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I 워킹페이퍼 No.4] 바이든 정부 하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대응
정서우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 이 페이퍼는 지암워크숍 #3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초록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미중 전략 경쟁의 주요 전선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기술 혁신 의지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으로 규정하고 대중 제재를 통해 이를 제한해왔다. 그렇다면 바이든 정부 하에서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본 논문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단기적인 타협의 동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미중 간의 기술 격차와 미국 국내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미중 기술 패권경쟁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술 경쟁에 있어서 미국의 다자화 전략이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될 경우 단기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미중 관계 전반이 악화되면서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첨예화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생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 기술혁신 역량 제고에 투자하는 한편 동류국과의 다자 협력 및 기술 발전과 관련된 국제 규칙과 표준 마련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서론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 본격화 되어온 미중 갈등의 핵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이 있다. 첨단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먼 미래의 정책 목표가 아닌, 국가 안보보장을 위한 핵심 요소이자 시급한 정책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5G, 반도체, 인공지능과 같은 대표적인 첨단 기술은 첨단무기의 성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군겸용(dual-use)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곧 경제적, 군사적 패권과도 연결된다.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이 단순히 경제 발전의 일환이라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혁신 의지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으로 규정하고 무역, 투자 제재 등을 통해 이를 견제해왔으며, 이러한 미중 간의 갈등 양상은 기술 냉전(technology cold war)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이러한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기술 패권에 있어서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은 정권과 관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인가? 미국 지도부의 교체는 갈등 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상당 부분 미국의 전반적인 대중(對中) 및 인도 태평양 전략과 결부되어있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가고 있는 구조적 환경,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정치적 유산, 미국 내 기업 로비 등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의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양상을 정리한 다음, 발생할 수 있는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그 가능성을 진단한다. 나아가 이러한 예측이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제시한다.
미중 기술 전략 경쟁
중국의 기술 발전 전략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추진해왔다. 특히 시진핑 정부는 2016년 발표한 ‘국가 혁신 주도형 발전 전략강요’에서 ‘혁신 주도형 발전’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2020년까지는 혁신형 국가 대열에 진입하고, 2030년까지 혁신 선두 그룹에 진입하여, 2050년까지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설정했다. 또한 이를 위한 5개년 규획인 ‘13・5 국가과학기술 혁신 규획 (2016-2020)’에서는 첨단 분야 혁신, 기초연구 역량 제고, 창업 및 혁신 장려, 인재 육성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으며 국가의 장기 발전 목표와 연계된 과학기술 중대 프로젝트들이 제시되었다. 한편 이 기간의 제조업 혁신 발전전략으로는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되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제조대국’의 위치를 달성했으나 기술 역량의 부족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비교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중국이 글로벌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계획을 제시했다. ‘중국제조 2025’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핵심 기술자주화에 대한 중국의 의지다. 중국은 2025년까지 핵심 기초부품 및 재료의 국산화율을 70%까지 올리고, 핵심 산업 분야의 자체 연구 개발을 통해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첨단장비의 시장점유율을 대폭 상승시키는 등 핵심기술의 대외의존도를 낮추고자 하고 있다. 이는 불안정성에 대비할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기술 강국들의 잠재적 압력에 의한 타격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유경 2019). 특히 중국은 첨단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5G와 AI 기반 첨단 ICT 산업 발전을 추진하여 정부 지원과 민관협력을 강화해오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산업보조금 지급, 해외투자 유치, 창업 장려, 기초연구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영선 2018). 더불어 과학기술 혁신 정책과 일대일로 전략을 연계하여, ‘디지털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과학기술협력 및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 네트워크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연원호 외 2020). 기존의 개발협력 네트워크였던 일대일로를 기술 기반 신산업 영역에서의 협력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기술 이전, 인수 합병, 고급 인력 스카우트 등에 의한 선진 기술 습득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기업의 기술 이전이나 인수 합병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미국 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차별적 라이센스 제한 정책, 미국 기업 인수합병, 지적재산권 침해 등을 통해 미국의 선진 기술들을 불법적으로 취득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USTR 2018). 이러한 정책들의 추진으로 중국은 제조업 수출품 중 첨단기술 제품의 비중 및 첨단기술 제품의 수출 규모 증가,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상승 및 PCT 특허 출원 수 증가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5G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 육성책에 힘입어 중국이 관련 지적재산권(5G Standard Essential Patent; SEP)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5G 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중국의 지적 재산권 수입이 증가할 전망이다 (배영자 2019). 특히 화웨이는 5G SEP 특허 점유 1위 기업으로서 미국의 가장 집중적인 견제를 받기도 했다. 한편 AI의 경우 현재까지는 미국이 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으나,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더불어 막대한 인구, 다양한 언어 및 취약한 개인 정보 보호 수준으로 인해 빅데이터 형성에 적합한 환경에 힙입어 중의 기술 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된다 (연원호 외 2020). 또한 5G와 AI를 포함한 기타 신산업에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도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 입각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존의 노동집약적인 조립시험 부문을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공정과 설계 부문까지 확장해왔다. 최근에는 공격적 투자, 미국 기업 인수 합병 등을 통해 팹리스, 파운드리, 메모리 부문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배영자 2019).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 및 첨단기술 육성 전략에 대한 경계
