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암 연구 워크숍 #5]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시민과 글로벌 거버넌스 (한국정치학회 World Congress 2021 &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2021.08.30

  • 일시 : 2021.8.20 (금) 15:00~16:50
  • 장소 : Zoom
  • 주제: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시민과 글로벌 거버넌스”
  • 사회 : 이신화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장 )
  • 발표: 김두진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세계시민성과 한국의 국가시민성: 긴장과 조화의 가능성”
    이규정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 “미디어에 나타난 코로나19와 글로벌 거버넌스”
    인지훈(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정의의 관점에서 본 국제평화: 롤즈의 안정성개념을 중심으로”
  • 토론: 김유철 (덕성여대 조교수)
    박영득 (충남대 조교수)
    표광민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1년 8월 20일,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제 5회 지암(芝巖) 연구 워크숍이 한국정치학회 World Congress 2021의  제 11 세션으로,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시민과 글로벌 거버넌스”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발표 1 세계 시민성과 한국의 국가 시민성 : 긴장과 조화의 가능성 (김두진,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세계시민성’ 대(對) ‘국가시민성’ 논의: ‘세계위험사회’와 국가시민성의 ‘변용’(variants) 가능성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은 <세계 시민성>과 <국가 시민성>의 연계성을 새롭게 규명하게 하는 인식론적 전환의 계기를 가져 왔다. 이 상황에서 당위적 정리(axim)는 ①국가 시민의 정체성이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②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신종 감염병은 ‘공동의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 간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익 관점에서 제로섬(zero-sum)의 적대적 인식으로 비화되곤 하였다. 그 이유는 코로나 19 사태가 전통적 안보에 비해 비전통적 안보 – 인간안보 (및 보건안보)-가 훨씬 더 치명적인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가령 미중간에 감염병의 ‘발원지’에 관한 책임성 논쟁으로 국가주의가 세계주의를 압도하는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마치 미국-중국 간에 ‘투기디데스의 함정’으로 이어질 갈등 양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민성과 관련하여, 팬데믹 경험은 국가의 무정부주의적 상황- 홉스의‘자연상태’는 아니지만 공권력의 붕괴에 가까운 -에 이르는 ‘공포’(fear)에 관한 시민(들)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소위 통제불가능한 위험(uncontainable risk)의 쟁점을 다룬,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세계위험사회’ (world risk society)의 맥락에서 팬데믹 상황 극복의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가체계 형성과 연관하여 슈미트(Carl Schmidt)의 집단(collectivity)형성의 논거에서, 팬데믹 재현의 ‘위협’(공포) 인식에 대한 시민의 주체적 집단본능(group instinct)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팬데믹 이후 중단기적으로 국가 중심성(centrality)의 강화가 불가피해 질수록, 기존 다원주의적 국가시민성은 상당 부분 훼손이 예상된다. 점차‘(국제)재난의 정치화’가 제도화될 경우 국가 시민성의 변이, 혹은 ‘정치적 부족’(political tribes)의 잠재성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가시민성의 분화(分化)가 예상되고, 이에 따른 시민성 내분의 조짐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토론 1 ‘세계위험사회’와 ‘시민성’ 고찰” (김유철, 덕성여자대학교)

 

김두진, “세계 시민성과 한국의 국가 시민성: ‘세계위험사회’와 ‘시민성’ 고찰”

ㅇ 김두진 교수님 발표 잘 들었음. 팬데믹 상황에서,세계 시민성국가시민성간의 긴장관계를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이론 및 칼 슈미트의 정치적 결단주의 등을 원용하여 분석한 좋은 글이라고 생각됨. 최근, 국내 국제정치 연구자들사이에서 순수 정치이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특히 받은 공부가 됨.

ㅇ 일단 서론에서 세계화 가속, 새로운 위험 등장으로 인한 <국가 시민성의 성격변화> 가능성을 적시해 주신것이, 논문 주제의 현저성(salience)을 정당화 해준다고 봄. 국가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해야 하는가의 질의도 명확히 정의됨.

2에서 초국경적 시민성의 사상적 연원 및 배경, 도전요인 등에 대해 상술해 주신 점도 큰 도움이 됨. 3에서 ‘국가시민성’ 특히 라인홀드 니부어가 제시하는 애국심의 윤리적 역설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로움. 세계시민성과 국가시민성 간 길항관계를 보다 명확히 전달. 그리고, 4에서 울리히벡의 세계위험사회 개념, ‘세계시민적 현실정치’ 개념을 제시하고 계심.

ㅇ 아주 풍부한 이론적 논의를 제시한다는 것이 논문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었으면, 독자로서는 더 흥미로운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함. 개인적으로는 여러 이론틀 중 ‘세계시민적 현실정치’(Kosmopolitishe Realpolitik)의 개념이 세계시민성-국가 시민성 간 갈등관계를 잘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함. 따라서, 이것이 2장에서 핵심개념으로 먼저 제시하고, 이론적 배경으로 2, 3장의 내용을 보충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대안적 논의 전개 방식으로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함. 사실, 4장의 내용만으로도 논리구조상 독자적 논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팬데믹의 영향’은 독자적 장으로 분석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함.

