은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변화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세계 시민들은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회복에 주목할 뿐이며, 외국의 곤경에 대하여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코로나 19의 극복과 세계화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논의는 정부 간 공식 기구를 통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는 코로나 19라는 지구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낮은 원인을 미디어를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논의

1.글로벌 거버넌스의 개념

글로벌 거버넌스는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되던 거버넌스가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거버넌스는 비교적 최근 주목을 받게된 개념으로 기존의 수직적이며 일방적인 권력 관계를 수평적이고 쌍방적인 것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모두가 동의하는 개념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Jordan, Wurzel and  Zito, 2005).  거버넌스에  대한  주목은 기존의 국가중심적 경성 통치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초국가, 국가, 시민사회, 기업, 지자체 등과 같은 다수의 통치 행위자에 의해 지배, 교환, 네트워킹, 규범으로 이루어지는 연합적이며 연성적인 통치구조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이때 거버넌스는 공식적인 권위나 물리력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목표에 의해 정당화되며, 수직적 일방적 통치가 아닌 수평적 양방향적 협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거버넌스에 관한 관심이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은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체제에 의한 ‘신중세’의 도래로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약화되었기 때문이다(임혁백, 2000). 거버넌스에 대한 국제정치 차원의 논의는 ‘국가들 사이 차원’(international)이 아닌 ‘전 지구 차원’(global)에서 국가, 비정부기구, 국제기구, 기업,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또한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해결하려는 문제가 군비 경쟁과 감축, 핵 확산, 테러리즘, 경제적 이해 득실 등과 같이 전통적 안보(traditional security) 관련 문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환경 보호, 인간 안보, 인권, 공공 보건 등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즉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참여 주체와 해결하려는 의제의 다양화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우선 참여 주체 차원에서 국제 체제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근대 국민국가가 건설된 이후 국제정치학은 국가를 주요 행위자로 가정하였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구조적 변화는 권위의 위치(location of authority)가 국가 수준(national level), 지역 수준(local level), 지구적 수준(global level)으로 다양하게 이동시키는 경향을  초래하였다 (Rosenau, 1995,  Parkash, 1999).  이에  따라  국제정치의  행위자에  대  한 논의 역시 국가에서  비국가  행위자(non-state  actor)에서  점차  초국가 행위자(transnational actor)까지 확대되었으며, 국제정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에 이해를 공유하는 모든 행위자들이 글로벌 거버너스의 주체가 되었다.

둘째, 글로벌 거버넌스가 다루는 의제를 중심으로 이해한다면 사실상 세계 전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이 대상이 된다. UN 글로벌 거버넌스 위원회는 거버넌스를 “공공 및 사적 개인들과 제도들이 공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공통적인 문제를 관리하고, 자원을 통제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이해조정적이고 협력적인 다양한 방법들의 합”으로 정의하였다(UN Commission  on  Global  Goverance,  1995).  나이트(A.  Knight)는 “사회정치적 이슈, 군사안보 문제 등 개별 국가들의 영역을 초월한 무수한 초국가적 딜레마들의 해결을  위한  지구적,  지역적,  지방적 차원의 합의를 조정하는  과정”으로  정의하였다(Knight. 1999).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개념 정의를 고려할 때, 개별국가들의 해결능력을 넘어서는 세계 차원의 모든 문제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의제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다루어야 할 의제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밖에 없는 개념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행위자들이 다루는 문제는 특정 시점에서 시급한 해결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국제정치의 양상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을 고려하면, 냉전이나 탈냉전, 그리고 세계화 라는 거시적 변화과정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의제의 다양성과 중요성은 변화하게 될 것이다.

2. 미디어의 기능과 글로벌 거버넌스

미디어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다른 행위자들의 판단과 선택에 1차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산업화와 탈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사회의 구조가 복잡하게 변화하면서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철저히 미디어를 활용하게 된다. 과거에도 사람들의 직접적 대면 접촉과 경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으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국내 상황에 대한 이해만으로 발생하는 사건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를 벗어난 다른 나라와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효율적이다. 물론 최근 들어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전통적 미디어를 비롯한 미디어 전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¹, 여전히 미디어는 세계를 이해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된 미디어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정보 제공 기능이다. 미디어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를 만드는 것 이다. 뉴스(news)라는 용어 역시 중세 영어에서  새로운 것(new  things) 을 의미하는 newes, newys가 변화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보 제공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미디어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의 정보 제공 기능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가진 시민(informed citizen)을 육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Norris, 1996; Scammell, 2000). 국제 정치에서 시민의 역할이 직접적으로 강조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국내 정치 영역에서 개별 국가의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다양한 조직과 결사체 형성을 통해 국제 여론의 형성을 형성하게 된다.

둘째, 미디어는 의제 설정 기능을 갖는다. 글로벌 이슈에 대한 미디어의 의제 설정 기능은 미디어가 보도하고 중요하게 제시하는 의제가 글로벌 공공 의제(public agenda)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국내  정치 차원에서 특히 선거와 같은 시기에 미디어가 제시하는 의제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경험적 연구로 검증되었다(McCombs & Shaw, 1972).  즉  “미디어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을 말하는데 실패할지는 모르지만, 무엇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성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Cohen, 1963).  세계화로 인해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개별 국가의 미디어가 글로벌 이슈를 보도하는 것이 글로벌 거버넌스와 관련된 의제 설정에 1차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미디어는 궁극적으로 글로벌 수준에서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하게 한다. 미디어의 정보 제공 기능과 의제 설정 기능은 궁극적으로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한  글로벌  공론장(global  public  sphere)을 형성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하버마스(J. Habermas)에 의해 정식화된 공론장(public sphere) 개념은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사적인 시민들 (private citizens)의 사적인 생활세계(lifeworld)가 공적인 공간과 교차 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되었다. 공론장은 정치적 생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공개적이며, 다양한 이슈에 대하여 공적인 토론을 제공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³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사적인 지식과 경험, 이슈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표 명할 수 있는 자유를 공평하게 제공받음으로써,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에 따라 애초에 개인적으로 분리된 각각의 생활세계의 제도화를 이루게 되며, 결국 시민사회 형성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Habermas, 2001). 미디어는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개인들에게 공통의 문제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공론장을 제공하여 공통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3. 연구의 방법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은 예방과 백신 개발 및 치료제 개발과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연구는 국내 주요 미디어가 코로나 19와 관 련된 보도 행태와 의제 설정 방식을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에 따라 명칭 논란 단계, 마스크 확보 논란 단계, 백신 확보와 접종 논란 단계로 구분 하고자 한다. 각 단계별 미디어의 보도 행태에서 글로벌 거번넌스 구축과 관련된 부분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코로나 19와 같은 지구적 의제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 행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Ⅲ. 코로나 19 명칭 논쟁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 전염병의 명칭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자체로 상호 협력이나 책임 전가를 가르는 중대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2019 New Coronavirus(2019-nCoV)”로 명명했는데, 새롭게 발견되는 병명과 병의 원인체에 대한 명명 원칙을 공표한 바가 있다. 새로 발견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권은 발견자의 몫이기는 하지만, 질병의 경우는 예외를 두고 있다. 즉 질병의 증상과 질병이 나타난 방식 등에 대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담고, 피해야 할 용어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 또는 음식의 종, 문화, 인구, 산업이나 직업 등을 제시하였다.4 이러한 원칙에 따라  코로나 19에  대한  학술적  명명  역시  초기  몇 가지 용어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WHO와 질병관리청의 권고에 따라 현재와 같이 정리된 것이다.

우리나라 미디어의 경우는 현재의 “코로나 19”라는 공식 용어로 정착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가 혼용되기도 하였다. 새롭게 발생한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직관적인 정보에 근거한 명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발생한 초기 시점에서는 우리나라  미디어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 CNN, BBC 등의 해외 유력 미디어도 ‘우한 코로나바이 이러스’(Wuhan Corona Viru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5

 

<그림 1> ‘우한 폐렴’ 구글 트렌드(좌) . 기사 검색(우)

위의 <그림 1>은 ‘우한 폐렴’이란 용어에 대한 구글 트렌드 검색과 민언련 신문 모니터 자료의 기사 검색 내용을 보면 코로나 19 발생 초기에는 “우한 폐렴”이란 용어의 사용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2월 이후에는 WHO에서 권고한 대로 “코로나 19”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우한 폐렴”이란 용어는 일부 미디어와 집단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중국의 우한이라는 지역명을 포함한 명명법을 고수하는 세력들은 정부의 방역 정책이 중국의 눈치보기의 결 과라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6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축이라는 차원에서 코로나 19에 대한 명칭 논쟁  은 세 가지 차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초기의 명칭에 대한 혼란은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못 하게 하였다. 정보의 부재는 질병에 대한 공포를 확대시키고 대중의 공황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애초 코로나 19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급성 폐렴과 유사한 증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국가지정 의과학연구정보센터 2020). 그 러나 코로나 19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어 충분한 정보를 획득한 이후에는 코로나 19의 대표적 증상이 발열인 것으로 밝혀졌다.7 즉 코로나 19는 폐렴과 일부 유사한 증상이 있지만, 세부적인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외부로 나타나는 증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전염병 관리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는 외국인에 대한 불필요한 혐오를 초래할 수 있다. WHO에서 제한하고 있는 지명을 사용한 명명법은 특히 최초 발병이 보고된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를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 19에 대한 우한 발원설은 대단히 중요한 논란거리이지만, WHO의 현지 조사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가 조사의 필요성만 제기한 상황이다.8 따라서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오기 전에 기원에 집중하는 것보다 방역과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특정 지역과 국가에 대한 포비아는 전염병에 대응하기 공동체 의식을 붕괴시키고 숨은 감염자를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역 관리에 취약성을 나타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코로나 감염자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괴롭힘이 심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의사와 간호사들이 세균 취급을 받는 것에 반발한 일본재해의학회의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서울신문 2020. 04. 13). 또한 약 70%가 코로나 19에 걸릴 경우 자신의 건강보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더 걱정하는 것으로 조사된 ‘코로나 이지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한국경제 2021. 01. 10).  이로  인해 일본의 누적 확진자 수는 2021년 8월 10일 현재 1,031,296명(사망 15,280)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봉쇄조치가 취해진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거나,9 국내 거주 중국 동포까지 잠재적 감염자로 취급하는 듯한 보도가 나타났다.10 이와 같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비난의 확산은 국경을 초월하여 확산되는 전염병 확산에 대비하기 위한 국제 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셋째, 특정 지역 명칭을 포함하는 명명법은 공공 방역 체계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 19의 가장 큰 위험성은 독감이나 폐렴에 비하여 현저하게 높은 전염성이다. 현재까지 코로나 19에 대한 개인 차원의 예방 수칙은 최소 1m 이상의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비누로 손 씻기 등 이며, 해외 유입과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은 행정부의 능력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결합되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 19의 해외 유입과 확산 차단을 유증상자와 무증상자를 구분하여 진단 검사와 격리, 치 료를 위한 세부 과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감염 환자 조기발견을 통한 확산 차단을 위해 선별진료소 운영과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역학 조사 및 접촉자 격리를 통한 확산 차단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국가 간 교류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특정 지역명을 병명에 포함하는 것은 해당 지역에 대한 격리와 차단을 요구하는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 실제로 “우한 폐렴”이란 용어가 사용될 시기 중국 입국객을 전면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부 미디어와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하 였다. 그러나 특정 국가에 대한 교류와 소통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조치이며, 특정 지역 출신과 감염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는 것은 진단검사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킬 수 있다. 이는 결과 적으로 진단검사를 받지 않는 숨은 확진자를 양산하며 사회 전체에 감염 확산을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유력 미디어까지 코로나 19 발생 초기 단계에 불필요한 명명 논쟁을 초래한 것은 국제적 차원의 감염병 확산 방지 대책의 수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질병의 특징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이해에 근거한 대응책 수립은 코로나 19의 발원국으로 의심받는 중국에 대한 책임 전가와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발생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이 간과되어야 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미 질병의 존재와 위험성에 대하여 인지한 시점에서는 전세계적인 대유행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에 대한 논의가 우선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미 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 “우한 폐렴” 명명 논쟁은 궁극적으로 공중 보건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Ⅳ.  마스크  확보  논란

코로나 19 발생 초기였던 2020년 1월의 주요 이슈가 병의 발생 원인과 증상, 명명 방식에 대한 논란이었다면, 다음으로 사회적 논란을 초래한 것은 2월에 들어서며 예방을 위한 필수품으로 마스크 확보 여부가 중요한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그림 2> 구글 트렌트 “마스크” 검색 결과(2020.1.1.~ 6.30.)

위의 <그림 2>의 구글 트렌드 분석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마스크에 대한 관심은 2월 초에 급증하기 시작하여 3월 중순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코로나 19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흡기가 주요 감염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유력한 예방책으로 마스크 착용이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이른바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2020년 2월 28일부터 공적마스크 제도를 실시하여 마스크 공급의 안정을 추구하 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미디어의 보도 행태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마스크 공급 부족 문제를 부각하는 자극적 보도가 나타났다. 코로나 19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유력한 예방책 으로 평가되는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였다. 이로 인해 정부는 공적마스크 제도를 실시하여 안정적 마스크 공급을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마스크 구매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정부와 국민, 의료계, 마스크 공급 업체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존재하였지만(의학신문 2020. 3. 17.), 대부분의 기사들은 공급 부족과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빅카인즈 신문기사 검색 기능을 이용하여 2020년 1월에서 3월까지 “마스크대란”이라는 키워드 검색을 실시한 결과, 전체 62건의 기사 중 긍정적 제목은 18건, 중립 15건, 부정적 제목은 29건으로 구분되었다.11 마스크 대란을 보도하는 기사가 마스크 부족 문제를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상황 인식에 도움이 되지만, 마스크 공급 부족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은 국민들의 구매 욕을 자극하여 수요 폭발과 공급 부족이라는 악순환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마스크 확보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정파적 차원에서 보도가 두드러졌다.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한 직후 우리나라에 서는 국회의원총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적 일정이 겹치게 되었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확진자가 최초 발생한 이래 2월 18일에는 신천지를 중심 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1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3월 11일에는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하였다. 코로나 19는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이 되었으며,  총선이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도 사실상 코로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는  장이 된 것이다. 이 시기 국내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에 일시적으로 증가하면서 마스크 확보 문제는 총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코로나 19 대응과 관련 이슈로 의미가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미디어는 국내 마스크 부족을 중국 수출 확대와 연관시키는 보도를 하였고, 이를 다시 정치권에서 받아 확대재생산되는 잘못된 정보의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하 였다.12 단편적인 사실의 해석 상에서 제시될 수 있는 미디어의 프레임 설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히면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외국과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코로나 19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였다. 우리 나라는 2020년 1월 중국 우한 내 긴급 의료물품 조달의 시급성 및 특수성을 감안하여 민관협력으로 중국에 마스크 300만 장을 지원하였으며, 5월에는 코로나 19 확산 위기 극복에 기여하고 우리나라 마스크의 우수성과 K-방역모델을 해외로 널리 알리기 위해 국내 생산 마스크의 해외 지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국제 협력의 사례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마스크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중국 역시 우리나라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국제 협력이 진행되기도 하였다.13 그러나 일부 미디 어는 중국에 대한 마스크 제공 과정을 비판하거나,14 중국으로부터 받은 마스크가 불량이라는 오보를 내기도 하였다.15 코로나 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중 간의 마스크 교류를 국제적 협력의 초보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국내적 차원에서 불안을 조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렵게 조성된 국제 협력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효과를 초래하였다.

 

Ⅴ. 백신 확보와 접종 관련 논란

코로나 19 발생과 세계적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수단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19의 종식을 위해 백신을 개발하여 접종을 확대하여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을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 백신 접종률을 높여 코로나를 종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술 교수의 언급처럼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에서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코로나를 특별 하지 않은 감염병으로 만들어 나가서 점차 일상으로 회복해야 한다”(의사신문 2021/05/04)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의 종식이 불가능하더라도  백신  접종은  감염율을  낮추고,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여 의료 체계의 부담을 줄이고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장 유력한 코로나 19에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변이가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백신 접종률 제고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림 3> 세계 백신 접종 현황(출처: Our World in Data)

위의 <그림 3>은 2021년 8월 10일 현재 세계 백신 접종 현황을 정리한 것이며, 우리나라는 접종 횟수는 2,860만 회, 접종완료 인구는 806만 명으로 접종 완료 인구 비율은 15.6%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2월 26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1차 접종이 시행된 이후 현재  개발된 다양한 백신들의 접종이 진행 중이다.

백신 접종과 관련된 우리나라 미디어의 보도 행태는 두  가지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첫째, 검증되지 않은 백신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보도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2021년 3월 4일 자유언론실천재 단과 새언론포럼이 공동주최한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여한 한림대 이재갑 교수는 “코로나라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마다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데, 재난 보도 습성 때문에 백신 보도에서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측면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 고 비판했으며,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안정성 대 시급성의 이중잣대, 방역의 정치화, 사건기사 취재 방식, 속보 중심, 기사  쪼개기,  발표 의존  등을 제시했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정부가  미리  확보하고  가장 먼저 접종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몇몇 언론은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문제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고 비판했다(한국기자협회보 2021/03/05).

미디어의 백신 효능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다른 미디어를 통해 재반박되 기도 하였으나,17 이러한 미디어의 보도 행태는 국민들의 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여 백신 접종 의사를 저하시켰으며,18 필요한 백신의 적기 도입과 접종을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둘째, 국가별 백신 도입과 접종자 숫자에 대한 단순 경마식 보도는 백신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문제를 초래하였다. 백신 접종 초기 일부 미디어는 특별한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자, 신속한 백신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외국과의 비교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EU, 러시아, 중국과 같은 일부 선진국이며,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도 12개국 정도로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백신의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이 자국에 공급하는 것을 우선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백신의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 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코백스 퍼실리티 (COVAX Facility)를 구성하여 백신의 평등한 공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코백스 퍼실리티에 참여하는 빈국의 상당수가 백신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BBC 2021/06/21). 이러한 상황에서도 많은 국내 미디어가 백신 부족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림 4> 빅카인즈 “백신 부족” / “백신 부작용” 기사량 변화 추이

위의 <그림 4> 빅카인즈 “백신 부족”과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량 변화 추이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백신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2020년 말부터 백신 도입과 접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까지 백신 부족을 지적하는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이와 거의 비례하여 백신 부작용에 대한 보도가 나타나고 실정이다. 백신의 시급한 도입을 독려하고 부작용을 알리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공급 능력의 제한된 상황에서 경마식 독려는 외국의 백신 수급을 어렵게 하고, 취약한 국제 백신 협조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단편적인 사실에 기반한 외국과의 비교도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가중할 수 있기에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다.19

 

Ⅵ. 結

코로나 19는 세계화라는 국제정치체제의 구조적 변화 과정에서 맞이한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앨리슨(G. Allison)은 테러리즘, 마약 거래, 에이즈 같은 전염병 안보의제가 지구화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지적하고, 어떤 한 국가가 단독으로 안보위협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Allison 2000). 현재 코로나 19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진행 중이지만, 백신 접종 속도 낮은 국가들에서 발생한 변이 바이러스로 확진자가 재확산되고 있다.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여 개발된 백신의 국제적 공급이 저개발국가까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 한 결과 코로나 19 극복의 시간이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하여 안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 다는 현실주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국가 행위의 결과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안보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패러다임이 당면한 코로나 19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간 협력과 협치를 위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축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연구는 코로나 19에 대한 우리나라 미디어의 보도행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에 미치는 국내적 차원의 영향력을 검 토하였다. 코로나 19와 관련된 보도는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다양하게 양산되었는데, 오히려 지나친 정보의 홍수가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생산적인 공론의 장을 제공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된 세 가지 차원의 보도 행태를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코로나 19의 명명 과정에서 불거진 명칭 논란은 국제 규범과는 동떨어진 비생산적 논쟁을 양산하였다.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대표적 국제기구인 WHO에서 제시한 새로운 전염병의 명명을 위한 가이드 라인을 따르지 않고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하였다. “우한”이란 지역명을 포함한 명명은 특정 국가에 대한 포비아를 초래하고 국가 간 정보 교환과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둘째, 마스크 확보 과정에 대한 일부 보도는 코로나 19에 대한 국가 간 협력과 교류를 왜곡한 측면이 존재하였다. 백신이 개발되기 이전 마스크의 착용은 코로나 19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되었는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마스크의 수요 역시 일시적으로 급증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마스크 상호 지원은 국제 협력의 단초가 되었으나, 확인되지 않은 품질 논쟁은 교류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끝으로 백신의 도입과 접종에 대한 보도 역시 국가별 백신 접종 현황에 대한 경마식 보도와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타났다. 경마식 보도는 코로나 19 백신이 선진국 중심으로 보급되어 변이 바이러스가 재확산되는 악순환의 문제를 가중시켰으며,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검증 되지 않은 보도는 백신 접종률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나라 미디어의 코로나 19와 관련된 보도는 국제 여론에 대한 호소를 통해 국제 규범을 형성할 수 있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과는 다소 상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의 미디어가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에서 가정하는 역할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원인에 대하여는 더욱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우리나라 미디어의 코로나 19 보도 행태 형성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까지 진행되지 못하였으나, 코로나 19 종식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에서 필요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공하고자 했다.

 

※ 아직 미완의 초고이니 인용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1.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미디어가 경영의 위기, 신뢰의 위기, 정당성의 위기를 겪으며,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된 주창 저널리즘으로 파당적 진영 논리와 저급한 시장 논리가 미디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윤석민, 2020).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의 과잉이 가짜 뉴스(fake  news)를 만들어내고  정치적 양극화  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며 미디어 전반의 위기를 확산시키게 된다(김광기, 2020). 
  2. 미디어의 의제 설정에 대한 효과는 단순한 대상의 차원을 넘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이슈의 성격에 대한 2차 의제 설정(second level agenda-setting) 단계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여 인지적 속성(cognitive attribute)과 정서적 속성(affective attribute)으로 구분하여 주어진 의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Hester and Gibson, 2003). 또한 한 사회 내에서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슈 중에서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것은 현저성(salience)을 띠는 것으로 제한되며, 각각의 이슈가 어떻게 점화(priming)되고 구별짓기(framing)가 되는가라는 구별짓기 이론(framing theory)으로 발전하였다(McCombs, 2002).
  3.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이 오늘날 하나의 이념형(ideal type)이나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초로 이해되는 반면, 타르드(G. Tarde)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군집방식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출현한 공중이 새로운 정치적 힘으로 여론을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여론과 군중』을 서술하였다. 타르드는 공론장이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같은 책, 신문, 잡지 등을 읽는 사람들의 ‘독서공동체’로 공중이 출현하였고,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론이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일종의 ‘공론장’을 매개로 하는 ‘상상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다(이상길, 2003).
  4. WHO는 새롭게 식별된 인간 질환에 관해 처음 보고하는 이는 누구라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scientifically sound)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socially acceptable) 적절한 이름을 사용할 것을 권 고하며, 피해야 할 용어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스페인 인플루엔자처럼 지역 위치를 담은 것, 크 루츠펠트야콥병, 샤가스병처럼 사람 이름이 들어간 것, 돼지 인플루엔자, 조류 인플루엔자처럼 동물 또는 식품 이름이 들어간 것, 재향군인병처럼 특정한 문화, 직업, 산업을 언급하는 것, 괴질(unknown)이나 치명성(fatal), 유행성(epidemic)처럼 지나친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 등을 사례로 제시하였다(WHO 2015).
  5. 뉴욕타임즈는 2021년 6월 20일까지도 “Wuhan Coronaviru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https://nytimes.com/2020/02/02/health/coronavirus-pandemic-china.html?smid=url- share), CNN은 2020년 1월 22일 리포트에서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https://edition.cnn.com/asia/live-news/wuhan-coronavirus-china-intl-hnk/index.html).  BBC는 한글판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https://www.bbc.com/korean/news-51185669).
  6. 자유한국당은 “우한폐렴 대책 TF”를 당차원에서 구성하여 신상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과 중국 전역의 입국자 제한 등의 조치를 정부에 요청하였으며, 정부의 조치가 미온적인 것은 “문재인 정권의 대중국 저자세 정책에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데일리안 02.04.).
  7. 코로나 19는 발열, 기침,  인후통, 호흡 곤란, 미각 상실 등이 나타나며,  폐렴은 냄새 나는 누런 가래, 기침,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법에서도 코로나 19는 현재까지 치료제가 개발 중이며  대증 치료를 진행하지만, 폐렴은 항생제 투여를 통해 치료하고 있다.
  8. 2021년 3월 30일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 19가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 시작됐을 가능성은 작지만, 더욱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BBC 2021/ 03/ 31).  2021년 7월에는 WHO가 중국의  우한 지역과 실험실을 중심으로 2차 기원 조사 실시 방침을 밝혔으나, 중국의 반발로 재조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9. 채널 A 공국진 기자는 2020년 1월 27일 “우한에서 6천 4명 입국. 제주 비상”이란 기사에서 우한에서 입국한 것이 확인되지 않는 중국 관광객을 화면에 보여주면서 주민들이 걱정이 앞선다는 보도를 하였다(채널 A 2020. 1. 20).~
  10. 헤럴드경제는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이란 기사에 서 “한국 체류 중국인들이 위생에 둔감한 현실을 반영하듯, 역 주변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서자 우한 폐렴을 무색하게 하는 비위생적인 행태가 즐비했다”라고 보도했다(윤호 기자, 신주희, 유동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 2020. 1. 29)
  11. 긍정적 제목의 기사들은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폭리를 취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보도(중앙일보 2월 28일자 기사 / 한경 2월 28일자)나 민간의 면마스크 제작 관련 기사(중도일보 3월 10일자, 대전일 보 3월 25일자) 등이었으며, 부정적 제목의 기사들은 “‘마스크대란’ 잡겠다더니 구매 ‘하늘의 별따기’”(서울경제 2020/02/24), “마스크대란인데…당국은 ”WHO, 권고 안해“”(서울경제 2020/02/24), “급조된 ‘코로나 대책들’”(매일경제 2020/02/06) 등이 있었다.
  12. 매일경제의 김연주, 안정훈 기자는 “왜 국내서 마스크 구매하기 힘든가 했더니…중국으로 다 나갔 네”라는 기사에서 대중국 마스크 수출액이 2019년 12월과 비교하여 2020년 2월 수출액이 200배 증 가했으며, 의사협회 인터뷰를 통해 “온 국민이 마스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마스크 대 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상당량이 매일 중국으로 반출되고 있다”는 주장을 보도하였다(매일경제 2020/02/25). 이 주장은 2020년 3월 5일 미래통합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대중국 마스크 수출량이 12월에 비교하여 200배나 폭증했다는 발언으로 재생산되었다. 매일경제의 단독 보도와 조경태 의원 의 발언 이후 관련 기사는 네이버 포털 검색에서 2020년 3월 10일까지 25개 기사에서 재인용되었       다. 그러나 2020년 2월 25일 파이넨셜뉴스의 김성호 기자는 대략 8,000만장이 넘는  마스크가 중국  으로 갔지만, 한국에 남은 마스크 물량이 이를 웃돌기 때문에 국내 마스크 부족을 중국 수출탓으로 돌리기 어렵다고 보았다(파이넨션뉴스 2020-02/25).
  13. 2020년 2월 27일에는 주한 중국대사관이 대구에 마스크 2만 5천 장을 지원했으며(연합뉴스 2020/02/27), 3월에는 인천시가 중국 웨이하이시에 마스크 2만개를 주고 20만개를 받았으며(연합 뉴스 2020/03/04), 부산의 한 인문학 모임에서 중국에 보낸 300장의 마스크가 국내 의료용 장갑 20만장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연합뉴스 2020/03/09).
  14. 조선일보 윤수정, 표태진 기자는 애초 중국에 마스크 제공 과정에서 민간  구입 내용을 제외했다가  비판 여론이 제기되자 뒤늦게 “민관 협력”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비판하였다(조선일보 2020/02/06).
  15.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기자는 중국 웨이하이시가 인천시에 보낸 마스크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으나(머니투데이 2020/03/05), 인천시에 확인한 결과 오보임이 밝혀져 두 차례수정한  끝에  결국 삭제하였다(민주언론시민연합 온라인모니터보고서 03.08).
  16. 2021년 2월 28일 뉴스1의 박형기 기자는 “’AZ 백신 믿을 수 없다”…유럽인들 기피해 재고 엄청 쌓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이 확대된다고 보도하였으나,  인용한 기사의 후반부에는 백신의 효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프랑스 백신 전문가의 주장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이는 의도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효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미디어오늘 2021/03/03).
  17. MBC “스트레이트”는 TV 조선이 연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문제를 언급하며 불안을  확대 재생한다고 비판하고,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인터뷰와 사실 확인을 통해 보수 미디어가 왜곡된 백신 뉴스로 공포를 판다고 지적하였다(MBC 스트레이트 2021년 3월 21일 보도).
  18. 국제 마케팅 여론조사 기관인 IPSOS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희망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2020년 10월 83%였던 것이 12월 75%로 두  달 사이 8%p  줄었는데, 김준일 톱뉴스  대표는 10~11월 독감 백신 보도가 쏟아지며 죽는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다른 나라보다 백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고 추정하였다(기자협회보 2021/03/05).
  19. 조선일보 이태동 기자는 “[특파원 리포트] 백신 확보한 日 연말 풍경”라는 기사에서 한국과 달리 일 본은 백신을 확보한 덕분에 도쿄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와 활기를 띄고 있는데, 한국은 내년에도 이러한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함을 표시하였다(조선일보 2020/12/30). 그러나 일본의 코로나 19 확진자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2021년 1월 7일 수도권 4개  지역의 한 달간 긴급사태가 발효되었으며, 코로나 확진자들이 자리가 없어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입소하지 못 하는 의료붕괴 조짐이 나타나기도 하였다(파이낸셜뉴스 2021/01/07).  일본의 코로나 19 상황이 개선되지 못 하자 5월 24일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여행 경보를 가장 높은 ‘여행 금지’ 권고를 발표하였다.(연합뉴스 2121/05/25)

 

참고 자료

 

□ 영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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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검색 자료

국가지정 의과학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 https://www.medric.or.kr/Controls/Sub.aspx?d=03&s=02&s2=01&g

=TENDENCY&c=&m=VIEW&i=2322&pa=1&bl=1&kt=&kw=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20/02/02/health/coronavirus-pande

mic-china.html?smid=url-share BBC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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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Web Site

https://www.who.int/news/item/08-05-2015-who-issues-best-pra ctices-for-naming-new-human-infectious-diseases.

[PDI 워킹페이퍼 NO.10] 세계시민성 대(對) 국가시민성 논의: ‘세계위험사회’와 국가시민성의 변용(variants)

김두진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5에서 발표되었습니다.

 

I.서론

 

오늘날 세계화로 인해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여러 형태의 경계가 빠르게 해체되고 재편되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탈경계적 변화를 수반하는 세계화는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교차와 혼종(hybridity)을 수반하게 된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의 기반한 매체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는 지구적 차원의 인식의 공유가 가능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구화’(globalization)에 따른 탈경계는 ‘글로컬리티’ (glocality, 지구지역성)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화인문과학원 2010, 10-11; 김수환 2010, 27-29).

근대 이후 시민의 정체성은 국가와의 관계를 근간으로 규정되어 왔다. 지리적·영토적 국경을 바탕으로 배타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와 그리고 의무체계가 근대 시민성의 핵심이다 (변종헌 2006, 2). 세계화로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어느 한 국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출현하게 된다. 그 결과로 전지구적 상호 의존과 협력의 필요성에 따라 인류가 지구촌의 범주 내에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영역의 확대가 나타난다. 지구 생태계, 인권, 전쟁, 빈곤 등의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 집단이나 지역, 개별 국가의 입장에서 벗어나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그것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개별 국가의 특수한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함께 행동하는 시민성의 함양이 요구된다 (변종헌 2006, 6-7).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은 <세계 시민성>과 <국가 시민성>의 연계성을 새롭게 규정하게 하는 인식론적 전환의 한 계기를 가져 왔다. 팬데믹은 모든 개별 국가에 위기를 가져오는 ‘공동의 위협’이다. COVID라는 감염원에 대해 강대국들은 책임 전가, 상호 이동의 통제, 정확한 정보 공유에 대한 소극성을 보였다. 오히려 신종 감염병은 ‘비전통적’ 안보 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 간에 ‘공통의 이해관계’의 잇슈 이상으로 국익 관점에서 제로섬(zero-sum)의 적대적 인식으로 비화되었다. 특히 미중간에 감염병의 ‘발원지’에 관한 책임성 논쟁으로 국가주의가 세계주의를 압도하는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박재완·최기웅 2020, 87-94). 그것은 마치 비전통적 안보 위협으로 인해 미국-중국 간에 ‘투기디데스의 함정’을 연상케 하는 갈등의 양상도 나타났다 (Allison 2017). 그 까닭은 코로나 19 사태가 비전통적 안보 – 인간안보 (및 보건안보)-가 훨씬 더 치명적인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수훈 2020, 5)

세계위험사회(world risk society)의 개념이란 초국가간에 벌어지는 위험을 포착하기 위해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제시한 개념이다. 본 개념은 통제불가능한 위험(uncontainable risk)의 상황 극복이 국민국가의 능력 이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Beck 2006, 344-345). 지구화(세계화)로 인한 위험이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이에 벡은 ‘세계시민적 현실정치’의 개념을 제시하며 ‘현실에서 활성화되는’ 세계시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장준호 2010, 344-345; 이왕휘 2008, 65-66; 정무권 2012).

팬데믹 이후에 국가간 경계 해체를 보였던 종전의 추세는 새로운 감염병의 ‘세계위험사회’의 출현으로 국가 간 재영토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당위적 명제’는 ①국가 시민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②세계시민의 정체성을 강조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김남준·박찬구 2015, 2-5; 변종헌 2006, 2-3).

본 논문에서는 팬데믹 이후의 ‘시민성’의 양상과 그 변화를 국가성 (nationality) 대(對) 세계성(globality)의 맥락에서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 최근 팬데믹 상황을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세계위험사회’ 의 개념의 맥락에서 국가시민성과 그 변형(variants)을 살펴 볼 것이다.

 

II.시민성의 탈경계와 글로벌 시민성(global citizenship)의 인식

 

세계 시민성에 관한 사상적 (혹은 철학적) 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것이다. 첫째는, ‘보편 이성’에 의한 ‘선험적 인식’에서 살피려는 세계 시민성의 이해이다. 다른 하나는 지구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겨냥한 현실적 필요성(realistic option)과 연계된 세계시민성에 관한 논의이다 (이지훈 2014, 26-31). 본 연구에서는 전자의 논점의 맥락을 통해, 후자의 관점에서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할 나갈 것이다.

시민성은 본원적으로 ‘경계적 개념’(bounded concept)으로, 경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온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부여된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성은 역동성, 불안정성을 가진 존재로써 ‘진화’하는 것이다 (Banks 2008). 시민성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변화하고,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온 ‘가변적인’ 성격을 띠며 대체로 ‘국민국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시민성은 국가 내의 개인들을 사회적 결속력 (social cohesion)으로 묶는 시민교육의 담론(discourses)과도 연계된다 (Mills and Waite, 2018: 131-135).

