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I 워킹페이퍼 No.12] 정의의 관점에서 본 전쟁과 평화: 롤즈의 정의로운 전쟁과 시민성의 의무
인지훈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5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서론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발상은 A Theory of Justice (1971; TJ)에서부터, “The Law of Peoples(1993)”, “Fifty Years after Hiroshima(1995)”를 거쳐, Law of Peoples (1999;LP)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발전되었다. 비록 단계마다 중요한 차이를 보이지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원칙이 국제정의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은 일관된 형태로 지속된다. 더 나아가 롤즈에게 국제정의는 정의론의 전체적 구조의 한 축으로 기능한다. 즉, 롤즈의 정의론은 적용 범위에 따라 사회제도들과 연합체에 적용되는 ‘특정 영역의(local) 정의’, ‘사회 기본구조(basic structure)의 정의’, ‘지구적(global) 정의’로 나뉜다.¹ 서로 다른 영역에는 각기 다른 고유한 원칙들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들이 상호 분리된 체 독립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족, 직장, 학교, 교회와 같은 작은 규모의 결사체들(associations)의 일원인 동시에 특정한 경계를 지닌 사회의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구성원이고, 그러한 사회의 대외적 표현인 ‘만민(people)’²에 속해 있다. 이 세 영역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좋음’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그 한계를 부여하기도 한다.³ 한 마디로, 세 영역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안정성과 국가 간 전쟁의 도덕적 특징에 대한 롤즈의 견해를 해석하는 일은 국제정의, 더 나아가 그의 사상체계 전반에 대한 고려 속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점에 특히 유의하면서 다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견해는 TJ, PL의 내부로부터(within) 연속성을 지닌 체 발전된 것이다. 둘째, 롤즈는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이론적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셋째, 정의로운 전쟁 이론4의 세 가지 구성요소 –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 – 는 롤즈의 사상체계 내에서 충분히 개념적으로 구분되지만, 전쟁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이와 같은 의도 속에서 우선 정전론의 지적 전통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의 이론적 구조에 따라 롤즈의 만민법을 분석하도록 한다.
2. 정전론의 지적 전통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초기 발상은 사회 정의의 일부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조건을 논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다(TJ §58). 롤즈에 따르면, 전쟁의 이유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전쟁 중에 도덕 법칙이 반복적으로 위반될 때 시민들은 전쟁 참여를 거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참여를 거부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TJ 334-335). 여기서 확인되는 사실은, 롤즈가 ‘전쟁 개시를 위한 정당한 이유(jus ad bellum)’와 ‘전쟁 중 준수되어야 하는 법칙(jus in bello)’5의 두 기둥에 의해 뒷받침되는 오래된 정전론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러한 사상사적 전통을 간단히 개괄하도록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철학에서 ‘전쟁의 도덕성(morality of war)’에 대한 발상은, 한편으로는 전쟁의 문제에서 도덕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의 본질적인 악을 허용하는 도덕론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평화주의 사이의 비좁은 길을 걸어왔다. 국제관계에 대한 전자의 관점은 투키디데스의 멜로스 대화를 통해 인상적으로 제시되어 오랜 기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정의에 대한 그럴싸한 말 보다는 … 실현가능하고 필연적(feasible and necessary)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 인간의 영역에서 정의에 대한 판단이란 이를 강제할 정도의 동등한 힘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다. 강자가 권력에 의해 용인되는 것을 실행하고 약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Thucydides vol. 5, para. 89).”6 이와 대조적으로 후자는 초기기독교의 강한 평화주의에 의해 대변되었다. 고대 로마의 초기 기독교는 산상수훈에서 제시된 예수의 평화 메시지7를 충실하게 따랐다. 이 시기 신학자들은 신앙인이 칼을 드는 순간 교회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퀘이커교를 비롯한 기독교 개별 교파들을 통해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김병곤 2019, 27).8
지금과 같은 정전론의 체계는 역설적이게도 고대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중세 . 기독교 세계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기존의 교리에 포함시켜 전쟁법(jus ad bellum)과 전시법(jus in bello)을 두 축으로 ‘기독교적 정전론(Christian Just War Theory)’을 전개시켰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적대적인 상대의 악행(wrongdoing)으로 말미암아 현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1887, Bk 19, ch. 7)’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참여하는데서 오는 종교적 딜레마를 해소하고자 했다. 전쟁은 여전히 유감스러운 악에 해당하지만, 때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Moellendorf 2014,
379). 전쟁에 대한 기독교적 정당화는 이후 아퀴나스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발전하게 된다. 그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첫째, 전쟁은 최고의 정치적 권위(sovereign political authority)에 의해 수행되어야만 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복수심이나 욕심에 의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 전쟁은 정당한 이유(just cause)가 존재할 때에만 허용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이때의 이유는 상대방이 저지른 악행과 관련된다. 셋째, 전쟁의 의도는 올바른 것이어야만 한다. 즉, 전쟁은 선을 증진시키거나 적어도 악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Thomas Aquinas 1920, [1265-1274]).
이후 Grotius와 Pufendorf와 같은 저술가들은 근대적 자연법에 기초하여 전쟁의 정당한 이유와 수단을 논함으로써 정전론에 대한 논의는 세속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Grotius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은 정당한 원인과 더불어 비례성(proportionality), 성공 가능성, 공적인 전쟁선포, 합법적 권위,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의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곧 이은 근대 국가의 등장과 주권(sovereignty)에 대한 법적 승인으로 말미암아 정전론은 잠시 무대 뒤로 밀려나게 된다.
