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2기 B조 이경철 대표 인터뷰

박효정, 김사빈, 정효린 2021.10.08

평화와민주주의 연구소 인터뷰 팀 ‘폴인러브’ B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진로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현재 외교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외교부 이경철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폴인러브’ B조는 외교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조언을 담을 수 있는 인터뷰 질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대표님과 크게 외교관으로서의 삶과 조언에 대한 질문을 여쭤본 후 대표님의 ‘꿈’에 대해 여쭤보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경철 특별대표는 1968년생으로, 서울대 외교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영국 옥스포드대 외교관 과정을 마쳤다. 1991년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부 장관보좌관, 유엔과장 등으로 일하였으며, 해외에서는 뉴욕(주유엔대표부 총 6년),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 근무하였다. 인사교류에 따른 경제부처(기획예산처 및 기획재정부 과장) 경력이 있고, 우리나라가 2013년-14년 임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일 때 우리 대표단 실무총괄(Political Coordinator)로 활동하였다. 2020년 10월부터 외교부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 특별대표(정부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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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와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 좋아 보여, 대학을 외교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대학(’85학번)을 다닐 때는 1980년대 후반 사회적인 변혁기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외무고시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고, 행정대학원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여 외교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전공의 연장선에서 직업을 선택한 케이스입니다.

 

  • 대표님께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활동이나, 경험이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변혁기에 대학을 다닌 관계로, 학업에 집중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고, 시기적으로 해외여행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접해보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학업에 물론 충실해야겠지만, 학업 외적인 부분에서도 소양과 경험을 두루 넓힐 수 있는 활동을 할 것 같습니다.

 

  • 대표님이 읽었던 책이나 영화 중에서 대표님의 삶을 바꿔놓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어로 된 책 중에서 John Lukacs라는 저자의 「Five Days in London, May 1940」와 Henry Kissinger 박사의 「Diplomacy」는 제가 두 번씩 읽은 책들입니다. 「Diplomacy」는 일종의 외교사라고 할 수 있어 여기서는 제외하고, 「Five Days in London, May 1940」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지요. 간단히 책 내용을 소개하자면,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이 승세를 굳혀서 유럽 대륙 대부분을 장악하고, 사실상 영국만이 고립되어 남은 상황에서, 처칠 신임 영국 총리가 “독일과의 타협”과 “결사 항전”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리는 과정(1940.5.24-28)을 그의 일기와 편지와 같은 사료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처칠은 마지막에 “항전”을 결정하게 되는데, 당시의 세력 관계나 현실적인 부분만 보자면 타협(항복)하는 것이 현명했을지 모르지만, 처칠은 이를 뛰어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하되, 자유와 같은 가치, 그리고 비전과 철학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때 영국이 항복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으면, 현재의 세계 질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겠지요.

어떠한 판단은 여러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마지막에는 결국 가치와 신념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 국제무대에서 영어는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대표님께서 영어를 공부하신 방법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어 구사능력은 외교관 활동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저는 중학교에 가서야 영어 알파벳을 처음 익힌 세대이고, 더구나 문법, 독해와 작문 위주로 영어를 배워, 말을 통한 의사 표현은 거의 훈련이 안된 상태였습니다. 외교부에 들어온 이후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외연수 기회로 영국(옥스포드대 외교관 과정 및 런던정경대학)에서 2년간 공부하였는데, 당시 첫 해외 생활을 하며 적응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러한 과정을 겪어 나서야 영어 구사력이 늘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초임 외교관 시절에도 국제회의 등에 나가 언어능력과 실질내용 모두에서 국제수준에 비추어 너무나 부족함을 절감하였고, 그 이후 스스로를 계속 단련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가다듬어 나가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교관은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최소 3분 정도는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우리나라 “실무총괄”로 활동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될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가장 큰 특징은 필요한 경우 각 국가의 주권을 초월(override)하는 제재 등 강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유엔헌장, 특히 헌장 제7장에 따라, 모든 유엔회원국은 안보리의 결정을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갖습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6-97 임기와 2013-14 임기 두 번의 기간동안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임기 2년)으로 활동하였는데, 저는 2013-14 임기 때 주유엔대표부 공사참사관으로서, 우리 안보리 대표단의 “실무총괄”(Political Coordinator)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각 이사국(총 15개국 : 상임 5 및 비상임 10)의 안보리 회의 발언·투표와 대외적 대표 기능은 주로 대사급(대사 또는 차석대사)이 맡지만, 안보리 실제 운영과 이사국간 협의·소통의 상시적 채널로서 이사국별 1명씩을 “실무총괄”로 지정하여 운영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이사국이 공동제안국(co-sponsor)으로 참여하는 경우, 해당 이사국의 “실무총괄”이 결의안 원 제안국과 의장국측에 email로 의사를 통보하면, 공식 통보로 간주됩니다. 안보리 회의 소집 요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대표님께서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어의 중요성은 앞서 말씀드린 바 있고,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저는 대외적 소통에 있어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상대측과의 기본적 신뢰가 있어야 원활한 진전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조지 슐츠(George Shultz) 전 미국 국무장관이 생전에 100세를 맞이하며 쓴 글(2020.12.11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돌이켜보니 모든 문제 해결의 관건은 결국 “신뢰”(trust)이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외교관은 국익 반영이 본연의 임무이므로 당연히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 범위 내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직업을 가지신 대표님께서 가장 책임감을 느끼시는 순간은 언제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책적 사안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일을 다룰 때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정치학 이론에도 나오지만, 국가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존립 이유는 국민의 안전·치안 유지에 있는 것이고, 외교조직의 기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그간의 외교부 생활 중, 무력 소요사태에 따른 우리 국민 대피 지원(2004년 코트디부아르)이나, 자연재해 교민 피해 대처(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신속대응팀장 활동) 등에서 큰 보람과 책임을 느낀 바 있습니다.