국가시민성은 한편으로, 국가의 시민이라는 자발성과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매우 긍정적 면이 부각되는 측면이 강하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 공민(公民)의 의미에서 국가의 지배 체제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도록 교화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의 측면이 있다. (설규주, 2021: 27). 시민성은 ‘진보적’ (developmental) 개념으로 공민적(civic) 시민성, 권리와 의무와 연관되는 ‘정치적’ (political) 시민성을 넘어, 문화적 영역을 포함하는 ‘사회적’(social) 시민성으로 확장된다 (Marshall 1964, Banks 2008, 129).

서구에서 시민성의 영역화는 도시국가(city-state)에서 국민국가 (nation- state)로 이동하였다. 중세 시대에 들어 개인들은 시민 대신에 봉건적/종교적 질서에 종속되었다. 서구의 시민성의 개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한 후, 프랑스 혁명과 19세기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으로 시민성은 로컬(local) 단위에서 점차 국가적 단위로 재구성(re-scaled) 되었다 (조철기 2015, 619-620).

오늘날 세계화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 여러 형태의 경계가 빠르게 해체되고 재편되고 있다. 노동, 상품, 정보, 자본이 국가를 횡단하며 국가 경계를 넘어 이동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다양한 공간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한 국가 이상의 권리와 정체성과 연계된 초국적 시민성이 구성되기도 한다 (변종헌 2006, 20; 조철기 2015, 620-621). 이러한 초국적 시민성은 국가적 범주를 넘어, 글로벌 영향력과 연계되어 훨씬 더 포괄적인 정체성(젠더, 성별, 인종, 민족성, 신념 등) 의 쟁점과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시민성이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넘어 지리적 공간(spatiality)의 국제적 이동의 메카니즘으로 인해 점차 국가를 횡단한다. 이런 결과로 국가 시민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유형의 시민성의 개념화가 도출되었다 (Jackson 2010; Cresswll 2006, 2009).

이에 따라 점차 국민국가적 시민성의 범주를 넘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되고, ‘탈국가적’(postnational) 시민성을 요구받게 된다. 탈국가적 시민성은 자국의 국경을 넘어서 시민성의 특징이 ‘같은 국민’이라는 의식보다 ‘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에 기반을 두게 된다 (이용재 2013, 96-97; Sassen 2002). 곧 국가 경계를 횡단하는 ‘초국적 시민성’(transnational citizenship)의 성격을 출현시켰다. 이에 비해 유럽시민권의 쟁점은 근대 시민성 개념의 가장 극적인 일탈된 형태(deviation)라 할 수 있다. EU시민권이 근대 시민권과 현저한 다른 점은, 국적(nationality) 개념의 상실(missing)이다 (Wiener 1997, 529-531).

20세기 후반 서구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연계되어 시민성의 담론의 범위를 ‘글로벌’ 스케일로 확장시키게 되었다 (김갑철 2017, 125). 이에 따라 세계화에 따른 국민국가의 정치적 권한이 계속 침해받게 되었다. 국민국가가 시민성의 실제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시민성은 경제적/문화적 세계화로 다양한 스케일로 경계적/문화적 세계화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결과로 국가 경계의 희석과 중첩으로 ‘다중적’(multiple) 시민성이 출현하게 된다 (Sassen 2002, 조철기 2020, 42-43).

지구화와 정보화 시대라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국가는 종전과 같은 가장 효율적인 행위자의 위상이 약화되었다. 대신 국가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과 정보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초국적 네트워크의 ‘비국가 행위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소위 디지털 경제 영역의 마이크로소프트 혹은 구글 등의 초국적 활동이 국가 영역을 넘어서는 영향력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국가 행위자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와 다국적기업, 및 글로벌 시민사회 등이 복합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출현이 불가피해 졌다 (김상배 2014, 294-298; 김상배 2018).

그렇다면 세계시민성 (세계시민주의의) 담론의 논리는 과연 무엇인가. 포페스쿠(Popescu)에 의하면, “국경은 공간의 분리와 접촉”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즉, 국가 경계는 상이한 국가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체계들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상호 접촉하게 해 준다 (Popescu 2018, 29).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국가 경계가 유지해 오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질서가 동요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국경에 관한 관심를 더욱 고조시켰다. 따라서 우리는 글로벌 시대의 경계 공간(borders spaces)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Popescu 2018, 100).

세계화의 흐름은 국민국가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시민성에 관한 인식을 넘어 다차원적이고 초국적인 시민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시민으로서 자질의 함양을 목표로 한 세계시민교육의 담론도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가속으로 국가의 주권, 정체성 및 경계 등의 개념이 도전을 받게 되었고, 국가를 초월하는 초국적 혹은 무국적(non-state)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원요한·임은진 2021, 52-53). 이런 와중에 국가시민성의 범주를 넘어 지구촌 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의존과 공동노력이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적’(regional) 혹은 ‘국가적’ 경계를 초월하여 시민성 관념을 새롭게 정립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세계시민성 내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는 세계화의 역사 만큼 오래 전부터 인류의 이상으로 제시되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stoics)를 비롯하여 칸트(Immanuel Kant), 롤즈(John Rawls) 및 싱어(Peter Singer) 등이 세계시민주주의 논쟁에 관여하였다. 세계시민에 관한 구체적인 관념과 이상은 다양하지만, 세계시민주의는 대체로 당위적 혹은 규범적 진술에 머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에 관한 이념 정립의 이론적 성과나 개념의 합의는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지훈 2014, 5-6).

핵무기의 위협, 국제 테러리즘, 지구촌 생태계 위기, 국제적 재난, 및 최근의 팬데믹 위기 등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세계시민의 ‘이상’에 관한 희구는 불가피한 것이다. 하나의 세계 정부 구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법 규범이 없는 한 현실적으로 세계 시민 개념은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인류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바람직한 세계시민의 협력과 실천을 통해 극복해야 할 책임이 하나의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변종헌 2006,13).

세계 시민의 개념에 관한 논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세계시민주주의 담론은 우선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와 ‘온건한’ 세계시민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가 존재하므로 세계정부 혹은 세계국가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반면 후자는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의 입장에서 ‘국가의 자율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세계시민주의로 지향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김남준·박찬구, 2015: 5). 울리히 벡(Beck)의 입장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히터(Heater)가 의 세계시민 네 가지 유형 중, 마지막 유형인 “세계정부와 상관없이 글로벌 의식과 글로벌 책임감을 가진 세계시민”의 유형이 다른 세 유형에 비해 현실적으로 실행가능성(feasibility)이 있어 보인다. 히터 역시 세계 시민성이 부단히 역사적인 의제(agenda)로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성에는 회의적이다. 히터는 세계시민(citizen of the world/cosmopolitan)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실천적 타당성과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 신념”으로 간주될 만큼 놀랄만한 생명력을 보인 이념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세계시민은 그 의미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세계시민 교육은 험난한 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히터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시민권이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Heater 2007, 426).

현대에 이르러 너스바움(Nussbaum)은 For Love of Country (1996)에서 스토아학파의 세계시민주의로부터 칸트의 영구평화론 까지 이어져 온 세계시민주의 테제를 논하고 있다. 너스바움은 1990년대 후반 세계시민주의에 초점을 둔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자민족중심주의, 애국주의가 ‘호전적 애국주의’(jingoism) 유발시킨다고 비판하였다. 너스바움은 세계시민교육과 관련하여 ‘국가 보다는 인간의 권리’를, ‘국가에 대한 소속감 보다는 보편적 이상’을 우선시함을 주장한다 (조나영 2018, 171). 한 마디로 ‘국가없는 보편적인 공동체의 보편적 도덕성의 기초’를 놓으려는 시도이다. 나아가 ‘세계시민주의 이상이 국가적 정체성 보다도’ 훨씬 더 현대 세계의 우리의 상황과 적합하다는 것이다 (Himmelfarb 1996, 74). 모든 형식의 국가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에 반대하며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세계시민주의의 요체로 본다. 이에 비해 애국주의와 연관된 호전적 민족주의, 자민족 중심주의는 동력는 ‘사랑’보다 ‘적대적인’ 감정을 추동한다고 간주한다. (Bok 1996, 67; Pinsky 1996, 87; 조나영 2018, 173). 세계시민주의는 개념의 추상성과 현실 적용의 어려움이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세계 시민의 이상은 역사적으로 한번도 구현된 적이 없다. 세계시민의 결단은 가능할 지라도 현실적인 근거 마련은 어려운 것이다 (이지훈 2014, 6).

 

III. 세계시민성 vs 국가시민성: 비판적 논의와 고찰

 

오늘날 세계시민성의 이상은 세계시민주주의(cosmopolitanism)에서 상당 부분 연유된 것이다. 세계시민주의는 지구촌에 만연된 갈등과 대립의 불확실성과 불안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하나의 도덕적 근거로 제시된다 (변종헌 2020, 223). 국가 및 ‘지역적’(regional) 경계와 정체성을 넘어서는 범주로써 ‘세계시민의 소양과 역량’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국가 역할의 ‘종언’(終焉)이라기 보다는 과거에 당연시 인식해 왔던 국가의 기능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김남준·박찬구 2015, 12-13; 변종헌 2020, 217-219).

세계시민성의 가치를 염원하기 이전에 주지해야 할 주안점은, 국가시민성과 세계시민성이 설령 상호 모순적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양쪽 중 어느 시민성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여기서 세계시민주의의 실천성과 관련하여, 세계시민성이 불가피하게 배태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준·박찬구 2015, 13).

첫째로, 세계시민주주의 이상에서 강조하는 ‘공동선’의 달성이 국가의 시민성 영역에서 조차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계시민주의 구현 이전 단계인 국가 범주에서 조차 ‘시민성’의 주요 가치의 실현이 어렵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국가 범위를 넘어서 공동선 실현의 목표가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추병완이 예시하듯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관련하여, 국가 내의 ‘공동선’과 관련하여 민주주의는 공화주의 이념에 의해 빈번히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국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면, 공화주의는 “국민의 이해 관계에서의 통치 또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 공유하는 공동선에 부합되는 통치”로 규정된다 (추병완 2020, 139; 채진원 2019).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시민의식의 쇠퇴, 정치적 무관심의 증대, 정치적 무관심 등의 상황에서 국가 단위에 조차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추병완 2020, 190). 국가(혹은 민족)는 개인들이 충성을 바치는 주된 대상이자 집단적 결속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시민성 내지 세계시민의식의 함양 – 혹은 교육-이 결코 쉽지 않은 난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앞의 서술과 관련하여, 국가를 겨냥한 애국심이 보편적 세계시민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의 이타심이 인류에 관한 보편적 이타심으로 확산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buhr)는 “개인의 이타심은 오히려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된다”고 주장한다 (Niebuhr 2006, 91). 개인의 이타적 정념(passion)이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향하게 하기는 쉬워도 인류 전체를 겨냥한 보편적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실제로 어렵다. 이것이 바로 니이버가 말하는 ‘애국심의 윤리적 역설’(ethical paradox of patriotism)이다. 니이버의 지적은 국가 기반의 사회구성원에게 세계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 본원적 ‘한계’가 내재해 있음을 분명히 한다.

애국심에는 윤리적 역설(ethical paradox)이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적인 이타심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낮은 수준의 충성심이나 지역에 집착한 충성심과 비교할 때, 그것은 고차원적 형태의 이타주의(altruism)에 해당한다 (….중략….) 이타적 열정이 이처럼 용이하게 민족주의로 전환될 수 있지만,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흘러가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국가 범위를 넘어서 인류 공동체에 헌신케 이끄는 일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일이다 (Niebuhr 2006, 91).

이처럼 집단들 간 –혹은 국가들 간-에는 윤리적인 것 보다는 정치적인 것이 더 우선시된다. 그 이유는 이들 관계는 각 집단(혹은 국가)의 필요에 대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평가 기준에 따르기 보다는’ ‘힘의 비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재성 2012, 175).

싱어(Singer) 역시 세계적 차원의 정치 공동체가 현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가 필수적실체(entity)로 본다. 국가의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이타주의자로 변신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 어렵다고 지적한다. 싱어는 각국의 지도자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것을 주장한다 (Singer 2003, 26-27).

유사한 맥락에서 힘멜파브(Himmelfarb)은 ‘세계 시민’(world citizen)과 ‘세계 시민권’(world citizenship) 보다 국가 권위의 효용성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막연한 세계시민주의적 질서에 비해, ‘국가 권위’가 훨씬더 강력하게 행정적·법적 질서를 수행하는데 더 효용성이 있다고 본다. 너스봄이 선호하는 복지국가의 사회정책들이 막연한 세계시민주의적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공공교육, 종교적 자유와 관용, 인종적·성적 차별 금지 같은 국가 목표는 국가 권위에 의해 실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것(international)의 구성요소는 바로 ‘국가적’인 (national) “일차적” 구성 요소로 구성되는 것이다 (Himmelfarb 1996, 76). 같은 맥락에서, 매코넬(MaConnell)은 세계시민주의를 건설적이라기 보다는 ‘파괴적’이라고 비판한다. 맥코넬은 버크(Edmund Burke)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속한 사회의 작은 집단들을 사랑하는 것이 “공공애(public affections)의 제 1 원칙”임을 지적한다 (McConnell 1996, 79).

세 번째로, 세계시민주주의로 표방되는 이념과 제도가 ‘실천성’(praxis)에서 ‘파괴적’ 성향을 드러내거나, ‘허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시민주의적 신조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피아(Appiah)는 세계시민주의의 주창자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기본 시민성과 어긋나는 삶을 영위하는 지를 역사적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 언급하고 있다.

토마스 칼라일은 중농주의 경제학자인 미라보(Marquis de Mirabeau, 1715-1789)에 관해서 “인류의 친구이지만, 그와 관계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적”이라고 말했다. 미라보는 󰡔인간의 벗󰡕이라는 책을 집필할 때 너무 바빠서 자신의 아들이 투옥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다섯 아들을 고아원으로 보냈던 장자크 루소를 두고 “자기 인류는 사랑했지만 자기 가족은 미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Appiah 2008, 23).

애피아의 주된 논점은 “세계시민주의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일종의 문제제기로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Appiah 2008, 22).

벅(Bok)이 들고 있는 한 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관한 지적이다. 세계시민주의, 평등 및 동료에 관한 애정을 설파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깊은 성찰도, 그 실체는 허구적인 ‘내적 위선’(inner hypocracy)에 불과하였다. 벅은 아우렐리우스가 세계시민주의 이상을 설파한 기독교 종파를 억압하고 극심한 박해를 가했던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증하고 있다 (Bok, 39-40). 퍼트넘 (Putnam)은 세계시민주의의 한 폐해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예로 들고 있다. 소위 세계시민주의- 한 예로 국제 공산주의 기치를 내세운 코멘테른(Comintern) -를 표방한 소비에트 공화국이 무려 5천만의 인명을 희생시킨 참상을 지적한다 (Putnam 1996, 92). 계몽사상의 이념으로 제시된 레닌주의적 공산주의나 마오쩌둥식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왈저(Walzer)는 20세기에 저질러졌던 위험천만한 범죄들이 비뚤어진 애국주의- 나찌즘의 반(反) 세계시민주주의 등 – 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인정한다. 반면에, 명백히 ‘왜곡된’ 세계시민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 졌다. 왈저는 자국중심주의나 구체적인 충성의 대상을 간과하는 세계시민주의는 동일하게 ‘비도덕적’ 행위를 유발하게 됨을 강조한다 (Walzer 1996, 56-57). 인류애란 너무 ‘추상적인’ 것이기에 애정(affections)의 구심점을 촉발시키지 못한다. 결국은 세계시민주의는 ‘충성’(loyalty)의 대상에 따라 ‘회의주의’와 ‘냉소주의’를 낳고 있다 (McConnell 1996, 80-81).

여기서 세계시민주의 대 국가시민성에 관한 논의의 맥락에서 몇 가지‘절충적’시각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온건한 세계시민주의의 입장에 서있는 하버마스(Habermas), 벡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김석수 2011). 먼저 하버마스의 경우는 국가의 자율성의 중요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시민사회에 ‘더 비중을 두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세계시장의 출현과 생태계의 위협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세계가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하버마스는 국민국가의 철폐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세계시민법이 개개 정부를 구속할 정도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권을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세계시민사회를 제시하려 한 것이다 (Harbermas 2009, 104-106, 271-272, Harbermas 2000, 156-157).

하버마스와 대조적으로 벡은 국가와 세계시민사회의 조화를 꾀하면서 ‘국가의 자율성에 더 비중’을 주려는 입장을 취한다. 벡은 ‘국가와 시민성을 새롭게 조화’시킨 “세계시민적 국가”(Kosmopolitisher Staat)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국가를 수단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국가(neoliberal state)를 반대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세계의 주요 가치, 즉 인권, 정의, 평화의 쟁점을 독점 지배하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벡은 세계시민사회와 ‘세계위험사회’의 연관선 상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벡은 민족국가적 현실정치(Nationale Realpolitik)의 성격이 점차 ‘세계시민적 현실정치’(Kosmopolitische Realpolitik)의 성격으로 변모할 것을 제시한다. 세계시민적 현실정치는 한편으로 국가들 간에 초국가적 연대를 통해 민족국가의 역량을 강화시켜 ‘세계 경제의 권력’에 대항하려는 것이다 (장준호 2010, 344-345, 364-365). 하버마스와 달리 벡은 세계시민의 보편성에 기초한 도덕(moral) 보다는 ‘민족이나 개인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에토스(ethos)를 더 우선시한다 (김석수 2011, 157).

롤즈(Rawls) 역시 적극적인 세계시민사회를 모색하지는 않는다. 롤즈의 󰡔만민법󰡕은 일반적 세계시민주의와는 구별된다. 롤즈가 󰡔만민법󰡕에서 국제사회 모두 포괄하려는 국제사회의 협력의 법칙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장동진·장휘 2003, 216). 단지 롤즈는 합당한 자유주의 사회의 국민들이 전쟁을 하지 않고 ‘공존하며 안정적으로 국제사회를 유지해 나가는’어떤 원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동진·장휘 2003, 219). 롤즈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자유적’관점을 더 중시하며, “비자유적 만민들에게”질서정연한 만민들 사회의 올바른 관점을 제시- 혹은 적용-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인지훈 2021, 189). 롤즈는 그의 󰡔만민법󰡕을 근거로 사회복지와 같은 세계시민주의적(cosmopolitan) 가치가 ‘정의가 부재(不在)한’전지구적 ‘분배’의 형식을 취하게 될 경우, 그러한 가치 배분은 유보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계시민주의적 견해의 궁극적인 관심이 개인들의 복지이지, ‘사회들의 정의는 아니다.’세계시민주의적 입장이 개인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며, 그 결과 지구적으로 최저수준의 사람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관심을 가진다 (Rawls 2017, 181).

칼 슈미트(Carl Schmidt)는 세계시민주의 속에 감추어진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의‘허구성’을 비판한다. 세계시민주의가 내세우는 인권의 보편성이나 지구적 정의(justice)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간섭하고 공격하기 위한 전략적인 접근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세계시민사회에 민족적 공동체를 예속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민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슈미트에게 “전인류를 말하는 자는 기만하는” 것이며, 세계국가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한 국가가 인류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적과 싸우는 것은……인류의 전쟁이 아니라…특정한 한 국가가 그 전쟁 상대에 대하여 …….. 평화, 정의, 진보, 문명 등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주장하고, 이를 적으로부터 박탈하고, 그러한 개념들을 이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Schmidt 1992, 66).

IV.‘세계위험사회’와 ‘팬데믹’의 영향: ‘재난의 정치화’와 국가대응의 ‘다면성’(多面性)

 

벡의 위험사회(risk society) 개념은 주로 국내 사회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왔던 개념이다. 이 개념은 테러의 네트워크, 생태적 갈등, 금융위기 및 쓰나미와 같은 국경을 넘어서는 국제적 위험 요소를 분석하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백은 ‘세계위험사회’(world risk society)를 제시하며 초국가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위험- 예로 9/11사태, SARS, 조류 독감 등- 을 설명해 내려고 한다. 이러한 지적 시도로 작업으로 위험에 관한 ‘존재론’과 ‘인식론’간의 방법론적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잇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이제 벡의 위험사회론은 국제정치적 시각의 분석과 연계를 갖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왕휘 2008, 63-66).

벡은 글로벌 시대의 다양한 위기와 위험이 가져다 주는 도전에 대응하여, 민족국가 중심으로 설계되고 정당성을 갖게 된 기존의 세계질서가 재조정되어 할 것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민족국가적 현실정치’(Nationale Realpolitik)가 아니라 ‘세계시민적 현실정치’(Kosmopolitishe Realpolitik)의 개념을 제시한다. 벡의 ‘세계시민적 현실정치’는 ‘고전적’세계시민주의의 지고(至高)한 이상과는 궤를 달리한다. 세계경제권력- 다국적기업과 국제적 투기 자본 등- 의 위험성에 관한 부단한 경고와 함께, 세계시민적 시각에 근거하여 지구시민사회의 의미를 민족국가의 시각과 결합하는‘절충적’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장준호 2010, 343-345).

벡은 세계시민주의가 국가의법적, 헌법적 질서’테두리 앞에 쉽게 허물어져 버릴 것이라 내다 보았다 (Beck 2011, 163). 세계시민적 현실정치는 벡이 일국 단위의 위험사회 개념을 지구적 차원의 세계위험사회로 확장하되, 너무 이상주의적이지 않는, 너무 낭만주의적이지 않는 비판적 재구성의 결과이다 (장준호 2010, 344). 벡의‘세계시민적 현실정치’의 절충적 인식은 다분히‘경험적·분석적’ 논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책의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세계시민적 이상주의가 아닐 뿐더러 세계시민적 낭만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 정치행위와 정치학을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시민적 개념과 세계관은 눈먼 소경에 불과하다는 것이 세계시민적 현실주의의 출발점이다 (……..) 세계시민적 관점없는 국민국가 정치는 소경과 같고, ‘국민국가 정치없는세계시민적 관점은 내용이 없다 (Beck 2011, 189, 193).

벡은 ‘맥도날드화 테제’와 같은 지구화가 다양한 지역적·국민적 특성을 동질화/획일화를 ‘정치의 종언’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맥락에서 벡은 정치행위의 활성화(재구성)에 기초한 ‘초국민국가’(transnational state)와 ‘하위정치’(Subpolitik) 개념을 제시한다. 초국민국가는 세계국가나 세계정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Beck 2010, 48). 벡에게 초국민국가란 지구화에 대한 ‘변증법적 반응’의 융합이다. 결과적으로 국민국가 수준을 넘어서서 지역(초국적) 주권과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지역적) 협력국가인 동시에 개별국가(국민국가)이며, 협력국가를 토대로 한 개별국가(국민국가)를 의미한다. 즉 국민국가적 범주를 넘어서는 ‘초국민적인’ 사회관계들이 성립되는 가운데 점차 그 밀도를 더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간 결합은 ‘탈국민적인’(postnational) 개별 국가에 대해 ‘새로운 활동 공간’을 열어주게 된다 (Beck 2011, 315-316). 벡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새롭게 조화시키면서 국가의 자율성에 ‘주요한’ 비중을 두고자 하는 ‘세계시민적 국가’(Cosmopolitisher Staat)를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 (이지훈 2014, 38).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국제질서의 논란의 한 변화의 초점은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출현 이후에 주목되는 현상은 종전의 보편적인 탈경계화가 점차‘재영토화’ 및 ‘재경계화’의 (국가)경계의 소환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곧 “지구화의 정체(停滯, deglobalization), 국가의 귀환, 국경의 강화”의 흐름을 촉발하게 되었다 (남기정 2020). 코로나 19로 국가들은 국제정치 현안으로서 국민국가의 국경선의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세계위험사회의 위협의 문제가 국민국가의 재경계화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남기정 2020, 38-39). 그 이전에 지구화에 따른 세계시민성의 이념은 자국중심주의의 이기성으로 회귀하기 시작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성공적인 지역주의의 한 전형인 EU 내 회원국 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과 지원 문제로 갈등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화에 의해 국민국가 체계의 영역을 초월하여 형성되어 왔던 탈경계적 사회관계의 ‘재경계화’가 강화됨을 보여 준다 (Posescu 2018, 119-120). 이런 현상을 경계와 연관된 국가시민성의 입장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세계화의 산물인 만큼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공통의 위협’앞에 국가간 협력의 촉진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있어 국가가 여전히 주요 행위자로 인식하고, 국가주의가 국제주의를 압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Walt 2020). 이에 존스톤 역시 UN이나 WHO 등이 코로나 바이러스 해결에 예상외로 취약한 국제협력의 면모에 깊은 실망감을 나타내었다. 주지할 만 사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전의 국제제도의 장점을 드러내었던 예측성(predictability), 정보능력, 및 비용절감 등의 혜택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현실이다 (Johnston 2020). 국제정치 차원에서 코로나 19 사태에 직면한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반응 역시 일국적 이익을 추구한 ‘현실주의적 국가주의’로 귀결되었다. 코로나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배타적 민족주의와 완전 주권론을 근간으로 강대국 간의 경쟁과 갈등이 ‘제로섬의 논리’로 부각되었다 (차태서 2021, 6-7). 특히 미국-중국 간에 코로나 팬데믹의 진원지에 관한 책임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로 지칭한 반면, 중국은 미군이 바이러스를 유포했을 가능성을 들어 코비드-19의 확산을 “트럼프 펜데믹”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공민석 2020, 9-11). 이것은 일종의 미중간의 ‘신냉전’을 넘어 ‘세력전이’(power transfer)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 19 팬데믹은 미국과 중국의 탈동조화(decoupling)과 함께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국가간 권력 변화까지 초래할 것이다. 이번 팬데믹은 우리 세대가 겪었던 가장 큰 글로벌 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적 고립’이냐, 아니면 ‘글로벌 연대’냐의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Harari, 2020; 공민석 2020, 6).

비전통안보의 전지구적 컨테이젼(contagion)의 파장으로 과거의 위협(threat) 혹은 재앙과는 달리 전지구적으로 ‘평등한’- 동시적으로 동일하게 겪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위협은 ‘과잉안보화’되어 그 자체로 세계정치에 막대한 충격을 주게 되었다. 나아가‘지정학의 임계점’을 넘어 전통안보의 잇슈를 능가하는 국제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코로나 19 사태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감염병이 세계질서의 변환(transformation)과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왔듯이, 21 세기 국제정치 질서에 “중대 국면”(critical juncture) 전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비쳐졌다 (김상배 2020, 55, 62-64, 68).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붕괴와 “성곽도시”(walled city)가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공민석 2020, 6-7). 2020년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은 후퇴하여, 세계 경제는 –3.4% 의 역성장을 기록하였다. 반면에 중국과 대만은 2% 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광수 2021, 39). 코로나 19 팬데믹 정세는 한마디로‘일방주의’, 폐쇄적 국가주의의 심화, 미중간 신냉전의 가속화 및 코로나로 인한 ‘신안보 위협’의 과제를 남기고 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무엇보다 코로나 19와 같은 재난과 위협에 관한 포괄적인 시사점과 통찰력을 제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위험의 세계화”는 글로벌 시민성의 관점에서 보면 일차적 ‘위기’징후에 해당한다. 실제로 전염병에 방치된 빈곤국의 취약계층, 백신을 독점하는 선진국과 백신의 우선적 혜택을 받는 특정 계층의 존재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결국 다양한 “재난의 불평등” 현상으로 이어지는 ‘재난의 정치화’로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 확산 금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위험은 “보편적으로” 다가 오지만, 위험의 대응 방식에 있어 ‘계급적 차이’가 불가피 하게 나타나고 있다 (김언상·원도연 2020, 161-164, 171, 179).

감염병에 관한 국제적 재난은 시민성의 공동선 내지 윤리성에 관해 강대국간의 논란과 연계된다.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에 관한 미중간의 책임전가성의 쟁점, 중국의 글로벌 보건 외교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지적재산권 면제의 제시 등의 예가 있다. 코로나 관련 중국의 보건외교의 이론적 기반으로 ‘도덕적 현실주의’(Moral Realism)의 구호가 난무하기도 하였다 (서정경 2021). 재난관리 및 보도 프레이밍(framing)에 따라 재난에 관한 기존 서사(narratives)의 구조의 왜곡과 편견이 나타났다. 소위 팬데믹 상황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드는 국가 및 국제기구의 정치와 언론- 팬데믹 초기 WHO의 팬데믹 위협에 관한 미온한 반응 등- 이 대중을 더 큰 재앙에 몰아넣는 모양새가 되었다 (Mutter 2016, 216, 298).

팬데믹 위기가 중국의 비민주주의적 국가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인식과 함께 중국의 언론 통제와 시진핑 독주에 따른 코로나 사태의 초기 대응 실패 등이 세계시민성의 ‘정의’의 쟁점과 연계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 운명체론’언급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국민 우선주의에 따라, 한국 여행객을 가장 먼저 격리시키는 예상치 않은 차별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중관계, 한일관계의 불협화음으로 분출되면서, 동아시아 3개국간의 잠재적 불화가 상호 부정적, 악의적 이미지의 프레이밍으로 심화되었다 (진창수 2020).

코로나를 계기로 사람들의 단기적·장기적 초국적 이동에 대한 국경의 통제는 코로나 확산의 또 다른 파장을 낳았다. 팬데믹의 위험의 인식에 따라 사람의 이동 통제 및 입국제한 조치가 뒤따랐다. 그동안 지구화가 진행되었던 세계에서 입국금지 및 국경봉쇄의 조치가 보편적으로 재적용되었다. 방역과 국경관리에 국제적‘표준’(standard)에 따른 접근방법 보다는 개별 국가의 방침이 우위를 점하였다. 전염병 진화와 감염 경로에 의해 국가간 정책의 선택(option)이 자의적으로 시행되었다 (김상배 2020, 61). 이미 유입된 이주자들과 난민은 일국 차원의 의료와 방역 혜택에서 소외될 뿐만 아니라, 이주자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사회안보’(societal society)의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다.

 

V.국가시민성의 변형(variants): 보편적 ‘공포’(fear)와 ‘슈미트(Carl Schmidt)적 국가’ 사고(思考)의 집단성(collectivity)

 

최근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 위험’에 관한 경험은 인간에게 새로운 충격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의 세계화’에 관한 무지(ignorance)로, 위험의 세계화가 증폭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Beck 2006, 330). COVID 팬데믹은 벡의 ‘세계위험사회’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국가구성원 모두가 겪게되는 ‘평등한’ 공포를 유발하게 되었다. 팬데믹의 가공할 위협 속에서 국가 조차도 무기력한 무정부 상태- 마치 국가 부재 상태처럼- 에 노출될 개연성(plausibility)을 드러낸다. 생명정치(biopolitics) 철학자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자연생명이 ‘정치화되는’(정치적 삶에 포함-배제되는) 과정에서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를 맞게 될 경우,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에게 자연생명이 맡겨지는 ‘벌거벗은’생명의 상황으로 이해한다 (강선형 2014, 136-137). 아감벤은 이탈리아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국가 상황을 초법적 “예외상태”로 규정한다. 그것은 마치 ‘공권력의 붕괴’의 상태로 인식된다 (한광택 2020, 88-89).

홉스의 ‘사회계약’ 논리에 관한 슈미트의 사고체계는, 홉스가 사회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자연상태 내의 “적대성”이 완전히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슈미트는 <홉스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어던 (1938): 정치적 상징의 의미와 좌절>에서 자연 상태에서는 “계약 체결도 불안정으로 바뀌”는 것으로 전제한다 (Schmidt 2000, 521). 슈미트가 보기엔, 공포로 인해 “적대성 속에서 모인 인간들”이 모여 단순히 “계약을 체결한다는 그 이유만으로”적대성을 극복할 수 없다. 슈미트의 자연 상태는 “벗어나야할 무질서”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존립가능한 긍정적 상태”로 본다 (이진민 2005, 69).

슈미트의 공포에 대한 해석은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덮어두기 보다는” 공포를 덮고 있는 장막을 걷어 내고 그 본질을 직시함으로써 정치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홉스는 공포를 ‘내화(內化)’하는 반면에, 슈미트는 공포의 ‘외화(外化)’에 초점을 맞춘다(이진민 2005, 58-59, 73). 슈미트는 홉스의 계약을 “무정부주의적”사회계약의 잠재성을 안고, 완벽한 국가계약에 이르기에는 불안정성의 여지가 있음을 지적한다. 슈미트는 주권적 결단- 결정주의- 의 불가결성을 주장하기 위해 (국가의) “예외상태”가 항상 존재할 가능성을 자기 논리로 깔고 있다(남기호 2015, 15-17).

개인들의 “반란적인 위험성”을 극복해야 하는 지성이 사회계약을 통해 온전히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 슈미트의 생각이다……그(슈미트)에 따르면, “만인의 만인과의 동의”는 늑대 인간들의 이익들이 이합집산 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계약”만 가능하게 되며, 총체 국가의 정치적 통일을 이룰 수는 없다 (남기호 2015, 22).

이런 맥락에서 홉스는 자연상태를 <부정>하는 데 반해, 슈미트는 그 자연 상태를 변경할 수 없는(unabanderlich) 것, “적극적인 고유의 존재성”을 인식하고 <긍정> (Bejahung) 하고 있다 (좌종흔 1989, 27).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과 정치적 통일체(die Politishe Einheit)의 국가를 이해해야 한다 (Schmidt 1992). 슈미트는“항상 현존하는 ‘동지’의 ‘구별(집단화)”을 전제하고 있다 (성정엽 2020, 49-52). 홉스가 ‘개인’들이 대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가정하는 반면, 슈미트에게는, 국가 성립의 과정에서 ‘공적’(公敵, hostis)=‘집단’을 강조한다. 여기서 ‘적’이란 도덕적 혹은 윤리적으로 배제나 절멸의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Schmidt 1992, 36-37, 43). 적은 단순히 경쟁자라기 보다 “다른 것, 이질적인 것(der Fremde)이다. 정치는 이러한 이질적인 자를 구분하는 것이고 정치적 통일체는 현실적으로 적이 존재해야 한다. “적과 동지의 구별이 없어진다면”슈미트의 입장은 “정치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성정엽 1998, 236-237).

홉스의 공포는 일대일의 동등한 <개인>을 엮어 내는 성향이 보이는 반면에, 슈미트의 공포는 그 주체가 <집단성>(collectivity)을 드러낸다 (이지민 2005, 71). 홉스와 슈미트의 국가기원론을 비교하면, 홉스가 < 자연상태→ 개인들간의 전쟁상태→ 사회계약→ 국가>로 이어지는 반면에, 슈미트의 사고는 <자연상태→ 개인들간의 전쟁상태→ 적과 동지의 구분집단들 간의 전쟁상태→ 사회계약→ 국가>로 전개된다 (이동수 2013, 75). 적과 동지를 구분하게 되는, 슈미트가 말하는 ‘집단적 성질=집단화’의 ‘사회행위’의 합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집단적으로”형성되는‘상호주관적’판단에 근거한다 (정재환 2020, 167; Hall 2009, 453-454). 이런 상황에서 슈미트에게, 국가는 정치적 분열을 막으려고 정치적 통일체’(die Politishe Einheit)로서의 국가 중심성(centrality)을 추구한다 (성정엽 2020, 62-63).

