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I 워킹페이퍼 No.9] 동북아 비전통안보협력의 이상과 현실 – 한중일 재난협력을 중심으로

2021.06.18 2021.08.18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1. 문제제기

동북아지역은 지리적 근접성, 사회문화적 동질성, 지정학적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지역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으로 여겨진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지속되는 남북한의 이념적 대립구도, 북한문제를 둘러싼 각 국의 이해관계, 미중을 중심으로 한 세력다툼, 지속되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 등은 동북아지역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다양한 시도와 노력에도 동북아지역의 협력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여전히 상존하는 군사안보의 위협, 경제협력을 통한 시너지효과 등을 고려할 때,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이 지역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재난, 환경, 보건 등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위협의 도래는 동북아 지역 국가간 협력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전지구적 문제는 군사안보와 같은 전통안보와는 다른 형태의 비전통안보 문제이자, 인간의 삶은 위협하는 인간안보 문제로 국가간 연대와 협력, 상생과 공존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공통의 의제조차도 국가간 협력은 용이하징 않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협력을 위한 위기 극복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박한 국제정치 현실과 전세계적 위기 앞의 글로벌 리더십의 약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경쟁의 심화, 반세계화 정서의 확산과 편협한 민족주의를 목도하였다. 팬데믹 위기를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인 백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백신의 무기화 가능성을 높였고, 세계의 한 편에서는 백신관광을 독려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위협에 협력보다는 갈등이, 국가간 협력보다는 자국우선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북아지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감염병 확산의 공포 앞에 각 국은 국경을 닫았고, 정보는 공유되지 않았으며, 협력을 위한 움직임은 미미하였다. 결국 초국경적 위협에 대한 협력조차 실질적인 이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공동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당위적 명제가 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전통안보협력의 이상과 비전, 그리고 현실에서의 협력 이행이 어려운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2. 기존연구 분석 및 본 연구의 의의

 

국내 정치학분야에서 비전통안보 및 인간안보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국제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질서에 미치는 안보적 영향을 평가하고, 한국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이근 2001; 현인택·김성한 2001; 이신화 2008), 새로운 글로벌 이슈의 등장에 따른 국제사회의 현실 분석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망을 담은 연구(이신화 2007), 안보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안보담론에 대한 연구(박인휘 2001; 전웅 2004; 폴 에반스 2006; 민병원 2012)등이 이루어졌다. 구체 협력사안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도 이루어졌다. 특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조류독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를 겪으면서 보건안보에 대한 연구들(이상환 2012, 조성권 2016, 이상환·박광기 2016, 조한승 2018)과 최근 주목받는 식량안보, 인권, 환경, 미세먼지, 재난 등을 사례로 다룬 연구들(최병학·이재현 2006, 강성주 2019)도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안보에 비해 비전통안보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연구들은 학문의 영역에서 비전통안보 연구에 대한 초석이자, 마중물의 역할을 하며, 비전통안보의 국제협력에 대한 논의를 증진시켰다. 보다 구체적으로, 비전통안보로 확장된 안보 개념에 대한 학술적 설명, 향후 국제사회에 미칠 변화와 우리의 대응방안, 구체 사례에 있어서 각 국의 대응현황에 대해 소개하면서 비전통안보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분야에서의 광범위한 지역협력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본 연구는 비전통안보협력에 대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비전통안보협력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아닌,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적 사례로 재난분야에서의 협력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재난 분야는 국경을 초월하는 대표적인 비전통안보 분야로 꼽히는데, 예측이 불가하고, ‘가해국’과 ‘피해국’이 없으며,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유사한 환경에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3. 비전통안보의 개념과 발전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시대적 변화는 안보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기존의 군사안보에 치중해 온 전통적인 안보 개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며 변화에 대한 고찰과 새로운 설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전통안보에 대한 관심은 전통적인 안보 논리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실제로 어떠한 안보위협이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는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나갔고, 기존까지 외교 또는 군사 분야에 한정하여 쓰이던 안보의 개념은 경제, 환경, 자원 등 다양한 분야로 범위가 확장되어 갈등을 넘어 협력과 공존을 모색하는 복합적인 양상과 포괄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까지 상위정치(high politics)로 다루어지며 우선시되던 군사안보영역의 ‘전통안보(traditional security)’에서 하위정치(low politics)로 간주되던 비군사적 영역의 ‘비전통안보(non-traditional security)’까지 논의의 범주가 확대되며(이신화 2008), 이를 합쳐‘포괄안보(conprehensive security)’의 개념까지 발전하였다. 이처럼 안보의 개념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부터 인간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까지 확장되었고(전웅 2004), 이러한 가운데 환경, 기후변화, 자연재해, 보건 등 국경을 넘는 전지구적 과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안보 개념의 확장적 논의 속에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안전의 문제들이 특정한 계기에 국가안보의 문제로까지 증폭되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개념도 나타나게 되었다(김상배 2016)