Walzer(2004)에 의하면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이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정전론은 한편으로 부당한 전쟁에 대한 비판적 기능과, 다른 한편으로 정당한 전쟁에 대한 옹호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학계 뿐만 아니라 정치가들과 군인들의 주된 언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 윤리학과 법학의 영역에서 정전론은 ‘정당한 명분’, ‘최후의 수단’, ‘합법적(legitimate) 권위’, ‘비례성’, ‘올바른 의도’, ‘성공 가능성’, ‘전쟁목적의 제한’ 등의 다양한 세부적 기준들을 둘러싼 폭넓은 논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이종원 2008).
정리하자면,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여러 이론적 입장들은 일부 전쟁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전쟁의 목적과 수단을 제한하려는 이중의 목적을 지닌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Ramsey 1961). 이에 대해 Walzer(2004)는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정전론은 옹호와 비판을 동시에 견지할 것을 요구한다. …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표현의] 형용사와 명사 사이에는 심원하고도 영구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 정전론은 어느 특정한 전쟁에 대한 변론이 아니며, 동시에 전쟁 그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도 아니다. 이는 계속적인 사찰과 내재적인 비판을 가능케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22).
롤즈는 이상과 같은 정전론의 지적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다. 다만 그의 독창성은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그의 설명이 정의론의 전체적인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3. 원초적 입장과 만민법
롤즈는 국내 사회에서 ‘정의의 두 원칙’을 도출할 때 사용했던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을 국경 밖의 사회에 확장시킨다. 이제 고립된(closed) 사회를 전제했던 TJ에서와는 달리 각각의 사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부족한 자원에 대한 상이한 요구들은 때로는 심각한 갈등으로,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롤즈의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기준은 원초적 입장을 한번 더 사용하는 방식으로 도출된다. 내부적으로 각자 (합당한 정도로) 정의로운 사회 기본구조를 지닌 만민들의 대표들은 무지의 장막(the veil of ignorance[TJ §24; JF §6) 속에서 서로간의 요구와 갈등을 조정할 근본적인 원칙들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회발전 수준, 자원보유량, 지정학적 위치, 상대적 국력의 크기에 대해 알지 못하며, 오로지 합리적 선택이 가능할 정도의 일반적 지식만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된다. 그럼으로써, 당사자들은 자신의 특수한 처지가 줄 수도 있는 “위협의 이점(threat advantage[JF 16])”9을 합의의 절차 속에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무지의 장막으로 인해 계약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실제 상황에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TJ 11), 이를 통해 합의된 원칙들은 모든 만민들에게 공정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10
이처럼 LP에서의 원초적 입장은 국내 사회의 경우와 동일한 목적과 원리를 지니고 있지만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규명하려는 LP의 동기로 인해 국내의 경우보다 다소 복잡한 구조11를 보여준다. LP의 두 번째 원초적 입장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일단 첫 번째 단계에서 자유적 만민들의 대표들이 무지의 장막 속에서 만민법의 원칙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 적정수준의 만민들이 동일한 원칙들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롤즈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유적(그리고 적정수준의) 만민들은 다음과 같은 만민법의 여덟 가지 원칙들(LP 37)에 합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만민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다. 다른 만민들은 이들의 자유와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만민은 조약과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만민은 평등하며 자신들을 구속하는 약정에 대한 당사자다.
넷째, 만민은 불간섭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다섯째, 만민은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방어 외의 이유로 전쟁을 일으킬 권리는 없다.
여섯째, 만민들은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일곱째, 만민은 전쟁 수행에 있어 특별히 규정된 제약 사항들을 준수하여야 한다.
여덟째, 만민은 정의롭거나 적정 수준의 정치체제와 사회체제의 유지를 저해하는 불리한 조건하에 사는 다른 만민을 원조할 의무가 있다.12
그런데 만민법을 위한 원초적 입장은 방법론적 순서상 국내 사회의 원칙들이 정해진 이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원칙들의 조합은 다소 의문스러운 점을 안고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만민들이 상호 불간섭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자유적(혹은 적정 수준의) 만민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영토 확장이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른 침략 전쟁은 개념상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정의로운 내부 사회구조를 유지하려는 동기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이 정당하다’는 다섯번째 원칙과 전쟁 수단의 제약을 언급한 일곱 번째 원칙은 비록 앞선 네 가지 원칙들과 충돌하지는 않을지라도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여섯 번째 인권 존중의 원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롤즈는 인권이란 자유적 만민들의 국내 사회에서 보장되는 권리들의 부분집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최소주의적 인권의 목록은 별도의 만민법에 의한 제약이 없더라도 만민들의 사회의 구성원들 스스로 국내의 사회적 정의관에 따라 충분히 보장하고 있을 것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을 넘어 임의적으로 선별한 것처럼 보이는 만민법의 여덟 원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LP에서 ‘비이상적(nonideal)’ 이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상적 이론만을 고려하자면,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 모두 상호 간에 전쟁을 도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얼마든지 합당한 만민법의 원칙들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만민법의 최종적인 형태는 이러한 비이상적 상황에 대한 대응을 포함하게 된다. 만민법에 포함되어 있는 정전론의 요소들을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로 나누어 분석하고, jus post bellum에 담겨진 실천적 함의를 덧붙임으로써 롤즈의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4. Jus ad Bellum
롤즈의 만민법은 크게 ‘이상적(ideal) 이론’과 ‘비이상적(nonideal)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적 이론은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이 안정된 만민들의 사회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두 단계의 원초적 입장은 그러한 조건들을 도출하기 위한 이론적 장치이다. 하지만 “중대한 부정의와 광범위한 사회악이라는 극도의 비이상적 조건 때문에(LP 89)”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에 롤즈는 LP에 ‘비이상적 이론’을 추가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어떤 정체들은 합당한 만민법에 대한 준수를 거부할 것이다.13 이들은 합리적인 이익의 증진이 전쟁 수행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여긴다. 롤즈는 이러한 정체들을 “무법 국가(outlaw states)”로 부른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경우도 특정 정체는 무법 국가로 분류될 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질서 정연하지 않으며 인권을 침해한다. 그러나 주변국들에 대해 공격적이지 않으며 침략할 계획을 품지도 않는다. 이들은 불리한 여건 때문에 고통을 겪지는 않지만, 단지 그 국가 내에 특정 소수파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정책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국가들은 합당하게 정의로우며 적정 수준의 만민의 사회에서 권리로 인정된 것을 침해하기 때문에 무법 국가로 간주된다(LP 90n1).