한편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2015년 ‘중국제조 2025’의 발표 이후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 육성 정책에 대한 미국 내의 견제 분위기가 강화되었으며,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301조 조사 개시 이후 일련의 행정부 보고서들이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가장 먼저 미국 무역대표부가 발간한 ‘301조 조사 결과 보고서’는 중국의 강요된 기술 이전, 차별적 기술 인허가, 정부 지원 기업들의 공격적 해외 기술 구매 및 자산 취득, 정부 개입 사이버 침입을 통한 불법적 정보 탈취를 지적했다. 나아가 이러한행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 중국의 기술 이전 및 지식재산권과 혁신 관련 법률, 정책, 관행이 부당하고 차별적이며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규정했다 (USTR 2018). 유사한 맥락에서 백악관은 ‘중국의 경제침략에 관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국가 주도 기술개발 해외투자를 주요국의 핵심 기술 및 지재권을 획득하고 첨단기술을 탈취하는 경제 침략(economic aggression)의 한 형태라 규정했으며, 이것이 나아가 미국은 물론 ‘세계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주장했다 (OTMP 2018). 이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이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시장 왜곡 및 과잉 설비와 관련한 것이다. 예컨대 무역대표부의 2020년 ‘국별무역장벽보고서’는 ‘중국제조 2025’에 명시된 자주 혁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가 특정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대대적 정부 개입과 지원의 정책 수단을 사용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산업 분야에서 시장왜곡, 과잉설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USTR 2020b). 동년 발표한 ‘WTO 이행평가 보고서’에서도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으로 인한 시장 왜곡 문제가 제기됐다. ‘WTO 이행평가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WTO 보조금 협정 제25조에 규정된 보조금 통보 의무를 준수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였고, 아울러 이로 인한 미국 산업의 피해를 시정하기 위해 상계관세 조치혹은 WTO 분쟁해결절차를 활용하겠다는 의사가 피력되었다 (USTR 2020a).
대중 무역 및 투자 제재
한편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이러한 미국의 위기의식과 견제는 제도적으로도 반영되었다. 그 중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법은 무역 제재의 근거 법률이 되는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과 외 국인 투자의 심의를 규정하는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 FIRRMA)’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수출통제개혁법’은 2018년 8월, 2019 회계 연도 국방수권법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of 2019) 하 법률로서 도입되어 이전에는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이루어지던 수출 관리의 근거 법률이 되었다. 이 법을 통해 미국 상무부산하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중요한‘신흥 및 기초 기반 기술(emerging and foundational technologies)’을 지속적으로 식별하고 통제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확립되었다. 특히 재수출과 최종사용자 규제가 포함되어, 미국과 중국 기업 간의 직접 거래 뿐 아니라 미국산 기술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된 상품의 거래 및 여러 단계와 제3국을 통한 기술 및 제품의 이전이 금지되었다.
ECRA가 중국과의 기술패권 분쟁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화웨이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있다. 2019년 5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화웨이와 68개 계열사 거래제한명단(Entity List)에 포함시켜,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하거나 지적재산권을 대여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결정했다. 이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퀄컴 등 화웨이에 대한 기술사용 계약 해지 또는 거래 중단을 발표했다. 2020년 5월에는 이러한 조치가 연장, 강화되어 외국 기업들이 미국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여 제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결정되었다.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은 중국의 기술 분야 대미 투자를 이전에 비해 더욱 광범위하게 제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외국인투자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CFIUS)는 원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투자를 승인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FIRRMA는 이러한 CFIUS의 권한을 강화하여 외국의 지배권 획득으로 귀결되는 기업의 합병, 인수 등 투자 뿐 아니라 군사 시설을 비롯한 민감한 정부 시설에 인접한 부동산 거래, 핵심 기술 및 인프라, 민감한 개인정보와 관련한 비지배적 투자까지 심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 기업에 대한 불법적인 인수 및 지적재산권의 절도를 통한 중국의 선진기술 습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미국이 자국 기술이 중국으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투자와 거래를 제한 하는 양상이 지속되면서, 이것이 결과적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GVC)의 양분화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블록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탈동조화(economic decoupling)’로 표현된 이러한 현상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 사슬로부터 차단 및 고립 시키고자 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 일치했다고 분석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이후 기존에 자국 기업과 외국 정부에 일방적인 부담을 요구하던 데에서 벗어나 경제 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와 5G 청정 네트워크(5G Clean Network)를 추진하는 등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기술 공급망의 구축을 모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동맹 역시 기존의 지정학적 성격을 벗어나 지경학적인 기술 동맹의 성격을 띄게 될 가능성이 지적되었다 (이승주 2020).