슈미트는 국가의 정치적 통일이 훼손되는 국내외적 위협상황- 전쟁, 내전, 혁명, 폭등 – 등에 의해 국가의 안전과 질서와 위협받는 비일상적 ‘비상시’를 “예외 상태”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동지와 적에 관한 결단 혹은 결정을 내리는 ‘정치적 결단주의’(political decisionism)를 표방하게 된다 (Krupa 2001, 166-170; Hashagen et al., 2001, 154-155). 예외상태의 결정이란 불법을 규정한다는 의미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법규범의 작동이 불가능한 상태 속에서 ‘합법/불법의 범주를 넘어’ 실정법으로 포섭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이형동 2013, 28-29). 슈미트에게 ‘주권’이란 지배나 구속의 독점이 아니라 ‘결정’의 독점이다 (윤민재 2018, 303-304).

국가시민성의 변화 추이와 관련하여 추아(Chua)는 슈미트적 집단화의 맥락에서 <정치적 부족 Political Tribes >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추아는 국가 내의 ‘집단본능’으로 ‘소속본능’과 ‘배제본능’의 양면성을 가진 ‘부족 본능’을 설명하고 있다. 추아는 세계 대다수의 지역에서 가장 주요한 부족 정체성이 ‘국가’가 아니라, 인종, 민족, 지역, 분파 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본다. 단순히 민주적 절차(선거)를 통해 이들 분파를 국가정체성으로 통합하여 과거의 인종, 종교, 분파, 부족적 분열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재앙’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Chua 2020, 8-14, 47-48).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위험사회의 도래는 지구적 차원 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체 간의 갈등의 결과로, 국가정체성이 전면에 나서면서 국가시민성의 공고화를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세계적 위험이 국가단위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 통제 불능 상태까지 심화될 경우에, 국민국가 내에 분화된 집단 정체성의 발흥이 예상된다. 환언하면, 국가시민성의 결속(unity)이 깨어질 때, ‘집단본능적 시민성’으로 분화(分化)될 잠재성을 안게 된다. 팬데믹의 위협 상황의 경험은 국내적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 ‘외집단 배제 메커니즘’에 관한 정체성을 형성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세계화의 심화 과정에서 국가들 간에 집합적으로 서구-비서구의 문명적 배외성도 나타났고, 서구-비서구의 문명 간의 진화 내지 재편도 요구되었다 (이유철 2021, 244-248). 세계시민성과 연계되는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의 개념은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근거한 공통의 이익, 공통의 가치, 공통의 규범과 법을 문명의 공리(axim)로 내세워 왔다. 점차 이 관념은 ‘실천성’의 의미가 희석화될 것 같다. 한·중·일로 구성된 동아시아의 ‘지역적’국제사회(regional international society)의 이상 조차도 이들 국가 혹은 국민들 간에 수용되거나 체내화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팬데믹과 같은 세계위험사회의 도래로 국가시민성의 반격이 예상된다. 국제적 차원의 팬데믹의 위협의 ‘예외상황’은 슈미터식 해석에 의하면 “홉스적 국가체계의 잔여적 적대성”- 홉스적 ‘자연상태’가 여전히“긍정”된-의 재소환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 와중에 각자도생을 위해‘배제 본능’에 의한 집단간의 분화로- 추아의 ‘정치적 부족’과 유사한- 시민성의 내분 혹은 변환(transformation)이 예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국가는 슈미터적 국가 체계에 따라 ‘결단주의’를 요구하게 된다. 한 예로 팬데믹 19 감염 차단과 관련하여, 중국 시민 혹은 타국의 시민에 가했던 중국의 국가 속성은 슈미트적 ‘결정주의’의 함의를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프랑스는 ‘백신 비자’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1년 6월 9일부터 외국 학생들의 프랑스 입국에 관한 대응은 각 국가의 코로나 및 백신 접종 현황에 따라 차등 적용되고 있다. 나아가 프랑스 의회가 2021년 7월 25일 식당 등 공용 시설 출입을 위해 백신 증명서 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도스탈(Dostal)의 경우도, 독일의 코로나 위기관리정책에 대해 국가의 개입과 공론장이 폐쇄되고 톱-다운(top-down) 방식의 행정명령적 정치로 대체되고 있다고 밝힌다 (Dostal 2021). 한국의 사례는 K-방역의 모델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팬데믹의 재현의 가능성 속에 중단기적 국가개입의 정도(intensity)에 따라, 기존에 누려 왔던 다원주의적 국가시민성에 상당 부분 훼손이 잠복되어 있다. 향후 이어질 국제적 재난과 관련하여, 국가 내부의 적 혹은 국가 외부의 적에 대응하는 슈미터적 국가의 ‘결단주의’가 요구될 수 있다. (국제) 재난의 정치화’가 제도화될 수록 주권자의 결단(주의)에 대해 집단본능적 시민성이 표출되는 ‘정치적 부족’이 출현할 수 있다. 국가시민성의 결속(unity)가 깨어지고 분화될 조짐을 보이며, 국가시민성의 ‘변형’(variants)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VI.요약 및 결론

 

코로나 19 사태가 전통적 안보에 비해 비전통적 안보 – 인간안보 (및 보건안보)-가 훨씬 더 치명적인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시민성은 국민국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경계적 개념’(bounded concept)으로 경계를 인정해 온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부여된다. 시민성은 역동성, 불안정성을 지니나 동시에 진화하는(developmental) ‘가변성’을 띤다. 지리적 공간(spatiality)의 국제적 이동의 메카니즘은 국민국가에 기반한 국가 시민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민성 개념화를 도출케 하였다. 이로 인해 국민국가적 시민성의 범주를 넘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되고, 점차 ‘탈국가적’(postnational) 시민성을 요구받게 된다.

세계시민성 내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에 관한 염원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stoics)를 비롯하여 칸트(Immanuel Kant) 류의 세계시민주주의의 이상의 형태로 언급되어 왔다. 그럼에도 국가 기반의 사회구성원에게 세계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는 본원적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울리히 벡은 국가와 세계시민사회의 조화를 꾀하면서 국가의 자율성에 더 비중을 주려는 입장을 취하는 “세계시민적 국가”(Kosmopolitisher Staat)를 제안한다. 벡의‘세계위험사회’와 관련하여 ‘세계시민적 현실정치’(Kosmopolitische Realpolitik)의 개념은 ‘도덕’(moral) 보다는 민족이나 개인의 에토스(ethos)를 강조함으로써 현실적 실천성을 담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출현 이후 종전의 보편적인 탈경계화가 점차‘재영토화’ 및 ‘재경계화’의 (국가) 경계의 소환에 주목할 것이 요구되어 왔다. 그 이유는 곧 “지구화의 정체(停滯), 국가의 귀환, 국경의 강화”의 성향의 촉발로 인한 것이다. 코로나 19의 위협은 ‘과잉안보화’(hyper-securitization)되어 세계‘지정학의 임계점’을 넘어 전통안보의 잇슈를 능가하는 국제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과 위협에 관한 포괄적인 통찰력을 제시한 반면에, 국가시민성의 변화 조짐에 관한 설명에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칼 슈미트의 ‘홉스’의 ‘자연상태’‘공포’ 및 ‘국가체계’에 관한 재인식은 국가시민성 형성에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역으로 팬데믹의 가공할 위협의 가속화는 국가 조차도 무기력한 무정부 상태- 국가 부재의 홉스의 ‘자연상태’처럼- 에 노출될 개연성(plausibility)을 안고 있다. 팬데믹의 ‘공포’상황의 경험은 국내적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외집단 배제 메커니즘’에 따른 집단 정체성을 형성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결과로 국민국가 내에 분화된 집단 정체성이 표출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환언하면, 국가시민성의 결속(unity)이 깨어질 때, ‘집단본능적 시민성’으로 분화(分化)될 잠재성을 남기고 있다.

국제적 차원의 팬데믹의 위협의 ‘예외상황’은 홉스 체계의 국가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외집단 배제 메카니즘’에 의해 집단간의 분화로- 추아의 ‘정치적 부족’과 유사한- 시민성의‘변형(variants)’이 출현될 소지를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국가에 따라 슈미트적 국가 체계의 맥락에서 ‘결단주의’가 요구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적 팬데믹의 재현의 가능성 속에 중단기적으로는 국가개입의 정도(intensity)에 따라,다원주의적 국가시민성에 상당 부분 훼손될 수 있다. ‘(국제)재난의 정치화’가 재현(제도화)될 수록 집단본능적 시민성을 표출하는 국가시민성의 분화 내지 내분의 조짐이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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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9] 동북아 비전통안보협력의 이상과 현실 – 한중일 재난협력을 중심으로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문제제기

동북아지역은 지리적 근접성, 사회문화적 동질성, 지정학적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지역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으로 여겨진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지속되는 남북한의 이념적 대립구도, 북한문제를 둘러싼 각 국의 이해관계, 미중을 중심으로 한 세력다툼, 지속되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 등은 동북아지역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다양한 시도와 노력에도 동북아지역의 협력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여전히 상존하는 군사안보의 위협, 경제협력을 통한 시너지효과 등을 고려할 때,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이 지역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재난, 환경, 보건 등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위협의 도래는 동북아 지역 국가간 협력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전지구적 문제는 군사안보와 같은 전통안보와는 다른 형태의 비전통안보 문제이자, 인간의 삶은 위협하는 인간안보 문제로 국가간 연대와 협력, 상생과 공존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공통의 의제조차도 국가간 협력은 용이하징 않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협력을 위한 위기 극복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박한 국제정치 현실과 전세계적 위기 앞의 글로벌 리더십의 약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경쟁의 심화, 반세계화 정서의 확산과 편협한 민족주의를 목도하였다. 팬데믹 위기를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인 백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백신의 무기화 가능성을 높였고, 세계의 한 편에서는 백신관광을 독려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위협에 협력보다는 갈등이, 국가간 협력보다는 자국우선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북아지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감염병 확산의 공포 앞에 각 국은 국경을 닫았고, 정보는 공유되지 않았으며, 협력을 위한 움직임은 미미하였다. 결국 초국경적 위협에 대한 협력조차 실질적인 이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공동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당위적 명제가 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전통안보협력의 이상과 비전, 그리고 현실에서의 협력 이행이 어려운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2. 기존연구 분석 및 본 연구의 의의

 

국내 정치학분야에서 비전통안보 및 인간안보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국제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질서에 미치는 안보적 영향을 평가하고, 한국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이근 2001; 현인택·김성한 2001; 이신화 2008), 새로운 글로벌 이슈의 등장에 따른 국제사회의 현실 분석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망을 담은 연구(이신화 2007), 안보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안보담론에 대한 연구(박인휘 2001; 전웅 2004; 폴 에반스 2006; 민병원 2012)등이 이루어졌다. 구체 협력사안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도 이루어졌다. 특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조류독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를 겪으면서 보건안보에 대한 연구들(이상환 2012, 조성권 2016, 이상환·박광기 2016, 조한승 2018)과 최근 주목받는 식량안보, 인권, 환경, 미세먼지, 재난 등을 사례로 다룬 연구들(최병학·이재현 2006, 강성주 2019)도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안보에 비해 비전통안보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연구들은 학문의 영역에서 비전통안보 연구에 대한 초석이자, 마중물의 역할을 하며, 비전통안보의 국제협력에 대한 논의를 증진시켰다. 보다 구체적으로, 비전통안보로 확장된 안보 개념에 대한 학술적 설명, 향후 국제사회에 미칠 변화와 우리의 대응방안, 구체 사례에 있어서 각 국의 대응현황에 대해 소개하면서 비전통안보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분야에서의 광범위한 지역협력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본 연구는 비전통안보협력에 대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비전통안보협력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아닌,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적 사례로 재난분야에서의 협력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재난 분야는 국경을 초월하는 대표적인 비전통안보 분야로 꼽히는데, 예측이 불가하고, ‘가해국’과 ‘피해국’이 없으며,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유사한 환경에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3. 비전통안보의 개념과 발전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시대적 변화는 안보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기존의 군사안보에 치중해 온 전통적인 안보 개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며 변화에 대한 고찰과 새로운 설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전통안보에 대한 관심은 전통적인 안보 논리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실제로 어떠한 안보위협이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는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나갔고, 기존까지 외교 또는 군사 분야에 한정하여 쓰이던 안보의 개념은 경제, 환경, 자원 등 다양한 분야로 범위가 확장되어 갈등을 넘어 협력과 공존을 모색하는 복합적인 양상과 포괄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까지 상위정치(high politics)로 다루어지며 우선시되던 군사안보영역의 ‘전통안보(traditional security)’에서 하위정치(low politics)로 간주되던 비군사적 영역의 ‘비전통안보(non-traditional security)’까지 논의의 범주가 확대되며(이신화 2008), 이를 합쳐‘포괄안보(conprehensive security)’의 개념까지 발전하였다. 이처럼 안보의 개념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부터 인간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까지 확장되었고(전웅 2004), 이러한 가운데 환경, 기후변화, 자연재해, 보건 등 국경을 넘는 전지구적 과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안보 개념의 확장적 논의 속에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안전의 문제들이 특정한 계기에 국가안보의 문제로까지 증폭되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개념도 나타나게 되었다(김상배 2016)

한편, 이와 같은 확대된 안보의 개념 속에서 각 국은 초국경적 위협 앞에 국가간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역내 상호의존을 통한 공존과 공영의 방안을 모색한다. 원자력안전, 에너지안보, 환경, 재난, 사이버스페이스, 보건, 마약 등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협에 대해 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짐에 따라 보다 많은 분야에서 상호연계성이 강화됨에 따라 한 국가에서 발생한 문제가 그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자국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타국이 직면한 위기가 곧 자국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4. 재난분야의 국제협력

앞서 언급하였듯,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은 예상만큼 용이하지 않다.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역사갈등, 영토분쟁 등으로 인한 신뢰부족, 국가간 상이한 정치체제와 사회문화, 역내 강대국들의 이권다툼 등이 영향을 미침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협력의 실현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아닌, ‘분야’가 갖는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앞서 제시한 7개 분야의 경우, 과거 군사·무기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전통’안보로 일컬어지지만, 그 면면이 동일하지는 않다. 첫째, 원자력안전, 환경, 보건 등의 문제는 사실상 문제의 시작점이 있는 ‘가해국’과 ‘피해국’이 있는 사안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과 처리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고, 혹은 환경적 측면에서 논의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문제의 시발점인 일본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다. 또 다른 예로, 환경문제의 한 예로, 미세먼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면, 중국이 불편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활발한 논의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일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발원지가 있는 의제의 경우, 논의의 진전은 쉽지 않다. 둘째, 역내 이권경쟁이 치열해 질 수 있는 사안의 경우, 협력이 용이하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안보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논의이다. 결국 자원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 에너지 문제와 사이버 공격, 테러 등 사이버 상에서의 안보에 대한 논의도 협력의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깊은 수준의 협력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비전통안보의 개념도 좀 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한편, 재난, 구체적으로, 자연재해의 경우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는 낮지만, 협력이 앞서 제시된 분야 가운데서 시급성과 필요성, 중요성을 모두 요구하는 의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 비전통안보 협력의제로서 재난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으로, 전통적 재난의 종류는 ①태풍, 홍수, 호우, 해일, 강풍, 가뭄, 지진, 황사, 대설 등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난’, ②화재, 붕괴, 폭발, 붕괴, 교통사고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를 입히는 ‘인적재난’, ③에너지, 통신, 교통, 금융, 의료, 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와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입히는‘사회적재난’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최근 발생하는 재난들은 기상이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대형화,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의 발생이 국가기반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화, 대형재난의 발생이 타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은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높인다.

오윤경(2017)에 의하면, 재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였으며, 상호연계되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다. 국제협력의 목적은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첫째는, 인도주의적 동기이다. 이는 재난 발생 시, 긴급구호 및 구호 물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관련 국제 지침이 마련되었다. 둘째, 정치외교적 동기로, 재난 분야의 정책, 제도 등을 소프트 파워의 수단으로 이전하면서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 ODA 사업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경제적 동기로,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인적·물적 교류 등 수출, 유상원조 등의 방식이 포함된다. 넷째, 상호의존적 동기이다. 재난안전관리의 공동대응, 정보공유 등을 위한 협력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목적을 바탕으로, 재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유·무상의 자본, 교역, 기술, 인력, 사회문화 등을 대상으로 국가, 국가기관, 비정부시민단체(NGO)와 민간기업 등이 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국제협력’이며, 다른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개발협력’이다(권대한 외 2011). ‘국제개발협력’은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에 비해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공여국이 수여국을 돕는 시혜적 관점보다 상호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원조를 넘어서는 총체적인 협력방식의 필요성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개발협력’관계의 국가들은‘국제협력’보다는 덜 상호주의적이며, 덜 평등한 관계를 지닌다.

 

  1. 재난분야의 국제협력과 한국

재난분야의 국제협력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은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발원조공여국으로서의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재난안전관리체계의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역할이다(오윤경 2017,4). 한국의 국제협력 역사는 1990년대 원조수원국에서 순수원조공여국으로 지위전환기를 거쳐, 1995년 세계은행의 차관 졸업국이 되었고, 1996년 29번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공여국으로서 국제원조사회에 들어섰다. 또한, 2000년에는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수원국 리스트에서도 제외되었고, 2000년대 원조의 급격한 양적 확대가 이루어졌다. 2010년에는 OECD/DAC에 공식가입하였고, 이후 공여국으로서 국제개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도 기준 한국의 ODA 지원국은 124개국이며, 증여등가액은 2,249백만불에 달한다. ODA 지원은 사회인프라 및 서비스 분야에 중점적으로 지원되어 왔으며, 2019년 기준 사회인프라 및 서비스에 36.6%, 경제인프라 및 서비스에 33.8%의 재원이 배분되어 두 분야가 전체 지원액의 70.4%를 차지하였다. 그 외 난민지원, 행정비용, 인도적지원, 생산부분 등에 지원하고 있다. 지원지역으로는 아시아 51.7%, 아프리카 26.2%, 아메리카 11%, 오세아니아 0.8%, 미배분 10.2%로 나뉜다. 이 중, 아시아 지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점협력국으로 네팔, 라오스,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 등이 있으며, 일반협력국으로는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중국, 태국 등이 있다.

한편, 교류협력은 주로 정보공유, 공동연구 및 의제개발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국제교류협력은 해외 주요국과의 MOU를 통한 교류협력, UNISDR 동북아사무소/글로벌연수원, UNESCAP/WMO태풍위원회 등과 이루어진다(오윤경 2017, 5). 구체적으로, 국가재난 및 안전관리의 총괄 연구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제업무로 △UNESCAP/WMO 태풍위원회, △ODA 사업 및 기술지원, △국제공동연구, △국제방제협력세미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국제공동연구는 한국·대만·일본의 국립방재연구원과 수행하고 있으며, 재난대응, 기술개발 등 다양한 국제세미나 등을 추진하고 있다.

 

  1. 한중일 재난협력의 현황과 과제

그렇다면 동북아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지리적 인접성이 높은 중국, 일본과의 재난분야에서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한중일 3국은 재난 분야를 비롯한 비군사적 안보위협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재난 분야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한중일 3국은 태평양으로터 발생하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고, 더욱이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 중국은 유라시아판 지진대에 위치하여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역내 높은 인구 밀집도를 고려할 때 피해의 위험이 매우 크고(박계호 2012), 상호간의 직간접적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자료에 의하면, 재난 분야와 관련하여, 한중일 간에는 장관급 2개, 국장급 1개, 실무자급 3개의 협의체가 운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회의체로는 2008년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재난관리 협력 공동발표문」에 기초한 한일중 재난관리기관장회의(2009~), 한중일 지진협력청장회의(2004~) 등이 시행되었다. 국장급 회의체로는 한·중·일 재난관리기관장회의를 위한 고위실무자회의(2009~), 실무자급 회의체로는 한·일·중 재난구호 도상훈련(2013~), 한·일·중 재난관리전문가회의(2011~), 동아시아지진연구세미나(2011~) 등이 시행되고 있다(상세사항 개최현황은 아래 [표] 참조).

[표] 한중일 재난관리 협의체 현황 (2021.5.24. 기준)
구분 회의명 개최현황 참가국/기관
 

장관급회의

한·일·중 재난관리기관장회의 1차. 2009.10.31. 일본,고베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소방방재청

TCS

2차. 2011.10.28. 중국,북경
3차. 2013.10.30. 한국,서울
4차. 2015.10.27. 일본,동경
5차. 2017.09.07. 중국,탕샨
6차. 2019.12.05. 한국,서울
한·중·일 지진협력청장회의 1차. 2004.10.15. 일본,동경 중국: 지진국

일본: 기상청

한국: 기상청

2차. 2005.10.26. 한국,서울
3차. 2006.11.25. 중국,북경
4차. 2008.11.29. 일본,동경
5차. 2010.11.17. 한국,제주
6차. 2013.01.13. 중국,보아오
국장급회의 한·중·일 재난관리기관장회의를 위한 고위실무자회의 1차. 2009.06.02. 한국,서울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국민안전처

2차. 2011.08.31. 중국,북경
3차. 2013.08.27. 한국,서울
4차. 2015.08.04. 일본,동경
실무자회의 한·일·중 재난구호 도상훈련

(TTX, Table Top Exercise)

1차. 2013.03.14. 한국,서울 중국: 민정부

일본: 외무성, 내각부

한국: 외교부, 소방방재청, KOICA, 국립중앙의료원

JICA, UNISDR, TCS

2차. 2014.03.06. 일본,동경
3차. 2015.04.28. 중국,북경
4차. 2016.06.22. 한국,서울
한·일·중 재난관리전문가회의 1차. 2011.12.16. 일본,동경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소방방재청

UNESCAP, UNISDR

몽골, 인도네시아, 라오스, 필리핀, 독일, TCS

2차. 2014.03.28. 한국,제주
동아시아지진연구 세미나 1차. 2011.10.21. 중국,북경 중국: 지진국

일본: 기상청

한국: 기상청

2차. 2012.10.31. 한국,제주
3차. 2013.07.31. 중국,지린
출처: TCS https://tcs-asia.org/ko/cooperation/mechanism.php?topics=6 참조하여 필자 작성 (검색일: 2021.5.24.)

 

이와 같은 협력은 앞서 언급한 협력의 종류 가운데 정보공유, 공동연구 및 의제개발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협력 범주에 들어가며, 상호의존적 성격을 지닌다. 다만, 이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된 협의체는 2004년도에 1회로 개최된 ‘한중일지진협력청장회의’인데, 이 자료에 근거한다면, 한중일 3국의 재난협력의 역사는 길지 않고, 협력분야도 지진 등으로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위기 상황에 대한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대응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제 위기 발생 시 협력은 제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5. 결론을 대신하여

한국의 재난분야 국제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개발협력 의미의 협력은 공여국으로서 많은 국가들에게 경제사회적 지원을 주며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포괄적 의미의 국제협력은 주변국들과의 정보공유 등 국제세미나 및 공동연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중일 간에는 장관급, 국장급, 실무자급 등 다양한 수준의 협력의 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재난분야에 제도적인 협력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2004년도부터 다양한 틀의 회의체가 운용되고 있지만, 실제 지진, 태풍, 홍수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의 구호, 물자지원 등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우리나라의 해외긴급구호 등 대부분의 사업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접국인 일본, 중국과의 협조 체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협력과 교류협력의 비중 중, 교류협력의 비중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협력의 개념과 방향에서 오는 한계이다. 즉, 국제협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은 상호발전으로의 관점변화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여국에서 수여국의 시혜적 관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에서의 대부분의 협력은 주로 동남아 지역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강대국간의 세력 다툼이 첨예화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 혹은 한중일간 시혜적 관점이 높은 원조 형태의 국제개발협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둘째, 공통의 위협, 문제에 대한 접점 모색, 즉, 주제의 한계이다. 사안의 성격상,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알 수 있는 재난분야의 국제협력은 정보교류 및 기술개발, 상대국의 경험을 통한 교훈 및 훈련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동북아 국가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지진의 경우, 한국, 중국, 일본 3국 모두 갖고 있는 공통의 위협이지만, 각 국의 체감하는 위협의 정도는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해, 한국 또한 지진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지만, 과거 큰 지진을 경험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지금도 지진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일본의 지진에 대한 위기인식과는 현저히 차이가 나타난다. 지진, 홍수, 태풍 등 한중일이 갖는 공통의 위협은 존재하지만, 각 국의 체감정도, 그리고 우선순위가 다르다. 결국 국가별로 위협을 느끼는 자연재해의 우선순위가 다른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과 역량을 우선투자하여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셋째, 비전통안보협력에 국가간 정치외교적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역스필오버(back spillover) 현상의 발생이다. 제한적인 정보공유와 기술협력은 상호신뢰에 기반한다. 즉, 국가간 관계, 정치외교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국가간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정치분야의 대립과 불신이 비정치적 분야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과거 유럽에서의 유럽철강석탄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은 리더십의 강력한 의지가 발현된 산물이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비전통안보분야의 협력에 대한 국제적 공조와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더욱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국가관계가 복잡화, 상호연계화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역내 협력은 더욱 긴요해진다. 그러나 비전통안보분야의 협력이 전통안보분야의 협력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금물이다. 비전통안보분야 또한 전통안보와는 다른 맥락에서 논의의 시작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고, 보이지 않는 국가간 이권다툼과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이 정치외교적 관계에 의한 영향을 받기 쉽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도발 등 당장 눈앞에 실존적 위협이 발생하면 비전통안보협력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로 놓이게 되는 한계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안보협력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국경을 초월하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비전통안보 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수불가결하고, 협력은 확대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비전통안보협력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실질적인 공동대응을 위한 생각의 전환, 그리고 환경 조성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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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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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Korea. https://www.odakorea.go.kr

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TCS. https://tcs-asia.org/ko/main/

UNDP. Human Development Report 1994
http://hdr.undp.org/sites/default/files/reports/255/hdr_1994_en_complete_nostats.pdf(검색일: 2021. 4. 5)

[PDI 워킹페이퍼 NO.8] 북한의 인도주의 사태: 인재와 자연재해

문경연 (전북대학교 국제인문사회학부 부학장)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서론

2013년 2월의 3차 북한 핵실험 이전에 채택된 대북제재가 정치적 수사 차원의 느슨한 제재였다면 이후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결의 2094호, 2013년 3월 7일)는 대북제재의 역사에서 유례없이 강경한 제재로 북한의 경제 및 인도주의 상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재였다. 이 논문은 이처럼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가 과연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켰는지, 대북제재와 인도주의 상황 악화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제재가 어떻게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

2013년 2월의 3차 북핵 실험과 2016년 1월의 4차 북핵 실험, 동년 9월의 5차 북핵 실험으로 채택된 유엔의 대북제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도 높은 제재였다. 3차 북핵 실험으로 채택된 유엔 결의 2094호는 금융거래를 제재에 포함시켰으며 이후 결의안들은 석탄 등 각종 광물 자원 및 에너지 자원의 거래 금지, 원유의 거래량 제한, 표적 대상의 구체적 명시와 신규 등록(자산 동결, 여행 금지, 해외계좌 신설금지), 해외 노동자의 송출 금지 및 24개월 이내 송환 등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이 될 만한 실제적인 내용을 담았다. 무엇보다도 2016년 9월은 유엔 결의 2321호는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에 대한 생명선(lifeline)까지 차단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2017년 12월의 유엔 결의 2375호는 “북한의 민간인에게 불리한 인도주의적 결과를 가져오려는 의도는 없다”라고 명시하며 북핵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기관 그리고 제재의 품목을 한정하는 스마트제재를 취함으로써 일반적인 제재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의도를 취하였다. 하지만 박지연․최현진(2020)의 연구 등 일련의 연구에서 스마트제재가 의도한 바와 같이 제재의 대상에만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 참상을 수반한다는 점을 증명한 바 있듯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및 북한의 주요 경제 거래 품목을 차단함으로써 경제난을 초래하였고 이는 북한의 농업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식량난이라는 의도치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는 문헌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엔의 대북제재와 현 북한의 인도적 상황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한다. 이를 위해 시계열 데이터를 활용, 괄목할만한 내용적 변화가 있었던 2013년부터 채택된 고강도 대북제재를 기점으로 북한 인도적 상황 변화를 분석한다. 2013년 유엔 결의 2094호는 금융거래를 포함하였으며, 2016년의 유엔 결의 2321호는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하는 유례없는 제재였으며, 2017년의 유엔 결의 2356호는 금융제재의 대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제재 결정사항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으로 심화 되었으며 여행 금지 및 자산 동결에 대한 대상인 개인과 단체를 명시하고 실제적인 금융제재가 시행된 전환적인 결의안이다. 또한, 기존의 인도주의적 영역에 관한 면제조항이 삭제되고 군사적 부문과 인도적 부문 간의 경계가 모호한 영역에 대한 제한 사항이 발견되는 제재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부문별 제재 품목 선정과 이것의 강력한 이행 기제를 동반한 대북제재가 북한 당국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와 민생에 실제적인 타격을 입혔을 것으로 가정한다. 즉, 대북제재의 의도치 않은 효과를 식량 생산량의 저하, 제재로 인한 인도주의 활동의 제약, 북한의 우방국으로부터의 우호적 지원 감소를 초래했다고 보고 그 상관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먼저 과연 2013년 말을 기점으로 강력해진 대북제재와 기존의 제재와는 다른 인도주의적 참상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질문의 첫 번째 관문으로써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식량 생산량과 영양부족 인구 데이터를 살펴봄으로써 대북제재의 심화 기점인 2013년 시점을 전후로 북한 인도적 상황에 있어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이후 (인도주의적 참상이 확인된다는 것을 전제로) 본 연구는 이러한 인도주의 참상의 원인이 2013년 부터 취해진 강력한 대북제재에 있다고 보고 2013년 이후 유엔 대북제재가 과거의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던 대북제재와의 차이점을 분석한다. 끝으로, 본 논문의 마지막 파트는 앞서 확인된 인도주의 참상의 악화와 강화된 대북제재 간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2013년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북한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켰는지를 논리적 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대북제재의 내용과 효과성을 입증한 기존 연구는 많지 않으나 그 대표적인 연구로 나자닌과 로렌(Nazanin and Lauren, 2020)는 북한의 인도적 상황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유엔의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 둘은 대북제재가 북한의 식량 생산에 있어 에너지 공급 측면의 투입 요소를 제한함으로써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 악화에 이바지했다는 주장과 면제 체재의 한계, 제재 시스템의 실제적인 제약 요인들을 살펴봄으로써 제재가 인도주의 상황을 어떻게 악화시켰는지 분석하였다. 또한, 엘리스(Alice, 2019)는 UN의 제재가 보편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인도적 활동을 제약하고 피해를 주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제재가 초래하는 인도주의적 영향을 정리하고 있으며 북한 내에서의 인도주의 활동에 제약을 준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하며 1,000만 명 이상의 식량안보 위험 인구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이석(2021)은 대북제재가 사실상 북-중 무역에 초점을 맞춰 단순한 상품교역뿐 아니라 북한의 해외노동이나 금융 등 북한당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달러 채널에 제재가 겨냥돼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동참 그리고 대북제재로 인한 개성공단의 폐쇄는 북한 경제 악화의 실제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제재로 인한 경제난은 북한 농업 투입요소의 감소를 초래해 식량 생산량의 감소, 식량가격의 상승, 소득의 감소 등의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 접근성(food entitlement)을 감소시켜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북제재의 북한 인도적 효과에 대한 최근의 국내 연구로는 지혜론(2021)의 석사 논문이 있다. 해당 연구는 대북제재의 인도주의에 대한 직접적(인도주의 예산 감소, 민군겸용 물자 제재,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 개발지원 중단) 요인과 간접적 요인에 초점을 맞춰 제재가 인도주의 활동의 제약을 초래하여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효과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재가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포괄적 검토를 한다. 즉, 이 연구는 첫째, 2013년 사이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북한의 경제난을 악화시켰고, 이는 식량 생산을 위한 투입 요소의 감소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에 감소가 있었고 이는 인도주의 상황의 악화를 초래하였음을 분석한다. 둘째, 대북제재는 국제기구 및 NGO, 공여국 원조 기관의 대북 인도주의 활동 과정의 제약을 초래한 결과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이 악화 된 과정을 고찰한다. 끝으로, 대북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까지 북한에 대한 우호적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는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음을 논증할 것이다.

본 연구는 크게 세 분야의 문헌 연구와 자료 조사가 진행한다. 첫 번째는 북한의 인도적 상황에 관련된 데이터 및 문헌으로, 주로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북한의 인도적 상황에 관한 연구 보고서와 유엔의 자료를 참고한다. 북한의 식량 생산 규모와 같은 구체적인 데이터는 통계청의 북한통계 및 유엔 OCHA의 자료들을 활용하였고, 북한의 식량 수급과 관련하여 KDI 북한경제리뷰 및 산업연구원의 북한 식량 수급 및 경제 상황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또한, 식량 생산량 추정치(FAO, 농촌진흥청, 북한 농업성), 영양부족 인구수 자료가 있다. 제재의 인도적 효과를 뒷받침할 추가적인 지표들로 북-중 교역 규모, 대북 인도지원 규모 등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각 지표의 증감률을 통해 전년 대비 추이와 변화의 정도를 주요 분석 도구로 활용하였다. 주지하였듯이 대북제재의 인도주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가장 최근의 연구를 제외하고는 대북제재와 인도주의 간의 시계열적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가 부재하였다는 점에서 이 연구가 의의를 가지며, 향후 더욱 명확하고 분명한 인과성을 밝히기 위한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 또한 본 연구의 의의라고 하겠다.

 

2. 대북제재를 기점으로 한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 분석

이 장에서는 본 연구의 가설인 2013년 말부터 강화된 대북제재가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전제가 성립하는가를 검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3년 이후로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식량 생산량 상황

 

<표 1>은 FAO와 한국의 농촌진흥청 그리고 북한의 농업성이 발표한 식량 생산량과 증감률을 동시에 담고 있다. FAO와 농촌진흥청은 모두 북한의 주요 식량 작물의 생산량을 집계하고 있는데, 농촌진흥청의 산출 방법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어 있지 않으나 기상조건, 병충해 발생 및 비료 수급 상황, 국제기구 자료, 위성영상 분석, 그 밖의 정보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 한다. FAO 역시 북한의 기상 상황을 위성으로 조사하나, 그 외 다양한 식량 생산 투입 요소를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직접 조사단을 파견하고 연도별 데이터를 추산 한다.