정리하자면, 1)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전쟁을 벌이거나, 2) 자신의 국경 내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무법국가’는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제재의 대상이 될 것 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정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롤즈에게 전쟁의 권리는 합리적(rational) 이익이 아니라 합당한(reasonable) 이익에 기초한다. 이때 합리적인 것이란 일차적으로 행위자가 자신의 고유한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판단과 숙고의 능력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목적과 이익들에 우선성을 부여하고 목적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채택하거나, 다른 사항이 같다면 보다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선택하는 행위자의 특징을 일컫는다. 이와는 달리 합당한 것은 공정한 협동의 조건으로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채택된 조건들을 기꺼이 준수하려는 도덕적 덕목을 의미한다(PL Lect. Ⅱ. §1). 만민들의 대표들은 무지의 장막으로 말미암아 ‘다른 만민들이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각 만민들이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제안하게 된다. 롤즈의 추론에 따르면, 만민 상호간에 합의할 수 있는 합당한 제안은 전쟁의 권리를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에 제한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자.
일단 침략을 받은 만민과 그 동맹(LP 91n2)은 자연스럽게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할 정당한 권리를 지닐 것이다. 이때 자유적 만민과 적정 수준의 만민은 자기 방어의 권리를 해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자유적 만민은 “자신의 영토를 수호하고, 시민들의 안보(security)와 안전(safety)14을 확보하고, 자신의 자유로운 정치제도와 시민사회의 기본적 자유와 자유로운 문화를 보전(LP 29)”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유, 즉 경제적 부나 천연 자원의 확보, 권력과 영토 확장 등의 이유는 정당한 전쟁의 이유가 되지 못 한다. 만민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 서술에 따르면 그들은 그러한 동기 자체를 지니지 않는다. 만민의 근본적인 이익에 대한 고차원적인 관심은 한편으로 자신의 사회 제도들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가 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이익과 무관한 이유로 전쟁을 해
서는 안 되는 의무의 근거가 된다(인지훈 2021a, 205).
적정 수준의 만민 또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전쟁할 권리가 있다. 롤즈에 따르면, 그들의 사회 제도들은 비록 자유적이지 않더라도 수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적정 수준의 만민은 사회 내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자신의 협의 위계체계 속에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합당한 만민법을 수용하고 준수한다(LP 92). 따라서 그들은 만민들의 사회 내에 규정된 의무와 권리의 담지자로서 자기 방어를 위한 경우라면 정당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15
이와 같은 자기방어 외에도 인권 보호를 위한 군사적 개입은 전쟁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된다 이때 롤즈에게 . 인권은 “특별한 종류의 긴급한 권리들(a special class of urgent rights[LP 79]”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여기에는 ‘노예와 농노 신분에서 벗어날 자유, 양심의 자유,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로부터의 보호’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하는 무법국가는 비난 받아야 하며, 중대한 경우에는 강제적 제재와 심지어 내정간섭을 받을 수도 있다(LP 81).” 따라서 자신 혹은 동맹의 방어를 위한 전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가들은 롤즈의 인권 개념이 지나치게 협소하다16고 비판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롤즈의 추론에 비춰보더라도 원초적 입장에 참여하는 자유적 만민들은 만민법의 원칙에 더 많은 자유주의적 권리들을 포함시키려 할 것이다. 롤즈의 인권 목록은 국제법과 규범에 의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온 것보다도 협소하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원초적 입장을 합리적 모델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의 방법론적 목적은 계약의 당사자들이 서로의 정치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는지를 반영하는데 있다. 이 때문에 롤즈는 원초적 입장이 ‘대표의 장치(a device of representation[JF 17])’17라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따라서 만민들의 대표가 참여하는 국제적 원초적 입장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만민들’의 관계를 조형(model)하려는 롤즈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만민들의 대표는 합리성에 기초하여 특정 합의에 도달하지만, 이때의 합리성은 만민들의 상호성에 기초한 합당성의 제약에 놓이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만약 자유적이지는 않지만 관용할 수 있는 만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롤즈의 가정에 동의한다면, 인권의 목록은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권리들을 배제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비판가들(Teson 1998, Buchanan 2004)은 롤즈의 인권 개념에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지 않은 점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들에 따르면, 적법한(legitimate) 정부를 가진 국가들만이 불간섭의 권리를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적법성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에, 민주적 정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군사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민주 평화”에 대한 가설에 의해 뒷받침된다. 롤즈 역시 M. Doyle과 B. Russett에 의해 제시된 경험적 근거들을 인용하면서 “입헌적으로 안정된 자유적 국가들이 상호 간에 전쟁을 해야 할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에 대한 칸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수용한다.