한편, 이와 같은 확대된 안보의 개념 속에서 각 국은 초국경적 위협 앞에 국가간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역내 상호의존을 통한 공존과 공영의 방안을 모색한다. 원자력안전, 에너지안보, 환경, 재난, 사이버스페이스, 보건, 마약 등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협에 대해 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짐에 따라 보다 많은 분야에서 상호연계성이 강화됨에 따라 한 국가에서 발생한 문제가 그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자국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타국이 직면한 위기가 곧 자국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4. 재난분야의 국제협력

앞서 언급하였듯,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은 예상만큼 용이하지 않다.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역사갈등, 영토분쟁 등으로 인한 신뢰부족, 국가간 상이한 정치체제와 사회문화, 역내 강대국들의 이권다툼 등이 영향을 미침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협력의 실현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아닌, ‘분야’가 갖는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앞서 제시한 7개 분야의 경우, 과거 군사·무기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전통’안보로 일컬어지지만, 그 면면이 동일하지는 않다. 첫째, 원자력안전, 환경, 보건 등의 문제는 사실상 문제의 시작점이 있는 ‘가해국’과 ‘피해국’이 있는 사안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과 처리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고, 혹은 환경적 측면에서 논의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문제의 시발점인 일본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다. 또 다른 예로, 환경문제의 한 예로, 미세먼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면, 중국이 불편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활발한 논의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일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발원지가 있는 의제의 경우, 논의의 진전은 쉽지 않다. 둘째, 역내 이권경쟁이 치열해 질 수 있는 사안의 경우, 협력이 용이하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안보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논의이다. 결국 자원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 에너지 문제와 사이버 공격, 테러 등 사이버 상에서의 안보에 대한 논의도 협력의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깊은 수준의 협력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비전통안보의 개념도 좀 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한편, 재난, 구체적으로, 자연재해의 경우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는 낮지만, 협력이 앞서 제시된 분야 가운데서 시급성과 필요성, 중요성을 모두 요구하는 의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 비전통안보 협력의제로서 재난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으로, 전통적 재난의 종류는 ①태풍, 홍수, 호우, 해일, 강풍, 가뭄, 지진, 황사, 대설 등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난’, ②화재, 붕괴, 폭발, 붕괴, 교통사고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를 입히는 ‘인적재난’, ③에너지, 통신, 교통, 금융, 의료, 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와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입히는‘사회적재난’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최근 발생하는 재난들은 기상이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대형화,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의 발생이 국가기반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화, 대형재난의 발생이 타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은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높인다.

오윤경(2017)에 의하면, 재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였으며, 상호연계되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다. 국제협력의 목적은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첫째는, 인도주의적 동기이다. 이는 재난 발생 시, 긴급구호 및 구호 물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관련 국제 지침이 마련되었다. 둘째, 정치외교적 동기로, 재난 분야의 정책, 제도 등을 소프트 파워의 수단으로 이전하면서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 ODA 사업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경제적 동기로,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인적·물적 교류 등 수출, 유상원조 등의 방식이 포함된다. 넷째, 상호의존적 동기이다. 재난안전관리의 공동대응, 정보공유 등을 위한 협력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목적을 바탕으로, 재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유·무상의 자본, 교역, 기술, 인력, 사회문화 등을 대상으로 국가, 국가기관, 비정부시민단체(NGO)와 민간기업 등이 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국제협력’이며, 다른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개발협력’이다(권대한 외 2011). ‘국제개발협력’은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에 비해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공여국이 수여국을 돕는 시혜적 관점보다 상호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원조를 넘어서는 총체적인 협력방식의 필요성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개발협력’관계의 국가들은‘국제협력’보다는 덜 상호주의적이며, 덜 평등한 관계를 지닌다.