세 기관의 수치상의 차이와 관련하여 북한 농업성 추정치는 연도 별 식량 생산량의 변동폭이 너무 크며, 이러한 큰 변동폭은 제재의 영향, 자연재해의 영향, 중국 등 우방국으로부터 투입요소 지원에 고려 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추정상 큰 변동폭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다는 점과 북한 통계 역량의 저발전과 권위적 국가의 통계 조작 유혹 등을 고려할 때 농업성 자료는 본 연구의 논의에서 배제하고자 한다. 대신에 FAO와 한국 농진청의 추정치는 큰 차이를 보이 않는 가운데 그 차이가 FAO의 경우 북한의 경사지 면적을 농촌진흥청 보다 15만ha 더 넓게 추정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북한 농업성의 추정치에 비해서 상대적인 신뢰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식량생산량(백만 톤) 증감률(%)
FAO 농촌진흥청 농업성 FAO 농촌진흥청 농업성
2012 520 468 540
2013 520 481 570 0.1 2.8 5.6
2014 522 480 570 0.5 -0.1 0.0
2015 448 451 510 -14.2 -6 -10.5
2016 497 482 590 10.9 6.9 15.7
2017 484 470 550 -2.7 -2.5 -6.8
2018 420 456 500 -13.1 -3 -9.1
2019 560 464 660 33.2 1.8 32.0
2020 TBD 440 TBD TBD TBD TBD

자료: FAO STAT, KOISIS(통계청 북한통계, 농촌진흥청), 유엔 OCHA(농업성)

* 시계열 조회(Cereals, Total), 북한의 주요 식량 생산량 통계 시계열 조회, 전년 대비 증감률은 저자 작성

** FAO의 식량 생산량 통계는 FAO STAT이 제공하는 수치와 FAO/WFP CFSAM 보고서 및 FAO의 GIEWS 브리프 보고서가 있으며 측정 시기 및 방법에 따라 상이 한 수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연도별 흐름을 확인하기 위하여 FAO STAT의 자료를 활용 한다.

*** 금융제재가 언급된 2013년과 강력한 대북제재가 진행된 2016~2017년을 중심으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분석하기 위하여 2012년부터 가장 최근의 데이터를 담았다.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중심으로 2013년과 이후로 식량 생산량의 감소세가 관측되었다. 다시 말해서 일시적 증가가 관측된 해가 있기는 하나 FAO와 농촌진흥청 추정치의 일반적인 경향은 2018년까지 지속적인 생산량 감소가 있었다는 점이다. FAO 추정치 기준 북한의 2014년 식량 생산량은 2만톤 증가가 있었으나, 농촌진흥청은 오히려 1만톤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FAO는 2014년의 경우 18개월간 지속한 심각한 가뭄은 북한의 농업과 물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였다. 2016년 북한 식량 생산량의 일시적 증가는 2015년에도 7만 1천톤에 그쳤던 중국으로부터의 비료지원이 2016년 15만 8천톤으로 증가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중국으로부터의 비료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당해 연도에 북한 남서부 지역의 가뭄으로 인한 자연재해와 함께 북한의 식량 생산량 감소를 설명하는 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가뭄은 2018년에도 지속되어 북한 당국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8년에는 중국이 다시 16만톤에 달하는 비료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였다. FAO의 2019년 긴급 평가 보고서도 북한이 2018년 심각한 가뭄과 홍수, 이상기온으로 농업생산량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2017년 대비 식량 생산량을 축소 추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FAO는 2019년 식량 생산량을 560만톤으로 예년보다 약 140만톤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140만톤에 달하는 증가폭은 사실상 기상적 요소나 혁신적 농업 생산기술 혹은 북한 내부의 거버넌스 요소로 설명하기 어려운 규모이다. 오히려 지오글램 크롭 모니터(Geoglam Crop Monitor)는 북한의 2018년 총 식량 생산량이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2019년 역시 봄의 폭우와 여름철 평년 대비 강수량이 42% 정도로(65% 감소)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식량 생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이를 고려할 때 140만톤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라는 점에서 한국 농촌진흥청이 추정한 전년도 대비 8만톤 증가한 464만톤이 실제 생산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 추정치 산정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해당 연도의 자연조건 및 자연재해 유무, 생산량과 직결되는 비료 투입량, 농업 생산에 투입되는 연료 등 경제적 투입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자연조건과 자연재해 유무는 그것이 식량 생산량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추정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대략적인 영향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북한의 식량 생산성 향상에 직결되는 북한 내부의 비료 생산이나 중국 등 우방국으로부터의 비료 지원 여부 역시 제한되지만 파악할 수 있는 요소이다. 특히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이 2016년 11월에 채택된 유엔 결의 2321호에 동참함으로써 비료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면 이것 역시 제재가 북한의 식량 생산량의 감소를 초래하여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연료 등 경제적 투입요소가 북한의 식량 생산량에 미치는 요소에 대한 분석이 과제로 남게 되는데, 이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의 경제상황을 위축시켜 북한의 농업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농업 투입요소의 감소를 초래함으로써 식량 생산량의 감소를 야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한다.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

 

2015년 SDGs가 발표되고 현재까지 전 세계가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목표로 전진하고 있는 와중에도 북한의 영양부족 인구는 지난 10년간 지속해서 증가하였다. 본 연구는 2013년 이후의 효과를 파악할 수 있는 현존하는 데이터들을 살펴보고 2013 이후 대북제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 장에서는 어떤 투입에 대한 인도주의적 효과는 중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해당 지표의 분석 년도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로 범위를 확장한다. 대표적인 지표들로는 북한의 영양부족 인구 데이터가 있다.

북한 영양부족 인구의 변화는 북한 인도적 상황을 직접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림 1>의 왼쪽 축이 나타내는 영양부족 인구는 2011~2013년 이전에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2012년~2014년 이후부터 최근 2019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수 측면에서 2008년 990만 명에서 2013년 1,000만면 수준으로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2013년 이후부터는 증가세가 뚜렷해지기 시작하며 2019년 들어 1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2013년 이후 8년간 200만명이 넘는 영양부족 인구 증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전체 인구 약 2,500만명 대비 4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자료: FAO STAT

 

<추가 분석 예정>

 

3. 유엔의 대북제재 진행경과 분석

 

본 연구에서 대북제재의 내용과 흐름을 살펴보는 주요 목적은 2013년 이래로 진행된 고강도 대북제재의 특징과 세부적인 항목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이 시기의 북한 식량 생산의 투입 요소, 대북 인도적 지원 활동의 제약, 우방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지원에 대한 제재의 영향을 살펴볼 것이다.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경과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해당 ‘국가의 평화적 전환을 지원하고, 비헌법적 변화 저지, 테러 억제, 인권 보호, 무기 등의 비확산’이다. 따라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제재를 ‘징벌’적 도구가 아닌 평화적 전환을 위한 수단이며 인도주의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헌장 제7장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조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이를 근거로 1966년부터 남아프리카, 구유고슬라비아 등 30개국을 대상으로 제재 조치(Sanctions Measurement)를 채택해왔다. 제재 조치는 그 목적에 따라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실행되어 왔는데, 포괄적 경제 및 무역 제재에서부터 무기 금지, 여행 금지, 금융 또는 상품 제한(자산 동결)과 같은 보다 표적화된(Targeted) 조치들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북한의 경우, 2006년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가 채택되었고 2020년까지 부속 결의를 포함해 추가적인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1718호는 대북제재와 관련된 전문가 패널인‘1718 대북제재위원회’ 설립을 명시함과 동시에 훗날에 있을 제재안의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2006년 이후 지난 15년간 유엔이 실행한 강도 높은 대북제재 체제 아래에서 제재의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와 비무장화라는 문구가 결의안에 명시되어 있다.

<표 2>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의 목록과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결의안의 만기 연장을 담은 후속적 성격의 결의안을 제외한 주요 결의안의 대다수는 주로 북핵 실험이 있은 직후에 강경한 비난과 함께 구체적인 제재 조항과 결정들이 담겨 있으며, 이러한 결정들이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핵실험 직후에 채택되었으며 제재의 강도 측면에서 획기적 변화가 있던 결의안인 2013년의 2094호 결의안부터 분석하고자 한다.

 

북한 도발 UN 대북제재 주요 내용 특징
대포동 2호발사

(2006.7.5.)

결의 1695호(2006.7.15.) 미사일 및 관련 물자의 대북한 수출입 시 주의 요청
1차 핵실험

(2006.10.9.)

결의 1718호(2006.10.14.) 금수조치 및 화물검색, 제재대상에 대한 자산동결 및 여행통제
2차 핵실험

(2009.5.25)

결의 1874호(2009.6.12.) 금수조치 확대, 화물검색 구체화, 자산동결 및 여행통제 대상 확대
은하3호 발사

(2012.12.12.)

결의 2087호(2013.1.22.) 기존 제재 보완, 강화, 트리거 조항 신설
3차 핵실험

(2013.2.12.)

결의 2094호(2013.3.7.)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의 금융거래 금지 금융거래 포함
4차 핵실험

(2016.1.6.)

결의 2270호(2016.3.2.) 북한 화물에 대한 검색을 의무화 및 북한의 석탄 수출을 차단 최초로 북한산 석탄 수출 차단
5차 핵실험

(2016.9.9.)

결의 2321호(2016.11.30.) 북한의 석탄 수출 상한제 도입, 북한의 수출 금지 광물(은, 동, 아연, 니켈) 추가 및 조형물 수출 금지 조치가 포함되어 약 8억불 이상의 북한 외화 수입을 감소시키는 효과 중국, 러시아 동참/Bulk cash 이전금지의무 재강조
IRBM

미사일발사

(2017.5.29.)

결의 2356호(2017.6.2.) 결의 2321호에 북한 기관 및 단체 4곳, 개인 14명을 ‘블랙리스트(제재 대상목록)에 추가 미국-중국 공동 추진/

대북 원유공급 금지는 제외

ICBM

미사일발사

(2017.7.4.)

결의 2371호(2017.8.5.) 북한의 석탄, 철, 철광석, 납, 납광석, 수산물 수출 전면 금지로 북한 수출액의 1/3 차단 및 신규 해외노동자 송출 중단 중국과 러시아 포함 만장 일치/

원유공급 금지는 제외

출처: UNSC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재구성

 

2012년 이전(유엔 결의안 2087)의 저강도 제재

 

본격적인 제재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2006년 결의안 1718호는 현재까지도 대북제재의 바탕이 되는 결정과 내용 그리고 목적을 담고 있다. 2006년 10월 9일 1차 북핵 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처음 제기된 해당 결의는 북한에 일련의 경제적, 상업적 제재 결정을 가하고 있으며, 무기와 사치품의 선박 및 항공의 수출입을 중단하고 해당 품목의 제조와 유통, 유치와 관련된 일체의 기술과 서비스 지원을 북한으로의 이전되지 않는 것을 주요 골자로 포괄하고 있다. 명확한 대상자와 기관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가족들에 대한 해외여행 금지령의 항목을 담고 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유엔 결의안 1874호는 1718호의 내용에서 좀 더 구체화 된 양상을 보인다. 1718호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또는 관련 품목에 대한 화물 운송 검열을 명시하고는 있지만, 회원국에 이를 의무 조항으로 달지는 않았다. 반면 1874호는 육로, 해상로, 항공으로 드나드는 북한 화물을 자국의 법률에 따라 사찰하고 물품을 파괴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결의안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목적을 제외한, 다른 이유로 북한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금융 대출 금지를 지시하고 있어 종전의 금융거래 ‘감시’ 보다는 강화된 금융제재 항목을 포함 하였다.

2013(유엔 결의안 2094) 이후 고강도 제재의 진행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정체기에 진입하면서 2012년까지의 대북제재 결의안은 제재위원회의 권한 갱신과 제재안 만료 연장에 대한 부속적인 문서 형태를 가지고 있다가 2013년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새로운 제재 결의안이 발표되게 된다. 2013년 1월에 먼저 발표된 유엔 결의안 2087호는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된 단체와 개인을 명시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표적 제재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이전 결의안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북한의 해외 금융 활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후 3차 북핵 실험(2월)에 대한 대응으로 3월에 발표된 유엔 결의안 2094호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강화된 제재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북한의 금융거래 동결, 은행 지점 개설 금지, 대량 현금 이체 제한 등 더욱 세부적이고 실제적인 금융 제재 조치가 시도되었다.

2016년 3월 2일 발표된 유엔 결의안 2270호는 지구상 그 어느 국가에도 시행된 적이 없는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북한이 2016년 1월과 9월에 각각 4, 5차 핵실험을 진행한 것에 대하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며 비확산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PT)에 대한 도전과 전 세계 평화와 안정에 대한 도전이라 규탄했다.

대북 강경 어조 속에서 2016년 3월의 유엔안보리 결의안 2270호는 북한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역대 가장 강경한 대북제재로 일컫는 유엔 결의 2321호에 앞서 채택된 결의로 2013년 2094호에 비해서는 모든 종류의 화물 검열 및 각종 광물 자원 수출 제한 등이 포함되는 등 북한 경제에 실제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접근하면서 일종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2270호는 본격적으로 북한의 금융기관 및 개인에 대한 표적 제재 조치(Targeted Sanctions Measurement)가 시작되었고 무기 및 관련 물품의 수출입금지, 탄도미사일 및 기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관련 금지, 석탄, 광물(철, 철광의 수출은 인도적 목적을 면제한 원칙으로 금지, 금, 바나듐, 티타늄, 희토류 등), 연료, 식품 및 농산물, 토양, 석재, 목재, 산업 기계, 운송차량, 해산물 등 광범위하게 구성되어 있다. 2270호의 이전 결의안과의 차이점은 모든 선박에 대한 검열 의무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구체적인 제재 대상의 광물 자원이 명시되었다는 점, 품목 대상 및 금융 제재 대상이 더욱 광범위해졌다는 점이다.

유엔 결의 2270호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석탄 수출이 오히려 14% 상승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채택된 2321호는 북한의 석탄 수출량과 금액의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으로 실제적인 규제를 가하게 된다. 기존의‘민생 목적은 예외’라는 규정 때문에 허점이 되었던 북한의 석탄 수출 제재가 대폭 강화된 것이다. 이는 유엔헌장 제42조에 명시된 군사적 조치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포괄적인 비군사적 제재를 부과한 것으로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민생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퇴색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석탄 이외의 광물 거래 부문에서는 기존의 수출 금지 항목(석탄, 철, 철광석, 금, 바나듐, 티타늄, 희토류)에 니켈, 은, 아연, 동(구리)을 추가하며 더욱 범위가 넓어진 광물 거래 제한 조치가 시행되었다. 동 결의안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는 달러와 자재의 수출입을 모든 면에서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규 조항 또한 포함되었다.

2016년 2321 결의안에서 금융제재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목표로 설정되었다. 예컨대 북한 은행의 제3국 설립 금지 및 기존 지점의 90일 이내 폐쇄 조항은 대다수의 대외거래를 중단시킨 치명적인 조치였다. 여기에 이전 제재안에 지속적으로 포함되어 온 무기 관련 노동당 간부 및 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이 유지되면서 자금의 이전 금지조항도 신설되게 된다. 화물 운송도 2013년의 경우, 운송에 대한 거부 권한이 부과되고 이후 무기 관련 화물 이송에 대한 전면금지조항이 좀 더 강화되어 북한에서 출발하고 북한으로 유입되는 모든 화물에 대한 검열이 의무화되게 된다.

2321호의 표적 제재는 개인에 대한 여행 및 자산 동결을 시행하면서 그 대상자의 이름과 소속, 활동 내역을 공개하고 있으며 자산 동결을 지시하는 은행 등의 기업도 목록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표적 제재조치는 북한에 실제적인 압박 혹은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북한의 39호실이 관리하는 대성은행이 자산 동결 단체에 포함된 것도 북한 당국 차원에서는 큰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유엔안보리는 이렇게 개인과 기관에 대한 자산 동결 조치가 이들 기관이 대부분 대외무역 거래로 얻는 수입을 핵개발 및 무기 개발에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321호의 석탄 수출 상한선 제도, 기타 광물 자원 수출입 제한 조치는 2016년 북한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을 포함해 북한의 전반적인 수출 규모 축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수출 금지품목들과 무역 제한으로 수입이 줄어든 품목들은 북한의 민생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인도적 지원과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비판 받았다.

 

일시 결의안 신규 조항 및 특징
2013.1.22 2087 금융 거래 감시 강화
2013.3.7 2094 자산 동결, 은행 지점 개설 금지, 대량 현금 이전 금지

의심스러운 화물 검역 권한 강화

사찰 거부, 금지된 물품 운송 의심 선박 및 항공 에 대한 항로 출입 거부 권한

2016.3.2 2270 표적 제재 본격화(개인 및 단체)

부문별 제재: 석탄, 광물, 연료, 식품 및 농산물, 토양, 석재, 목재, 산업 기계, 운송 차량 등 광범위하게 적용

무기 및 관련 물품의 수출입 금지

탄도미사일 및 기타 살상 무기 프로그램 금지

모든 선박에 대한 검열 의무화

7개 광물 수출입 금지

2016.11.30 2321 석탄 수출 상한(cab) 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석탄 수출 금지

7개 광물 제한+4개 광물 자원 추가(동, 니켈, 은, 아연)

금융거래 금지; 90일 이내 북한 대표 사무소, 자회사, 은행 계좌 폐쇄

표적 제재: 11명의 개인과 10개의 단체를 추가

무기 개발에 소요되는 물품 및 달러를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

2017.8.5 2371호 석탄 수출 상한 조항 삭제 및 석탄 수출의 전면 금지

외국인 노동자 송출 금지

2017.9.11 2375호 원류 거래 상한 조항(400만 배럴 이하)

해외 노동자 송환 조치(24개월 이내)

출처: 유엔안보리결의안을 토대로 저자 재구성

그렇다면 앞서 2장에서 확인한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 악화와 2013년 이래로 강화된 대북제재 간 상관관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상관관계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자 한다.

 

 

4. 대북제재와 북한 인도주의 상황 간 상관관계 분석

농업 투입요소 감소에 따른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인한 인도주의 상황 악화

금융제재에 대한 ‘감시’를 명문화한 2013년부터 유엔의 대북제재는 무기 및 핵 억제뿐 아니라 무기와 핵 개발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 되는’ 경제적 제재에 좀 더 주목해 오고 있다. 특히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인 석탄의 수출규제와 추가적인 광물 자원의 수출 금지는 북한 경제에 타격을 입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 중 특별히 수출의 규모를 볼 때 석탄을 중심으로 수출규제가 구체화 된 2016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전체적인 무역 총액 감소에는 수입액의 감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액보다는 등락 폭이 적다고 할지라도 금액면에서는 고점이었던 2015년 44억달러 수준이 2019년 29억달러 가량으로 감소했다.

KITA 무역통계에 따르면, 2016년 대북제재 이전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 중 1순위는 무연탄이었으며 철광석, 정제유, 아연 등은 불변의 주요 수풀 품목이었다. 주요 수출품의 수출 금지 조치를 통해 북한의 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을 동결한다는 의도를 가진 제재의 여파로 상위권의 수출 품목과 이하 수산물과 몇몇 농수산물도 수출 규제에 포괄되게 된다. 제재의 결과로 석탄 및 광물 자원과 농수산물의 수출은 급격히 감소하고 2018년에 들어 주요 수출 품목은 시계, 가발 등 경공업 제품들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수출 금액 감소에 주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북한의 수입 활동은 특정 품목에 집중되지 않고 주민 생활과 산업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생필품 및 중간재를 거래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수입 규모가 감소했다는 것은 주민의 민생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 통계청 북한통계(KOSIS)

* 각 주재국/관할국의 공식 통계기관으로부터 입수한 해당 국가별 對 북한 무역 통계자료와 전문 글로벌 무역통계 기업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북한의 연간 무역통계를 추산한 자료임; ** 남북한을 혼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국가의 통계 및 비공식 무역통계 등 신뢰도가 낮은 통계치는 제외; *** 남북한 교역액 제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의 식량 생산량 저조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기상과 기후 변수를 제외하면, 북한의 식량 생산을 좌우하는 다양한 변인 중에서 식량 생산부문 투입요소와 식량 생산량 간의 상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식량 생산 투입요소(input)의 저조는 식량 생산량의 저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농업에 필요한 농기계와 이것들을 운영할 수 있는 전력 및 에너지, 비료와 유기화합물, 관개수로를 위한 각종 펌프와 농업 자재 등 다양한 투입요소의 결여가 식량 생산량에 반영되며 이러한 투입 요소는 다름 아닌 인도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림 3>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식량 생산량 데이터는 크게 세 번의 변곡점을 지난다. 첫째, 2015년 전년 대비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하락한다. 둘째, 2016년 식량 생산량의 증가율은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셋째, 그러나 이듬해 2017년 다시 반등 효과를 동반한 급격한 하락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2018년 최악의 식량 생산량이라는 수치가 대변한다.

자료: <표 1>을 바탕으로 저자 재구성

 

2013년 대북제재의 영향은 2014년 이후 발생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반면 2016년과 2017년의 대북제재와는 시기상 분명한 연관성을 지닌다. 동시기를 중심으로 식량 생산량은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가해진 대북제재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북한의 경제적 이윤 추구를 차단함으로써 무기 개발 등에 유입되는 자금을 막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제재의 실제적인 피해는 북한의 취약계층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석탄의 수출을 전면 차단하고 농업부문을 포함한 각종 물품의 교역을 중단시킨 2016년 2321호와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로 기록되는 2017년 12월의 유엔 결의 2375호는 분명히 “북한의 민간인에게 불리한 인도주의적 결과를 가져오려는 의도는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대북제재는 직, 간접적으로 농업생산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명확한 것은 농업생산 특히 연료, 기계, 장비의 예비부품 등에 필요한 특정 품목의 수입에 대한 제한이다.

아울러 전체 농업 영토의 30%가 관개수로로 진행되는 북한의 농업 구조상 관개수로를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전기, 펌프 장비 및 각종 원자재의 부족은 식량 수확량을 줄이고 가뭄과 폭염과 같은 극심한 기상 충격에 취약한 농작물을 만들게 된다. 결국 식량 생산에 필요한 투입의 감소는 식량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식량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적 변수에 대한 복원력, 저항력도 감소시켜 지속적인 식량 생산 저하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게 된다.

대북제재가 주요 수출입 금지품목으로 지목하고 있는 에너지, 특히 2017년 2375호 이후 원유의 거래 위축이 북한의 농업부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대북제재가 가해지기 한참 이전인 1991년만 해도 북한의 석유 소비량은 380만톤에 달했다. 그런데 제재가 강화된 이후 2017년, 연간 평균 75만톤 규모로 원유 사용이 크게 감소했고, 2018년 농업용 연료에 대한 배급은 경유 40,520 톤, 휘발유 4,000톤이었으며, 이는 연평균 140만ha의 경작지 재배량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다. 2018년의 최악의 식량 생산량에 대한 기상 악화 원인론이 지배적인 가운데, 원유 공급의 극단적인 축소가 추가적인 요인이 되었는지, 혹은 그 단독만으로도 충분히 농업생산을 크게 감소시킨 것인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악화 일로의 북한 농업 환경에 에너지 공급의 결여가 미칠 악영향은 명백하다.

에너지 집약적 농산 구조가 지배적인 북한의 상황 상, 농업인구 투입량 및 인프라, 원자재 부족 등의 환경적 요인도 함께 작용하며, 공급의 메커니즘과 불균형 양상도 북한의 식량안보 상황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유엔의 대북제재와 제재 메커니즘은 이러한 인도적 수요의 직접적인 동인을 다루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된다. 유엔 대북제재는 금융거래와 각종 무기 관련 거래를 차단하는 것을 북한의 식량 생산 및 인도적 상황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2016년 대북제재결의안 2321호에 더욱 극명하게 반영된다. 2016년 2321호는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데 반해 인도지원을 위한 면제조항은 삭제되었고 철, 석탄, 철광석 수출 전면금지 조치의 민생품목 예외조항도 삭제되게 된다. 또한 인도주의 지원과 관련된 민군겸용 품목이 포함되면서 대북 인도주의 활동은 더욱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더불어 북한의 전체 농업 면적 중 30%에 해당하는 지역이 관개수로로 농업하고 있는데, 호미와 같은 농기구 뿐 아니라 물 공급에 필요한 펌프와 파이프, 철강 등은 식수 공급 뿐 아니라 북한의 농업생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인도지원 현장에서 유니세프와 FAO 등 실제 활동하는 기관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2018년부터 대북제재의 완화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2018년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이와 같은 요구가 반영되며 북한의 대북제재에 대한 ‘이행지원지침(Implementation Assistance Notice no. 7, IAN No. 7)’이 도입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의 회원국 간의 협조를 통해 대북제재 면제 승인 기간이 단축되는 변화가 있었다. 대북제재의 인도주의적 침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계속되자 추가적인 이행지원지침(2020)이 발표되었다. 물론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까다로운 면제조건으로 실제 인도적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주고 있다는 증언과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제재의 완화 흐름, 대 중국 교역의 증가 등의 효과가 나타나며 2019년 북한 식량 생산량에 있어서도 호전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대북제재로 인한 인도주의 지원 활동의 제약

 

본 연구는 서두에서 제재(Sanctions)가 인도주의와 민간의 활동을 제한할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저해 요인이 된다는 비판을 받아왔음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논쟁의 결과로 제재의 영향을 개인과 단체에 한정하는 표적 제재(Targeted Sanctions)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 제재의 효과에 대하여 박지연․최현진(2020)은 그 범위와 대상 국가의 정치제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광범위한 제재가 가해지는 대상 국가의 리더는 일반적인 대중을 압박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표적 제재의 대상이 매우 광범위하고 그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북한에게 적용되며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되게 되었다.

엘리스는 크게 4가지의 UN 제재의 과정을 통해 보편적으로 제재가 미치는 영향 구조를 정리한 바 있다. <그림 4>이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제재위원회가 표적 제재의 대상을 정하는 과정이 광범위하여 인도지원 단체들과 관련된 조직이나 개인이 포괄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면제 조치는 오히려 인도적 활동의 관료주의적 절차와 비효율성, 제재 이행 과정에서 인도주의 활동 단체들이 겪게 될 실제적인 피해 등을 포괄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그림 4>의 메커니즘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인도주의 단체들이 유엔의 대북제재로 인하여 금융 서비스가 거부당하고 인도적 활동에 필요한 상품의 수입이 어려우며 면제권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표적제재에는 조선무역은행이 명단에 올라 있는데, 인도적 활동을 위한 금융거래는 예외로 하고 있지만, 북한 무역은행은 인도적 행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은행 채널이며 제재가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일한 통로를 차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대북지원 규모 감소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Central Emergency Response Fund, UNCERF)의 지원 중단이 조선무역은행이라는 송금 경로가 차단되며 발생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북제재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도지원의 예산이 감소했음을 지적되는데, 2018년 유엔 북한팀이 1억 1,100만 달러의 기금 조성을 호소했으나 실제 모금액은 1,720만 달러에 그쳐 목표치에 24.4%에 그쳤으며 실제 인도적 필요 금액 대비 모금액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자료: Alice Debaarre, “Making Sanctions Smarter: Safeguarding Humanitarian Actions,”International Preace Institute, 2019, p. 4.

 

나자닌과 로렌(Naznnin and Lauren, 2020) 도 비슷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예컨대 미국 NGO들이 대북 인도지원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미 재무부의 일반 허가를 받으면 되었던 것이 2017년 제재 이후에는 특면 면제 조치에 대한 허가 및 지원 식료품 등에 대한 엄격한 검열과 축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주의 활동의 면제 허가 과정에서 시간적인 지연이 발생하는 문제는 인도주의 현장에서 매우 실질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부문에 대한 플라스틱 지원 같은 저기술을 요하는 지원 사업에도 면제 승인의 기간이 오래 걸렸으며 유엔국가팀(UN Country Team)에서 2019년 1월, UN 전문가 패널에 북한 인도 사업의 승인 지연 사례를 22건이나 보고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활동은 9개월 이상 지연 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대북 의료 활동 지원과 같은 인도적 지원 활동은 모든 허가 절차를 밟는데 3년이 걸린 사례도 있다. <그림 5>는 국제사회의 전체 대북지원 규모와 추이를 보여주는데, 실제로 2016년 대북제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도 하였다.

자료: UN OCHA, FTS 데이터 재구성

 

금융제재와 더불어 對북한 무역 거래의 제한과 복잡한 허가, 검열 절차는 북한 내부의 인도주의 행위자들의 상품 수입과 운송을 제약하게 된다. 지원 물품의 운송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나 관련 국가들이 제재 준수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지연이 발생하게 되면서 인도지원의 시인성은 급격히 저하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인도지원 물품이 중국에서 구매되고 북-중 접경지를 통해 배송되는데, 유엔의 면제 허가만이 아니라 중국 당국 허가도 함께 받아야 하는 이중고가 발생한다. 2016년 대북제재 이후 강화된 검열로 인해 인도주의적 상품 검열 과정도 인도적 활동에 제약 요인이며 대북제재의 까다로운 장벽들은 인도적 행위자들에게 “과중한 절차, 항만 통관 지연, 높은 비용 및 평판에 대한 리스크”라는 부담을 지우며 점차 이들의 활동을 위축되게 만든다.

한편, 기근의 경제학(economics of famine)에서 식량과 기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권리(Entitlement)’는 어떤 개인이 사회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모든 능력을 이용하여 지배(command)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석(2021)은 2017년 이후 북한 주민들의 식량에 대한 접근 권리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2020~21년 들어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2017년 대북제재의 강화와 이로 인한 북·중교역의 감소를 들고 있다. 이석(2021)은 본 논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제재가 초래한 북·중 교역 뿐 아니라 인도지원의 감소, 인도주의 활동의 위축으로 인해 식량 생산량 감소, 식량 가격의 상승, (주민) 소득의 감소라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식량에 대한 접근권이 위축됨으로써 인도적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종합하면, 2013년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는 인도주의 행위자들의 금융거래 차단, 지원 물품의 무역 거래 검열 강화, 제재 위반 시 지불하게 될 벌금 및 기소 등의 위험 부담을 초래함으로써 인도주의 활동을 위축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우방국으로부터 지원의 감소

 

앞서 대북제재가 북한의 식량 생산 요인을 제한하여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논의하였고, 2장에서는 인도주의 현장에서 어떻게 대북제재가 인도적 활동을 실제로 제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장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버팀목이자 생명선(lifeline) 역할을 하였던 중국의 제재 참여가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의 악화 및 완화 측면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유엔 대북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에 반대하는 유엔안보리 제재 찬성론자들은 대북제재는 북핵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레버리지이며 제재의 효과는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제재에 참여하지 않아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 한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으로서 대북제재에 대한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 6>는 중국이 북한과의 특수한 우방을 유지하며 대북제재에 대한 완화를 위해 꾸준히 고위급 회의를 통해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나, 북한에게는 영향력 있는 제재도 함께 병행해왔음을 확인시켜준다.

먼저, 북·중간 교역 규모는 대북제재가 강력하게 실시된 2016년 34억 달러 수준에서 2018년 25억 달러로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북·중 교역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광물과 석탄(무연탄)의 거래가 제한된 것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이러한 경제적 타격은 다시 북한 내 생산 가동에 필요한 자금을 제한하는 등 내수 경제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앞장에서 2017년 이후 인타이틀먼트의 축소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대북제재로 인한 북·중 교역의 감소, 그 외의 식량 공급원의 감소를 언급한 바 있다. 이렇듯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로 인한 북·중 교역 감소는,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의 91%를 중국이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 경제와 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료: 통계청 북한통계

추가적으로, 중국은 북한과의 무역 거래 이외에도 대한 꾸준히 무상 지원을 진행해 오고 있었는데, 북한의 식량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료 지원은 중국의 주요 대북 인도지원 품목 중 하나였다. 다수의 언론은 중국은 2015년 북한에 무상으로 7만1천톤, 2016년 15만 8천톤의 비료를 지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돌연 2017년 대북제재를 이유로 들어 비료 및 식량 지원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2018년 다시 16만 2천톤의 비료를 무상 지원하기 시작한다.

 

2015 2016 2017 2018 2019
71,000 158,000 0 162,000 93,305

 

자료: 해관총서를 인용한 다수의 기사 자료 활용하여 저자 작성

북한의 비료 수요는 일반적으로 58만톤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비료 1톤당 소출 1톤의 증가분을 낫는다고 한다. 비료의 성분 별 구분을 차치하고, 합산하여 단순 계산할 때, 2016년 지원된 15만톤의 비료 지원은 쌀 15만톤의 증가분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은 2017년의 중국의 대북 비료지원 중단이 이듬해 쌀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북한의 쌀 생산량은 대북제재의 여파로 식량 생산 요소의 감소와 기상 이변으로 감소하였는데, 중국의 비료 지원의 영향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을 증명하는 듯, 2019년도의 식량 생산량은 비료 지원의 재개와 함께 증가하는 추이를 보인다. 앞서, 2019년의 식량 생산 증가분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는 현재로서는 중국의 비료 지원량 회복과 기상 환경 두 가지 측면이 유력하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과 비판은 교역 규모 통계와는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제재에서 제한하는 수출 품목에 대한 교역을 2016년 이후 중단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중국의 대북 비료 지원에 대한 북한 농업 생산의 의존도가 매우 심각하며 지원 규모의 편차가 바로 북한 내 식량 생산량의 편차로 이어지게 된다. 중국이 대북제재의 참여와 이로 인한 대북 비료 지원의 증감은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의 식량지원 추가 예정>

 

5. 결론

일반적으로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식량 생산량 저하가 지적되며,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의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이러한 북한의 자연재해는 분명히 북한의 식량 생산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인도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량 공급과 관련한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식량 가용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식량 접근권(북한의 거버넌스적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에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대북제재가 식량 가용량의 제한을 가져왔고 이것이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시켰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앞서 살펴본 식량 생산량 수치와 영양부족 인구 추세를 살펴봄으로써 2013년 이후 강화된 고강도 대북제재의 여파로 식량 생산량의 감소와 인도주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영양부족 지표가 악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대북제재가 식량 가용량의 관점에서 어떻게 식량 부족 현상을 초래하였는지를 대북제재가 야기한 경제위축으로 인한 농업 투입요소 감소와 이로 인한 식량 생산량 감소, 인도주의 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긴급 식량공급의 제한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아울러 국제사회로부터의 제재 가운데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대안적 대응전략(coping strategy)으로써 우방국가에 대한 의존 마저도 어렵게 한 고강도 제재의 효력을 고찰하였다.