칸트의 가설인 평화적 연합(foedus pacificum)이 충족되는지는, 일군의 입헌정체들이 지닌 조건들이 입헌민주정체를 지탱해 주는 요인들을 갖춘 그러한 체제들의 이상에 도달한 정도에 달려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민주적 만민 간의 무력 갈등은 이러한 만민이 이런 이상에 근접하면 할수록 사라질 것이다(LP 54).
롤즈의 말대로 “민주평화”가 만민법을 지지해준다면, 모든 만민들의 정체가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하게 정의로운 만민들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jus ad bellum의 정당한 이유가 자기 방어와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democracy)”가 인권의 목록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롤즈가 인권에 자유주의적 기본권들과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만민법에서 인권이 담당하는 특별한 역할(LP §10.2) 때문이다. 롤즈에게 인권은 국가의 자기결정권이 지닌 자율성의 한계이자 개입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
첫째, 인권의 구현은 한 사회의 정치제도와 법질서의 적정성(decency)에 대한 필수조건이다. 둘째, 인권의 구현은, 정당화되고 강제적인 타 만민의 간섭, 가령 외교적·경제적 제재나 중대한 경우에 군사력을 통한 간섭을 배제하는 충분조건이 된다. 셋째, 인권은 만민 간의 다원주의에 대한 한계를 설정한다(LP 80).
즉, 롤즈의 인권은 국내의 정치 사회적 제도들의 적정성에 대하여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필수적인 기준들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롤즈의 인권론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의 문제는 ‘민주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정 수준의 만민이 존재할 수 있다’는 롤즈의 전제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설령 이러한 전제를 거부하더라도 또 다른 실천적인 문제 역시 고려해야만 한다. 국제관계에서 평화와 안정이 지닌 무게감을 고려해 볼 때 만민법에 광범위한 권리의 목록을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인권의 목록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각종 제재의 폭도 그 만큼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18
게다가 만민법에 제시된 최소주의적 인권 개념이 포괄적인 인권 개념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롤즈는 만민법에 언급된 권리들이 “여러 인권들 중에(Among the human rights are…[LP 65])” 일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롤즈는 사회적 안전이나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과 같은 경제적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가 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Brock 2014, 348-350). 그의 의도는 인권의 본질과 토대를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위한 확고한 지침을 마련하는데 있다. 만민들의 사회에서 좀 더 포괄적인 인권들은 대외정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시민단체들과 학계, 언론 및 개인 등의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국가들의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롤즈는 인권을 jus ad bellum의 맥락 속에서 다루고 있다. 이로써 만민법의 다섯 번째 원칙(만민은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가 있다)과 여섯 번째 원칙(만민들은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이 jus ad bellum에 대한 원칙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리고 일곱 번째 원칙(전쟁 수행에 있어 특별히 규정된 제약 사항들을 준수하여야 한다)은 jus in bello를 반영하고 있다. 만민법의 여덟 원칙들이 임의적을 선택된 것이라는 의구심은 정전론의 전통적 구조를 통한 분석을 통해 해소된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반대 방향에서 제기되는 비판에 대한 대답도 제공해준다. 즉, 자유적 만민들과 적정 수준의 만민들이 애초에 타 만민들의 내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가? 무법 국가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섭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심지어 무법 국가들이 다른 만민들에게 위험하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매우 약한 경우에도 정당한 개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LP 93n6)? 인권의 토대를 인간성 자체에서 발견하는 인도주의적 정당화의 방식에 따르면, 보편적 인권에 대한 침해는 국제기구, 국가, 개인들 모두의 이해관계와 결부된 문제가 된다. 이 경우 인도주의적 개입은 국경과는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요청될 것이다. 하지만 만민법은 하지만 만민법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포괄적 교리가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 따라 제시된 것이다.