전개 양상과 시나리오
그렇다면 1월 21일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와 어떻게 다르게 대응할 것인가? 우선 중국의 기술 굴기와 관련한 바이든 행정부의 현실 인식은 트럼프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중국 정부와 국가 주도 행위자들이 사이버 공격과 강제적 기술이전 등을 통해 미국의 창의성을 공격해왔다며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려는 중국의 시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이 불공정한 방식을 통해 기술을 육성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경제, 안보 이익에 해를 끼친다는 위협 인식은 두 정권이 공유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외교정책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지점은 민주주의와 인권, 다자주의에 대한 강조에서 발견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이전 정권에 비해 외교정책 결정과정이 전반적으로 더 전통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는 전반적인 대중 및 인도 태평양 전략 뿐 아니라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 임하는 전략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여전히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가고 있는 구조적 환경의 맥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정치적 유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어느 정도의 관성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의 양상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다자 대응 시도가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되어 미중 전략경쟁이 악화되는 시 나리오다. 둘째는 대중 강경책으로 피해를 입는 기술 기업들의 로비의 영향력 증가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기술력 우위를 유지하는 소극적 수단에 집중하며 상당한 수준의 타협이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미중 기술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되, 지적재산권 제도의 정비 및 불법 기술 탈취 제재와 관련하여 제한적 타협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다.
미중 전략 경쟁 악화
먼저 중국이 미국의 기술 우위에 도전하고, 양국이 모두 기술을 국가 안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연원호 외 2020; Kennedy et al. 2018). 즉 미국 지도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미국과 중국이 놓인 구조적 환경이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5G,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은 첨단기술은 민군겸용(dual use)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기술 혁신은 미국에게 사실상 무비 개발에 필적하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는 패권국과 도전국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중국제조 2025’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정책은 국가 장기 발전 목표 및 대전략과 긴밀히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위협적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중국이 ‘불공정하게’ 기술을 발전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첨단 기술 수준의 급격한 상승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불법적 기술 탈취를 ‘경제적 침략’이라 지적하는 것은 ‘공정’ 자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더라도, 중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기술 발전을 이어간다면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은 장기화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자국의 기술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국내정치적 차원에서도, 핵심 안보 요소로서의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과 대중 강경책에 대한 초당파적 지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회유책을 선택하기에는 정치적인 비용이 수반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내반중 정서는 정파를 막론하고, 그리고 정책 결정자와 대중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고 보여진다 (Pew Research Center 2020). 특히 FIRRMA와 같은 법안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는 중국의 기술 발전이 미국에게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중국에 대한 트럼프 이전의 대응, 즉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 곧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 하에 중국을 자유주의 경제 질서로 통합시키는 한편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하는 전략이 현 상황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팽배하다. 요컨대 민군겸용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기술패권 경쟁의 성질 자체와 미국 내의 폭넓은 반중 정서는 기술분야에서의 미중 전략 경쟁이 미국 지도부의 변화와 무관하게 장기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기술 분야의 미중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넘어 악화되기까지 한다면,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는가? 우선 외교정책에 있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다자주의에 대한 태도에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기존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의 약화와 함께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세력이 확장될 공간이 생겼다는 문제의식 하에 동맹을 회복하고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 주장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과 가치 기반의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한편 기술패권 경쟁의 맥락에서도 이러한 다자주의 및 가치 기반의 전략은 여전히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선거 캠프의 외교정책 전문가이자 국무부 장관 지명자인 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술을 자유를 촉진시키는 도구로 보는 반면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들은 기술을 통해 감시와 검열의 도구를 얻는 다는 측면에서 ‘기술 민주주의’와 ‘기술 권위주의’ 간의 분열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있다 (Schlesinger 2020). 이는 기술패권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대결과 연관시켜 해석함으로써 민주주의 동맹국 기반 다자적 대응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다자적 대응으로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한 첨단 기술 공급망의 구축 및 국제 기술 표준 마련 등의 전략이 가능하다. 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5G 공급 사슬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동류국(like-minded countries)들과의 상호 연대를 위한 첨단 기술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 안보 취약성을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후 EPN와 5G 청정 네트워크를 통해 시도했던 전략과 맥락을 같이하나,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국제주의 질서를 훼손하며 반중 전선을 이끌고자 한 것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 회복을 주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위협으로 여기는 국가 간 협력의 성공 가능성이 보다 높을 것이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2020년 11월에는 유럽연합이 중국을 유럽과 미국에게 공통된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바이든 행정부에 환태평양 동맹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이러한 예측에 힘을 실었다 (Saligrama 2020). 다만 이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손상된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 주도의 다자적 대응이 동맹국의 부담을 얼마나 경감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 볼 수 있다.
