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슈브리프 No.5] 미국 정치 변화, 한미 정상 회담, 그리고 한미 관계 미래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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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변화, 한미 정상 회담,

그리고 한미 관계 미래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정치 변화, 어디로 가고 있나?

지난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된 한미 정상 회담은 임기를 1년 남긴 문 대통령과 임기 원년을 보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간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이 글은 한미 정상 회담을 계기로 본 미국 정치 변화와 한미 관계 전망을 다룬다. 문 대통령의 네 번째 방미였던 이번 회담은 지난 세 차례와는 크게 다른 느낌이었다는 점에 대해 일반 국민들과 전문가들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은 대통령제 정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 회담을 통해 만나는 양국의 지도자들 경우 대통령으로서 가지는 특성이 서로 부합할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속 정당, 이념 지향, 잔여 임기, 의회 관계, 지지 세력, 개인 스타일 등에 있어 비슷한 상황일 수도 있고 다른 형편일 수도 있다.

2017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문 대통령은 2017년 1월 20일 취임 선서를 한 트럼프 대통령과 대략 4년 정도를 함께 하였지만 모든 면에서 크게 달랐다. 일반적으로 다른 정당 혹은 다른 성향에서 초래된 두 나라 대통령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워낙 트럼프가 달랐다. 1952년 대선에서 당시 아이젠하워 공화당 후보가 “한국에 가겠다(I shall go to Korea)”라며 한국 관련 이슈를 부각시킨 이래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처럼 한국을 공개 비판했던 후보는 없었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 대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일자리 죽이기(job killing)” 거래라고 비판했다. 변덕스러운 성격임에도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만큼은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북한 지도자와의 단독 정상 회담을 두 차례나 추진한 것은 강한 안보와 미국 예외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트럼프의 미국은 경제, 동맹, 북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아니었다.

물론 트럼프가 보여준 또 다른 미국은 미처 우리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상당 기간 존재해 왔다. 동맹에 대해서 워싱턴과 제퍼슨은 어떤 나라와도 엮이지 말 것을 건국 초기부터 주문했다. 먼로 독트린을 통해 만들어진 비(非)개입주의 전통은 이후 자연스럽게 미국 국민들이 유럽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근거가 되었다. 국제 합의 파기 예도 적지 않다.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윌슨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1차 대전이 끝나자 공화당은 베르사유 조약을 부결시켰다.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카터 대통령은 대만과 맺었던 상호방위조약을 하루아침에 폐기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이 국제 사회 리더로 부상한 냉전 시대의 핵심 요소로는 남부 정치의 군사주의와 인종 차별이 포함된 반공주의(anti-communism)를 꼽지 않을 수 없다(“black-and-red scare”). 불간섭을 선호하지만 국방 예산은 오히려 증액한 트럼프에게 미국 남부 보수파가 열광하게 된 배경이다. ‘중국 때리기’ 역시 1979년 관계 정상화 이래 거의 빠짐없이 미국 대선 후보들의 단골 메뉴였다. 트럼프처럼 국제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이라는 예측 가능한 관행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어떤 한국 대통령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을 4년간 겪어야 했던 문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상황에서 너무나 익숙한 미국 지도자를 만나게 되었다. 36년 간 6선을 내리 하며 미국 상원에서 잔뼈가 굵었고 8년 동안 오바마의 부통령을 지내며 의회와 막후 협상을 벌였던 바이든이었기에 지난 대선에서 중도 공화당원 및 교외 지역 유권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진보파 샌더스에게 표의 확장성이 없었던 반면 무색무취한 바이든에게는 반대파의 견제가 없었다. 더구나 올해 1월 20일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을 놓고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는 중이다. 트럼프 퇴출이라는 지상 목표 외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을 21세기 루스벨트로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독려하여 비교적 빠른 시기에 미국 국민들 접종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고 우리 돈 2천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 의회 통과를 주도하였다. 6월 현재 인프라 확충 법안과 선거법 개혁 법안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트럼프에 비해 말수는 적고 성과는 많은 리더십 이미지를 나름 구축 중이다. 코로나 경제 위기 회복을 위해 민주당 주도의 큰 정부가 대규모로 재정을 지출하고 있지만 보수 공화당이 이전처럼 쉽게 비판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또한 의회를 잘 아는 바이든이 개인적 인연과 회유를 통해 법안 통과 신공을 발휘 중이다. 대중적 인기가 높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가지지 못했던 시대 상황이자 개인 역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미국 민주당 경선 때마다 국제 이슈 전문가를 자처했던 바이든은 특정 이념에 휘둘리지 않되 국내 정서를 무시하지 않는 전통적 민주당 대통령 외교 스타일을 고수중이다. 블링컨, 설리반, 캠벨 등 역대 최초로 북한과 아시아에 정통한 외교 안보 라인이 꾸려졌지만 이들 역시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과 경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이러한 미국 정치 변화와 지속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개최되었던 한미 정상 회담의 주목할 점 몇 가지를 짚어 보자.

 

한미 정상 회담, 어떻게 되었나? 