5. 전쟁수행법(Jus in Bello)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로 정의 내린다. 그에 따르면, “전쟁이란 한층 더 규모가 큰 전투에 불과하다. 전쟁 당사자 각각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물리치고, 상대방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전쟁이란 무력행위이고, 무력을 사용함에 있어 한계란 없다.”19
쌍방이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혹은 발포 이후 전면전에 돌입한 상황에서조차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군사적 수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롤즈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군사적 고려는 왜 만민법의 제약에 놓여야만 하는가? 롤즈에 따르면 군사적 고려에 따라 특정한 조치들과 정책을 결정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수단-목적 추론이나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공리주의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TJ에서 롤즈는 제 아무리 더 많은 양의 복리를 가져오는 사회정책일지라도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지닌 불가침성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원초적 입장의 논증을 포함하여 TJ의 많은 부분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할애되었다. 마찬가지로 제 아무리 높은 군사적 효용을 가진 수단이라고 할지라도 만민법의 도덕적·정치적 이상(ideal)이 침해되는 것을 자유적(적정 수준의) 만민들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롤즈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 행위의 한계는 무법 국가의 ‘지도자들과 관료들’, ‘군인들’, ‘민간인’을 구분하는데서 시작된다. 무법 국가는 정의상(by definition) 질서 정연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의 민간인 성원들은 전쟁 준비와 개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참여자일 수 없다. 그리고 질서 정연한 사회와는 달리 이러한 사회는 공지성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하므로, 민간인들은 그러한 정책적 결정 과정에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사전에 알 수도 없을 거라고 가정된다. 그러므로, 전쟁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 기관을 통제하는 지도자들과 관료들에게 있다(LP 94).20 마찬가지 이유에 의해 상위 계급이 아닌 대부분의 군인들 역시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들은 대개 징집의 대상이며 군인으로서의 덕목을 (강제로) 주입받는다.21
적대국의 민간인들과 군인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인권 보장의 대상으로 남는다 . 따라서 전쟁 계획과 전략 및 교전 행위는 만민법에 명시된 “특별한 종류의 긴급한 권리들(LP 79)”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민간인들과 군인들은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거나, 양심의 자유를 제한받거나, 학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민법에서 인권은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 더 나아가 이후 설명할 jus post bellum에서 정확하게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22
jus in bello에서 롤즈의 설명이 독특한 점은 위와 같은 전쟁 행위를 제한하는 원칙에 중요한 예외사항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롤즈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인들에 대한 직접 공격이 허용되는 “최고 비상 상황으로 인한 면제(Supreme Emergency Exemption)”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함락된 1940년 6월부터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과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 사이의 기간이 이에 해당한다. 롤즈가 보기에 이 시기는 독일의 우월한 전력을 격퇴할 만한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었던 시기이므로 독일 도시들에 대한 폭격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롤즈의 논거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나치즘은 모든 지역의 시민 생활에 대해 무수한 도덕적, 정치적 악행의 전조”라고 판단되었다. 둘째, “유럽 역사에서 입헌 민주주의의 위치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위협 앞에서는 입헌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질서 정연한 사회들이 최고 비상 상황으로 인한 면제에 호소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다(LP §14.3).
정전론의 본질이 특정 전쟁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전쟁의 이유를 제한하려는 이중적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 비상 상황의 개념은 정당화될 수 없는 호소를 부각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45년 2월 드레스덴 폭격과 1945년 봄부터 이루어진 일본 폭격과 연이은 원자폭탄의 사용은 ‘최고 비상 상황의 면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LP 99-101).
롤즈가 핵무기의 사용 자체를 반대한다는 문헌적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최고 비상에 해당하는 시기에 원자폭탄, 수소폭탄, 중성자탄과 생화학무기 등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롤즈는 이러한 무기의 사용을 허용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Sterba(1987, 123)는 핵무기의 사용이 명백히 비도덕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jus in bello에 대한 롤즈의 기준은 이와 같은 비례의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높지는 않지만 롤즈는 만민의 정의로운 사회제도의 존립 자체가 위태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오로지 그러한 경우에만 핵무기의 사용을 받아들일 것이다. ‘최고 비상’이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에 따른 상황을 의미한다.
롤즈의 이러한 주장은 만민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한다. 만민법은 일차적으로 자유적 만민의 대외정책을 위한 기준과 원칙을 제공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민법의 목적은 “모든 사회가 결과적으로 ‘질서 정연한 만민들의 사회’의 완전한 성원이 되도록 유도(LP 93)”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자유적 만민들은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자신의 정의로운 사회 기본구조를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러한 목적은 현존하는 적국과의 관계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전쟁은, 적국 국민들에게 그들이 어떤 처우를 받게 될지 알려 주고 향후 지속적이며 우호적인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들로 개방적이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적국 국민의 입장에서 보복과 복수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나 공상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 현재의 적국을 공유되고 정의로운 평화 체제에서 미래의 동료로 분명하게 여겨야만 한다(LP 101).
전쟁 수행의 방식은 전후 관계에 대한 전조가 되기(foreshadow) 때문에 jus in bello는 전쟁 이후에 적국과 어떠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만 한다.23 따라서, jus in bello와 jus post bellum은 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사고될 수밖에 없다.