기술 표준을 마련함으로써 게임의 룰을 선제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의 전략 또한 가능하다. 동류국들과 기술 표준, 데이터 보호, 사이버 안보, 정보 윤리 등 영역에서 협력함으로써 기술 발전의 규칙을 선제적으로 합의하고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토니 블링컨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fully decouple) 것은 비현실적이며 바이든은 ‘국제 기술 표준을 결정’하는 등의 보다 효과적인 접근을 할것이라 말한 바 있다 (Shalal 2020). 한편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만약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서 이러한 다자적 대응의 구상이 지역 다자주의 전략 경쟁과 연계될 경우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다자안보체제 구축 전략을 중국의 부상을 선제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홍콩, 대만, 신장위구르 등 주권적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미국이 기술 영역에서 포괄적인 반중 전선의 구축을 시도한다면, 중국 역시 기술의 국내 자급도를 높이는 한편 다자적 대응을 모색하면서 대결적 블록의 형성을 통한 종합적인 경합 구도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승주 2020). 예컨대 미국이 자국 중심의 기술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면, 중국은 이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대한 양자적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미국 중심의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대안적 네트워크의 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개발 협력 네트워크로 출발했던 ‘일대일로’를 과학기술 연구개발 네트워크로 발전시킨 바 있으며, 디지털 실크로드, 우주 실크로드 등으로 이를 다각화시켰다. 만약 이러한 양상이 발전되어 미중 양국이 기술 분야에서 각자 다자주의적 경쟁에 임할 경우 기술 패권에서의 경쟁이 안보, 경제, 개발 등 영역을 포괄하는 지역 질서 차원의 대결과 연계되어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주 2020).
상당한 수준의 타협과 협력
고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 내 기업 및 이익집단의 선호 및 영향력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은 거래 축소와 인력 수급의 어려움,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기업들로부터 지속적인 저항을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 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안보를 목적으로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밑바탕을 만들면서 미국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반도체, IT와 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으로 피해를 본 업계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트럼프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로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 초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러한 기업 및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이 충분히 크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강경책을 지속하는 데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대중 제재 완화와 협력의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전통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채택할 것이라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술 기업 로비의 영향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을 수 있다. 기술 기업들은 최근 로비 규모를 대폭늘려 2019년 한 해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5천 3백만 달러 이상을 로비에 투자했으며 이는 월 스트리트, 제약, 에너지 회사들보다 큰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Kang et al 2020). 로이터 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은 사내정치 행동 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s: PACs) 및 직원들을 통해 2020년 바이든 선거 캠페인에 가장 큰 기부금을 제공한 기관들에 포함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Bose 2020).
이렇듯 대중 강경책에 미국 기업들의 피해가 따른다는 점,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기술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급도를 높이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직접적 제재보다 자국의 기술력 발전에 투자함으로써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방안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5G와 AI, 에너지, 바이오기술, 신소재 등 신기술의 연구개발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Buy American” 정책을 공약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전략적 정부 투자와 관련한 법안은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서 입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과 정치적 기대 이익이 충분하다. 이처럼 우선 연구 개발, 인프라,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기술력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한 다음, 국내정치적 합의를 이루어 중국과의 경쟁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으로 장기적인 수준의 타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래의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재정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등 속 일정 부분 타협
한편 이 두 시나리오 외에도 미중 기술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 일정 부분에서의 타협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여기며 다자적 대응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고 자국의 과 학기술 발전에 더욱 투자하는 정책을 펼치는 한편,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의 회복 및 양국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단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타협을 이루는 경우가 이러한 시나리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이후 중국의 국영 신문 환구시보는 바이든이 당선됨으로써 미중 관계가 보다 예측 가능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며, 중국이 바이든 팀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고 미중 관계의 개선이 ‘무역 논의를 재시작’하는 데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 20/11/08).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이 현재로서는 달성하기 요원한 수입 목표치와 수출 관세를 완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타결한 1단계 무역합의의 재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보도되었다 (Zhou 2020).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 1단계 무역합의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곧바로 없앨 계획이 없으며 현재의 합의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Friedman 2020).