첫째, 두 대통령의 소속 정당, 이념 지향, 개인적 스타일 등 유사성이 잔여 임기라는 차이점에 비해 두드러졌던 정상 회담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 회담에 대한 국내 반응이 호의적일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각종 난제를 풀어야 하는 실무 회담과 달리 정상 회담은 두 국가 간 호의와 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다. 통역을 가로막고 자기 할 말만 무례하게 늘어놓았던 트럼프 스타일은 그 어느 나라 정상도 당혹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상대를 협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앞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 4년간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이에 반해 “조(Joe)”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불리기 좋아하는 이웃집 할아버지 스타일 바이든의 환대는 문 대통령과 좋은 궁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두 대통령의 임기마저 비슷했더라면 한미 관계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분석은 의미가 없다. 국제 이슈 현실과 국내 정치 상황까지 두 나라가 맞아 떨어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코로나 시대 경제 회복에 주력하는 바이든에게 한국 4대 기업의 44조 미국 투자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역시 한미 간 호혜적 동반자 관계 구축이라는 목표는 우리의 경제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단순 진리를 재확인시킨 사례다. 냉전 종결 이후 이라크 전쟁 실패를 겪은 미국은 이제 주고받는 외교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동맹 가치 역시 경제 이익으로 열심히 환산중이다. 예기치 않은 성과라고 볼 수 있는 미사일 자율 규제 지침 종료 및 대북 특별 대표 임명은 사실상 미국이 우리에게 준 답례품 성격이 짙다. 이는 한미 정상 회담 하루 전 극적으로 타결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 변화를 고려하면 잘 이해된다. 미국 국내 정치 판세와는 상대적으로 거의 무관한 한국의 경우 절대적 관계보다는 실질적 이해가 점점 부각되는 추세다.

셋째, 동맹 회복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미 관계 진척을 위한 한미 정상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모색은 쉽지 않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기존의 남북 회담과 북미 관계 합의를 바이든 행정부가 인정하기로 한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아직은 딱 거기까지인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의 전략이 드러난 셈이다. 44년을 워싱턴에서만 보낸 베테랑 대통령에게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전임 대통령의 선제적 대북 접근법을 고려해 보라 충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상호 신뢰 경험이 없는 북미 관계는 결국 일방의 포용 혹은 양보가 필수적이다. 미국의 상황 및 전략 변화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는 김정은 위원장도 먼저 움직일 기세는 아닌 것 같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의 정치적 스케줄로는 미국과 북한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설득하는 작업이 여의치 않다. 결국 미국의 내년 중간 선거 이전까지 정치적 계산과 북한의 코로나 및 경제 상황 변화가 극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 경우 비핵화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담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의 북한 버전도 전격적으로 물꼬를 틀 가능성이 있다.

넷째, 공동 기자회견 당시 첫 번째로 나선 미국 기자의 두 가지 질문은 한국이나 미국 모두 국제 정치가 국내 정치와 엮여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의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에 대한 진보 진영의 비판적인 목소리와 관련 질의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 분열은 없다며 이스라엘과의 유대감을 강조하였다. 같은 기자의 대만 해협 관련 질문과 문 대통령의 답변은 아마 이번 한미 정상 회담이 향후에도 계속 회자되도록 만들 것 같은 예감을 들게 한다. 문 대통령이 사용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표현은 회담 이후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한 중국에게 뼈아픈 대목임에 분명하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원했고 중국은 한국 여론을 의식했고 한국은 북한 회유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나온 다차원적 입장 천명과 상황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도 한국 대통령이 보여 줄 수 있는 비판적 중국 정책의 최대치 중 하나로 각인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 관계 미래,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난 70여 년간 군사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국제 관계 이슈일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의 굳건한 초석 위에 미국에게 필요한 한국, 한국에게 필요한 미국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동시에 한국 전쟁의 산물로서 맺어진 한미 동맹 경우 이제 냉전이 종식된 지 30년이 넘은 만큼 보다 새로운 시대 맥락에 맞도록 발전적으로 변해야 한다. 특히 동맹의 한 축인 미국이 냉전 종식과 9/11, 이라크 전쟁, 금융 위기 등을 겪으면서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국내적 시각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트럼프를 거쳐 바이든 시대에 이르면서 대외 군사 개입은 대폭 줄이고 보호 무역 방식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미국 외교가 발상을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시대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나 바이든 시대에 두드러지는 일본 중시 현상은 이제 한미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고차 방정식으로 변해 간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현재 어떻게 국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 어떤 이슈와 논쟁에 직면해 있는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커졌다. 국책 연구 기관과 더불어 대학 수준에서의 민간 차원 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보다 다양하고 진취적이며 자유로운 한미 관계 모색 분위기를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 관계의 현안과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신축적인 국내 소통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한미 관계에 관한 정부 조직 및 전문가 그룹을 꾸준히 확충하되 특히 커뮤니케이션 부분의 역량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현재 우려대로 신(新)냉전에 본격 돌입하여 결국 우리도 선택을 강요 받게 될 수밖에 없을지 여부는 대한민국 외교 역량과도 관련이 있다는 심각성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한미 동맹이 최우선임과 동시에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것 또한 우리와 다른 나라들이 동시에 처한 현실이다. 북한 핵문제는 동결이나 군축이 아닌 비핵화를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하고 한반도에서 전쟁 또한 절대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이용할지 역할과 전략을 찾아야 한다. 너무 낙관적인 것도 위험하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도 없다. 이를 위해서 G-2 시대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소극적이고 지엽적인’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한말 시대의 실패를 잊지 말고 현재 우리의 전략에 대해 ‘적극적이고 폭넓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 자주 국방, 기술 혁신, 수출 다변화, 중견국 외교 등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