 

  1. 재난분야의 국제협력과 한국

재난분야의 국제협력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은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발원조공여국으로서의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재난안전관리체계의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역할이다(오윤경 2017,4). 한국의 국제협력 역사는 1990년대 원조수원국에서 순수원조공여국으로 지위전환기를 거쳐, 1995년 세계은행의 차관 졸업국이 되었고, 1996년 29번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공여국으로서 국제원조사회에 들어섰다. 또한, 2000년에는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수원국 리스트에서도 제외되었고, 2000년대 원조의 급격한 양적 확대가 이루어졌다. 2010년에는 OECD/DAC에 공식가입하였고, 이후 공여국으로서 국제개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도 기준 한국의 ODA 지원국은 124개국이며, 증여등가액은 2,249백만불에 달한다. ODA 지원은 사회인프라 및 서비스 분야에 중점적으로 지원되어 왔으며, 2019년 기준 사회인프라 및 서비스에 36.6%, 경제인프라 및 서비스에 33.8%의 재원이 배분되어 두 분야가 전체 지원액의 70.4%를 차지하였다. 그 외 난민지원, 행정비용, 인도적지원, 생산부분 등에 지원하고 있다. 지원지역으로는 아시아 51.7%, 아프리카 26.2%, 아메리카 11%, 오세아니아 0.8%, 미배분 10.2%로 나뉜다. 이 중, 아시아 지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점협력국으로 네팔, 라오스,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 등이 있으며, 일반협력국으로는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중국, 태국 등이 있다.

한편, 교류협력은 주로 정보공유, 공동연구 및 의제개발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국제교류협력은 해외 주요국과의 MOU를 통한 교류협력, UNISDR 동북아사무소/글로벌연수원, UNESCAP/WMO태풍위원회 등과 이루어진다(오윤경 2017, 5). 구체적으로, 국가재난 및 안전관리의 총괄 연구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제업무로 △UNESCAP/WMO 태풍위원회, △ODA 사업 및 기술지원, △국제공동연구, △국제방제협력세미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국제공동연구는 한국·대만·일본의 국립방재연구원과 수행하고 있으며, 재난대응, 기술개발 등 다양한 국제세미나 등을 추진하고 있다.

 

  1. 한중일 재난협력의 현황과 과제

그렇다면 동북아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지리적 인접성이 높은 중국, 일본과의 재난분야에서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한중일 3국은 재난 분야를 비롯한 비군사적 안보위협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재난 분야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한중일 3국은 태평양으로터 발생하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고, 더욱이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 중국은 유라시아판 지진대에 위치하여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역내 높은 인구 밀집도를 고려할 때 피해의 위험이 매우 크고(박계호 2012), 상호간의 직간접적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자료에 의하면, 재난 분야와 관련하여, 한중일 간에는 장관급 2개, 국장급 1개, 실무자급 3개의 협의체가 운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회의체로는 2008년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재난관리 협력 공동발표문」에 기초한 한일중 재난관리기관장회의(2009~), 한중일 지진협력청장회의(2004~) 등이 시행되었다. 국장급 회의체로는 한·중·일 재난관리기관장회의를 위한 고위실무자회의(2009~), 실무자급 회의체로는 한·일·중 재난구호 도상훈련(2013~), 한·일·중 재난관리전문가회의(2011~), 동아시아지진연구세미나(2011~) 등이 시행되고 있다(상세사항 개최현황은 아래 [표] 참조).

[표] 한중일 재난관리 협의체 현황 (2021.5.24. 기준)
구분 회의명 개최현황 참가국/기관
 

장관급회의

한·일·중 재난관리기관장회의 1차. 2009.10.31. 일본,고베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소방방재청

TCS

2차. 2011.10.28. 중국,북경
3차. 2013.10.30. 한국,서울
4차. 2015.10.27. 일본,동경
5차. 2017.09.07. 중국,탕샨
6차. 2019.12.05. 한국,서울
한·중·일 지진협력청장회의 1차. 2004.10.15. 일본,동경 중국: 지진국

일본: 기상청

한국: 기상청

2차. 2005.10.26. 한국,서울
3차. 2006.11.25. 중국,북경
4차. 2008.11.29. 일본,동경
5차. 2010.11.17. 한국,제주
6차. 2013.01.13. 중국,보아오
국장급회의 한·중·일 재난관리기관장회의를 위한 고위실무자회의 1차. 2009.06.02. 한국,서울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국민안전처

2차. 2011.08.31. 중국,북경
3차. 2013.08.27. 한국,서울
4차. 2015.08.04. 일본,동경
실무자회의 한·일·중 재난구호 도상훈련

(TTX, Table Top Exercise)