한편 만약 대화의 재개가 이루어진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발동된 수출 및 투자 제재를 중국과의 협상을 위한 교섭 수단으로 활용하여 지적 재산권이나 환경, 코로나19 등 분야에서 미국의 입장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존재한다 (Lee 2020). 바이든 대통령은 1단계 무역 합의가 갈등의 핵심인 산업 보조금,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사이버 절도(cybertheft)와 같은 약탈적 관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협상이 재개될 경우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추진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경우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지적 재산권 침해나 산업 스파이 활동, 사이버 공격과 같은 불 법적 기술 탈취 관행과 더불어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등의 개선을 위한 중국의 조치에 제한적인 타협을 이루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 정책 다자화 노력을 통해 첨단기술 분야 기술 표준, 데이터 안보, 지적 재산권 등 의 영역에서 국제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갈등이 국제 제도의 범위 속에서 전개되고 불공정성 개선과 관련하여 제한적 타협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 장기적인 갈등 해결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산업 보조금 문제가 특히 협상이 어려운 쟁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특정 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산업 보조금에 대해 항의해 왔으나, 보조금은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원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의 지도부 입장에 서는 포기하기에 어려운 조건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중국 정부의 보조금 및 개입으로 인한 시장 왜곡 등 경제적 피해는 미국 입장에서도 개선이 절실한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핵심 쟁점을 누락한 상태에서는 합의 자체가 결렬되거나 이루어지더라도 제한적일 확률이 클 것이다.
종합하자면, 미중 간의 기술 경쟁은 미국의 기술 패권과 중국의 기술 굴기가 충돌하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으며 미국 국내적으로도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과 대중의 위협 인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 자체가 바뀔 확률은 적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반 미국 기술력에 대한 투자에 우선 집중할 확률이 높지만, 중국 기술에 대한 견제 역시 다른 한 편으로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대응에 비해 예측 가능하고 어떠한 기술이 통제 기술에 해당하는지 등과 관련하여 분명한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수위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며, 따라서 두 번째 시나리오보다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미국에서 경제 회복의 필요성과 국내정치적 문제에 대한 고려로 단기적 타협을 위한 동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중국 역시 1단계 무역합의에서 약속한 수입치를 달성하기가 요원한 상황에서 재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기 때문에 수출, 투자 제재 및 관세를 더욱 확대하기에는 모순을 감내해야 하는 측면이 있으며, 또한 대선 과정에서 강조한 기후 변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대화의 재개가 있으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미국의 대중 수출, 투자 제재 및 관세가 미국이 중국 기술 발전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한적으로나마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각각의 동맹을 강화하는 형태가 아닌 다자안보체제의 형태를 지향한다면 이는 중국을 자극하여 기술 영역에서도 경쟁적인 두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단 단기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미중 관계 전반이 악화되면서 기술 영역에서의 갈등도 첨예화 될 수 있다.
한국의 대응
한국은 미중 기술패권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미중 간의 일정 부분의 타협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나 두 국가 사이의 무역 규모만 증대된다는 점에서 크게 유리한 전개는 아닐 수 있다 (연원호 외 2020). 따라서 어떠한 협상의 타결이나 위기 상황과 같이 당장의 큰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갈등에 대응하는 장기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내 기술 혁신 역량 제고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이에 기술력 확보를 통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외교정책에 있어 자율적 공간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다. 특히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이며 중국으로부터의 수출이 전체 반도체 수출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중국은 반도체 해외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수출시장의 축소가 예상된다 (연원호 외 2020). 이에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 역량에 투자하는 한편, 반도체 공급사슬 안에서 한국이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이후 한국이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품목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 것이다 (배영자 2020). 또한 AI와 빅데이터 분석, 슈퍼컴퓨팅 등 첨단기술 영역에서 중국에 비해 1~2년 이상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주시하여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종민 외 2019).
둘째, 동류국과의 다자 협력을 통해 공동의 협상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고 미국의 대중 정책이 다자화 될수록 양자택일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특히 한국이 미국 주도의 다자 대응에 참여하고자 할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을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을 받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으며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등 국가들이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들과의 다자 협력을 통해서 미중이 갈등의 확산을 자제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공동의 협상 포지션을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셋째, 기술 발전 규칙과 표준을 마련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앞서 보았듯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중국에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국제 규범 준수를 유도하는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사이버 안보, 기술 표준 등과 관련한 다자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국내 제도를 미리 정비하고 한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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