<추가 예정>

 

참고문헌

 

이 석. 2021. “북한의 경제위기, 어디까지 진행될까?” 『KDI 북한경제리뷰』. 세종: 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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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C: https://www.un.org/securityCouncil/sanctions/information(최종검색일: 2021. 4. 5)

[PDI 워킹페이퍼 NO.7] 한국 개발협력 NGO의 불확실성과 대응

김준협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서론

한국의 국제 개발협력 분야는 1990년대 초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의 전환을 이룬 이래 현재까지 개발협력 분야에서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이러한 성장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 분야 뿐 아니라 민간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협력에 있어서도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사회복지 사업을 수행하던 민간 기관들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해외 봉사, 국제 구호활동 등과 같은 분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면서 개발협력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s)로의 전환을 이루었으며, 또한 신규 개발협력 NGO들이 다수 설립되면서 민간 차원에서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행위자들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국내 개발협력 NGO들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 수준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국내 개발협력 NGO들의 급격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 년 동안 이들의 성장은 점차 정체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개발협력 NGO의 전체적인 숫자 및 재정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증가의 추이 측면에서는 점차 감소세에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어떠한 요인에 의해 국내 개발협력 NGO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 국내에서 개발협력 활동을 하고 있는 NGO들 중 대표적인 기관들의 현황을 살펴보고, 어떤 원인에 의해 성장세가 둔화되었는지 확인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이 국내 개발협력 NGO의 성장세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하여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가능한 방안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국의 개발협력과 NGO

한국의 개발협력은 정부 차원에서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을 설립하고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의 전환을 달성하였고, 2009년에는 경제개발협력기구 개발원조위원회(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Development’s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DAC)에 가입이 확정되며 선진 원조 공여국으로 위치를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민간 차원의 개발협력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복지 기관들을 중심으로 국내 복지사업과 병행하여 국제 개발협력 사업을 시작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9년에는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現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발족하여 26개의 개발협력 NGO를 회원으로 하며 개발협력 의제에 관하여 논의하고 협업하는 기구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개발협력이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파트너십(partnershi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원조 공여자-수혜자와 같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생의 관계로 정립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는 개발원조(development assistance)가 있는데, 이는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포함하는 국가 대 국가 경제 지원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원의 성격이 비구속적이고 수혜자의 경제적 회복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둔 인도주의적 지원(humanitarian aid)이라는 용어 역시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경제원조(economic assistance), 국가 간 원조 측면을 부각시키는 해외원조(foreign aid) 등도 함께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본 논문에서는 개발협력(development coope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원조 공여자와 수혜자 간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NGO의 경제 지원이나 원조에 있어서도 이러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본 논문은 국내 개발협력 NGO의 현황과 현재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국내 개발협력 NGO의 현황을 검토하기 위해, 우선 본 연구의 기본 분석단위(unit of analysis)가 되는 개발협력 NGO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NGO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유엔 헌장 제71조에서 “경제사회이사회(Economic and Social Council, ECOSOC)는 NGO와 협의를 통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United Nations 1945). 국내·국제 수준에서 NGO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형태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왔으나, 독립적으로 구분된 사회 행위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접어든 이후이다. 특히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차원에서 인식을 하게 되면서 NGO는 국제사회의 행위자 중 하나로 주목받게 되었다 (Martens 2002).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NGO 중에서 개발협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NGO를 대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개발협력 NGO라고 한다면 우선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특정 유형의 재화 또는 용역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단체를 일컫는다. 재화와 용역의 유형은 장·단기적으로 개발도상국 내 지역사회의 경제 발전을 위한 유·무형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는 제3의 단체를 거쳐 모금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개발협력 NGO가 직접 개발도상국에 재화 및 용역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Murdie(2014, 44-48)는 개발협력 NGO를 “service INGO”로 명명하며 기관이 직접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며 자금을 개발도상국에 이전하거나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행위자로 정의하고 있다. Büthe et al.(2012, 583)의 연구에서는 “aid NGO”로 명명하였으며 개발협력 NGO를 긴급구호 활동, 상하수도 및 위생, 건강 및 의료서비스, 교육 등의 분야에 해당하는 재화 및 용역을 제공하는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은 모두 개발도상국 내 원조 수혜자들의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개발협력 NGO는 정부에 등록되어 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Salamon & Anheier 1992). NGO가 정부에 등록이 된다는 것은 해당 국가 내에서 공식적인 기관으로 인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소수의 NGO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규모의 기관인 경우가 있는데 조직의 안정성이 매우 낮거나 업무의 일관성이 없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정식 NGO로 등록이 되기 이전에 해산하거나 와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되어 법적인 기관으로 인정된 개발협력 NGO가 본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 중에서 국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고 2019년 기준 기부금 수입규모 상위 5개 개발협력 NGO인 한국월드비전,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한국컴패션을 대상으로 국내 개발협력 NGO의 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한국 개발협력 NGO 현황

국내 개발협력 NGO는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개인 후원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개별 NGO들의 재정 규모와 활동 범위 역시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연간 수입 기준으로 보면 2008년과 2009년 사이의 1년 동안 어린이재단은 그 수입이 48.2%가 증가하였고 한국컴패션은 40.0%가 증가하였으며, 수입규모 상위 5개 개발협력 NGO들의 평균 수입 증가율은 31.1%를 보였다. 국내 개발협력 NGO의 총 숫자도 증가하여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舊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회원 단체 기준으로 1999년 26개에서 2011년에는 86개로, 그리고 2021년 현재 140개의 회원 단체가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KOICA를 중심으로 민간 기관에 개발협력 사업을 위탁하여 수행하거나 개발협력 NGO 등에 정부보조금을 지원하여 왔다.

국내 개발협력 NGO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후원자들로부터 얻는 연간수입 측면에서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에 접어들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2013년까지 단체들의 연평균 수입 성장률이 10%를 상회하였던 것에 비해, 2016년부터는 한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하거나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임으로써 국내 개발협력 NGO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1>과 <그림1>은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개발협력 NGO의 연 수입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약 2015년까지 지속되어 온 가파른 성장세가 2016년을 지나며 전체적인 성장세가 다소 꺾이게 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국내 개발협력 NGO 중 가장 수입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월드비전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한국컴패션 역시 각각 2017년과 2016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표2>와 <그림2>에서는 5개 개발협력 NGO의 연 수입 성장률 추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2009년 30퍼센트를 상회하던 평균 성장률이 2020년에 이르러 마이너스 값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표1> 국내 개발협력 NGO 연 수입 내역, 2008-2020 (단위: 천원)

연도 한국월드비전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한국컴패션 합계
2008 89,810,099 51,337,038 34,562,120 28,107,513 17,564,194 221,380,964
2009 119,285,206 99,026,590 40,285,380 33,203,997 29,288,705 321,089,878
2010 148,461,686 110,882,919 46,254,783 62,040,516 43,414,830 411,054,734
2011 166,716,336 115,230,356 59,766,363 72,899,797 47,398,066 462,010,918
2012 184,591,475 129,649,458 77,898,323 94,448,317 56,532,690 543,120,263
2013 194,139,875 142,341,725 101,675,581 109,120,937 70,280,342 617,558,460
2014 206,957,589 144,384,174 118,637,226 123,561,815 70,943,019 664,483,823
2015 220,045,891 160,640,425 135,753,247 140,783,519 72,769,188 729,992,270
2016 230,553,001 173,491,451 144,807,497 148,448,316 72,177,066 769,477,331
2017 234,643,422 187,166,612 157,956,081 145,037,516 68,555,395 793,359,026
2018 231,909,409 190,762,120 175,234,922 145,272,612 70,942,804 814,121,867
2019 226,749,857 209,153,106 180,077,189 137,112,232 70,786,592 823,878,976
2020 224,659,225 211,323,956 179,637,318 135,073,666 72,129,267 822,823,432

(출처: 국세청 홈택스 공익법인공시)

 

<그림1> 국내 개발협력 NGO 연 수입 추이, 2008-2020 (단위: 천원)

 

성장률 한국월드비전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한국컴패션 합계
2009 24.7 48.2 14.2 15.3 40.0 31.1
2010 19.7 10.7 12.9 46.5 32.5 21.9
2011 10.9 3.8 22.6 14.9 8.4 11.0
2012 9.7 11.1 23.3 22.8 16.2 14.9
2013 4.9 8.9 23.4 13.4 19.6 12.1
2014 6.2 1.4 14.3 11.7 0.9 7.1
2015 5.9 10.1 12.6 12.2 2.5 9.0
2016 4.6 7.4 6.3 5.2 -0.8 5.1
2017 1.7 7.3 8.3 -2.4 -5.3 3.0
2018 -1.2 1.9 9.9 0.2 3.4 2.6
2019 -2.3 8.8 2.7 -6.0 -0.2 1.2
2020 -0.9 1.0 -0.2 -1.5 1.9 -0.1

<표2> 국내 개발협력 NGO의 연 수입 성장률, 2009-2020 (단위: %)

 

<그림2> 국내 개발협력 NGO의 연 수입 성장률, 2009-2020

<그림3>에서는 각 개발협력 NGO의 정규직 인력 숫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개발협력 NGO들은 연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사업 규모를 확장하고 이에 따라 운영비용 역시 증가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정규직 직원 고용의 증가를 꼽을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급여 등 고정비용이 증가한 반면 사업 규모는 2010년대 중반부터 정체하게 되어 이에 따르는 인력 규모의 변화도 수반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월드비전은 2014년 404명에서 2015년에 867명으로 인력 규모가 증가하였고 2018년에는 1041명까지 증원하기에 이르렀으나, 2020년에 이르러 749명으로 다시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2014년 497명에서 2015년 601명으로 정규직 인원이 증가하였고, 2018년에는 692명까지 늘어났으나, 2020년 기준으로 정규직 인원이 641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림3> 국내 개발협력 NGO 직원 수 변화 (단위: 명)

4. 불확실성의 증가

이처럼 국내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 중인 NGO들은 2010년 무렵까지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였다가 최근 5년 사이에 성장세가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개발협력 분야에서 대표적인 NGO들 모두 연 수입 측면에서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정규직 직원 채용 인원에 있어서도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어떤 이유로 인해 국내 개발협력 NGO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이는 개발협력 NGO의 개별 사안을 넘어서 국내에서 수행 중인 개발협력 사업 전반에 관한 향후 전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상기 연구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1) 시장 포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개발협력 NGO들의 협의체 기구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는 1999년에 출범할 당시에는 총 26개의 회원 단체로 구성되었으나, 2021년 현재 140개의 회원 단체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회원 단체만을 파악한 것이어서 이에 가입하지 않은 수많은 개발협력 NGO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한국컴패션 역시 높은 연간 수입액을 보이고 있지만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약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여 기간 동안에 걸쳐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많은 관심과 재정적 후원이 이어져 급성장을 거두었으나, 그와 함께 개발협력 분야 내에 다수의 NGO가 설립되어 후원자로부터의 모금 경쟁 역시 심화되었다. <그림4>에는 국내 개발협력 NGO들의 설립연도를 각각 보여주고 있다. 사회복지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몇몇 NGO들이 1990년대 이전에 설립되었던 것에 비해,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개발협력 NGO의 설립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내 개발협력 관련 모금 분야에서 포화 상태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림4> 연도별 개발협력 NGO 설립 추이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회원단체 대상)

이렇게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장 포화(market saturation) 현상은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NGO의 전반적인 운영과 그에 대한 동기부여를 설명하는데 있어, 이윤 추구를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기업의 운영 및 동기부여와 동일하다고 보는 이론적 접근이 있다(Cooley & Ron 2002; Bob 2005; 2010; Johnson & Prakash 2007; Murdie & Bhasin 2011). 이러한 관점에서는 최근 국내 개발협력 NGO 간 모금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과 그에 따라 NGO들의 연 수입 성장률이 정체되는 등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입규모 상위 5개 개발협력 NGO 중 2020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곳이 3곳이며, 5개 기관의 전체 연 수입 성장률 역시 2019년 대비 -0.1%를 기록하여 처음으로 연 수입 성장률이 감소세에 접어들게 되었다.

개발협력 NGO는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통해 개발협력 활동에 필요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협업을 통한 인도적 지원·긴급구호 활동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NGO의 활동과 운영의 동기부여 측면을 규범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접근법에서는 NGO가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정하거나 준수하는데 앞장서고 도덕적·윤리적 원리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행위자로 인식되고 있다(Keck & Sikkink 1998; Risse et al. 1999; Clark 2001). 하지만 현재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정 문제, 운영의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응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결국 각각의 개발협력 NGO의 생존이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재정적으로 성장 동력을 얻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향후 개발협력 NGO에 정기후원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잠재 후원자의 숫자는 점차 한계를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 개발협력 NGO는 지속적으로 설립되는 추세에 있다. 즉, 개발협력 사업 분야는 점차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데 개별 NGO에 후원을 할 만한 개인 후원자들은 이미 특정 기관에 후원을 하고 있어 더 이상 개발협력 분야 전체 수입 규모가 확대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2) 잠재 후원자들의 불신

 

많은 잠재 후원자들은 개발협력 NGO를 비롯한 자선 단체의 투명한 재정 운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기관의 행정비용이 얼마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개발협력 NGO의 경우 모금으로 이루어진 기관 수입이 순수하게 개발협력 활동에 사용되지 않고 유용 또는 전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발협력 NGO들은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의거하여 회계감사를 받고 이를 공익법인 공시보고를 통하여 재정 투명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개발협력 NGO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 때문에 기존 후원자 및 잠재 후원자들의 신뢰도를 하락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랑의 열매로 널리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정부 주도의 이웃돕기 성금을 관리하던 것을 민간으로 이관하기 위해 1998년 설립되었다. 하지만 다른 민간 법인과는 달리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라는 개별 법률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관례에 따라 대통령 영부인이 명예회장 직을 맡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이 공금을 유용하고 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김나나 2010). 이는 개발협력 NGO의 성장과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모금과 후원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옥스팜(Oxfam)은 1942년 영국에서 시작한 개발협력 NGO로서 21개 지부가 연합체(confederation)을 구성하여 현재 전 세계 약 70여 개국에서 활동 중에 있으며, 한국에는 2014년에 옥스팜코리아를 설립하여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 중에 있다. 옥스팜은 개발협력 사업에서 특히 인권에 기반한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수행하는 선도적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옥스팜은 개발협력 사업 내에서 인권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에 알려진 성 추문 사건으로 인하여 사업의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BBC News 2018). 옥스팜은 2010년 아이티 지진 복구를 위한 사업 수행 중 위력에 의한 성 착취 사건이 드러나면서 옥스팜 영국지부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다(Oxfam International 2018). 비록 국내 개발협력 NGO에서 발생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낮아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국내 개발협력 NGO의 도덕적 해이 사례로는 2018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실태가 알려진 바 있다.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에서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내에 부당 채용이나 성희롱 등 인사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사옥 매입을 위한 대출 과정에서 특정인에게 특혜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사무총장이 해외 출장 시 항상 항공기 1등석을 고수하는 등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김지윤 2018). 이러한 문제들은 법적으로 유죄 처분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로 인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신뢰도가 하락하였음은 연간 수입액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연간 수입을 보면 2018년도에 약 1,452억 원을 보였는데 2019년에 이르러 약 1,371억 원으로 연 수입 성장률 -6.0%를 기록하였다. 2020년에는 연 수입 약 1,350억 원을 보이며 2019년에 비해 -1.5% 만큼의 감소세를 보이여 2년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냈다. 이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대한 개인 후원자들의 신뢰도가 하락함에 따라 기존 후원자들이 지속적으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발협력 NGO에서 도덕적 해이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잠재 후원자들은 새롭게 후원을 망설이고 기존 후원자들은 후원을 중단하게 되어, 개발협력 NGO의 성장에 불확실성이 더욱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록 많은 NGO들이 재정적으로 투명하게 운영이 되고 있을지라도 몇몇 개별 기관이나 소속 구성원들의 일탈로 인하여 개발협력 분야 전반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가계 경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경제 활동의 위축이 개발협력 NGO들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가계 경제 측면에서 보면 2020년을 기점으로 해외 주요국에서부터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증가 추세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3분기에 이르러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171.3%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게 되었다(정지수 2021). 코로나19로 인하여 가계 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증가하였는데,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하여 전반적인 가계 경제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김광수 2021).

기부 활동의 경우 개인의 경제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과 가정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 개인의 기부 금액도 함께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과 그에 따른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하여 잠재 후원자들의 개발협력 NGO로의 후원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의 자발적 기부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경향이 있다. 개인의 개발협력 NGO 등에 대한 후원 비중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법인의 비자발전 준조세 성격의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높다는 점에서 기부문화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임동원 2019).

2020년 초부터 국내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이 개발협력 NGO의 성장과 직면한 문제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개선되면 그와 함께 개발협력 NGO 분야도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접어들면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개발협력 NGO들의 연 수입이 전반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발협력 NGO의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5. 한국 개발협력 NGO의 대응

이와 같이 여러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하여 개발협력 NGO의 성장이 정체에 직면한 상황에서 개발협력 NGO들은 현재 이에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으며, 또한 향후 이들이 채택할 수 있는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대외적인 여건이라는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들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한 만큼 이에 따른 적절한 대응은 향후 개발협력 NGO의 장기적인 성장 및 생존에 직결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우선 기관 별 특화된 사업을 발굴하여 선택과 집중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현재 국내 개발협력 NGO들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 제공,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 교육 활동, 역량강화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포괄하는 분야에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개발도상국 수혜자들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해 종합적인 접근을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 측면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도상국 내에서 특정한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전문 상주 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필요한 인력의 양과 질 역시 함께 증가하게 되며, 이는 개발협력 NGO에게 고정 비용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회원 NGO만 140개에 이르는 현 시점에서 모든 개발협력 NGO가 다수의 사업을 실행하는 것은, 개발협력의 대상이 되는 지역 및 개발도상국에도 불필요한 자원이 중복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개발협력 NGO들이 취할 수 있는 다른 전략적 선택으로는 기타 수익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국내 사회복지 사업으로 시작하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NGO의 경우 토지·건물과 같은 부동산 자산과 각종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이용한 수입 확대를 통하여 현재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 또는 법인 기부금으로 얻는 수입 이외에 개발협력 NGO가 얻는 수입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 실정이다. 2020년 기준 한국월드비전의 수입 세부현황을 보면 사업수입 약 2,258억 원 중 보유한 자산을 통해 얻은 수입은 약 33억 원으로 전체 수입 중 1.5%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기념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 역시 총수입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기타 사업의 확장을 통해 현재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방안은 개발협력 NGO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개발협력 NGO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발협력 분야 전반에 걸친 인식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개발협력 NGO의 기본적인 사업 목적은 개발협력 사업이 수행되는 지역의 생활수준 향상이라 할 수 있다. 즉, 사업의 초점이 개발도상국 지역 내 경제 성장에 일차적으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의된 개발협력 NGO 사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지속가능성’, ‘상생’, ‘협력’과 같은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rights-based approach, RBA)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개발협력이 경제 성장이나 발전 부분에 치중하여 국제사회의 인권 규범을 등한시하였다는 비판에 따라 인권과 개발을 연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개발협력 NGO 차원에서는 더 이상 성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사업의 본질이 되는 사업 수혜자들의 권리 향상에 더욱 집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라는 개념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는 기관별, 국가별로 다를 수 있으나, 향후 개발협력 분야 전반에서 권리에 기반한 접근을 통하여 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구정우 & 김대욱 2013). 특히 현재 성장세가 정체되고 여러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국내 개발협력 NGO들에게는 권리에 기반한 접근의 채택 등을 통한 사업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6. 결론

한국 개발협력 NGO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후원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재정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경험하였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성장세가 둔화되어 2020년에 이르러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본문에서 언급한 5개의 국내 개발협력 NGO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국내 개발협력 NGO 전반에 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각 기관에 후원을 하고 있는 개인 및 단체 후원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 반면, 개발협력 NGO는 지속적으로 설립되고 있어 각 NGO들이 기대할 수 있는 모금액이 점차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더하여 몇몇 NGO들의 도덕적 일탈 사건이 발생하고, 코로나19의 확산세가 2020년과 2021년까지 지속되면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가계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후원 증가에 대한 기대 역시 낮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개발협력 NGO들은 개발협력 사업 방향에 관한 중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개발협력 NGO 의 사업 방향과 기관 내 인력 구성을 보다 세분화·전문화하여 다른 기관들과 차별성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NGO의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개발협력의 파트너 국가 또는 마을 단위의 커뮤니티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개발협력 NGO부터 먼저 지속 가능한 운영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국내 개발협력 NGO들은 권리에 기반한 접근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형태로 인식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국내 개발협력 NGO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닌, 향후 개발협력 분야 전반에 걸쳐 요구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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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 6]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다자주의와 중견국 외교

주재우 (경희대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들어가면서

미중 전략경쟁 시대는 중견국이 국제정치 및 국제관계에서 가지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중견국의 위상과 위치가 미중 양국의 경쟁 구도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국제적 기능과 역할을 망각하는 것 같이 보인다. 더 나아가 스스로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엄두도 못 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이 양국의 경쟁관계를 견인할지에 대한 결과를 넉 놓고 기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한 때 주장하던 자신의 소임과 자부하던 역할은 온데 간 곳 없어 보인다.

이의 결정적 시대적 계기를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국제적 사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첫째, 코로나 사태다. 코로나 사태가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정의되면서 전 인류의 재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계 차원에서 인류의 보건과 건강 문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속수무책으로 보였다. 대신 미중 강대국의 주장과 요구에 동요되면서 팬데믹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특정 강대국의 주장과 입장에 동조하는 경사되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국제기구로서의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둘째, 미중 양국의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무역 분쟁이다. 중국이 미국의 첨단과학기술을 불법 탈취하고 이의 수단으로 컴퓨터 및 서버의 해킹 뿐 아니라 ‘스마트 파워’에까지 의존한다는 미국의 주장으로 양국의 무역 분쟁 및 갈등의 영역이 확산되었다. 이를 중재해야하는 세계무역기구(WTO)는 존재감이 없어 보였다. 물론 WTO의 운용체계가 제소가 있어야 작동되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 간의 분쟁과 갈등 사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력과 권리를 부여받지 않은 사실로 WTO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겠다. 중견국들은 이 과정에서 고유의 제재 조치 등과 같은 수단을 선호하는 강대국에게 이를 철회하고 중재기관에 정식 상정하는 것을 설득할 수 없는 무력함을 보였다.

셋째,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심화에 대한 대비책 마련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기술표준화 마련과 사이버 질서 구축관련 미중 양국이 아직은 대화를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기존의 서구세계도 특히 사이버 질서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현재 4차 산업과 5G 영역에서 새로운 구도를 ‘뜻을 같이 하는 국가(like-minded states)’와 함께 설계하려는 시도를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시 중견국들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중국을 의식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려는 취지와 목적에서 추구되는 다자안보협의체의 구축에서도 중견국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인태전략’과 ‘쿼드’를 미국이 주도하나 이른바 ‘중견국’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협의체의 대상을 의심하면서 협의체의 발전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학 이론에서 주장하는 중견국의 역할과 기능을 중견국이 스스로 유기하는 처사로 평가할 수 있다.

상기한 사례에서 보면 중견국의 존재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위험에 처했다. 중견국이 세계와 지역 차원에서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견국의 외교 역량과 역할, 기능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미중 양국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손익계산에 집중한 결과다. 중견국 외교가 다자체제에서 세계 또는 지역의 이익을 위한 이타적이고 균형과 견제를 위한 외교적 역량과 영향력을 발휘해야 제 기능과 책임 및 의무를 다한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의 전략경쟁관계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이를 냉전시대의 미소 패권경쟁과 비교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관계가 생성된 연유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행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취하는 징벌 조치의 목적과 의미를 조망하면서 우리의 정책에 시사하는 바를 도출하면서 결론을 맺을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국제정치학적 의미

작금의 세계를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세계라고 한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는 그럼 과거 미국 중심의 두 개 시대, 즉 냉전과 탈냉전시대와 다른가? 다르다면, 중견국 외교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다른 면모를 갖춰야하는가? 아니면, 냉전시기 때의 것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가? 미중 전략경쟁 시대가 냉전시기 때와 같이 양분화 된 국제체제로의 회귀와 가치·이념의 경쟁구도의 복원을 의미하면 중견국 외교도 이 시대의 것으로의 복원을 의미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속성과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의 발단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의 수교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채택 이후 공식적으로 교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1983년 이후 미국의 대 중국 만성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은 적자에도 불구하고 포용(engagement)정책을 견지하면 중국 사회가 변할 것을 기대했다. 중국 사회가 더 개방되고 제도 개혁이 더 심화되면 중국 시장에서 미국의 경제이익은 물론 무역의 경상수지구조도 개선될 것을 기대했다.

오늘날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의 기대에 역행하고 있다. 미국의 실망은 지난 6-7월 사이에 전해진 미국의 중국 관련 부처의 수장 연설문을 통해 알려졌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관세인상을 시작으로 과학기술 탈취와 편취 등에 대한 중국 IT관련 기업에 대한 제재를 이어나갔다. 코로나 사태의 중국 책임론을 공표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 중국 압박 정책을 바이든 신정부도 수용할 태세다.

미국의 대 중국 압박정책의 핵심목표는 중국공산당의 행위 변화를 실현하는데 있다. 특히 시진핑이 2013년 중국공산당의 권좌에 등극한 후 미중관계를 가치와 이념의 투쟁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시진핑은 당시 당간부회의 석상에서 “자본주의는 소멸할 것이며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다(资本主义最终消亡、社会主义最终胜利)”라고 호언했다(中国共产党新闻, 2019). 이를 위해 그는 19차 당대회 보고서에서 중국이 종합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 면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어야하는 사명을 위해 사회주의시스템의 강화를 촉구했다(习近平, 2017).

시진핑의 중국이 미국을 더욱 경계하게 만든 계기는 러시아와의 군사합동훈련이었다. 비록 2007년에 중러 양국의 연합군사훈련이 ‘평화사명’의 이름으로 공식화되었으나 2005년의 첫 비공식 훈련이 도화선이었다. 중국의 연근해와 ‘중해(中海, 중국의 9단선과 1도련선 내의 해역 의미)’방어 강화를 위해 시작된 중러 군사훈련이 미국의 역내 전략이익을 견제하기 위함으로 인지되었다. 미국의 ‘항행의 자유’문제를 수면위로 부상시킨 사건이었다.

또 다른 계기는 역시 코로나사태였다. 2019년 12월 코로나가 발생하자 2020년 1월 1일 트럼프 내각은 백악관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한다. 이후 트럼프의 전화부터 다양한 경로까지 수차례에 걸쳐 중국에 역학조사협력을 요청했다. 2월말까지 중국은 묵묵부답이었다. WHO의 합동조사단에 더 많은 미국인 전문가를 포함시키자는 트럼프의 요구도 거절했다. 대신 단 한 명만 허용할 것을 백악관 측에 전했다. 미국이 초당적으로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진핑의 중국에 징벌 조치를 가하며 강압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트럼프의 기본적 외교사고가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타협하는 ‘대륙 중심의 현실주의(Continental Realism)’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세계질서의 비전은 전통적으로 지경학의 전략계산의 지배를 받았다. 이의 예의적인 시기가 닉슨(1969-1974)과 트럼프 정부 시기다(Walter, 2001).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기술탈취사건을 다자기구를 통해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전담기관의 부재와 빠른 결과를 원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위배 명분으로 WTO에 기소도 가능하지만 재선을 목전에 둔 그에게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화웨이 제재에 대한 미국의 명분은 탈세였다. 현재 국제사회에 사이버안보질서 및 수반 제도가 부존한 상황에서 미국은 국내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스파이 등과 같은 간첩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방첩 명분에서 가능하지만 외교적 후과 또한 무시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미 코로나 신약개발 관련 중국의 정보 탈취 혐의로 주 휴스턴 중국영사관의 폐쇄가 예정되었기에 더 이상의 외교적 갈등은 불필요했다.

또한 미국이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가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기반과 근간을 흔든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IT, AI, 5G, Big Data 등의 기술을 악용하는 노하우를 제3세계국가에 전수하기 때문이다. 즉, 제3세계 국가 지도자들이 첨단과학기술을 장기집권과 사회 통제 및 감시의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인류 보편적 가치는 물론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법행위를 부축이고 있다(Newt, 2019).

미중 전략경쟁 시대는 신냉전인가(주재우, 2020)

언론지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관계를 패권경쟁으로 묘사하면서 새로운 냉전 시대(‘신냉전’)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이런 언론의 주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미중의 전략적 경쟁관계가 패권경쟁으로 향하는지는 국제정치학계의 검증이 필요하다. 국제정치학계가 언론의 표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런 과오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중관계를 ‘세력전이(power transition)’이라는 프레임에서 이해하려는 데 있다(北京: 人民出版社, 2017). 세력전이 이론은 패권국과 신흥 부상 세력 간의 국력의 우위가 교차되는 과정에서 권력의 권좌를 유지하려는 패권국과 이를 대체하려는 신흥 세력 간에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신흥 세력의 도전 동력은 기존의 국제질서의 지배구조와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패권 야욕에 의해 구동된다. 이런 야욕의 대부분이 외교적으로 평화롭게 해결되기가 만무하기에 전쟁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 세력전이론의 핵심 논쟁이다.

경제 규모나 군사력 등에서 같이 하드파워 측면에서 미중 간에 세력전이 면모가 나타날 수 있다. 이의 중간과정을 전략적 경쟁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경쟁관계가 패권경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패권을 위한 경쟁은 기존의 국제질서의 지배구조 내에서 권력 교체를 통해 지배국의 위치에 오르는 것을 지상최고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권경쟁은 신흥부상국이 기존의 패권국을 대처해 국제질서의 ‘룰 메이커(rule-maker)’ 지위와 위상을 석권할 의지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관계를 패권경쟁의 성질의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패권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는 확고하나 중국이 이를 대처하겠다는 결의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반패권’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며 자신도 패권을 노리지 않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미중의 전략경쟁관계는 양국이 상이한 가치와 이념에 근거하여 각자의 국익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 간의 패권경쟁에 비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소 양국은 자신의 가치와 이념으로 세력 확장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패권 야욕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의 가치와 이념으로 세계를 통일하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대신 미중의 전략경쟁관계의 속성은 일방의 행위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해 취한 징벌적 조치에 중국이 대응하는 식이다.

따라서 미중의 전략경쟁관계는 통상적인 개념에서의 경쟁관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징벌적 조치와 대응 과정은 ‘나선형 효과(spiral effect)’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냉전시대의 군비경쟁과 같이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안보 딜레마의 발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게임의 룰’, 즉 법규, 규범과 제도의 부존 때문이다.

50년대 후반 이후 미소 양국이 연쇄적으로 체결한 핵무기 관련 일련의 조약은 핵실험에 관한 것이었다. 70년대 초에나 전략 핵무기의 생산과 배치를 제한하는 합의서(SALT, ABM) 정도가 전부였다. 이들이 안보 딜레마를 방지할 수 있는 능력과 효력은 없었다. 이의 검증 절차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제도, 법, 규범 등을 갖추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의 잠재적 무대는 질서의 기초가 부재한 사이버와 우주 공간이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관계가 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새로운 냉전의 시작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해 징벌 조치를 취하면 중국이 맞대응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숨바꼭질’ 놀이 중이다.

미중 전략경쟁관계의 본질과 속성이 패권경쟁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냉전시대의 미소 패권경쟁의 것과 비교하면 <표-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1> 냉전 패권경쟁과 미중 전략경쟁관계(신냉전) 본질과 속성 비교

냉전 미중 전략경쟁관계(신냉전)
목표 상대진영의 세력 확장과 세계대전 발발 억제 상이한 체제와 제도 정권의 행위 변화
목적 진영 가치와 이념의 전 지구적 확산 및 공고화 세계 자유주의 국제질서 및 미국의 리더십 수호
대상 소련 및 동구권 위성국가 중국공산당
체제 양극체제 단극체제
공간개념 대륙 대륙, 바다, 사이버, 우주
전략 봉쇄(containment) 정책

집단안보, 양자동맹

동맹과 ‘뜻을 같이하는 나라(like-minded states) 연대(coalition)

동맹과 동맹 간의 동맹

(intra-alliance)

동맹의 기여와 역할 극대화

전략 사고의 기반 지정학, 지경학 지리학, 지리전략
전술 군비경쟁 가치 기반 다자 협력과 압박
공통점 가치와 이념 지배의 외교적 사고

(출처: 주재우, “미중전략경쟁관계는 신냉전도, 패권경쟁도 아니다”, 중국전문가포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0).

 

상기한 표에서 나타나듯, 냉전시대의 미소 패권경쟁의 목표, 목적, 대상과 공간 무대는 오늘날 미중 전략경쟁관계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이 중국의 대외적 행위의 변화를 추구하는 의미는 중국의 대외정책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기대하는 결과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작금에 미국이 중국에 취한 징벌 조치가 이를 증명한다. 이런 압박이 결국 중국의 대외정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행위 변화를 유인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징벌 조치가 양자 차원에 국한된 것이다. 이후 바이든 정부에서는 이를 다자 차원으로 확장시키려는 것이 미국의 전략 구상이다.

미국이 다자 협력으로 전략과 전술을 전환시킬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자적인 여력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냉전 초기의 미국은 세계 GDP의 42%를 차지해 공공재를 잠재적 동맹국의 민주진여의 참여와 공산진영의 국가 이탈의 유도하는데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력이 쇠락하면서 탈냉전시기부터 미국의 전략 변화는 불가피했다. 이의 방증이 1990년의 걸프전이었다. 이라크를 상대한 작은 국지전이었지만 미국이 독자적으로 전쟁비용을 감당하기에 역부족했다. 이에 동맹과 우방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이 사실로 드러난 계기였다.

이후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international liberal order)와 리더십을 수호하는데 동맹국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불가결해졌다. 동맹과 우방국의 더 큰 공헌과 역할을 유발하기 위해 미국은 공공재가 아닌 가치와 이념에 어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다자주의와 다자협력이 미국 외교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게 되고,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이의 대표적인 결과가 미국의 해외주둔군의 재배치(Global Posture Review)다. 이후 이의 핵심전략인 전략적 유동성, 전방배치와 군사혁신 등이 새로이 등장했다. 동아시아 지역차원에서는 중국의 ‘원양 해군(Blue Water Navy)’사업이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면서 이에 대한 방어대비태세가 강화되어야했다. 그 결과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이른바 ‘가이드라인’의 두 차례 수정(1997, 2015년)으로 이어졌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중견국의 외교무대: 미국의 ‘동상이몽’ 다자주의(주재우, 2021)

중견국의 정의는 다양하다. 현실주의, 자유주의 등의 관점에 따라 개념도 다르다. 그리고 역학구조 내에서 중견국의 위치에 따라 그 정의도 달라진다. 개념이 어떠한 관점에서 설정되느냐에 따라 중견국의 정의도 달라진다(Adam, 1999). 그럼에도 이들 다른 학파들이 기대하는 중견국의 역할과 기능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자주의에 입각하여 외교적 역량과 영향력을 이타적으로 발휘함으로써 국제분쟁과 갈등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중견국의 무대는 다자기구나 다자협의(협력)체다. 그런데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로 중견국의 주요 활동 기반인 다자주의가 변하고 있다(Eduard, 2003).

이런 변화와 연계하여 중견국의 위상, 역할과 기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미중 전략적 경쟁 시대에 중견국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전략이 존재했는가? 중견국이 생존하기 위해 전략은 필요한 것인가? 국가가 자신의 이익과 생존만 지켜내는데 있어 중견국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중견국으로서 국익과 주권을 수호하는데 중견국만의 차별화된 전략은 무엇이며, 필요한가?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견국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각주 다자주의와 다자협력을 강조하면서 중견국에게는 두 개의 새로운 다자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으로 기존의 다자협의체 및 협력체의 존재마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세기간 때부터 전 행정부가 다자주의와 다자협의체를 무시한 정책을 폐기한다는 결의를 비췄다. 이의 일환으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고, 이란 핵합의를 재생시키고, WTO과 WHO 등의 다자기구를 더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지역전략 차원에서 미국의 전략이익과 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자협력을 강화할 의사를 밝혔다.