1차. 2013.03.14. 한국,서울 중국: 민정부

일본: 외무성, 내각부

한국: 외교부, 소방방재청, KOICA, 국립중앙의료원

JICA, UNISDR, TCS

2차. 2014.03.06. 일본,동경
3차. 2015.04.28. 중국,북경
4차. 2016.06.22. 한국,서울
한·일·중 재난관리전문가회의 1차. 2011.12.16. 일본,동경 중국: 민정부

일본: 내각부

한국: 소방방재청

UNESCAP, UNISDR

몽골, 인도네시아, 라오스, 필리핀, 독일, TCS

2차. 2014.03.28. 한국,제주
동아시아지진연구 세미나 1차. 2011.10.21. 중국,북경 중국: 지진국

일본: 기상청

한국: 기상청

2차. 2012.10.31. 한국,제주
3차. 2013.07.31. 중국,지린
출처: TCS https://tcs-asia.org/ko/cooperation/mechanism.php?topics=6 참조하여 필자 작성 (검색일: 2021.5.24.)

 

이와 같은 협력은 앞서 언급한 협력의 종류 가운데 정보공유, 공동연구 및 의제개발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협력 범주에 들어가며, 상호의존적 성격을 지닌다. 다만, 이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된 협의체는 2004년도에 1회로 개최된 ‘한중일지진협력청장회의’인데, 이 자료에 근거한다면, 한중일 3국의 재난협력의 역사는 길지 않고, 협력분야도 지진 등으로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위기 상황에 대한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대응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제 위기 발생 시 협력은 제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5. 결론을 대신하여

한국의 재난분야 국제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개발협력 의미의 협력은 공여국으로서 많은 국가들에게 경제사회적 지원을 주며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포괄적 의미의 국제협력은 주변국들과의 정보공유 등 국제세미나 및 공동연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중일 간에는 장관급, 국장급, 실무자급 등 다양한 수준의 협력의 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재난분야에 제도적인 협력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2004년도부터 다양한 틀의 회의체가 운용되고 있지만, 실제 지진, 태풍, 홍수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의 구호, 물자지원 등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우리나라의 해외긴급구호 등 대부분의 사업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접국인 일본, 중국과의 협조 체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협력과 교류협력의 비중 중, 교류협력의 비중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협력의 개념과 방향에서 오는 한계이다. 즉, 국제협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은 상호발전으로의 관점변화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여국에서 수여국의 시혜적 관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에서의 대부분의 협력은 주로 동남아 지역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강대국간의 세력 다툼이 첨예화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 혹은 한중일간 시혜적 관점이 높은 원조 형태의 국제개발협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둘째, 공통의 위협, 문제에 대한 접점 모색, 즉, 주제의 한계이다. 사안의 성격상,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알 수 있는 재난분야의 국제협력은 정보교류 및 기술개발, 상대국의 경험을 통한 교훈 및 훈련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동북아 국가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지진의 경우, 한국, 중국, 일본 3국 모두 갖고 있는 공통의 위협이지만, 각 국의 체감하는 위협의 정도는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해, 한국 또한 지진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지만, 과거 큰 지진을 경험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지금도 지진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일본의 지진에 대한 위기인식과는 현저히 차이가 나타난다. 지진, 홍수, 태풍 등 한중일이 갖는 공통의 위협은 존재하지만, 각 국의 체감정도, 그리고 우선순위가 다르다. 결국 국가별로 위협을 느끼는 자연재해의 우선순위가 다른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과 역량을 우선투자하여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셋째, 비전통안보협력에 국가간 정치외교적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역스필오버(back spillover) 현상의 발생이다. 제한적인 정보공유와 기술협력은 상호신뢰에 기반한다. 즉, 국가간 관계, 정치외교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국가간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정치분야의 대립과 불신이 비정치적 분야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과거 유럽에서의 유럽철강석탄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은 리더십의 강력한 의지가 발현된 산물이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비전통안보분야의 협력에 대한 국제적 공조와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더욱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국가관계가 복잡화, 상호연계화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역내 협력은 더욱 긴요해진다. 그러나 비전통안보분야의 협력이 전통안보분야의 협력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금물이다. 비전통안보분야 또한 전통안보와는 다른 맥락에서 논의의 시작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고, 보이지 않는 국가간 이권다툼과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이 정치외교적 관계에 의한 영향을 받기 쉽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도발 등 당장 눈앞에 실존적 위협이 발생하면 비전통안보협력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로 놓이게 되는 한계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안보협력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국경을 초월하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비전통안보 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수불가결하고, 협력은 확대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비전통안보협력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실질적인 공동대응을 위한 생각의 전환, 그리고 환경 조성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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