ㅇ 사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은‘세계시민성-국가시민성’의 길항관계 보다는 묘하게 결합된듯한 상황으로 인식. 국제기구의 역할은 미미하나, 국가 간 정책확산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짐.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담론 역시 여전히 살아 있음.

질문> ① 현 코로나 상황에서 ‘현상적으로’ 한국 시민들이 국가시민성 추구의 경향이 강하다고 보시는지, 세계시민성 추구의 경향이 강하다고 보시는지?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그 논거는 무엇인지? (당위의 문제) ② 위험요소에 대한 시민 주체간 인식차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새로운 위험의 보편성을 강조, 가장 잘 알려준 문구는 “부(富)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 혹은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등임.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험의 대응능력에는 엄연한 격차가 존재. 백신 생산 능력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방역정책을 취할 역량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혹은 국가내 계층에는 차이가 있음. 기후변화 대응도 마찬가지. 키리바시와 대한민국이 위험인식이 같을 수 없음. 실증적 조사 결과도 그러함.

 

발표 2 미디어에 나타난 코로나 19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규정,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코로나 19는 한 국가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 코로나 19의 확산은 국가간 협력을 통해 해결과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국제정치의 일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대단히 낮은 상황을 미디어의 보도행태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글로벌 거버넌스와 관련성으로 구분하면, 코로나 19 명칭 논란, 마스크 확보 논란, 백신 도입 및 접종 논란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 미디어의 보도 행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코로나 19라는 공식 명칭의 사용 이전 “우한 폐렴”을 사용한 보도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어렵게 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초래할 수 있으며, 숨은 확진자 양산을 통한 공공 방역 체계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둘째, 마스크 부족을 부각하는 보도 행태는 수요 폭발과 공급 부족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사실과 다른 정파적 보도를 양산하며, 외국과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문제를 갖고 있다. 셋째, 백신 도입과 접종에 대한 보도 행태는 검증되지 않은 백신의 위험성을 강조하거나 도입량과 접종자 숫자에 대한 단순 경마식 보도는 국제 협조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요컨대 미디어는 국제 연론 형성과 의제설정 능력을 갖고 있는 행위자로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코로나 19 발생 이후 우리나라의 미디어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여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수용자의 인식 변화에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토론 2 정의의 관점에서 본 국제평화 : 롤즈의 ‘안정성’ 개념을 중심으로 (박영득,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본 논문은 코로나19에 대한 국내 미디어의 보도행태를 분석함으로서 국내 언론의 보도행태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에 관련된 많은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보도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들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언론의 보도가 코로나19에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고, 국제적 공조를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의식이 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제안사항을 적어보면, 본 논문의 내용이 분석적이기보다는 다소 열거적이라는 점부터 지적해야 할 것이다. 논문 내용의 상당부분은 코로나19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차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국내 언론의 보도행태가 코로나 19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에 구체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지는 못 하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는 얼마나 타격을 입었는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언론의 잘못된 보도행태와 그로 인해 부정적 여론이 정부를 압박했기 때문인가? 이 논문의 집필의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각각의 사례들(‘우한폐렴’용어, 마스크, 백신 등)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가 한국 정부와 방역당국이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조를 실제로 어렵게 했는지 충실히 입증하는 분석에 더 많은 내용이 할당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본 논문의 분석대상이 국내 미디어에 한정되어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 논문은 코로나19 글로벌 거버넌스 형성에 대한 미디어의 역할과 보도의 영향력을 다루고 있는데, ‘국내’ 언론의 잘못된 보도행태가 글로벌 거버넌스 형성에 타격을 입힐만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과장하는 것으로 보여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국제보건 거버넌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요 국가의 언론보도 행태가 함께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과학의 정치화와 맞물려서 안티백신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이른바 ‘백신 민족주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언론의 역할도 존재하지는 않을까? 해외 언론들의 보도행태와 그 영향을 함께 다루어야 본 논문의 연구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 사회 문제 뿐만 아니라 국제보건위기를 대처함에 있어서도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허위정보(misinformation)이 여과 없이 시민사회에 유통됨으로써 정보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하기보다는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의미는 크다. 다만 앞서 지적하였듯이, 언론의 비판받을만한 보도행태가 실질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아니라)를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분석대상에 있어서도 국내 언론 뿐만 아니라 해외 주요국들의 언론보도 행태와 그 영향이 균형감 있게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발표 3 정의의 관점에서 본 국제평화 : 롤즈의 ‘안정성’ 개념을 중심으로 (인지훈,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정의의 관점에서 본 전쟁과 평화: 롤즈의 정의로운 전쟁과 시민성의 의무