중국 역시 미국과 무역 분쟁과 갈등을 겪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응하는 방식이 미국 중심의 이기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임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정책이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그 원인을 미국 우선주의로 설명한다. 미국의 우선주의가 강조되면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전략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중국은 다자주의에 입각하여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국제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입장을 견지할 것을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장하는 다자주의와 다자협력의 의미를 보면, 이들은 두 개의 새로운 다자무대를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이를 간파하지 못한 우리는 중국과의 회담 자리에서 중국의 다자주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 때문에 우리 정부의 발언 취지가 중국에 경사된 것으로 오해를 받고 왜곡되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다자주의를 미 외교 의제의 우선순위에 다시 올린 것이다. 그는 유세기간 때부터 전 행정부가 다자주의와 다자협의체를 무시한 정책을 폐기한다는 결의를 비췄다. 이의 일환으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고, 이란 핵합의를 재생시키고, WTO과 WHO 등의 다자기구를 더 적극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동시에 지역전략 차원에서 미국의 전략이익과 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자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 역시 미국과 무역 분쟁과 갈등을 겪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응하는 방식이 미국 중심의 이기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임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정책이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그 원인을 ‘미국 우선주의’를 인용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강조되면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전략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중국은 다자주의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국제분쟁과 갈등을 해결해야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선하게 변호한다.

두 나라의 주장에서 교집합이 형성된다. 다자주의와 다자협력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다자주의의 개념의 내용과 목적은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각기 다른 목표를 향해 다자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중국의 다자주의는 비록 짧으나 나름의 역사와 독특한 특징을 가졌다. 중국이 주장하는 다자주의는 중국만의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첫째, 중국의 다자주의에 대한 기본 인식이 다르다. 따라서 중국이 다자주의를 이해하는 논리마저 서구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오늘날의 국제체계와 질서의 핵심 이념을 다자주의로 보고 있다. 다자주의의 흥망성쇠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반해 서구의 통념은 다자주의는 인류 보편적 가치,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주의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자주의를 수단이 아닌 오늘날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이념’으로 간주한다.

이런 핵심 이념의 주체를 중국은 유엔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진정한 다자주의는 유엔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논리다. 즉, 유엔을 떠나서 다자주의를 논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유엔을 국제체제의 핵심 주체로 인식하는 이유다. 이런 국제체제를 유지하는 기초가 국제질서인데 중국은 그 국제질서의 기초가 국제법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국제법에 기초하는 국제질서의 수호를 주장한다. 이의 수단으로 각국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즉, 모든 나라가 앞장서서 공정하게 법치를 엄중히 실천하고 책임을 지는 행동에 집중해야한다 것을 행동 규범으로 제시한다(“秉持放包容心态”, 2021).

둘째, 중국의 다자주의는 미국을 배제한다. 중국이 주창한 다자협의체의 출범에 미국을 공식적으로 먼저 초청한 적이 없다. 이의 비근한 예로 상해협력기구(SCO, 1996년 출범), 보아오 포럼(2001), 한중일 정상회의(2008),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2014)’ 정상회의와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2017)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주의는 주변지역이다. 중국의 다자협력의 지리적 범위가 대부분 중국 주변지역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의미다. 물론 원거리 국가와도 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이의 가장 비근한 예로, 중국-아프리카 포럼(China-Africa Forum), 중국-유럽 간에 운영되는 다양한 포럼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실질적으로 다자간의 협력을 주도하는 개체는 지역 차원의 것으로 그 이유를 중국의 전략 목표에서 볼 수 있다.

넷째, 상기한 두 개의 특징에서 보면, 중국의 전략적 목적과 의도를 주변주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척하려는 전략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건국 이래 일관되게 추구해온 장기적인 국정 최대의 목표 중 하나다. 따라서 이 목표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지역에 존재하는 기존의 미국 세력 척결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중국 주변지역에 미국의 세력 확장이나 새로운 진입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은 ‘개방(open)적이며 포용(inclusive)적이고 법적 구속력(not legally-binding)이 없는 느슨한(loose)’한 다자주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와 정반대되는 다자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미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은 특히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다자주의에 의미를 두지 않는 관행을 보여 왔다.

미국은 법치주의를 견지하는 나라로서 국제기구가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않으면 별 흥미를 안 보였다. 그래서 비록 UN 산하기관이나 수많은 조약에 미 정부가 가입했지만 의회가 이를 비준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기본 조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특히 지역다자주의를 중국의 원대한 ‘중국몽(중국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 수단으로 인지한다. 즉, 최소한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중화질서의 수립을 구현하려는 목표에 발판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계산이 복선에 깔려 있다. 이 경우 ‘같은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미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배척하는데 지역다자주의의 전략의 초점이 맞춰져야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다자주의 전략에 대응하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핵심 내용이다. 이전까지 미국의 다자주의가 더 개방적이며 포용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기구가 되었든 지역 다자협의체가 되었든, 미국은 최대한 모든 잠재적 구성원을 포괄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설립한 유엔과 그 산하기관, 그리고 WTO에서부터 지역차원에서 추구되었던 수많은 지역개발은행, APEC 등이 이의 방증이다.

그러나 미국의 다자주의가 배타적으로 중국에게 느껴진 이유도 있다. 미국이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데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미국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을 신청자격요건으로 제시한다. 즉,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시장경제 등 자유 국제질서의 가치와 이념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 나라는 언제든지 환영했다. 반면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다자협의체와 다자기구에 대해서는 그 지배구조가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참여하는 것이 미국의 가입 원칙으로 오래 견지되어왔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개발은행들이었다. 지역 국가의 주도로 설립된 이들 은행들의 지배구조가 상기한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미국의 가입도 결정되었다. 이들 중 미국이 가장 늦게 가입한 지역개발은행은 아프리카개발은행으로 약 20년이 걸렸다.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후원(後園)’으로 여기지만 라틴아메리카개발은행의 가입도 10년 후에 이뤄졌다. 가장 빠르게 가입한 은행은 유럽개발은행(EBRD)였다. 이 역시 러시아에 대한 차관 및 지원금 문제를 놓고 EU와 협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은 은행 설립 6개월 후에 가입했다.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추진하는 다자주의는 그러나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가치와 이념의 공유해야하는 전제조건은 같다. 문제는 이를 중국이 수용하느냐이다. 냉전 때와 같이 가치와 이념이 중국과 대척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중국과의 모든 경쟁과 갈등의 원인이 상이한 가치와 이념, 그리고 중국이 미국과 이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최소한 시진핑 시대에 확고해진데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역시 중국과 비슷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배타적이고 비개방적인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가치와 이념의 공유가 관건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제 ‘누울 자리를 봐가면서 누워야’한다. 다시 말해, 다자주의라고해서 다 같은 다자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의 핵심 다자주의 전략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전략과 ‘쿼드’이다. 미중 전략경쟁시대에서 이들 다자협의체가 중국을 겨냥해서 중국만을 배타한다는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하듯 중국이 자유 국제질서와 보편적 인류가치, 그리고 미국의 가치를 수용하는 입장으로 전환되면 언제든지 환영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대목에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국이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중국을 겨냥한 포위망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추진하는 다자주의는 그러나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가치와 이념의 공유해야하는 전제조건은 같다. 문제는 이를 중국이 수용하느냐이다. 냉전 때와 같이 가치와 이념이 중국과 대척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중국과의 모든 경쟁과 갈등의 원인이 상이한 가치와 이념, 그리고 중국이 미국과 이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최소한 시진핑 시대에 확고해진데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역시 중국과 비슷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배타적이고 비개방적인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가치와 이념의 공유가 관건이 되었다.

나가면서

미국의 대 중국 강압정책으로 미중 양국의 관계가 전략적 경쟁관계의 시대로 진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국의 패권경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면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을 훼손할 목적과 이유에서 미국의 대 중국 징벌 행위가 행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기존의 질서 수호와 향유를 위해 중국의 훼손행위에 대한 미국의 인내가 한계에 달하면서 자행된 결과다. 다시 말해,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행위를 변화할 의지와 의사의 진정성을 입증하면 강압정책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대목이다.

우리는 현재 미중 사이에서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결정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사고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 의지가 관건이다. 여기서 중국이 미국의 징벌 조치에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명목으로 항변하는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근간과 가치를 중국 스스로가 폄훼하고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진정한 다자주의이의 기본적인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는 것이고 이에 기초하여 성립된 제도를 준수하는 것이다. 진정한 다자주의는 이를 이기적으로 악용하는 행위에 징벌 조치는 필요하다. 사전학적 의미에서 다자주의는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가 환영할 만한 외교 전략이자 수단이다. 그러나 미중이 경쟁하는 다자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의 존재를 우리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향하는 목표와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체성으로 미중 전략적 경쟁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양분화를 방지해야한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한 동안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국익은 우리가 견지하는 가치와 이념의 수호 없이 보장되지 않는 사실을 유념해야한다. 이에 기반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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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 5] 사이버 안보와 다층적 당사자주의: 사이버 영역에서의 처벌을 위한 대안적 접근법

강준모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3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초록

언택트 사회가 도래하며 사이버 위협은 점차 증대하고 있지만, 그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흡하다. 사이버 위협은 사이버 영역이 가진 불확실성에 기인한 특수성으로 인해 전통적 군사안보위협과 다르다. 이 특수성으로 인해 방어 위주 전략은 공격 우위의 상황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방어가 아닌 감시와 처벌에 의한 공격 억지가 사이버 안보의 문제의 해결책임을 제시한다. 먼저, 사이버 위협에 대한 단일국가의 대응으로는 감시와 처벌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국가 중심적인 다자주의 접근으로는 위협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어 국가 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다층적 당사자주의’ 접근의 효과성에 대해 고찰한다. 비국가적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 유럽의 사이버 범죄 방지 협약 사례를 통해, 다층적 당사자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다자주의 접근에서 벗어나, 국가 행위자들이 비국가 행위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와 적실성있는 안보망 구축을 위해 행위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키워드 : 사이버 안보, 비국가 행위자, 처벌을 통한 공격 억지, 다층적 당사자주의, 민관협력(PPPs)

 

서론

COVID-19(이하 코로나)는 전 지구적인 WHO가 선언한 범유행전염병(Pandemic)으로(WHO, 2020), 전 지구적으로 유래가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에 의해 직접 전파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끔 하는 행동양식을 강요하였다. ‘되도록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한다.’는 단순한 행동양식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변화를 초래하였다. ‘언택트’ 생활은 곧 사이버영역의 역할과 중요성이 확대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이버 영역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질수록 사이버 위협 역시 증가한다. 국가와 기업 조직들은 국민,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활동의 대부분을 사이버 영역으로 이관했고 이로 인해 사이버 공격의 위험성을 높였다. 민관의 핵심 기능들이 중단 없이 운영되도록 하면서 새로운 원격 작업의 관행을 확보하여야 한다. 또한 사이버 영역은 군사 영역과도 연결되어 실질적인 공격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사이버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사이버 영역은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제5의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상황의 불확실성을 이용하는 불특정, 불확실한 공격자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방법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KPMG, 2020)

하지만 사이버 공격의 문제로 인해 심화될 수 있는 안보 위기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흡하다. 사이버 영역 그 자체가 가지는 특성과 사이버 공격의 특성은 기존의 ‘물리적 공간’의 특성과 전통 안보에서의 위협과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이질성을 다양한 차원의 ‘불확실성’으로 규정하고, 전통 안보에서의 위협, 공격 개념들과의 차이를 조망하고자 한다. 사이버 안보에 있어서 불확실성은 공격 식별을 어렵게 하여 공격에 대한 직접적 처벌의 가능성을 낮춘다. 이 때문에 기존 연구는 사이버 공격 억지를 위해 처벌보다 방어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본 연구는 방어 역량 강화가 사이버 공격의 불확실한 특징과 공격 우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근본적인 공격 억지를 하기 위해선 방어가 아닌 처벌에 기반한 사이버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일 국가는 사이버 공격의 불확실한 특징으로 인해 식별과 처벌을 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층적 당사자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사이버 안보 측면에서 단일 국가 차원의 대응에 비해 다자주의 접근이 보다 유리함을 보인다. 다자 협력을 통해 사이버 공격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처벌에 대한 합의를 만들 수 있다. 다음으로, 다자주의적 접근 논의가 전통 안보 영역과 같이 국가 중심으로 진행될 때 발생할 수 있는 한계를 언급한다. 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국가 행위자 포섭이 보다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유럽의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을 예시로, 보다 수평적인 다자주의 접근법의 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의 한계를 밝히고, 이를 보완하는 ‘다층적 당사자주의’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상황에서 비추어 한국의 사이버 안보 국가 전략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사이버 안보 및 다자주의 접근에 대한 기존 연구 분석

사이버 안보의 성격 및 방어적 접근법

사이버 공격이란 해킹, 컴퓨터 바이러스, 서비스거부, 전자기파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하여 정보통신기기, 정보통신망 또는 이와 관련된 정보시스템을 침입ㆍ교란ㆍ마비ㆍ파괴하거나 정보를 위조ㆍ변조ㆍ훼손ㆍ절취하는 행위 및 그와 관련된 위협을 말한다(국가정보원, 2020). 사이버 공격에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한 선행 연구들이 진행되었으며(김길동, 2017; 김상배, 2015; 김상배, 2018; 김상배 등, 2019; 김종호, 2016; 라광현, 윤혜성, 2019; 민병원, 2017; 오명호 등, 2016) 이를 통해 핵 억지와 비견되는 사이버 억지라는 주장도 나왔다(백상미, 2018; 이대성, 주성빈, 2016; 장노순, 한인택, 2013). 하지만 사이버 안보는 영역적 특성과 행위·행위자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전통 안보와 구분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이버 안보는 물리적이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사이버 영역은 인터넷, 통신 네트워크 등 정보·기술 기반으로 한 정보환경의 영역이다.(오명호 등, 2016) 사이버 영역은 물리적 영역과 다르게 가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정학적 제약을 적고 국경이 명확하지 않다. 사이버 영역은 아무리 멀리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러한 요소에 대해서 김상배(2015)는 사이버 안보의 비지정학적 요소라 하며 전통 안보와 구분됨을 강조했다. 또한 사이버 영역에는 뚜렷한 국경이 없기 때문에 국가 주권이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확실하다. 한편 사이버 영역은 물리적 영역에서의 다양한 활동들과 높은 연결성을 가진다. 따라서 사이버 영역에서의 피해는 단순 사이버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영역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2007년 에스토니아는 디도스(DDos)공격으로 인해서 금융, 행정이 마비가 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에 오명호 등(2016)은 사이버 영역을 육해공, 우주에 이어 제5의 전장으로 제시했다. 사이버 영역은 사회 전반에 있어서 높은 연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가상의 공간이라 해도 높은 중요성을 가지며, 비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해 전통 안보와는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

둘째, 사이버 안보는 행위자에 있어서 국가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를 고려해야 하는 특징을 가진다. 국가 대 국가 행위자를 다루는 전통 안보와 달리 사이버 안보는 공격자와 피해자가 비국가 행위자일 수 있다. 사이버 영역에서의 공격은 대표적인 비대칭전력으로, 적은 비용을 가지고 공격을 시행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Arquilla, Ronfeldt, 1996; 2001; Libicki, 2009; 김상배, 2015에서 재인용) 따라서 국가가 아닌 개인이 공격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 안보와 다르다. 사이버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자는 개인, 조직, 국가로 나눌 수 있다. 공격자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사이버 공격을 가할 수 있으나 2000년대 들어 정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공격을 감행하는 ‘어나니머스(Anonymous)’와 같은 핵티비즘(1) 집단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 안보는 행위자의 범위가 불확실하기 때문에(Rattray, Healey, 2011) 보다 광범위한 고려를 요구한다. 또한, 사이버 영역의 공격자는 사이버영역의 비지정학적 요인과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이용해 가상의 공간에 숨어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Matusitz, 2006). 국경을 넘어 일어난 공격에 대해 해당 국가의 협력이 없다면 처벌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식별도 불가능할 수 있다. 사이버 공격의 비대칭성, 사이버 영역의 비지정학적 특징, 복잡성으로 인해서 행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셋째, 사이버 영역에서의 공격 행위 여부는 불확실, 즉 식별이 어렵다. 전통 안보의 영역에서 물리적 공격은 유형(有形)의 수단으로 식별 가능한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사이버 영역에서의 공격은 무형의 존재로 식별 자체가 어렵다. 구체적으로 사이버 공격에서는 정보와 기술이 직접적인 전략 자원으로 사용된다. 공격 대상의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결함인 착취혈을 파악하고 착취혈을 통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사이버 공격은 이뤄진다(김상배, 2018). 이때 방어자는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공격을 당한 것인지, 시스템 설계 상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바로 알지 못한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펼친 올림픽 대회 작전(Operation Olympic Games)에서 이란은 미국의 사이버 공격에 의해 나탄즈 원자력 발전소가 타격을 입었지만 그 원인이 사이버 공격 때문이라고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김길동, 2017). 따라서 사이버 공격은 전통 안보와 달리 공격 행위 자체가 불확실하여 식별에 어려움이 있다.

즉, 사이버 공격의 불확실성은 공격자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하고 예측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방어자들은 복잡한 사이버 공간에 숨은 공격자에 대해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고, 설령 공격자를 특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지정학적 사이버 영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누가 처벌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나이(Nye 2017)는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사이버 안보 영역은 기존의 핵 억지와는 다른 방식의 억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억지(Deterence)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행위로 인한 이득보다 손실이 크다고 믿도록 설득하여 자신이 원치 않는 행위를 상대방이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Schelling, 1970). 예를 들어, 전통 안보의 영역인 핵 억지는 국가 행위자만이 공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감시할 명확한 대상이 있다. 또한 적대국이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적대국에 대해 직접 보복을 하거나 외교적인 방법의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에 대한 처벌도 비교적 명백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김상배(2018)에 의하면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공격주체와 처벌 대상을 명확히 판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처벌의 가능성을 극도로 줄이기 때문에 처벌에 기반한 억지 정책은 효과적이지 않음을 주장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었다.

나이는(Nye 2017)는 방어와 회복탄력성을 통해 사이버 공격 억지가 가능함을 주장했다. 나이(Nye 2017)에 따르면 사이버 안보는 영역의 복잡성과 행위자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처벌에 의한 억지가 이뤄지기 어렵다. 따라서 처벌에 의한 공포의 균형으로 억지가 이뤄지던 핵무기와 달리 사이버 안보의 영역은 방어를 통해 억지를 실현한다. 그는 이에 대해 거부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enial)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방어자가 공격을 당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의해 공격자는 공격으로 얻는 이익이 줄어들고 시간과 비용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공격을 포기하게 된다. 즉, 나이(Nye 2017)는 방어와 회복탄력성을 통해 사이버 영역의 공격이 억지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먼저 나이(Nye, 2017)와 같은 방어적 접근법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방어 역량 강화의 한계

먼저, 사이버 영역은 공격이 방어보다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방어를 통한 억지는 공격을 원초적으로 봉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이는 공수이론(Offense-Defense Theory of War)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저비스(Jervis 1978)은 안보딜레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공수균형과 변별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공수 균형, 즉 공격의 용이성은 기술과 지리에 의해 결정된다. 기술 발전을 통한 기동력의 증가와 이동을 촉진하는 지리적 요소는 공격의 우위를, 반대로 기술 발전을 통한 화력의 증강과 이동을 저해하는 지리적 요소는 방어의 우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공격이 실제로 용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공수 균형을 결정하는 요인이 기술과 지리 외에도 다양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 영역과 비교했을 때, 사이버 영역은 저비스(Jervis 1978)가 제시한 공격이 유리한 요소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유효한 타격을 위해 인원과 장비, 물자의 이동 혹은 첨단 설비가 필요한 물리적 공격 수단과 다르게 사이버 공격은 인터넷과 서버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기동성이 굉장히 빠르고, 방어자가 인지하기 전에 이미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 물리적 공간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닌 만큼 방어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은 존재하기 어렵다. 또한 사이버 공격수단은 공격이 실제로 행해지기 전까지는 공격수단의 존재를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반 에베라(Van Evera 1999)는 이를 바탕으로 공수이론(Offense-Defense Theory of War)를 주장하였다. 반 에베라(Van Evera 1999)는 공격이 용이할 때 전쟁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을 주장하고, 행위자들이 공격에 나서게 되는 상황들에 대해 소개한다. 그 중 사이버 영역에서도 적용되는 행위 동기와 상황으로는 기회주의적 팽창이 있다. 기회주의적 팽창은 공격 시 승산이 높고 비용이 낮을 때 공격 유인이 높게 결정됨을 의미한다. 사이버 영역은 현실의 물리적 공간과 다르게 주권이 미치는 범위가 확실하게 정해지거나 고정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행위자들은 사이버 영역 내에서 자신의 영역 –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충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사이버 영역에서의 공격 비용은 물리적 공간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저렴하다. 승산 역시 상술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굉장히 높다. 사이버 영역에서의 영향력이 정보의 확보와 통제 등 점차 강조되는 전략자원인 만큼, 사이버 공간에서의 팽창은 실제 공격에 나서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격의 부담이 전통 안보에서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 역시 사이버 공간의 공격 우위 논리를 강화한다. 먼저 비용에 측면에서, 사이버 공격은 물리적 공격에 비해 보다 저렴하다. 전통 안보에서 공격은 물리적인 전투를 포함한다. 이는 인력과 물자, 자본을 급격히 소모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사이버 공격은 이와 같은 자원의 소모량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투입되는 인력의 사망률이 극도로 적으며, 이는 공격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편, 사이버 공격은 물리적 공격에 비해 사후 책임 부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전통 안보의 물리적 공격은 확실하게 공격자와 그 행위를 식별할 수 있다. 국가 행위자의 경우, 국제 사회의 규범으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시점에서 ‘전쟁광’과 같은 이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리적 공격을 시행한 비국가 행위자에 대해서도 이를 합당한 방식으로 사후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격은 상술하였듯 행위자와 행위 여부가 모두 불확실하다. 공격자의 식별이 어렵다는 것은 곧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덧붙여, 공격자가 방어자에 대해 정보의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책임 소재를 회피하기 더욱 수월할 수 있다.

즉, 사이버 영역에서는 (1) 물리적 공간에 비해 공격력 확보가 용이하고 (2) 공격 수단 및 공격 준비 과정에 대해 물리적 영역보다 더 불확실하며 (3) 공격 부담이 물리적 영역보다 적어 공격을 선택하기 더욱 쉽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방어자가 방어 능력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공격우위의 현상이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격을 억지하지 못한다. 이는 곧 방어력 향상을 통한 억지 정책의 비효율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상술한 특징 때문에, 사이버 공격에 대한 방어를 통한 억지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특히 투입된 비용 및 자원에 비교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이익 – 안보 효능감 –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공격 유인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행위자들은 보다 의도의 불확실함을 더 걱정하게 된다. 그 결과 방어 역량 확보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물론 ‘적정한 방어 수준’ 은 물리적 공간에서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안보딜레마를 야기한다. 하지만, 사이버 영역에서 이 방어 수준은 물리적 공간보다 더 불확실하다. 공격행위의 주체가 국가, 혹은 국내의 반국가 무장세력 뿐으로 한정되는 전통 안보와 다르게 사이버 안보의 공격 행위는 상술한 집단과 개인, 심지어 비인간행위자까지 확대되기 때문이다. 전통 안보는 인접국의 군사력과 지리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정학적 판단을 기반으로 방어 전력을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격은 가능한 잠정적 행위자가 너무 많고 그 존재의 확인이 공격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특정 부분에 방어 역량을 집중할 수 없고 따라서 전방위적인 방어가 요구된다.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국가기관 뿐 아니라 민관 기관, 심지어 개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어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대회 작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해당 행위가 발생하였는지 확인이 되기 전 까지는 공격을 식별할 수 없다. 이는 곧 존재, 공격자, 공격 대상 모두 불확실함을 의미하고, 따라서 방어에 대한 투자가 과도해짐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격은 개인 메일, 클라우드, 오픈소스, 인공지능, POS 기기와 원격 제어 프로그램 등 다양한 경로로 발전해오고 있고, 방어자가 해당 경로에 대한 방어 역량을 확충한다면 새로운 경로를 이용하거나 기존 방식을 비트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금융보안원, 2020). 이에 국가들은 사이버 안보 예산을 점차 늘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위협이나 개별 기업과 개인에 대한 국지적인 공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따라서 사이버 안보에 있어서 방어에만 의존한 방식은 공격을 억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존의 국가 행위자들은 방어 역량을 강화함과 동시에 처벌 및 감시와 같은 적극적인 공격 억지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나이(Nye)의 주장대로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처벌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사이버 영역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공격 행위·행위자 식별의 어려움으로 판단하였다. 불확실성은 행위 식별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의 처벌 주체를 확정하기 어려워 자칫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먼저 중국, 러시아 등 기존의 단일 국가 행위자들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단일국가 차원의 처벌의 적실성과 가능성에 대해 분석한 후, 그 한계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단일 국가 대응의 한계 : 처벌 불가능

단일국가 대응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격자와 처벌자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우선, 확실하게 규명이 가능한 국내 행위자가 공격을 실행한 경우, 이는 국내법에 의거해 국가 내의 처벌이 가능하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소규모 해킹이 이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특정 국가가 공격을 실행한 경우, 공격을 당한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이를 비난(blaming)해서 공격자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양자 관계에서 무역 등의 이슈를 연계함으로 보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들을 제외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우는 실질적인 처벌이 매우 어렵다. 실질적인 처벌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이버 영역에서는 불확실성에 의해 전통 안보 영역에 비해 공격 행위자의 범위가 증가하여 공격 식별에 대한 국가의 부담이 증가한다. 사이버 영역에서는 비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인접한 행위자가 아니더라도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격이 국가 행위자에 의해 진행되는 전통 안보에 비해 사이버 영역에서는 비국가 행위자의 공격에 대한 식별도 필요하다. 이렇듯 공격의 범위가 넓어지며 이에 대한 처벌은 더욱 어려워진다. 처벌의 전제는 처벌 대상의 특정이기 때문이다. 처벌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면, 처벌은 불가능하다. 한편, 처벌 대상이 ‘어나니머스(Anonymous)’와 같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집단인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특정할 수 있는 대상이 인터넷 상에서 만난 다국적 개인들의 집합인 경우, 누가, 어떤 근거로 이들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이들의 실체가 밝혀진다고 한다면, 현행 국제법 상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국가와 기업 등이 이들의 기소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별 행위자의 출신 국가가 판결하거나 국제사법위원회 등 국제 사법 기관의 권고로 마무리된다. 즉, 국가가 유일한 처벌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일 국가의 능력만으로는 사이버 안보 위협과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둘째, 행위자의 특정에 성공하더라도, 사이버 영역의 비지정학적 특징에 기대어 공격을 했을 경우, 누가 처벌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국내 행위자가 타 국가 혹은 타 국가의 국내 행위자를 공격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각 국가가 어떤 법원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문제가 복잡해진다. 형법원칙 중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의 구분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국제법 상에서 범죄인 인도 조약에 의해 해결된다. 문제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쌍방 가벌성(Dual Criminality)의 원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범죄인 인도법 제 6조)(2) 이는 범죄인 인도 청구시 그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 쌍방에서 일정한 기준 이상의 중대한 범죄(한국의 경우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1년이상의 징역에 해당되는 경우)에 국한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이버 공격과 안보가 타국의 비국가 행위자에 의해 자행된 경우, 이에 대한 처벌은 국가들이 해당 공격을 어떻게 처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국가들 사이에 범죄 인도 조약이 체결되었는지에 의해 좌우된다. 2002년 한국에서 발생한 미군 여중생 압사사건을 누가 재판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와 같은 경우가 자칫 외교적 문제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벌을 할 수 있는 행위자가 국가라는 점에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국내법의 규정 차이, 조약에 의존하는 국제법의 특성은 결국 타국에 대한 비국가 행위자의 사이버 위협의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사이버 영역의 비지정학적 특징과 행위자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단일국가 차원에서는 사이버 공격의 식별과 처벌이 불가능하다. 사이버 영역에서 방대한 범위와 차원의 행위자의 공격 행위를 식별하는 것은 단일국가에게 막대한 부담이다. 또한 사이버 공격을 식별한다 하더라도, 사이버 영역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일어난 공격에 대해 처벌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해 국가 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처벌을 통한 적극적 공격 억지는 단일국가만의 대응으로는 불가능하다. 단일 국가 차원의 접근법에 대한 대안으로는 다자주의 접근법이 제시될 수 있다.

 

국가 중심적 다자주의 접근법과 사이버 영역에서의 한계

양자주의에 비해 다자주의가 유리한 이유는 사이버 영역에 특수성에 기인한다. 위협에 대한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은 전통 안보 이론에서의 집단안보 개념과 유사하다. 집단안보론은 행위당사자, 즉 국가들이 분쟁을 평화적으로 다루는데 동의함을 전제로, 국가의 협소한 이익보다 국제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한다. 집단안보론은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이론 중 하나로,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학설 대립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집단안보론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의 근거 중에는 동맹국 사이의 책임 전가(Buck-passing) 문제와 대응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집단안보론의 흠결이 상당수 극복될 수 있다. 앞서 본 연구는 사이버 공간에는 지정학적 제약이 없고, 정보와 기술이 직접적인 전략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특수성은 책임 전가의 문제와 대응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전통 안보 영역의 경우, 공격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방어 및 복구 등에 드는 비용이 인적, 물적 등으로 발생하며, 이러한 자원이 소모적이라는 것에서 행위자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물리적 영역에 비해 소모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연루에 대한 부담이 적다. 오히려 방어 시스템과 역량에 대한 확인 및 점검 등 행위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한편 즉각 대응의 문제는 지정학적 제약에서 벗어나며 해결된다. 사이버 영역에서는 동맹에 대한 공격 발생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방어 지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결정되는 전통 안보에 비해 매우 짧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집단안보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공격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물리적 영역에 비해, 상기한 이유로 집단안보가 작동하기 쉬운 사이버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이는 곧 공격자에 대한 처벌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다자주의적 접근은 집단안보 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공격 억지에도 훨씬 탁월함을 보인다. 코헤인(Keohane 1984)에 따르면, 다자 간 협의를 통해 형성된 국제 제도는 규칙과 기구를 통해 거래비용을 줄이고 국제 협력을 이끌어낸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국제 제도는 정보의 제공과 교환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공통 이익을 파악할 수 있고, 비대칭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 (2) 국제 제도는 합의 내용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조정할 수 있으며, 법적 구속력을 갖는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3) 협의된 내용을 이행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4) 국가 간 거래에 반복성을 부여해, 속임수에 대한 처벌과 이행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 (5) 제도가 충분한 효력을 가진 경우, 제재 등의 방안을 통해 직접적으로 합의 위반을 방지할 수 있다.

이 근거들은 사이버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보다 효율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이 논리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특수성은 사이버 안보에서 사용되는 주 전략 자원이 정보와 기술이라는 것이다. 먼저, 국제 제도로 인해 정보의 제공과 교환이 촉진된다는 것은 곧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이버 영역에서의 전략자원 교환이 빈번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를 통해 ‘사이버 위협에 대한 억지와 처벌, 위협으로부터의 안보 효능감 확보’라는 공통 이익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다자주의적 접근을 통해 제도와 기구가 형성된다면, 이 국제기구는 보다 ‘효율적’으로 사이버 영역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해당 사항에 대한 ‘합의’가 선행된다면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운 위협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중심적인 다자주의가 사이버 영역에서의 공격을 억지하지 못하는 데에는 먼저 ‘불확실성에 기인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사이버 공격에 대한 식별이 어려워, 규범이 확립되어도 처벌의 실행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2) 행위 자체가 불확실하여 공격 여부를 즉각적으로 식별하기 힘들다. (3) 공격이라 판단하더라도 행위자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처벌 대상을 확실히 판단할 수 없다. 즉, 처벌을 할 규칙은 있지만, 공격자를 식별하지 못해 처벌로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사이버 공격에 대해 처벌을 실행하기 위해선 사이버 안보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한다.

한편, 사이버 공격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자원의 확인 및 어느 정도의 공유가 필요하다. 문제는 사이버 영역에서 전략 자원이 되는 ‘정보’가 오남용되기 굉장히 쉽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영역에서의 군사력의 공유와 사이버 영역에서의 정보와 보안체계를 공유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리적인 자원의 공유는 그 공유 내용과 정도에 있어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보와 보안체계의 공유는 자칫 타 국가에게 엄청난 상대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 완전한 협력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가라앉지 않는다. 협력을 약속한 국가 외의 행위자가 공격에 성공한다면, 이들의 집단 안보 체계는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붕괴하게 된다. 이들이 공유하는 정보를 통해 공격자는 2차, 3차 공격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들 사이의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을 더욱 견고하게 해줄 방안이 없다면 국가 중심의 다자주의 협력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고 처벌의 기능을 완전히 수행할 수 없다.