6. Jus post Bellum
정치 철학에서 jus post bellum은 앞선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까지 국제법과 정전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살라망카 학파(Escuela de Salamanca)의 비토리아(Francisco Vitoria)와 수아레즈(Francisco Suarez)는 정당한 전쟁의 단계를 ‘개시-수행-승리 이후’의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이들은 전쟁의 승리를 반드시 기독교적 미덕과 겸손에 일치되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칸트에 의해 계승되어, 영구평화를 위한 법체제 확립의 근간이 될 정의로운 전쟁의 권리(혹은 법)를 유사한 삼분법에
기초하여 발전시킨 바 있다.24
현대에 들어, 법학의 경우, 국제법상 전쟁 자체가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동시에 법실증주의가 대두되고,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현실주의가 지배적 사조의 지위를 점하면서 정전론의 영역은 교전법규에 대한 제한된 논의로 축소되었다. 특히 현대전의 특징상 ‘전후(post-war)’의 시점이 갈수록 불분명해지는 현실은 jus post bellum이 과연 개념적으로 유용한지에 대한 의문을 지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Walzer(2006)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25은 비전통적인 전쟁과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jus post bellum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전후 상황에 대한 기존 법체계의 한계26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27
비록 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LP 적은 없지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롤즈의 설명에 비춰 봤을 때 그가 jus post bellum의 근본적인 발상을 충분히 지지하리라 판단된다. 지금까지의 추론에 따르면,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주변 국가를 침략하거나 심각할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는 군사적 개입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적절한 절차28에 의해 대상 국가의 정권이 제거된 뒤에는 얼마간의 (적어도 중앙의) 권력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이제 정전론의 남은 과제는 어떠한 전후 체제가, 어떠한 절차를 거쳐 건설될 것인가에 답하는 일이다.29
LP는 전후 교전국이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지니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자원들을 담고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만민들의 자기결정권과 불간섭의 권리에 대한 롤즈의 강조는 비자유적 사회에 대한 관용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도 자유적 만민들은 ‘적정 수준의’ 만민들을 정치적 제재를 통해 변화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LP 122-123).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건데, jus post bello와 관련된 롤즈의 첫 번째 원칙은 “가능한 짧은 기간의 점령”이 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단 평화가 확실하게 재확립되면 적국 사회도 자율적인 질서 정연한 체제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 적국의 국민들은 항복 이후 노예나 농노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일정 기간이 지난 뒤라면 완전한 자유가 거부되어서도 안 된다(LP 98).
다음으로, 롤즈에게 jus post bellum은 jus in bello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전쟁 수행 시 준수해야 하는 원칙들에 대한 다음의 언급은 분명하게 ‘전쟁의 종식(ius post bellum)’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질서정연한 만민들은 실행 가능할 때 자신들의 행위와 선언을 통해 전쟁 기간에 자신들이 지향하는 평화의 종류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관계의 종류를 사전에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어떤 종류의 만민인지를 공개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과 전쟁을 끝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그 사회들의 역사적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아 미래의 전쟁을 위한 무대를 설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LP 96).
그리고 더 나아가 이 jus post bellum과 jus in bello의 두 요소들은 jus ad bellum의 필수적 부속(addendum)이라 할 수 있다(Bass 2004, 389). 전시와 종전은 시간 상 연속된 것으로 전자의 기간이 후자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동시에 전쟁의 정당한 이유 – 자기방어 혹은 인권 침해의 방지 –의 지향점을 달성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전후 민주 정체를 세우려는 정치적 시도가 정당화 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롤즈의 생각을 유추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만민법의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목적을 고려해야만 한다. jus post bellum의 핵심은 질서정연하지 못한 국가가 만민들의 사회에서 우호적인 일원이 되도록 지원하는데 있다. 따라서 새로운 만민의 정치체제가 반드시 자유적 민주주의의 특징을 지닐 필요는 없다. 롤즈는 다만 이들이 적어도 ‘적정성(decency)’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Walzer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히 민주적이면서 연방주의적인 이라크의 수립’을 추구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jus post bellum은 최소주의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정치 이론은 전쟁 이전과 전쟁 중의 정의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후 정의에 관한 설명에 있어서는 중심적인 원리들을 제공한다. 그 중심적 원리들은 자기 결정, 대중적 정당성, 시민권, 그리고 공동선의 관념을 포함한다. 우리는 패전국에 민주적으로 선택된 정부 – 혹은 적어도 국민들이 정통성을 갖는다고 인정하는 정부 – 그리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정부가 전쟁 이후에 수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 국가 내 소수자 집단이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이웃 국가들이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이 빈곤과 기아로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란다(Walzer 2004, 164).
만약 민주적 정치 구조가 지나치게 생소하여 대중들에게 손쉽게 이해되거나 포용되지 못 한다면? 전후 정치체제의 가장 주요한 전제는 작동가능하고, 안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이해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빈번하게 그들은 ‘공공선(common goods)’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롤즈에 따르면, 이것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포괄적(comprehensive)’ 교리를 토대로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적 삶이 가져다주는 경건함, 전통에 대한 고수, 근대적 권리가 아닌 시혜와 자비의 원리 등 각자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에 기초한 ‘좋은 삶’에 대한 사회적 지향점이 존재한다.
전쟁으로 인해 붕괴된 정치·사회적 체제의 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정당한(legitimate)’ 해야만 한다. 첫째, 그 사회의 성원들이 새로운 정체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다른 만민들이 새로운 사회가 정당한 정체를 지닌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롤즈는 이를 위해 LP에 ‘적정성(decency)’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정당성(legitimacy)’의 조건은 jus post bellum를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평화구축활동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설령 당장의 대량학살을 인적 바리케이트 등의 방법을 통해 일시적으로 중단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가 장기적으로 볼 때 자유롭고 독립된 성원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적정성(decency)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실현가능한 정부의 형태들 중 자유주의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체제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민주적 체제를 강제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정당화될 수도 없다(Bernstein 2006, 293). 롤즈의 만민법은 다만 그 사회가 적정 수준의 만민이기를, 따라서 새로운 법체계가 공동선의 정의관과 함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고 요구할 뿐이다.