롤즈의 정의론은 적용 범위에 따라 지역적 정의, 사회정의, 지구적 정의로 구분되며, 각 영역은 동심원적 구조 속에서 서로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목적 추구의 한계를 정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지구적 정의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기준과 원칙은 시민 개개인이 정의로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하는 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중세 신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발전한 전통적인 정전론은 전쟁법(jus ad bellum), 전시법(jus in bello), 전후법(jus post bellum)의 삼분법적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롤즈 역시 동일한 구조에서 출발한다. 롤즈에 따르면, “무법국가(outlaw states)”가 두 가지 잘못된 행위를 – 정당하지 않은 침략행위 혹은 중차대한 인권침해 – 자행할 때 “만민들(peoples)”은 전쟁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jus ad bellum은 jus in bello의 여러 원칙들 – 민간인 면제, 최고 비상 상황, 적국에 대한 태도 등 –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전후체제 건설의 성격, 주체, 절차와 관련된 jus post bellum은 개전의 정당한 이유와 다시 연결된다. 즉, 새로운 정체는 자국 내 인권을 보호하면서 대외적으로 우호적인 일원이 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전론의 세 영역은 만민법의 구조 속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만민법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를 이루며,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의 핵심적 지위를 지니게 된다.

롤즈의 정전론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거 종교적 혹은 형이상학적 토대를 지닌 전통적인 정전론과는 달리 사회계약(원초적 입장)에 의한 정치적 합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점이다. 롤즈는 “시민성의 의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입헌민주정체에 필수적인 정당성(legitimacy)의 요구를 대외정책 결정과정까지 확장시킨다. 그럼으로써,
대외정책의 정당성은 국내의 정치적 정당성의 일부가 된다. “만민법”은 전쟁을 둘러싼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현대 사회의 점증하는 관심과 국가이익의 원리가 압도하는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이론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토론 3 정의의 관점에서 본 국제평화 : 롤즈의 ‘안정성’ 개념을 중심으로 (표광민,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 발표문은 정전론, 정당한 전쟁에 대한 사상적 전통 속에서 만민법에 기반한 존 롤즈의 정전론을 분석하고 있다. 존 롤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중요한 자유주의 사상가이며, 이 발표문은 흔히 한 사회 내부에서의 정의를 다룬 것으로 좁게 논의되어 오고 있는 기존의 시각들을 넘어, 롤스가 전쟁이라는 국제정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접근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발표문은 롤스의 정전론을 정전론 논의의 전통 속에서 위치시키고 있다. 정당한 전쟁에 관한 논의는 현실주의의 원형인 투키디데스의 멜로스 대화로부터, 이에 대비되는 초기 기독교의 평화사상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정전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거쳐 근대와 현대의 정전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 속에서 롤스는 전 인류를 포괄하는 만민법 사상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전론을 구성하고 있음을 이 발표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롤스가 기반한 자유주의 만민법 사상 자체가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민법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자유적 만민이라는 개념 자체는 자유주의의 개념적 가설이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근대정치의 발전을 추동한 핵심 동력으로 자유주의가 확장되며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계몽주의를 통해 사상적 형태를 갖춘 자유주의는 프랑스 혁명으로 현실화되었고, 양차대전 직후인 20세기 중반에 들어, 다양한 국제법, 국제기구 등이 설립되면서, 이른바 인권혁명을 통해 명실상부한 인류의 발전방향으로 인식되어 갔다. 인간의 역사가 결국 자유주의로 귀결되리라는 신념은 냉전의 해체와 이를 역사의 완성이라고 주장한 후쿠야마에 의해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즉, 인간의 정의는 자유주의의 지구적 실현이라는 믿음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 아래 전세계의 자유화, 민주화를 위한 무력사용, 즉 정당한 전쟁을 불사했다. 그러나 이미 90년대에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 벤자민 바버의 지하드 vs 맥월드 등을 통해 자유주의적 가치는 인류의 진리가 아니라 서구에 국한된 문화적 산물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신념은 911 테러로 인해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다. 롤스가 말한 무법국가outlaw state 용어와 흡사한, 깡패국가 rogue state라는 용어가 테러와의 전쟁에 사용되었으나,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무력을 사용하는 국가 주권 자체에 깡패의 속성이 있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저는 롤스의 사상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토론자의 입장으로서는, 그러므로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전론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 발표문은 결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전쟁은 도덕적 판단의 제약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도덕적 판단은, 국가간 관계에서도 적용 가능한, 즉 국가를 넘어서는 초경계적 인류 집단의 공통의 규범이 판단기준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을 때의 정치란 politics가 아닌 policy로서 대외정책을 의미하며, 클라우제비츠가 당연시한 유럽 세력균형체제에서 국가의 대외정책은 도덕이 아닌, 외교적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칼 슈미트는 유럽 근대 국제질서가 국가간 관계에서 도덕과 윤리를 제거하고,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국가간 공적 관계로 전환시킨 것을 근대 국제법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유럽 근대국제질서를 부정하며, 국가를 초월한 인류 공동체와 국제규범의 가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는 이러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라는 신념을 인간이 무수한 전쟁과 투쟁 끝에 도달한 진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적 가치, 인권, 여성의 권리, 언론의 자유, 교육받을 권리 등은 세계 곳곳에서 그 가치를 부정당하고 있다. 커다란 좌절을 겪은 자유주의 기획, 그리고 그 사상적 형태로서 롤스의 정전론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수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발표문 전체 원문은 본 홈페이지의 워킹페이퍼 10, 11, 12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