 

다층적 당사자주의 접근을 통한 억지와 처벌의 실현

탈(脫) 다자주의 접근법의 필요조건

물리적 공격의 역사는 국제 정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만큼, 이에 대해 책임 및 처벌 규정이나 방지하기 위한 국제법과 조약들이 갖춰져 있다. 반면 사이버 공격은 현재까지 이러한 국제법적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탈린 매뉴얼의 경우 사이버 공격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나, 구속력 있는 매뉴얼이 아니며 국가 간 의견 차이를 반영하지 못했다(이민효, 2017). 따라서 처벌을 통한 사이버 공격 억지로 나아가기 위해선 다양한 행위자가 규범을 만들고 논의하며 합의를 도출해야한다. 이에 본 연구는 국가 중심적인 표현인 다자주의 개념에서 벗어나,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당사자주의 접근법인 ‘다층적 당사자주의’ 접근법을 제시한다. 다양한 수준의 행위자의 공격을 식별하기 위해선 국가 행위자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가 포함된 당사자주의, 특히 보다 넓은 층위를 포괄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는 국가들 간의 협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즉 비국가 행위자가 협의체 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당사자주의를 통해 사이버 공격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식별이 가능해지고, 처벌을 통한 사이버 공격 억지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비록 아무리 국가들이 사이버 안보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보다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행정 기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그 실효성을 극대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먼저 대부분의 국가 행정 기관은 관료제 모델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평시에는 효율적이지만, 돌발 상황이나 이슈에 있어서는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국가 행위자와 산하 행정 기관이 아무리 사이버 안보에 역량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그 역량을 오롯이 사이버 안보 이슈에 투자하기 어렵다. 국가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상대적 이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국가 행위자를 국가 행위자와 동등하게 다자주의의 틀 안에 포섭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행정기관과 다르게 그 역량을 완전히 사이버 안보에 투자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포함하고, 행정기관처럼 국가에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자주의 제도 내의 행위자들에 대한 상호 감시가 보다 용이하다. 이를 통해 국가들로만 이루어졌을 때 발생하는 효율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국가 행위자들이 당사자주의에 포섭되어 사이버 안보라는 공통의 이익을 위해 활약한다면, 이들은 국가 간 협상에서 이슈 연계를 최대한 활용하게끔 하거나 보다 긴밀한 형태의 상호의존을 촉진할 수 있다. 사이버 안보에 대한 협력체가 보다 견고해지면 국가들은 타국의 비국가 행위자, 초국가 행위자들과의 대화 채널을 확보할 수 있고, 이들이 속한 국가들과 다른 이슈에서도 보다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진다. 이는 곧 보다 많은 정보의 교환을 촉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이버 안보를 위한 협력체에게 긍정적인 상승작용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다양한 행위자로 이루어진 협의체가 실효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비국가 행위자의 포섭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가행위자들은 사이버 안보 측면에서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와 협업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s Providers)와 구글(Google), 페이스북(Facebook)등의 다국적 정보기업들, 민간 사이버 보안 업체 등은 국가 행위자의 범위 바깥에서 사이버 안보 확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Carr, 2016). 비국가 행위자가 사이버 영역에서 차지하는 역량을 고려한다면, 이들에 대한 포섭 없이 국가 간 다자주의적 협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한 감시망, 억지 역량와 처벌은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기존의 국제 협력 모델이 비국가 행위자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상배 외(2019)에 의하면 정보 사회 세계 정상회의(WSIS:World Summit on the International Society),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GCCS: Global Conference on Cyberspace)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는 다중이해당사자주의를 지지하는 모델이었다. 다중이해당사자주의란, 해당 영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당사자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참여하여 논의함을 의미한다(DeNardis, 2014; Kurbalija, 2014; Mueller, 2010 – 김상배 외, 2019에서 재인용). 사이버 안보는 국가 행위자 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도 역량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국가행위자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김상배 외(2019)에 의하면 WSIS는 2014년 결과 문서(Outcome Document)를 통해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정부, 민간 영역, 시민사회, 기술자 공동체, 학계에 걸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다중이해당사자주의를 확인했다. GCCS는 개최국의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회의이긴 하지만 2015년 헤이그 회의에서 ‘다중이해당사자접근’이라는 주제가 포함되고 ‘시민사회사전회의’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보였다(김상배 외, 2019). 다양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을 통해 국제적으로 사이버 안보에서 비국가 행위자의 역량이 인정받고, 그 역량을 사이버 안보에 있어서 활용해야한다는 합의된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민병원(2017)은 사이버 영역에서의 다중이해당사자주의 원칙을 ‘신화’에 비유하며 해당 개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비판했다. 민병원은 미국이 지향하는 다중이해당사자주의를 시장자본주의에 비유하며 포괄적인 참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공동체를 구축하고 참여해온 소수의 구성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원칙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상향식, 민주주의와 같은 다중이해당사자주의가 아닌 자유 시장에서의 독과점 상태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생기고 이는 다시 촘촘한 망이 아닌, 어딘가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는 망을 만들도록 한다. 이는 안보가 다면적 이슈이기 때문에 다양한 행위자에 의해 다양한 방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완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의 다중이해당사자주의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은 모델 내의 행위자들이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거버넌스를 형성한 소수의 행위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하향식 의사결정 모델은 결국 목적으로 하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 소수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다. 하향식 모델의 국제 거버넌스에 비 국가 행위자가 포함되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제사회에서 국가가 주요 행위자라는 공유된 인식 하에, 비국가 행위자, 특히 국내 행위자는 국가에 종속되었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국내 행위자들이 협의 내에서 공유된 이해관계에 투자하기 보다는 소재 국가의 이익을 반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중이해당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뚫리지 않는 촘촘한 사이버 안보의 망을 형성하기 위해선 민주적 상향식 의사결정 절차가 반영된 보다 수평적인 글로벌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지적할 수 있어야 사이버 안보의 다면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효과적인 해결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다중이해당사자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를 동등한 위치로 놓고 서로 연계된 협력체계를 형성하는 ‘다층적’ 당사자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다층적 당사자주의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대안적 모델인 ‘다층적 당사자주의’는 거버넌스 모델 내의 행위자들의 동등함을 전제로 한다. 웨튼홀(Wettenhall 2003)에 따르면, 국가 행위자가 비국가 행위자를 포섭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동의에 기반한 의사결정 과정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한 행위자가 전체 과정을 이끌어가는 수직적 관계에 기반한 방식이다. 기존의 다중이해당사자주의 모델은 비국가 행위자를 포섭 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거버넌스 형성을 주도한 소수의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두 번째 모델이었고, 자연스럽게 국가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는 기능으로 구별되기 보다는 종속관계로 귀결되었다. 즉, 이는 소수의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하향식 모델이었고, 자연스럽게 국가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는 기능으로 구별되기 보다는 종속관계로 귀결되었다. 반면 ‘다층적 당사자주의 모델’은 사이버 안보의 당사자들과 행위자들이 대등함을 고려한다. 이 때의 대등함은 국가 – 비국가 행위자의 수직적 위계가 없이,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는 사이버 안보를 위해 서로 비교 우위가 있는 기능을 특화시키는 방식으로 분화됨을 의미한다. 이 차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사이버 안보가 비효율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개별 행위자가 사이버 위협에 대한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했기 때문이다. 즉 위협에 대한 감시, 공격에 대한 방어, 사후 처벌 등 모든 요소를 모든 행위자가 고려하며 이는 비효율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분명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는 이 안보 요소들에 있어 각자 비교우위가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국가 행위자가 모든 부분에서 우월할 수도 있고, 반대로 특정 비국가 행위자가 모든 요소에서 절대 우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행위자들 간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이버 안보를 갖출 수 있다.

둘째, 비국가 행위자가 국가에 종속되는 경우, 비국가 행위자들은 국가 중심적으로 진행된 논의를 실천하는 수동적 행위자가 된다. 이런 경우 국가 간 사이버 안보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공유될 수 있고, 이 논의 과정이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비국가 행위자의 사이버 안보 고려 사항은 적실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국가에 대한 공격 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에 대한 공격도 국가 내 모든 행위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동등하게 논의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비국가 행위자가 대등하게 접근하는 다층적 당사자주의 접근법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사이버 공격에 대한 식별은 전문가 집단을 포함한 비국가 행위자들의 연계가 발생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의 구분 없이, 대부분의 행위자들은 자체적으로 사이버 안보 역량을 확충하기 어렵고, 안보 방식이나 프로그램의 구성에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Crowdstrike, Fireeye, NortonLifeLock 등 민간 보안업체 등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감시를 전담하는 경우, 나머지 행위자들은 다른 요소에 역량을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 즉 방어나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감시를 전담하는 경우, 나머지 행위자들은 다른 요소에 역량을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당사자주의는 기존 다자주의의 규범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보완할 수 있다. 앞서 본 연구는 피해자, 혹은 피해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각자에게 미치는 주권의 범위와 법적 효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영역의 경우 국가와 이해당사자간의 합의된 법규범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처벌권을 가진 국가들과 비국가 행위자들이 법규범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다양한 국가에 걸친 다국적 기업과 같은 비국가 행위자를 고려한 보완된 규범을 만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법 규범을 확립할 수 있다면 비국가 행위자에 대한 ‘애매한 경우’의 처벌이 가능해진다.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다층적 당사자주의 사이버 안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예시로는 유럽의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을 들 수 있다. 유럽은 사이버 안보의 비지정학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다자주의적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해 다자 협력을 규정하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본 협약은 앞서 언급한 당사자주의가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을 일부 만족했다.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은 사이버 범죄에 대해 세세한 규정을 세우고 사회 안전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기업 간 상호 협력을 명시했다(김상배 외, 2019).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은 사이버 범죄의 수사와 기소 및 관할권에 관한 절차법을 만들어 다자주의 협력의 걸림돌이던 처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사이버 범죄에 대해 형사사법공조의 권리와 의무 및 절차를 명시하고, 범죄자 인도에 관련된 규칙을 만들어 사이버 범죄 처벌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김상배 외, 2019) 이를 통해 사이버범죄에 대한 효율적 대응, 국가 간 정책 재조정을 통한 양보 범위 확보, 그리고 처벌을 위한 법적 구속력 확보를 위한 합의를 해냈다.

총 67개국이 가입한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은 다양한 정보 공유와 처벌 가능성을 도입해 가입 국가의 사이버안보를 강화했다.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은 가입국가 간 정책적 협력 및 조정 개선과 민관 측면의 협력을 강조했다(Christou, 2018). 라광현, 윤해성(2019)은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이 사이버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국가 간 형사사법공조 및 민간과의 협력을 활용하여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당 협약은 사이버 범죄의 수사와 기소 및 관할권에 대한 절차법을 규정하여 효과적인 처벌을 가능하게 하였고,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이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COE 2015, 김상배 외, 2019에서 재인용).

이런 방식으로 유럽의 사이버 안보 체제가 억지와 처벌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유럽의 경우 국가 간 협력의 수준이 매우 높다. 앞서 상술하였듯 사이버 위협 및 관련 이슈가 발생하였을 때, 부다페스트 협정 국가들 사이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추적을 성공할 수 있었고, 실효적인 처벌이 이뤄질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국가 간 합의가 민간 기업, 이익집단, 시민사회로 확대되며 이와 같은 안보 전략의 실효성이 증가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협정의 효력은 높은 수준의 PPPs(Public-Private Partnerships, 이하 민관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독일의 KRITIS-UP가 IT 위기의 조기 탐지 및 완화에 기여하듯(ENISA, 2017), 높은 수준의 민관협력는 사이버 안보 역량 확충에 있어 효율성을 제고하고 그 범위와 역량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민간 기업, 이익집단과 시민사회는 국가 간 협정에 대해 감시하고, 이들 간의 이익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 간 상호의존을 국내 영역까지 확장하며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이는 다양한 이슈로 연계되며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의 이해관계에 대한 ‘공유된 인식’을 공고히 하였다.

더 나아가 본 연구는 유럽의 국가 – 비국가 행위자 간의 긴밀한 협력을 가능케 한 원인을 유럽 내 행위자들의 복합 상호 의존에서 찾고 있다. 부다페스트 협정 체결 당시 당사국들은 대부분 유럽 소속이었으며, 이들은 기존부터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를 형성해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유지, 발전하고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발전한 EU는 세금 감면 등 역내 비국가 행위자들이 활동하기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EU 소속 국가, 비국가 행위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슈를 연계하고 상호 의존을 높이고 있다. 앞서 설명한 효율성의 조건 중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이슈연계가 용이한 것이다. 높은 수준의 통합은 역내 모든 행위자들 간의 다양한 협상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사이버 안보 이슈에 대해서도 모든 행위자들 사이의 공유된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사자들은 개별적, 국가 중심적 접근보다 훨씬 효율적인 집단적, 다층위적 사이버 안보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의 사이버 범죄 방지 협약이 완전히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실제로 사이버 위협, 범죄의 수를 유의미하게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확실하고 안정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이버공격이 복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범죄 방지 협약의 조인국과 그 행위자가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사이버 영역에 대해 정보가 공유되며, 공유된 반경 내의 행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역 밖의 행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반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이버 영역이 비지정학적이라고 하더라도, 감시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먼 행위에 대한 인식은 늦을 수 있고, 영역 외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정 외부의 행위자들로부터의 공격에는 다소 취약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다층적 당사자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포괄적인 차원(level)의 행위자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범위의 행위자에 대한 포섭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유럽의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은 부분적 협력이 사이버 공격에 대해 가지는 한계를 보여줬다. 따라서 협상 외부에서 자행되는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가 포함된 당사자주의가 필요하다. 외부의 영역을 줄이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늘리기 위해서 다층적 당사자주의가 요구된다.

 

다층적 당사자주의의 실현 조건

다층적 당사자주의는 실증적인 거버넌스 모델보다는, 모든 행위자들의 행태 변화를 촉구하는 당위적인 사고 모델에 가깝다. 따라서, 다층적 당사자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행위자들의 인식의 전환 및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실현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다층적 당사자주의의 실현을 위해 행위자들이 견지해야야 할 태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협력체 내의 모든 행위자들은 사이버 안보의 이익이 제로 섬(Zero–sum)이 아닌, 협력을 통해 절대적 이익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협력체 내의 실효성 있는 논의를 위해, 그리고 협력체 외부의 행위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행위자들은 협력을 통해 사이버 공격에 대한 안보 효능감이라는 공통의 절대적인 이익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 협력체 외부의 국가를 포섭하기 위해서 협력체 내의 국가들은 협의를 위해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여야 한다. 협력체 외부의 국가들이 내부로 포섭된다면 협력체는 보다 강력한 감시망을 확충하고 처벌 가능성을 높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잠재적인 공격 행위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체 외부의 행위자를 포섭하기 위해 국가들은 사이버 영역의 모든 행위자와, 정보 및 기술이라는 전략자원을 군사력, 경제력 등의 핵심 전략 자원들과 대등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연계함으로 협의 가능성을 높이고 협의 내용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 만큼의 윈셋(Win-set)을 확보할 수 있다. 국가들 간의 협의에서는, 정보와 기술의 공유를 하나의 협상 품목으로 삼아 타 이슈와의 연계를 통해 협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한편, 관념적으로 국가 행위자들은 국가 중심주의적인 접근법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행위자들은 비국가 행위자 포섭의 필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물론 국가 중심의 논의가 국가 행위자 각각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유된 인식을 바탕으로 공공선을 지향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형성된 이후에는, 국가들 사이에는 상대적 이득에 대한 우려 혹은 속임수에 대한 우려가 상당수 절감된다. 적실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단기적인 이익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사이버 영역의 중요성과 기술이 발전하며 장기적으로는 집단 안보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들 사이의 협의에서는, 비국가 행위자에게 국가가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부여해 보다 적극적으로 포섭할 수 있다. 국내의 비국가 행위자를 행정 기관처럼 국가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협의에서처럼 대등한 관계로 고려하며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보라는 전략자원에 집중해,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 사이에는 ‘시놉티콘Synopticon’ 형태의 상호감시체계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벤담의 파놉티콘Panopticon이 일방적인 감시를 가능케 하는 시선의 비대칭성을 활용했다면(Bentham, 1843), 정보 기술의 발전은 이를 초월하는 시놉티콘의 형태를 가능하게 했다. 매티슨(Mathiesen, 1997)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다수의 일반 대중이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권력자와 대중이 동시에 서로를 보는 매커니즘이 가능함을 주장했다. 물론 전통 안보 및 사회 구성에서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 사이에는 파놉티콘 형태의 감시망이 형성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홉스의 사회계약과 마찬가지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개인들이 가진 주권의 일부를 국가에 양도하고, 이를 통해 국가가 범죄 등의 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정보를 감시하는 것이 정당화되듯 말이다. 이는 피감시자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가지는 ‘수퍼파놉티콘Superpanopticon’의 전자감시 체제(Poster, 1996)와도 의미가 상통한다. 하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 다시 말해 주권의 양도가 불가능한 행위자들이 모인 상황에서 파놉티콘 형태의 감시망은 ‘비교적 대등한 행위자로 고려되는’ 국가들에 의한 감시일 뿐이며, 이는 상술하였듯 국가중심주의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 영역에서, 국가와 비국가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등한 위치의 시놉티콘 형태의 감시망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행위자의 인식 변화 뿐 아니라, 국제 기구의 능력을 더 책임있는 것으로 만들고, 시민단체, 노조, 환경운동 및 여성운동 집단을 포함한 시민 사회 전체가 국가 및 국제기구의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홍성욱, 2001).

이를 위해 국가 행위자들은 물질적 개념에서 비국가 행위자에게 당사자주의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비국가 행위자 역시 사이버 영역에서의 정보와 기술이 중요한 전략 자원이자 거래 수단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를 개별 행위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 공동체 전반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는 당위를 포함한 설득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정보와 기술의 독점권 등을 일부 양보할 수 있을 만큼의 유인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국제 사회 내의 수많은 비국가 행위자들에게 국제 사회 차원에서의 시장 확보, 세금 혜택 등을 통해서 보다 많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비국가 행위자들의 경우는 크게 이익집단과 시민사회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민간 기업 등의 이익집단은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다른 행위자의 제안에서 이득이 생긴다고 판단할 때 이를 수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익집단 역시 제안에 참여했을 때의 이득 뿐 아니라 참여하지 않았을 때의 손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통 안보 네트워크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사이버 안보 네트워크는 전통 안보에 비해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 부족할 수 있고, 개별 이익집단들이 고유의 안보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이 오롯이 해당 기업의 사이버 안보를 확립하는 것은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다자주의 안보망에 포함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기회비용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와 NGO는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이익집단 행위자들을 연결해주는 교량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이 ‘공공선’과 공익을 추구하며, 포괄적 다자주의 내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고, 이들 사이의 균형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이버 안보 확립이라는 목적을 가진 시민 사회의 기구와 NGO는 국가와 이익집단들과 다르게 해당 목적 달성에 매진할 수 있고, 이는 곧 감시망 형성에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목적 달성을 위한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결론

본 글에서는 지금까지 처벌을 통한 억지 가능성 제고와 이를 위한 포괄적 다자주의 접근법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지금까지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버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며 사이버 위협과 안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이버 영역과 사이버 공격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사이버 안보는 기존의 전통 안보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요구된다. 불확실성과 공격 우위 때문에 방어 역량의 강화만으로는 안보 확립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어 역량 강화 뿐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억지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본 연구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억지력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단일 국가는 감시와 처벌의 주체로 부적절하며, 그 대안으로 다자주의 접근법이 보다 적실하다. 이 때, 국가 중심의 다자주의 접근법은 사이버 안보 역량 확립을 위해 비효율적이며, 국가 중심으로 확립된 안보망에는 결함이 생길 수 있다. 이 결함을 막기 위해서는 비국가 행위자를 당사자주의의 틀 안으로 포섭해야 한다.

비국가 행위자를 포섭하는 방식에는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 간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방법과 수평적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 대부분의 다자주의 국제 레짐이 비국가 행위자를 국가의 하위 요소로 보는 수직적 접근법을 채용하는 반면,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는 높은 수준의 민관협력(PPPs)를 비롯한 수평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제로 수평적 접근 방식을 채택한 유럽 사이버 범죄 방지 협약의 사례를 분석하며, 사이버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적극적 민관협력의 양태와 이를 통한 감시와 처벌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사이버 범죄 방지 협약의 일정 성과를 인정함과 동시에, 보다 효율적이고 적실한 거버넌스 형성을 위해서는 협약 ‘외부자’를 줄이고 더 많은 행위자를 내부에 포섭할 수 있는 ‘포괄적 다자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행위자들은 전통 안보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이익의 문제가 사이버 안보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상호 연계를 통한 공공선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비국가 행위자를 국가의 하위 행위자로 인지하기 보다는 국가와 대등한 공격 및 억지 능력을 가진 수평적인 행위자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익 극대화를 고려하는 기업 등의 행위자는 정보와 기술이라는 전략 자원에 대해 배타적인 견해를 고수하기 보다는, 건전하고 실효성있는 거버넌스가 갖춰졌을 때를 고려하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이는 국가 행위자가 이들의 목적과 고려대상을 충분히 감안하고, 적실한 협상안을 제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시민 사회와 초국가적 NGO들은 이들 사이에서 교량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안보망의 구성과 작동을 감시하고 확인하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사이버 기술이 발달해 사이버 영역과 물리적 영역 간에 연결이 긴밀하기 때문에 사이버 영역의 피해가 국가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에 의한 사이버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물리적 공격과 함께 사이버 공격이 함께 이뤄질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사이버 영역이 취약하고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지만 사이버 안보 전략에 대한 논의는 단일 국가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은 민관군의 협력을 통해 사이버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것을 추구한다(청와대 국가안보실, 2019). 단일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행위자를 고려한 사이버 안보 전략은 국가 단일 대응 체계에 비해 발전되었지만, 이 역시 방어와 회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실질적인 공격 억지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한국이 불확실한 사이버 공격을 억지하고 사이버 영역을 안전하게 운용하기 위해서 포괄적 다자주의에 기반한 다양한 국가, 비국가 행위자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사이버 공격이라는 버추얼 창을 막기 위해서 포괄적인 행위자들이 포함된 망을 이용한 감시와 처벌을 통한 적극적인 공격 억지가 필요하다.

 

(1) 해커와 액티비즘(정치행동주의)의 합성어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운동을 뜻하는 표현이다.

(2) 대한민국 범죄인인도법 제2장 제1절 제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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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 4] 바이든 정부 하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대응

정서우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3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초록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미중 전략 경쟁의 주요 전선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기술 혁신 의지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으로 규정하고 대중 제재를 통해 이를 제한해왔다. 그렇다면 바이든 정부 하에서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본 논문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단기적인 타협의 동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미중 간의 기술 격차와 미국 국내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미중 기술 패권경쟁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술 경쟁에 있어서 미국의 다자화 전략이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될 경우 단기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미중 관계 전반이 악화되면서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첨예화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생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 기술혁신 역량 제고에 투자하는 한편 동류국과의 다자 협력 및 기술 발전과 관련된 국제 규칙과 표준 마련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서론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 본격화 되어온 미중 갈등의 핵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이 있다. 첨단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먼 미래의 정책 목표가 아닌, 국가 안보보장을 위한 핵심 요소이자 시급한 정책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5G, 반도체, 인공지능과 같은 대표적인 첨단 기술은 첨단무기의 성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군겸용(dual-use)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곧 경제적, 군사적 패권과도 연결된다.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이 단순히 경제 발전의 일환이라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혁신 의지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으로 규정하고 무역, 투자 제재 등을 통해 이를 견제해왔으며, 이러한 미중 간의 갈등 양상은 기술 냉전(technology cold war)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이러한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기술 패권에 있어서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은 정권과 관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인가? 미국 지도부의 교체는 갈등 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상당 부분 미국의 전반적인 대중(對中) 및 인도 태평양 전략과 결부되어있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가고 있는 구조적 환경,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정치적 유산, 미국 내 기업 로비 등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의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양상을 정리한 다음, 발생할 수 있는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그 가능성을 진단한다. 나아가 이러한 예측이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제시한다.

 

미중 기술 전략 경쟁

중국의 기술 발전 전략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추진해왔다. 특히 시진핑 정부는 2016년 발표한 ‘국가 혁신 주도형 발전 전략강요’에서 ‘혁신 주도형 발전’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2020년까지는 혁신형 국가 대열에 진입하고, 2030년까지 혁신 선두 그룹에 진입하여, 2050년까지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설정했다. 또한 이를 위한 5개년 규획인 ‘13・5 국가과학기술 혁신 규획 (2016-2020)’에서는 첨단 분야 혁신, 기초연구 역량 제고, 창업 및 혁신 장려, 인재 육성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으며 국가의 장기 발전 목표와 연계된 과학기술 중대 프로젝트들이 제시되었다. 한편 이 기간의 제조업 혁신 발전전략으로는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되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제조대국’의 위치를 달성했으나 기술 역량의 부족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비교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중국이 글로벌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계획을 제시했다. ‘중국제조 2025’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핵심 기술자주화에 대한 중국의 의지다. 중국은 2025년까지 핵심 기초부품 및 재료의 국산화율을 70%까지 올리고, 핵심 산업 분야의 자체 연구 개발을 통해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첨단장비의 시장점유율을 대폭 상승시키는 등 핵심기술의 대외의존도를 낮추고자 하고 있다. 이는 불안정성에 대비할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기술 강국들의 잠재적 압력에 의한 타격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유경 2019). 특히 중국은 첨단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5G와 AI 기반 첨단 ICT 산업 발전을 추진하여 정부 지원과 민관협력을 강화해오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산업보조금 지급, 해외투자 유치, 창업 장려, 기초연구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영선 2018). 더불어 과학기술 혁신 정책과 일대일로 전략을 연계하여, ‘디지털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과학기술협력 및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 네트워크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연원호 외 2020). 기존의 개발협력 네트워크였던 일대일로를 기술 기반 신산업 영역에서의 협력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기술 이전, 인수 합병, 고급 인력 스카우트 등에 의한 선진 기술 습득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기업의 기술 이전이나 인수 합병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미국 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차별적 라이센스 제한 정책, 미국 기업 인수합병, 지적재산권 침해 등을 통해 미국의 선진 기술들을 불법적으로 취득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USTR 2018). 이러한 정책들의 추진으로 중국은 제조업 수출품 중 첨단기술 제품의 비중 및 첨단기술 제품의 수출 규모 증가,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상승 및 PCT 특허 출원 수 증가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5G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 육성책에 힘입어 중국이 관련 지적재산권(5G Standard Essential Patent; SEP)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5G 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중국의 지적 재산권 수입이 증가할 전망이다 (배영자 2019). 특히 화웨이는 5G SEP 특허 점유 1위 기업으로서 미국의 가장 집중적인 견제를 받기도 했다. 한편 AI의 경우 현재까지는 미국이 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으나,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더불어 막대한 인구, 다양한 언어 및 취약한 개인 정보 보호 수준으로 인해 빅데이터 형성에 적합한 환경에 힙입어 중의 기술 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된다 (연원호 외 2020). 또한 5G와 AI를 포함한 기타 신산업에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도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 입각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존의 노동집약적인 조립시험 부문을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공정과 설계 부문까지 확장해왔다. 최근에는 공격적 투자, 미국 기업 인수 합병 등을 통해 팹리스, 파운드리, 메모리 부문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배영자 2019).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 및 첨단기술 육성 전략에 대한 경계

한편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2015년 ‘중국제조 2025’의 발표 이후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 육성 정책에 대한 미국 내의 견제 분위기가 강화되었으며,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301조 조사 개시 이후 일련의 행정부 보고서들이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가장 먼저 미국 무역대표부가 발간한 ‘301조 조사 결과 보고서’는 중국의 강요된 기술 이전, 차별적 기술 인허가, 정부 지원 기업들의 공격적 해외 기술 구매 및 자산 취득, 정부 개입 사이버 침입을 통한 불법적 정보 탈취를 지적했다. 나아가 이러한행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 중국의 기술 이전 및 지식재산권과 혁신 관련 법률, 정책, 관행이 부당하고 차별적이며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규정했다 (USTR 2018). 유사한 맥락에서 백악관은 ‘중국의 경제침략에 관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국가 주도 기술개발 해외투자를 주요국의 핵심 기술 및 지재권을 획득하고 첨단기술을 탈취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의 한 형태라 규정했으며, 이것이 나아가 미국은 물론 ‘세계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주장했다 (OTMP 2018). 이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이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시장 왜곡 및 과잉 설비와 관련한 것이다. 예컨대 무역대표부의 2020년 ‘국별무역장벽보고서’는 ‘중국제조 2025’에 명시된 자주 혁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가 특정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대대적 정부 개입과 지원의 정책 수단을 사용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산업 분야에서 시장왜곡, 과잉설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USTR 2020b). 동년 발표한 ‘WTO 이행평가 보고서’에서도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으로 인한 시장 왜곡 문제가 제기됐다. ‘WTO 이행평가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WTO 보조금 협정 제25조에 규정된 보조금 통보 의무를 준수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였고, 아울러 이로 인한 미국 산업의 피해를 시정하기 위해 상계관세 조치혹은 WTO 분쟁해결절차를 활용하겠다는 의사가 피력되었다 (USTR 2020a).

 

대중 무역 및 투자 제재

한편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이러한 미국의 위기의식과 견제는 제도적으로도 반영되었다. 그 중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법은 무역 제재의 근거 법률이 되는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과 외 국인 투자의 심의를 규정하는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 FIRRMA)’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수출통제개혁법’은 2018년 8월, 2019 회계 연도 국방수권법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of 2019) 하 법률로서 도입되어 이전에는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이루어지던 수출 관리의 근거 법률이 되었다. 이 법을 통해 미국 상무부산하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중요한‘신흥 및 기초 기반 기술(emerging and foundational technologies)’을 지속적으로 식별하고 통제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확립되었다. 특히 재수출과 최종사용자 규제가 포함되어, 미국과 중국 기업 간의 직접 거래 뿐 아니라 미국산 기술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된 상품의 거래 및 여러 단계와 제3국을 통한 기술 및 제품의 이전이 금지되었다.

ECRA가 중국과의 기술패권 분쟁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화웨이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있다. 2019년 5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화웨이와 68개 계열사 거래제한명단(Entity List)에 포함시켜,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하거나 지적재산권을 대여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결정했다. 이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퀄컴 등 화웨이에 대한 기술사용 계약 해지 또는 거래 중단을 발표했다. 2020년 5월에는 이러한 조치가 연장, 강화되어 외국 기업들이 미국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여 제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결정되었다.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은 중국의 기술 분야 대미 투자를 이전에 비해 더욱 광범위하게 제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외국인투자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CFIUS)는 원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투자를 승인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FIRRMA는 이러한 CFIUS의 권한을 강화하여 외국의 지배권 획득으로 귀결되는 기업의 합병, 인수 등 투자 뿐 아니라 군사 시설을 비롯한 민감한 정부 시설에 인접한 부동산 거래, 핵심 기술 및 인프라, 민감한 개인정보와 관련한 비지배적 투자까지 심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 기업에 대한 불법적인 인수 및 지적재산권의 절도를 통한 중국의 선진기술 습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미국이 자국 기술이 중국으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투자와 거래를 제한 하는 양상이 지속되면서, 이것이 결과적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GVC)의 양분화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블록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탈동조화(economic decoupling)’로 표현된 이러한 현상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 사슬로부터 차단 및 고립 시키고자 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 일치했다고 분석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이후 기존에  자국 기업과 외국 정부에 일방적인 부담을 요구하던 데에서 벗어나 경제 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와 5G 청정 네트워크(5G Clean Network)를 추진하는 등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기술 공급망의 구축을 모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동맹 역시 기존의 지정학적 성격을 벗어나 지경학적인 기술 동맹의 성격을 띄게 될 가능성이 지적되었다 (이승주 2020).

 

전개 양상과 시나리오

그렇다면 1월 21일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와 어떻게 다르게 대응할 것인가? 우선 중국의 기술 굴기와 관련한 바이든 행정부의 현실 인식은 트럼프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중국 정부와 국가 주도 행위자들이 사이버 공격과 강제적 기술이전 등을 통해 미국의 창의성을 공격해왔다며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려는 중국의 시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이 불공정한 방식을 통해 기술을 육성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경제, 안보 이익에 해를 끼친다는 위협 인식은 두 정권이 공유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외교정책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지점은 민주주의와 인권, 다자주의에 대한 강조에서 발견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이전 정권에 비해 외교정책 결정과정이 전반적으로 더 전통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는 전반적인 대중 및 인도 태평양 전략 뿐 아니라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 임하는 전략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여전히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가고 있는 구조적 환경의 맥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정치적 유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어느 정도의 관성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양상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다자 대응 시도가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되어 미중 전략경쟁이 악화되는 시 나리오다. 둘째는 대중 강경책으로 피해를 입는 기술 기업들의 로비의 영향력 증가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기술력 우위를 유지하는 소극적 수단에 집중하며 상당한 수준의 타협이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되, 지적재산권 제도의 정비 및 불법 기술 탈취 제재와 관련하여 제한적 타협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다.

 

미중 전략 경쟁 악화

먼저 중국이 미국의 기술 우위에 도전하고, 양국이 모두 기술을 국가 안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연원호 외 2020; Kennedy et al. 2018). 즉 미국 지도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미국과 중국이 놓인 구조적 환경이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5G,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은 첨단기술은 민군겸용(dual use)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기술 혁신은 미국에게 사실상 무비 개발에 필적하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는 패권국과 도전국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중국제조 2025’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정책은 국가 장기 발전 목표 및 대전략과 긴밀히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위협적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중국이 ‘불공정하게’ 기술을 발전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첨단 기술 수준의 급격한 상승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불법적 기술 탈취를 ‘경제적 침략’이라 지적하는 것은 ‘공정’ 자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더라도, 중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기술 발전을 이어간다면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은 장기화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자국의 기술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국내정치적 차원에서도, 핵심 안보 요소로서의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과 대중 강경책에 대한 초당파적 지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회유책을 선택하기에는 정치적인 비용이 수반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내반중 정서는 정파를 막론하고, 그리고 정책 결정자와 대중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고 보여진다 (Pew Research Center 2020). 특히 FIRRMA와 같은 법안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는 중국의 기술 발전이 미국에게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중국에 대한 트럼프 이전의 대응, 즉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 곧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 하에 중국을 자유주의 경제 질서로 통합시키는 한편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하는 전략이 현 상황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팽배하다. 요컨대 민군겸용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기술패권 경쟁의 성질 자체와 미국 내의 폭넓은 반중 정서는 기술분야에서의 미중 전략 경쟁이 미국 지도부의 변화와 무관하게 장기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기술 분야의 미중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넘어 악화되기까지 한다면,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는가? 우선 외교정책에 있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다자주의에 대한 태도에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기존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의 약화와 함께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세력이 확장될 공간이 생겼다는 문제의식 하에 동맹을 회복하고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 주장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과 가치 기반의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한편 기술패권 경쟁의 맥락에서도 이러한 다자주의 및 가치 기반의 전략은 여전히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선거 캠프의 외교정책 전문가이자 국무부 장관 지명자인 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술을 자유를 촉진시키는 도구로 보는 반면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들은 기술을 통해 감시와 검열의 도구를 얻는 다는 측면에서 ‘기술 민주주의’와 ‘기술 권위주의’ 간의 분열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있다 (Schlesinger 2020). 이는 기술패권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대결과 연관시켜 해석함으로써 민주주의 동맹국 기반 다자적 대응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다자적 대응으로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한 첨단 기술 공급망의 구축 및 국제 기술 표준 마련 등의 전략이 가능하다. 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5G 공급 사슬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동류국(like-minded countries)들과의 상호 연대를 위한 첨단 기술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 안보 취약성을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후 EPN와 5G 청정 네트워크를 통해 시도했던 전략과 맥락을 같이하나,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국제주의 질서를 훼손하며 반중 전선을 이끌고자 한 것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 회복을 주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위협으로 여기는 국가 간 협력의 성공 가능성이 보다 높을 것이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2020년 11월에는 유럽연합이 중국을 유럽과 미국에게 공통된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바이든 행정부에 환태평양 동맹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이러한 예측에 힘을 실었다 (Saligrama 2020). 다만 이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손상된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 주도의 다자적 대응이 동맹국의 부담을 얼마나 경감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 볼 수 있다.

기술 표준을 마련함으로써 게임의 룰을 선제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의 전략 또한 가능하다. 동류국들과 기술 표준, 데이터 보호, 사이버 안보, 정보 윤리 등 영역에서 협력함으로써 기술 발전의 규칙을 선제적으로 합의하고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토니 블링컨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fully decouple) 것은 비현실적이며 바이든은 ‘국제 기술 표준을 결정’하는 등의 보다 효과적인 접근을 할것이라 말한 바 있다 (Shalal 2020). 한편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만약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서 이러한 다자적 대응의 구상이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될 경우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다자안보체제 구축 전략을 중국의 부상을 선제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홍콩, 대만, 신장위구르 등 주권적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미국이 기술 영역에서 포괄적인 반중 전선의 구축을 시도한다면, 중국 역시 기술의 국내 자급도를 높이는 한편 다자적 대응을 모색하면서 대결적 블록의 형성을 통한 종합적인 경합 구도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승주 2020). 예컨대 미국이 자국 중심의 기술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면, 중국은 이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대한 양자적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미국 중심의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대안적 네트워크의 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개발 협력 네트워크로 출발했던 ‘일대일로’를 과학기술 연구개발 네트워크로 발전시킨 바 있으며, 디지털 실크로드, 우주 실크로드 등으로 이를 다각화시켰다. 만약 이러한 양상이 발전되어 미중 양국이 기술 분야에서 각자 다자주의적 경쟁에 임할 경우 기술 패권에서의 경쟁이 안보, 경제, 개발 등 영역을 포괄하는 지역 질서 차원의 대결과 연계되어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주 2020).