이상의 논의는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 그리고 jus post bellum이 개념상 상호 구분될 수는 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으로 현대에 들어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적 구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평화구축이 단순히 충돌의 종지(conflict termination)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사안을 포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전론의 세 체계는 종종 중첩되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7. 결론 : 정의로운 전쟁과 시민성의 의무(the duty of civility)
전쟁 행위는 특정한 정치집단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도로 조직화된 인간 집단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다. 정치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은 도덕이 아니라 정치적 신중함(prudence)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에게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주장은 기껏해야 국가이익 추구를 위한 가면에 불과하거나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군사적 모험주의의 불쏘시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본질적으로 ‘죽이는(killing)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정전론은 도덕과 정치의 이와 같은 심대한 간극을 메꾸기 위한 이론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클라우제츠의 말대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전쟁은 도덕적 판단의 제약에 놓이게 된다. 전쟁과 관련된 정치적 결단이 공동체 다수의 정의감the (sense of justice)에 의해 통제될 때 전쟁은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롤즈는 전쟁을 포함한 대외정책 역시 다른 국내의 사회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 정당성(legitimacy)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적 만민들에게 전쟁의 원칙들은 입헌적 민주주의의 일부가 된다. 롤즈는 이를 ‘시민성의 의무(the duty of civility)’를 통해 강조한다.
만민의 시민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무가 요청된다. 첫째, 만민들의 사회에서 “공직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행정 수반, 입법가들은 만민법의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며 이를 준수하고, 다른 사회들과 관련된 자신의 대외정책이나 국가 업무를 추진 혹은 변경하는 이유를 다른 만민들에게 설명(LP 56)”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민들의 대외정책은 다른 만민이 합당하게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들, 즉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유들에 기초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전쟁 수행과 종결 과정에서 분명하게 전쟁의 목적을 천명해야 한다. 그것은 전후 체제에 대한 공식적 약속이 될 것이며,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둘째, 시민들은 “자신을 마치 행정 담당자나 입법가인 것처럼 간주하고, 어떠한 대외정책이 무슨 근거로 지지될 수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는 존재(LP 56-57)”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자유적(혹은 적정 수준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정부가 다른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대외정책을 오로지 정책을 입안하는 소수에게 맡겨두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국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방면에서도 시민들은 집합체로서 정부의 권력에 대한 저자(author)가 된다.30
중요한 점은 전쟁의 원칙들이 전쟁 이전에 충분히 제시되고 알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원칙들은 단순히 다른 사항들과 저울질되는 여분의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군사적 고려가 도덕적 판단을 압도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도한 바 있다. 바로 이러한 필요로 인해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 아직 미완의 초고이니 인용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1.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가족, 교회, 학교, 직장’과 같은 단위에 적용되는 정의, 둘째, 사회의 기본 구조(사회의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에 적용되는 정의, 셋째, 만민들 간의 합당한 관계에 대한 정의로 나뉜다(Justice as Fairness: Restatement[JF], 11).
2. 롤즈는 LP에서 전통적인 ‘주권국가’가 아니라 ‘만민(people)’을 주요 행위자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이익에 따라 설정된 국가 목표”에 따른 전쟁을 허용하고, 자국민을 대하는데 있어 일정한 자율성을 허용하는 전통적 주권 개념은 국제 사회의 공정한 협력을 위한 원칙을 구성하려는 LP의 목적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만민’은 ① 합당하게 정의로운 입헌 민주 정부 ② 공통된 감정(common sympathies)에 의해 결속된 시민들 ③ 상대방에게 공정한 조건을 제시하는 도덕적 특징을 지니는 행위자로 묘사된다(LP 23-27). 롤즈의 ‘만민’이 지닌 존재론적 특징에 대해서는 인지훈(2021b)와 Pettit(2006) 참조.
3. 롤즈가 구성주의적 방법을 통해 ‘옳음’과 ‘좋음’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인지훈(2021c) 참조.
4. 이후부터는 이를 ‘정전론(just war theory)’이라 줄여서 부르도록 한다.
5. 이 두 가지 항목에 대한 공통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종원(2008)은 이를 각각 ‘전쟁결정시 충분조건’과 ‘전쟁수행조건’, 선우현(2016)과 조의행(2018)은 ‘전쟁 개시의 정의’와 ‘전쟁 수행의 정의’, 김형구(2009)는 ‘전쟁 개시에 관한 법’과 ‘교전법규’로 옮기고 있다. jus는 어원상 ‘법’과 ‘권리’를 동시에 의미하며, 정당화(justification) 혹은 정당성(legitimacy)과 관련된 광의의 의미로는 ‘정의’라고 옮길 수 있다. 윤리철학과 법철학에서 서로 다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는 김형구(2009)의 134쪽 각주1 참조.
6. 이 부분은 Jeremy Mynott(2013)과 Johanna Hanink(2019)의 영문 번역을 참고하여 한글로 옮겼다. Walzer(2006, 5-6)에 따르면, 이때의 ‘자연적 필연성(necessity of nature)’은 멜로스인들 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장군들에게도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즉, 능력이 있는 모든 곳에서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은 강자에게 조차도 선택이 아니라 필연의 영역에 속한다.
7. 강한 평화주의에 대한 다음의 구절들을 참고하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9-10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38-39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3-44절).”
8. 물론 이상과 같은 평화주의에 대한 설명은 다소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있다. 폭력배제의 정도에 따라 ‘비폭력적(nonviolent) 평화주의’, ‘치명적(nonlethal) 평화주의’, ‘반전적(antiwar) 평화주의’로 구분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Sterba(1998)의 151-154 참조.