 

  • 외교관을 준비할 때 지역 외교, 일반외교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분야별 장단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나라나 외교 조직은 크게 보아 “지역(geographical)과 기능(functional)” 또는 “양자(bilateral)와 다자(multilateral)”로 역할을 구분할 수 있는데, 당장의 직접적 이익 확보 차원에서는 지역/양자 외교가 당연히 우선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능/다자에도 경제·통상이나 영사 등과 같이 시급한 이익과 직결된 분야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높아짐에 따라, 코로나19, 기후변화, 국제평화·안보 등을 비롯하여 국제사회가 당면하는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마땅한 기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A와 B라는 대상이 있을 때, A만 줄곧 들여다본다고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B도 한 번씩 보아야 전체적인 맥락(context) 속에서 A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같은 원리로, 외교조직의 지역/양자와 기능/다자도 상호 교류와 보완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제2외국어에 따라 파견지역이 배정된다는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2외국어가 외교관 파견 지역 배정에서 주요 요소 중 하나라고 봅니다. 제2외국어 사용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우 통역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현지어를 최소한이라도 구사하는 것이 원활한 외교활동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자외교의 경우에도, 영어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상당한 비교우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엔 본부의 경우에도, 영어사용 지역(뉴욕)에 소재하고 있지만, 공식문서의 경우 유엔공용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및 중국어)중 적어도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와야 회람과 토의가 가능한 관행이 있습니다.

 

  • 대표님께서 외교관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과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외교관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소양은 외국어(특히 영어) 구사능력과 함께, 대외관계를 다루는데 필수적인 국제정치, 국제법 및 국제경제 등에 관한 지식이라고 봅니다. 외교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실무적·기술적 사항은 현업을 하면서 배워나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외교관은 공직자(public servant)이므로, 국민과 국익을 위한 봉사자로서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외교관은 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어, 대외적으로 활동할 때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수적이라 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난 9.13 유엔주관 아프간 문제 고위급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발언 하였는데, (평소에 외모관리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제 개인 자격이 아니라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것이어서, 직전 주말에 이발도 새로 하며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려 노력했었답니다.

 

  • 대한민국의 평화‧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는 불과 수십 년 만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아마도 거의 유일한 나라일 것입니다. 국제회의나 양자 협의 등에 참여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제 사회 내에는 역경을 이겨내며 이룬 우리나라의 이러한 성취에 대한 존중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평화와 민주주의는 많은 희생과 기여를 통해 성취된 소중한 가치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대표님의 과거의 꿈과 현재의 꿈 그리고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외교관은 국제관계의 작동을 직접 관찰하고 이에 관여하는 역할을 하므로, 이러한 국제관계의 원리와 이치를 잘 깨치려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지난 30년간의 외교관 생활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제 개인 소유라기보다는 공적 자산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남은 공직 기간 동안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이를 최대한 환류 시키고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10년 전 외교부 유엔과장으로 일할 때 고려대(글로벌 리더십센터)에서 유엔 외교에 관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다시 교류의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 합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나갈 인재들로서, 앞으로 마땅한 소임을 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가운데, 주변과 사회 전체도 살펴보는 넓은 시야와 여유를 유지해 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