 

상당한 수준의 타협과 협력

고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 내 기업 및 이익집단의 선호 및 영향력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은 거래 축소와 인력 수급의 어려움,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기업들로부터 지속적인 저항을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 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안보를 목적으로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밑바탕을 만들면서 미국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반도체, IT와 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으로 피해를 본 업계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트럼프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로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 초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러한 기업 및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이 충분히 크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강경책을 지속하는 데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대중 제재 완화와 협력의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전통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채택할 것이라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술 기업 로비의 영향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을 수 있다. 기술 기업들은 최근 로비 규모를 대폭늘려 2019년 한 해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5천 3백만 달러 이상을 로비에 투자했으며 이는 월 스트리트, 제약, 에너지 회사들보다 큰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Kang et al 2020). 로이터 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은 사내정치 행동 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s: PACs) 및 직원들을 통해 2020년 바이든 선거 캠페인에 가장 큰 기부금을 제공한 기관들에 포함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Bose 2020).

이렇듯 대중 강경책에 미국 기업들의 피해가 따른다는 점,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기술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급도를 높이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직접적 제재보다 자국의 기술력 발전에 투자함으로써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방안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5G와 AI, 에너지, 바이오기술, 신소재 등 신기술의 연구개발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Buy American” 정책을 공약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전략적 정부 투자와 관련한 법안은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서 입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과 정치적 기대 이익이 충분하다. 이처럼 우선 연구 개발, 인프라,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기술력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한 다음, 국내정치적 합의를 이루어 중국과의 경쟁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으로 장기적인 수준의 타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래의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재정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등 속 일정 부분 타협

한편 이 두 시나리오 외에도 미중 기술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 일정 부분에서의 타협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여기며 다자적 대응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고 자국의 과 학기술 발전에 더욱 투자하는 정책을 펼치는 한편,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의 회복 및 양국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단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타협을 이루는 경우가 이러한 시나리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이후 중국의 국영 신문 환구시보는 바이든이 당선됨으로써 미중 관계가 보다 예측 가능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며, 중국이 바이든 팀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고 미중 관계의 개선이 ‘무역 논의를 재시작’하는 데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 20/11/08).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이 현재로서는 달성하기 요원한 수입 목표치와 수출 관세를 완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타결한 1단계 무역합의의 재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보도되었다 (Zhou 2020).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 1단계 무역합의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곧바로 없앨 계획이 없으며 현재의 합의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Friedman 2020).

한편 만약 대화의 재개가 이루어진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발동된 수출 및 투자 제재를 중국과의 협상을 위한 교섭 수단으로 활용하여 지적 재산권이나 환경, 코로나19 등 분야에서 미국의 입장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존재한다 (Lee 2020). 바이든 대통령은 1단계 무역 합의가 갈등의 핵심인 산업 보조금,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사이버 절도(cybertheft)와 같은 약탈적 관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협상이 재개될 경우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추진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경우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지적 재산권 침해나 산업 스파이 활동, 사이버 공격과 같은 불 법적 기술 탈취 관행과 더불어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등의 개선을 위한 중국의 조치에 제한적인 타협을 이루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 정책 다자화 노력을 통해 첨단기술 분야 기술 표준, 데이터 안보, 지적 재산권 등 의 영역에서 국제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갈등이 국제 제도의 범위 속에서 전개되고 불공정성 개선과 관련하여 제한적 타협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 장기적인 갈등 해결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산업 보조금 문제가 특히 협상이 어려운 쟁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특정 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산업 보조금에 대해 항의해 왔으나, 보조금은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원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의 지도부 입장에 서는 포기하기에 어려운 조건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중국 정부의 보조금 및 개입으로 인한 시장 왜곡 등 경제적 피해는 미국 입장에서도 개선이 절실한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핵심 쟁점을 누락한 상태에서는 합의 자체가 결렬되거나 이루어지더라도 제한적일 확률이 클 것이다.

종합하자면, 미중 간의 기술 경쟁은 미국의 기술 패권과 중국의 기술 굴기가 충돌하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으며 미국 국내적으로도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과 대중의 위협 인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 자체가 바뀔 확률은 적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반 미국 기술력에 대한 투자에 우선 집중할 확률이 높지만, 중국 기술에 대한 견제 역시 다른 한 편으로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대응에 비해 예측 가능하고 어떠한 기술이 통제 기술에 해당하는지 등과 관련하여 분명한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수위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며, 따라서 두 번째 시나리오보다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미국에서 경제 회복의 필요성과 국내정치적 문제에 대한 고려로 단기적 타협을 위한 동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중국 역시 1단계 무역합의에서 약속한 수입치를 달성하기가 요원한 상황에서 재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기 때문에 수출, 투자 제재 및 관세를 더욱 확대하기에는 모순을 감내해야 하는 측면이 있으며, 또한 대선 과정에서 강조한 기후 변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대화의 재개가 있으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미국의 대중 수출, 투자 제재 및 관세가 미국이 중국 기술 발전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한적으로나마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각각의 동맹을 강화하는 형태가 아닌 다자안보체제의 형태를 지향한다면 이는 중국을 자극하여 기술 영역에서도 경쟁적인 두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단 단기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미중 관계 전반이 악화되면서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첨예화 될 수 있다.

 

한국의 대응

한국은 미중 기술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미중 간의 일정 부분의 타협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나 두 국가 사이의 무역 규모만 증대된다는 점에서 크게 유리한 전개는 아닐 수 있다 (연원호 외 2020). 따라서 어떠한 협상의 타결이나 위기 상황과 같이 당장의 큰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갈등에 대응하는 장기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내 기술 혁신 역량 제고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이에 기술력 확보를 통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외교정책에 있어 자율적 공간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다. 특히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이며 중국으로부터의 수출이 전체 반도체 수출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중국은 반도체 해외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수출시장의 축소가 예상된다 (연원호 외 2020). 이에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 역량에 투자하는 한편, 반도체 공급사슬 안에서 한국이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이후 한국이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품목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 것이다 (배영자 2020). 또한 AI와 빅데이터 분석, 슈퍼컴퓨팅 등 첨단기술 영역에서 중국에 비해 1~2년 이상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주시하여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종민 외 2019).

둘째, 동류국과의 다자 협력을 통해 공동의 협상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고 미국의 대중 정책이 다자화 될수록 양자택일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특히 한국이 미국 주도의 다자 대응에 참여하고자 할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을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을 받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으며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등 국가들이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들과의 다자 협력을 통해서 미중이 갈등의 확산을 자제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공동의 협상 포지션을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셋째, 기술 발전 규칙과 표준을 마련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앞서 보았듯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중국에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국제 규범 준수를 유도하는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사이버 안보, 기술 표준 등과 관련한 다자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국내 제도를 미리 정비하고 한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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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워킹페이퍼 No. 3] 디지털 군사기술과 PKO: 딜레마와 가능성

하경석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선임연구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3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요약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통한 기술혁신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작전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안 환경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고 평화활동 자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당한 위험 요인을 동반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기술혁신이 국제사회의 평화활동, 특히 유엔 PKO에 갖는 가능성과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 디지털 기술을 PKO 작전에 실제 활용한 DR콩고 MONUSCO의 무인항공기(UAV) 활용사례를 분석한다.

DR콩고 분쟁에서 UAV 활용 사례는 디지털 감시기능을 갖춘 장비의 도입이 성공적인 작전 수행에 중요한 기여를 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군사기술의 도입은 위험한 분쟁에서 병력의 안전 유지와 민간인 보호 위임명령의 이행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다만, 유엔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갖고있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인권관련 이슈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공정성 시비나 정보의 오용에 말려들지 않도록 디지털 데이터의 사용, 공세적 활용, 그리고 인도적 목적으로의 전용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과 협의해야 할 것이다. UAV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평화유지를 위해 많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적실성을 갖추어 신중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서론: 기술혁신과 평화유지

제4차 산업혁명을 위시하여 기술혁신이 진행됨에 따라 유엔은 평화유지활동(Peacekeeping Operation, PKO)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유엔 PKO는 인간안보가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다차원 (군사)활동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 구축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고 그에 따라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즉각적인 노력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직면한 과제이다. 기술(technology) 도입과 혁신(innovation)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평화에 대한 기회를 놓친다는 것을 의미한다(Dorn, 2016:1). 실제 과거 유엔이 혁신을 소홀히 했을때 평화활동이 정체되었던 현상이 자주 발생하였다.

첨단 무기와 장비가 동원되는 군사작전 뿐 아니라 긴급구호와 재건 등 평화활동 전반에 있어 적절한 기술혁신의 도입은 분쟁 현장의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하며, 평화활동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ICM, 2017). 기술혁신의 시대에 평화활동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유엔이나 참여국가가 스스로의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분쟁이나 재난으로 피폐해진 지역에서 맞서게 되는 세력과 민간인의 기술력 증대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 GPS,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보틱스 등은 점점 더 이용이 가능해지며 지구촌 어디에서든 분쟁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만약 평화활동 참여국과 인력이 미리 준비되지 않고 기술에 대해 무지한 채로 있다면, 유엔의 작전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반군세력 평화프로세스 훼방꾼(spoiler)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유엔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기술과 혁신의 도입을 위한 전략을 채택해오고 있다(Expert Panel on Technology and Innovation in UN Peacekeeping, 2014).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혁신 도입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의지와 수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유엔 차원의 기술공여국(Technology Contributing Country, TechCC) 개념의 등장은 군공여국(TCC)과 경찰공여국(PCC)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보완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실, 그간 유엔 PKO 인력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들의 낮은 군사력 수준으로 획일화된 병력으로 충원되어 왔는데, 이로 인해 효율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한계에 직면해 왔다. 기술공여국 개념은 이러한 관례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 유엔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의의가 있다. 한국과 같은 기술 선진국이 정치적 리스크가 큰 병력지원국(T/PCC) 대신 사이버 전력과 혁신적 장비의 지원을 통한 기술공여국(TechCC)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군사기술의 평화적 활용에도 가능성과 위협요인이 상존한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통한 기술혁신은 (그간의 기술혁신과 마찬가지로) 작전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안 환경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고 평화활동 자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당한 위험 요인을 동반한다. 개인정보 보호문제, 해킹 및 남용을 통한 군사기술의 악용 가능성부터 무인항공기를 통한 공격시 윤리적 이슈,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군사 효율성의 증진이 가져올 PKO 인력 축소에 대한 병력공여국(특히 개발도상국)의 우려까지 다양한 기술적, 윤리적, 정치적 문제가 산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기술혁신이 국제사회의 평화활동, 특히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갖는 가능성과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 디지털 기술을 PKO 작전에 실제 활용한 DR콩고 MONUSCO의 무인항공기(Unmanned Aerial Vehicle, UAV/드론) 활용사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군사기술 혁신이 유엔의 PKO에 갖는 도전과제와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디지털 기술혁신을 통한 PKO가 인간안보 증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논증하고자 한다.

 

디지털 기술의 적용: 정보(Intelligence) 중심의 평화유지

유엔의 PKO 기술혁신 논의

디지털 기술혁신과 유엔 PKO와 관련된 주요 논점에 대한 질문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유엔은 그간 디지털 기술의 현장 접목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 둘째, 유엔 PKO에 있어 디지털 기술 도입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셋째, 디지털 기술은 유엔 PKO와 분쟁 환경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디지털 군사기술의 분쟁현장 도입에 있어 해결해야 할 쟁점은 무엇인가? 본 장에서는 우선 유엔에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디지털 기술의 도입 노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유엔 PKO는 분쟁지역에 국제 군, 경찰, 민간인력을 배치하고 분쟁을 예방, 완화, 종결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민간인 보호(Protection of Civilians, POC)가 유엔 PKO 작전의 핵심 규범으로 자리잡았고, 분쟁 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다차원 활동의 일환으로 PKO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었다. 유엔의 평화활동은 분쟁국가나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국제사회의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 기술 도입의 측면에서 보면, 유엔 PKO는 약간의 진전을 보이고 있으나 역량의 발전에 비해 임무의 범위와 규모가 훨씬 더 확대되어 아직 많은 부분에서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PKO 작전은 많이 발전하지 못한 채 개발도상국의 병력공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실제 평화유지 인력은 충분한 장비와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분쟁의 참상 속에서도 확실하게 관여하지 못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United Nations, 2014).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혁신의 도입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유엔 평화활동의 기술과 혁신에 관한 고위급 패널>에서는 2014년 발간된 보고서 Performance Peacekeeping을 통해 기술혁신이 민간인 보호 뿐 아니라 PKO 위임명령(mandate)의 이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시하였다(Expert Panel on Technology and Innovation in UN Peacekeeping, 2014). 따라서 분쟁 관리시 유엔의 핵심 과제중 하나는 PKO에 가장 적절한 기술장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계 국가들 간의 광범위한 기술 수준의 차이, 전개된 병력들 간의 기술격차, 그리고 유엔 사무국과 PKO 현장과의 기술적 결합은 문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정 요소이다(Dorn 2016).

2014년 고위급 패널의 기술혁신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유엔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술혁신의 도입을 통한 PKO 운영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2019년도에 평화활동국(DPO)으로 통합된 유엔의 평화유지국(DPKO)과 현장사무국(DFS)은 권고사항의 이행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했고, 선진국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다. 특히,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이 병력 파병은 적게 하는 대신 유엔의 기술력 향상을 지원하고 기술공여 선도국이 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 선언하기도 하였다(Obama, 2015).

유엔은 지속적으로 PKO의 기술 파트너십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2018년에는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신기술 전략(Strategy on New Technologies)>을 발표(UN Secretary General, 2018)하였다. 유엔은 또한 멜린다 게이츠(Melinda Gates)와 마윈(Jack Ma)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디지털 협력에 관한 고위급 패널>을 임명하였고 동 패널에서는 2019년 6월 <디지털 상호의존의 시대(The Age of Digital Interdependence)>를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디지털 기술이 인간안보 증진에 가져올 영향을 모색하고 대응하고 있다(High-Level Panel of Digital Cooperation, 2019).

이처럼 유엔이 추구하고 있는 기술 혁신 아젠다의 도입이 PKO 현장, 특히 군사작전의 측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 가능한가? 다음 장에서는 정보 중심의 PKO 활동이 갖는 중요성과 디지털 기술이 이에 기여해온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디지털 기술과 정보 중심의 PKO

디지털 기술혁명이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듯이, PKO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의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우주(위성), 공중, 지상, 지하까지 감시시스템을 도입하고, 디지털 평화유지(digital peacekeeping) 개념을 통해 병력들의 착용장비에 디지털 기기를 삽입하는 것과 같은 정보(intellignece) 획득을 위한 기술의 활용은 PKO에 새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Dorn 2016).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현장에서 유엔 주도 감시업무는 망원경의 도움을 받는 정도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비단 PKO 작전 뿐 아니라 일반 군사작전에서 감시(surveillance) 및 정보(intelligence)의 획득이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고려할 때, 열악한 PKO 현장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감시 및 정보 획득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한다면 매우 효율적인 PKO 작전 수행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유엔 PKO에서 정보획득의 중요성은 디지털 기술의 도입 이전부터 강조되어왔다. 특히, 2006년부터 유엔 평화유지국(DPKO)은 현장 임무에 정보 처리와 분석을 위한 합동임무분석팀(Joint Mission Analysis Cell, JMAC)를 설립하도록 의무화 하였다. JMAC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계기는 2005년 아이티 유엔안정화임무단(MINUSTAH)의 갱단 척결작전시 정보 취득에 실패한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정보 획득을 위한 JMAC 설치 후 2006-7년에 무력진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후 PKO에 JMAC 운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하경석, 2020a). JMAC은 임무단이 직면한 모든 모든 종류의 위협―갱단과 같은 비전통적인 위협 포함―에 대한 작전과 전술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수집된 정보에 기반하여 MINUSTAH 내의 민-군 지도자들에게 전략적 분석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는 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 중심의 PKO 작전수행시 디지털 기술이 통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무인항공기(UAV), 영상감시시스템, 동작감지기, 위성사진 등 감시와 관찰을 용이하게 하는 기술이 매우 유용하게 PKO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PKO 병력은 자신의 위치는 적군에 완벽히 노출되는 비대칭적 위협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위협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효과적인 작전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평화유지에서 디지털화된 정보의 필요성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작전상황에 대한 공통의 인지이다. 즉,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 임무 지역과 상황에 대한 일관성 있는(coherent), 실시간(real-time)의 작전 이해가 가능하다. 둘째, 임박한 위협에 대한 조기 경보(early warning)가 가능하다. 셋째, 위협요인과 기회를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의 파악과 분석이 용이해진다. 정확한 상황 인식은 PKO의 자기방어 목적 뿐 아니라 안보리 위임명령의 이행, 특히 민간인 보호(POC)를 위한 작전 수행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Hansen 2020).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은 확실한 증거자료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대량의 데이터를 보다 체계적으로 포착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한다. 데이터는 작전 환경의 정보 공백을 메우고 갈등 역학관계와 관련된 패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부터 무인항공기(UAV/드론), 그리고 오픈소스 데이터까지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수집하고, PKO 임무단에서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기술 솔루션이 활용된다면, 병력과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작전 구상 및 이행이 가능해진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지난 수 년간 각 유엔 PKO 임무단마다 산발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어왔는데 사실상 그 시발점이 된 계기는 2013년 DR콩고 유엔안정화임무단(MONUSCO)의 활동이다. MONUSCO는 PKO 임무단 최초로 UAV를 도입하고 디지털 장비를 활용함으로써 유엔 PKO 차원에서 디지털 기술의 체계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MONUSCO에서는 민간인을 공격하던 반군의 은신처를 촬영하기 위해 고해상도 카메라를 활용하였고, 야간투시경과 로켓, 기관총 등을 탑재한 무장헬기를 활용하여 반군의 공격에 강력한 억제력을 갖추었다. DR콩고에서 UAV와 무장헬기가 성공적 활용됨으로써 이후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과 말리에서의 PKO 임무에도 UAV와 야간투시경 등의 장비가 활용되었다. 일례로 말리에 있는 네덜란드 부대는 무인항공기와 아파치 헬리콥터를 고해상도 카메라와 함께 사용하여 정보수집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Dorn 2014).

이처럼 디지털 시스템과 장비는 분쟁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작전 설계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정보 수집을 위한 장비 이외에도 디지털 기술이 PKO 작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는 부대 운용에서부터 조달 및 통신체계 구축까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기술 메커니즘과 도구는 구조적, 정치적 제약요인을 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PKO 디지털 기술 도입의 도전과제

정치․경제적 측면

유엔에서 디지털 기술 도입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2015년, 유엔 평화유지활동 특별위원회(C-34)에서는 144개 회원국들 중 특히 비동맹운동(NAM) 국가들과 러시아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정보수집에 대해 심각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EU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게 PKO에서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평화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고 파병 인력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된 반면, 비동맹운동 국가들에게는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국가 주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으며, 서양 국가들이 평화유지의 효율성을 빌미로 분쟁에 개입하려는 시도라고 비춰진 것이다(United Nations, 2015). 특히 러시아는 유엔 사무국이 DR콩고에 UAV를 배치하기에 앞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요구로 인해 불필요한 절차를 밟는 것을 방지하고자 미국, EU, 그리고 캐나다(C), 호주(A), 뉴질랜드(NZ)의 “CANZ 그룹”이 러시아에 저항하게 된다.

한편, 현재 유엔 PKO 병력의 약 4분의 3을 제공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PKO가 병력의 수를 줄이고, 이에 따라 자국이 유엔의 보상금을 적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화유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시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평화유지군의 총 숫자를 감축하기 보다는 그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기동할 수 있게끔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특정 임무는 인력이 감축되겠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 인력은 더욱 생산적인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 유엔 PKO는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고, 안보리의 인력 제한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결국,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유엔의 힘을 활성화하고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전반적인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고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또한, 병력공여에 대한 우려와 유사한 측면에서, 일부 국가들은 무인 항공기가 유인 항공기를 대체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특히 러시아에서 자국 헬리콥터의 활용이 떨어질까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PKO 조달(procurement) 시장에서 방산무기의 거래는 러시아와 같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입장에서 포기하기 어려운 파이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잘못된 두려움이라 보인다. UAV는 확실한 정보수집을 통해 유인 항공기의 운영을 보완하고, 유인 항공기를 통한 더 많은 지원, 수송, 전투 임무를 수행하여 효과적인 PKO 운영에 기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의 디지털 기술 도입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정보격차(digital divide)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과 기계 간 인터페이스가 사용자 친화적이 되면서 개발 도상국들은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점점 더 채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을 통해 선진국과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면 개발도상국에 오히려 이익이 되는 디지털 생태계의 구조(Karlsrud, 2013)를 감안하면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오히려 환영할만 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유엔 PKO는 다국적 병력으로 이루어져 전투병력(contingents) 간의 상호 운용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Berdal, 2019). 반군과의 전투 중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면 작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일례로, MONUSCO의 무력개입여단(FIB)은 상호간 무선통신이 불가능한 3개국 병력(말라위, 남아공, 탄자니아)으로 이루어져 별도의 관할구역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항공기에서 지상군까지의 통신도 병력과 항공기가 같은 나라 출신이 아니면 보통 불가능하다. 병력이 공격을 받고 있을 때 긴밀한 공중 지원을 위해서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며 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도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유엔은 우간다의 엔테베에 본부를 둔 시그널(signal)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병력공여국의 부대에 대한 사전 배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ICT 역량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권․정보보호 측면

앞서 살펴본 제약요인들이 다분히 정치적이고 기술적인 이슈였다면, 디지털 기술 도입의 더 근본적인 도전과제는 인권, 특히, 사적인 정보의 취득과 이의 악용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 기밀성과 개인 사생활에 대한 도전은 전세계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유엔도 이에 대처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분쟁지역에서 유엔 PKO 작전시 투입되는 UAV의 경우, 디지털 센서들이 특정 지역 주민들의 행동패턴에 대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획득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이슈이다.

PKO 활동시 감시용 UAV을 가장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행위자들 중에는 인도주의 구호단체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디지털 감시기술의 활용이 분쟁에서 군 병력과 인도주의 행위자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두려워한다(Merkle, 2016). 인도주의 구호 임무는 항상 공정하고 중립적일 필요가 있으며, 모든 분쟁 당사자들에 의해 중립적으로 인식되어야 활동이 가능하다. 그동안 인도주의 구호단체들은 PKO 임무단의 보호를 받으며 물자운송 및 구호활동을 해왔으나, PKO 차원에서 UAV를 도입함으로 인해 일부 NGO들은 자신을의 중립적 입지가 위협을 받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사한 측면에서, 분쟁 당사국은 유엔이 디지털 감청장치나 UAV를 통해 자국의 취약점을 들춰내고 자국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잔학 행위나 정부 인사의 부패문제 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Dorn 2016). 당연히 유엔은 첩보활동에 관여하지 않지만 국가들은 유엔이 확보한 정보가 엄격한 감독 하에서 안보리 위임명령 이행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유엔은 UAV의 운영에 있어 사무총장 특별대표(SRSG)의 동의가 없이는 주변 국가의 정보를 취득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밖에도 민간인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휴대전화 전자감청, 수집된 데이터의 해킹을 막는 사이버 보안, 기술 오류로 인한 군사기기의 오작동 문제 등도 도전과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채택함에 있어 유엔은 가장 발전된 기술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술을 선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디지털 장비 시장에서 가장 최신의 비싼 기술이 오히려 인권의 측면에서는 검증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에 다음 장에서는 디지털 기술, 특히 UAV를 통한 감시기능의 도입이 실제 PKO에 활용된 사례를 살펴보고 이의 함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사례연구: DR콩고 MONUSCO에서의 무인항공기(UAV) 활용

DR콩고 키부(Kivu) 분쟁과 무력개입여단(FIB)

DR콩고 동부의 접경지역은 1990년대 후반부터 폭력분쟁과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국제사회의 개입과 평화협정 등으로 안정을 찾는 듯 했으나, 2012년 5월, 북 키부(Kivu)에서 새로운 강력한 반란군인 M23이 출현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2009년 키부 분쟁은 DR콩고 정부와 RDC 후계집단인 CNDP(Congres National pour la Defense du Peuple) 사이의 평화협정으로 종결되었는데, 이들 CNDP의 남은 세력들 일부가 CNDP 해체를 합의했던 2009년 3월 23일을 의미하는 M23(23 March Movement) 이름의 세력을 조직하여 2012년 4월부터 북 키부의 산악지방(르완다와의 접경지역)을 점령하고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고 DR콩고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Sterns 2012).

DR콩고 정부는 반군을 제압할 역량이 부족했으나 이들과 타협할 의사 역시 없었고, 결국 2012년 11월 M23이 북 키부의 수도이자 DR콩고 동부의 중심도시인 고마(Goma)를 함락하는데 성공하면서 참사로 끝나게 된다. 유엔은 MONUSCO의 병력을 활용하여 콩고 정부군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군사적으로 반란군에 대응하였지만, MONUSCO의 병력으로 M23의 진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UNSC 2013a). 이 시기에 약 14만 명의 인구가 이주민으로 전락하였으며, 반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부녀자 강간 등 수많은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다(Novosseloff et al. 2019). 이에 유엔 PKO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으며 유엔 차원의 새로운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2013년 3월,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 2098을 채택하여 DR콩고 동부에 최초 1년간 배치될 최대 19,815명 규모의 강력한 공격부대인 무력개입여단(Force Intervention Brigade, FIB)을 창설하였다(UNSC 2013b).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에서 모든 무장단체를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M23, FDLR, ADF를 큰 위협세력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들 무장단체를 제압하기 위한 공격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일방적이거나 또는 DR콩고 정부군(FARDC)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강력하고 기동적이며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되,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FIB는 3개 보병 대대와 포병 중대, 특수부대, 정찰 중대로 구성되었고, FIB는 비교적 신속하게 배치되었다. FIB 모든 병력의 전개가 최고조에 달한 2013년 10월에는 21,485명의 군인과 3,994명의 민간인력이 투입되었다. FIB는 고마 북쪽 지역에만 총 2,000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하였고, Mi-24P 공격헬기, 대포(artillery), 박격포(mortar) 등의 군사장비도 지원되었다. 공격헬기의 지원은 산악지대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데 유용한 자산이 되어주었다. 특별히, 유엔 PKO 임무단 최초로 첨단장비인 무인정찰기(UAV)를 배치하여 산악지역에 잔류해있던 반군들에 대한 정찰업무를 수행하게 된다(Karlsrud and Rosen 2014).

UAV를 활용한 정보의 습득과 FIB와 FARDC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인해 반란군은 주요 도시에 대한 통제권을 불과 수개월 내에 상실하였다. 이후 M23은 사실상 와해되었고 많은 반군들이 국경을 넘어 우간다와 르완다로 도주하게 된다. FARDC와 성공적인 무력작전을 수행한 FIB는 매우 짧은 시일 내에 DR콩고 분쟁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반군 집단 중 하나였던 M23의 결정적인 패배를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유엔 PKO에 의한 평화강제작전을 통해 키부 지역 민간인들의 안전에 중대한 위협 중 하나를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림1> MONUSCO에 투입된 UAV를 점검하는 Herve Ladsous 유엔 PKO 대표 (출처: MONUSCO/Sylvain Liechti, 2013)

 

FIB는 군사작전 이외에도 DR콩고의 무기 금수조치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UAV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8에는 무장해제․동원해제․사회재통합(DDR)을 위한 “무기의 보관, 수집 및 폐기”를 UAV가 지원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는데(UNSC, 2013b), 이는 유엔 PKO의 공식적으로 임무에 UAV 사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서이다. UAV의 활용을 공식화한 유엔 결의안은 이후 MONUSCO의 임무 갱신시에 계속 유지되어 2021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UNSC, 2019).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MONUSCO가 활용한 UAV 기술이 “비무장”용도로만 허락되었다는 점이다(Andrews, 2017). 유엔은 Leonardo (구 Selex ES)라는 이탈리아 기업으로부터 5대의 팔코(Falco) UAV를 제공받았는데, 이 특정 모델은 최대 14시간의 내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안보리 위임명령에 따라 감시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Airforce Technology, 2009). 단, 팔코는 표적 타격용으로 최대 70kg의 적화물을 이송할 수 있었으나, 유엔은 비감시용 활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부정적인 의미를 줄이기 위해 비무장 항공 시스템이라는 성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다(UNSC, 2013b).

 

MONUSCO의 UAV의 활용과 쟁점

MONUSCO가 UAV를 평화유지 임무에 동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DR콩고 동부 지역의 반군세력과 인도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진데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민간인 보호는 전혀 되지 않았고 반군에 의한 처형과 집단 강간이 일반적이었으며, 반군은 외부 행위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KIDA, 2014). 만성적인 기반시설 부족과 정부 거버넌스의 붕괴, 외부의 지원을 받은 강력한 반군의 등장, 그리고 매우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PKO의 임무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는데, UAV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어주었다.

투입된 UAV는 야간과 주간 모두 산악지대 감시가 가능하고 환경에 따라 다른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정교한 기종이었다. UAV는 “필요에 따라 낮게, 지역 주민들이 자주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비행을 하면서 강력한 억지력을 제공하였다(O’Grady, 2015). 이것이 반군들에게는 자신들의 위치가 이미 파악되었으며 이제 항복하라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비무장/동원해제가 눈에 띄게 진전되었고, 2014년 초,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UAV의 사용과 상관관계가 있는 M23 반군 이탈이 명백하게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4년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유엔군과 콩고군에 “FDLR 회원 438명이 자발적으로 항복하고 2015년 7월까지 415명의 회원국이 추가로 무력화되었다(Pilgrim, 2015).

반군에 대한 직접적인 억지력 행사에 더해 UAV는 불법 검문소와 불법 채굴을 탐지하고 파괴된 마을을 조사했으며, 반군 진지와 무기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FIB의 공격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UAV는 실시간 상황 인식을 제공하였는데(Ladsous, 2014), 작전중 UAV는 지상의 군인들이 보유한 이동 단말기에 이미지를 전송했고, 이미지는 FIB가 M23 반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매복 공격을 피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렇듯 FIB의 전개와 UAV의 투입은 동부 DRC에 큰 위협이 되는 다양한 반군 집단을 무력화하는 MONUSCO의 캠페인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DR콩고에서 UAV 활용의 성과는 타 PKO에도 적용 가능할까? 이는 세 가지 쟁점(군사적 활용, 군사-인도적 목적의 혼용, 데이터 사용)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세 가지 이외에도 고가의 첨단장비인 UAV의 비용 부담과 인수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Andrews, 2017). 다만, 디지털 기술의 활용 측면의 분석에서 UAV가 아닌 타 기술이나 장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본고의 논의에서는 제외하였다.

첫 번째 쟁점은, 디지털 장비의 군사적 활용이다. 유엔 PKO는 1999년 이후 모든 다차원 PKO에 유엔 헌장 7장 기반의 무력사용 위임명령을 부여해 왔다(Howard and Dayal, 2018). 민간인 보호(POC)를 위한 무력사용의 가능성을 열어둔 안보리 위임명령 하에서 UAV의 활용이 과연 합법적이고 적절한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 유엔 PKO는 2011년 코트디부아르에서의 무력사용을 통해 대표적인 위임명령 이행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던 성과가 있다(하경석, 2020b). 그러나 당시에는 헬리콥터가 가장 선진화된 장비였고, 아직 UAV 등 디지털 기술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UAV의 공격적 활용에 대한 경험과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과연 민간인 보호를 위시하여 자유로운 공격작전에의 투입이 가능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군사적 목적과 인도적 목적의 혼합적 운영이다. UAV는 부여되는 임무에 따라 무장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MONUSCO의 UAV는 완벽히 비무장 상태로 운용되었으나 FIB와 공세적 작전을 함께 수행함. 그러나 수차례 본래 안보리에서 규정한 위임명령의 작전 범위를 넘어 인도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일례로 2015년 키부(Kivu) 호수에서 여객선이 침몰하여 구조활동을 위해 MONUSCO의 UAV가 전개되었고, 2014년에는 NGO들의 인도적 프로젝트 협조를 위해 드론을 제공하기도 하였다(O’Grady, 2015). 이는 일견 좋은 취지로 수용될 수도 있으나 본래 목적과 불합치되는 디지털 장비의 활용은 유엔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분쟁 당사국이나 주변 국가들과의 불신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유엔 평화활동국(DPO)은 UAV를 포함한 로봇 등 디지털 무인기기의 활용 규칙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축적된 데이터의 사용이다. 모든 UAV는 카메라, 센서, 그리고 몇 시간 동안 공중에서 감시 활동을 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있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저장되고 분석된다. 이는 감시와 감응을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 장비가 가진 유사한 속성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주권국가 입장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수집된 정보를 누가 관리하고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군의 기습이나 매복에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유엔 PKO에 더 큰 책임이 전가되고 심각한 비판에 직면한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디지털 정보 수집기기를 활용할 경우 반드시 유엔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판단된다.

 

결론

평화유지군이 두 분쟁 당사자 사이의 완충지대를 순찰하던 전통적 PKO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대신 국가 또는 반군세력이 혼재된 다양한 행위자들에 얽혀서 훨씬 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임무를 부여받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평화유지에 디지털 기술을 통합하는 것은 유엔 PKO의 역량 강화와 강력한(robust) 평화유지라는 안보리의 위임명령의 이행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오히려 광범위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유엔 PKO는 기술혁신을 빠르게 수용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신기술을 활용하는 적대세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MONOUSCO의 UAV 활용 사례는 디지털 감시기능을 갖춘 장비의 도입이 성공적인 작전 수행에 있어 매우 가치있는 투자이며 PKO의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주었음을 보여준다. 향후 PKO에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위험한 분쟁에서 병력의 안전 유지와 민간인 보호 위임명령의 이행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다만, 앞서 살펴보았듯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 이전에 유엔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갖고있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인권관련 이슈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정성 시비나 정보의 오용에 말려들지 않도록 디지털 데이터의 사용과 공세적 활용, 그리고 인도적 목적으로의 전환 사용의 조건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과 협의해야 할 것이다. UAV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평화유지를 위해 많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효과적이고 신중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PKO에서 디지털 기술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고 다루기 위해서는 유엔 내에서 기술 혁신을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과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술혁신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과정임을 조직적으로 체화할 수 있는 구조의 변혁이 요구된다. 좋은 예시로, 유니세프(UNICEF)에 설치된 혁신(innovation) 부서와 같은 형태가 있다. 유니세프 혁신 부서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기술전공자를 채용하여 블록체인, 디지털매핑 등과 같은 기술의 구호활동 접목을 연구하고 있으며, 부서장은 UNICEF 대표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저자의 UNICEF 혁신부서 담당자 인터뷰 – 김도형, 2020).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4월,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를 주최할 예정이며, 회의에서 다룰 핵심 아젠다 중 하나로 기술(technology) 이슈를 제시하였다. 여기에서도 디지털 혁신이 중요하지만 이를 다룰 시스템과 인력의 양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IPI, 2020). 디지털 기술 혁신의 도입이 5G와 2차전지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에도 기술공여국(TechCC)으로 유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유엔과 국제사회 차원에서도,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쳐 기술혁신이 분쟁의 현장에 적절히 적용되기 시작하면, 인간안보 증진을 위한 유엔 PKO의 활동은 더욱 효과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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