9. 만약 이러한 것이 허용된다면 부유하고 강한 권력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유리한 협동의 조건들을 이끌어낼 것이다. 그로인해 정의의 원칙은 개개의 환경에 대한 지식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되고, 당사자들의 합의는 공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Freeman 2019).
10. 이러한 방식으로 무지의 장막은 “사회적, 역사적, 자연적 경향성이 축적되어 발생하는 사회 세계의 우연성이 사회의 배경 제도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구조적으로 방지(JFPM 400)”한다.
11. 국내사회의 경우를 첫 번째 원초적 입장, 국가들(혹은 만민들)의 대표들이 참여하게 되는 경우를 두 번째 원초적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의 전체적 구조는 다음 표와 같다.
12. LP가 출판된 직후부터 학계에는 위와 같은 롤즈의 결론을 놓고 숱한 비판과 반박들이 진행되어왔다. Beitz(2000), Pogge(2004), Caney(2006)와 같은 자유적 코스모폴리탄들(liberal cosmopolitans)은 롤즈가 차등의 원칙을 국제사회에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고 원조의 의무(여덟 번째 원칙)에 머무르는 태도를 주로 문제 삼았다. 하지만 만민법에 대한 연구가 충실하게 축적됨에 따라 최근에는 국제관계에 대한 롤즈의 입장을 단순히 분배적 정의의 문제에 한정시키지 않고 좀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지하게 다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대표적으로 Williams 2014, Audard 2007, Lehning 2009). 롤즈의 정전론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경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13. 이처럼 ‘비이상적 이론’은 “특정한 시점에 우리 세계에 발생하는 특정한 조건들 ― 현 상황(status quo) ―”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이행(transition)의 문제”에 답하기 위한 것이다(LP 90).
14. 여기서 만민 자신의 안보와 안전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5. 아울러 “자애적 절대주의(benevolent absolutism)” 역시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 이 사회는 비록 모든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정치적 역할의 기회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인권을 존중한다. 따라서, 만약 대외적으로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대내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누구나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의 권리를 지닌다(LP 92).
16. 대표적으로는 Pogge(1994), Moellendorf(2002), Macleod(2006), Buchanan(2006), Ashford(2013) 참조.
17. LP에서 롤즈는 이를 “대표의 모델(a model of representation)”이라고 표현한다. 맥락에 따라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기는 하지만 ‘model’과 ‘device’를 통해 롤즈가 강조하고자 하는 요점은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는 LP §3.1과 “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1985)”의 400쪽 참조.
18. 게다가 만민법에 제시된 최소주의적 인권이 포괄적인 인권 개념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롤즈는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형식적 평등’ 등을
19. Von Clausewitz, On War, in War, Politics and Power, 63-72. 레이첼스, 『사회윤리의 제문제』, 357쪽에서 재인용.
20. 더 나아가 롤즈는 “종종 무지에 사로잡히고 국가의 선동에 동요하고 전쟁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 열광적이었다고 할지라도 민간인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LP 95)”고 덧붙인다. 최종적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그 국가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21. 얼핏 보아 롤즈의 이러한 관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된 전쟁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전시 잔혹 행위들에 대한 책임은 지휘체계에 따라 경중이 다를 수 있지만, 문제시되는 직접적 수행자로서 일반 병사 역시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롤즈가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국의 군인들 역시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대안이 존재할 경우에는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울러, 전시 ‘민간인 면제(immunity)’ 역시 적국의 민간인이 전쟁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전쟁 결정 자체에 대한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이 없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설령 민간인들이 전쟁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고 정치인들이나 고위 군인들보다 더 열광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언제나] 그 국가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지도자들(LP 95)”이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에서 일본군과 대치한 미군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LP 95n9 참조.
22. 이러한 점은 롤즈가 최소한의 인권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시 포로에게 광의의 인권 개념에 나열된 권리들을 보장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전후 국가건설의 기준과 원칙에서 인권이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해 봐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3. “Fifty Years after Hiroshima(1995[Fifty])”, 567 참조.
24. 현대의 전후법 연구에 대한 칸트의 기여는 Orend(1999) 참조.
25. 대표적으로는 Orend(2006)과 Bass(2004) 참조.
26. 김형구(2009, 141-144)는 이러한 한계로 jus ad bellum과 jus in bello의 이분법적 구분을 언급한다. 이러한 접근법에 기초하여 관련 규정을 담고 있는 헤이그협약(1907)과 제네바협약(1949)은 현대적인 평화구축활동의 특징들을 반영하지 못한다.
27. 이와 관련하여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된 jus ex bello의 개념도 존재한다. Moellendorf(2008)에 따르면, jus ad bellum, jus in bello, jus post bellum의 삼분 체계는 이와 같은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없다.
28. 예를 들면, 각종 인권협약에 근거한 UN 혹은 지역 국제기구들의 협의와 결의 절차, 사안의 경중에 따라 외교적, 경제적 제재 수단의 단계적 사용 등.
29. Pattison(2013)은 여기에 ‘누가 건설의 책임을 질 것인가’를 덧붙인다.
30. 롤즈의 정의론이 고려하는 것은 ‘개연성(probability)’이 아니라 ‘가능성(possibility)’의 영역이다. 이 때의 이론적 목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 비춰 봤을 때 우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정의이지, 실제의(actual) 현실적 조건들에 의해 일어날 것 같은(probable) 정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의무’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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