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에 은폐된 ‘난간없는 사유’의 신화와 그 허구성 비판(2024)
- 저자 : 최치원
- 학술지명 : 한독사회과학논총
- 발행처 : 한독사회과학회
- 권호 : 34(4)
- 게재년월 : 2024년
초록: 아렌트는 ‘난간없는 사유’라는 메타포를 통해 자신의 사유방식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1958)이 전형적으로 말해주지만 그녀는 결코 난간없는 사유를 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버린 것은 단지 근대라는 난간이지 고대와 중세라는 난간까지 모두 버려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고대와 중세의 난간에 안주하고 있다. 고대의 전통과 권위를 줄기차게 강조하며 복원을 시도하는 아렌트에게 전통의 상실은 사실상 없는 것 혹은 빈말일 뿐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과 다른 행위를 하는 아렌트의 자기모순이 그녀의 사상에 내재된 특징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헤겔과 맑스가 주목했던 근대의 실천적 노동의 원칙과 사적 소유의 문제를 건드리지도 않고 오히려 고대의 난간을 붙들고 근대사회의 노동을 다루는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전개한다. ‘노동’과 ‘제작’ 그리고 ‘행위’는 단지 현실에 대한 사유를 위한 발견적(heuristic) 수단으로서 이념형(베버)에 불과함에도 그녀는 이에 관해 침묵한다. 헤겔과 맑스의 사상을 거부하는 아렌트의 난간에는 계몽에 반대했던 독일 역사주의와 낭만주의의 유산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렌트의 사상적 난간은 신학적·도덕적 선악의 논리와 심미적 미추의 논리라는 난간에 의해 강력하게 짜 맞추어져 있다. 그녀는 이러한 난간을 붙들고 노동, 제작 그리고 행위의 가치를 ‘활동적 삶의 위계’에 따라 서열화시키고 삶에 대한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사상적 난간의 실체를, 다양한 문학적·시적인 상징과 미사여구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서 알아보기 힘들게 채색하여 은폐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은 이점에서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상상 속에는 복음과 계시 그리고 예언의 요소를 간직되어 있다. 이것들이 아렌트 신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유하는 자신에게서 ‘난간’이 떠나버렸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인간의 조건을 놓고 본다면 메타포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자기모순적인 허구 아니면 독자를 현혹시키는 거짓말이다. 즉 그녀가 주장하듯이 난간이 실제로 사라져버렸거나 버려진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녀는 ‘난간’이 없었더라면 그녀가 원했던 사유를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사상 자체도 성립이 될 수 없었다는 자기모순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난간의 구조와 특성 그리고 그 지적 기원에서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