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2기 B조 강민아 감사원 감사위원(감사원 권한대행) 인터뷰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인터뷰 팀 ‘폴인러브’ B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진로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현재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 강민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폴인러브’ B조는 국방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조언을 담을 수 있는 인터뷰 질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민아 감사위원은 1965년생으로,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정책학 석사 (Master in Public Policy)와 보건정책학 박사 학위(Ph.D. in Health Policy)를 취득했으며,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부원장, 경력개발센터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자문위원,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외교부 혁신 태스크포크(TF) 자문위원,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등 국가실무 행정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현재는 2018년 3월부터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22년 3월 4년의 감사위원 임기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다. 2018년부터는 G20의 공식자문기구인 Women 20(W20)의 한국대표와 한국장학재단의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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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위원이라는 직책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의 감사 위원 회의를 구성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감사원은 헌법 제97조에 따라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는 헌법기관입니다. 감사위원회의는 감사정책, 주요 감사계획과 감사결과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감사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감사위원은 4년의 임기로 임명되며, 감사원의 감사위원회의는 5인에서 11인으로 구성하게 되어있고 현재는 감사원장을 포함한 7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사위원회의는 감사위원회의를 지원하는 사무처에서 발굴한 감사 사항과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를 심의해 최종 의결합니다. 국가 전체 감사 체계로 보면 행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 각각 자체 감사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데 감사원의 감사위원회의는 국가 최고 감사기구 (Supreme Audit Institution)의 역할을 하며 여러 자체 감사기구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감사원에서 수행한 감사에 대해 최종 심의를 의결하는 기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위원님께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활동이나, 경험이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시절에 ‘창업’과 같이 도전적이고 과감한 활동을 하면서 실패나 거절의 경험을 겪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이후에는 나름 정책학, 경영학, 커뮤니케이션학, 보건학, 그리도 정치학 등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개발협력, 복지, 보건, 환경, 젠더 등 다양한 이슈를 연구하며 접해보았고, 국내와 해외에서 교수, 연구자, 그리고, 공무원의 역할도 맡아보았습니다. 또한, 미국과 유럽 국가 등 선진국 외에도 20여개 이상 개발도상국의 오지를 다니면서 나름 낯선 환경과 위험한 상황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도전적인 경험을 꽤 해본 편입니다. 그러나 대학시절 저는 도전의 기회를 충분히 넓혀보는 대신 스스로 익숙한 범위에 국한하여 경계선을 정하고 그 내부에서 활동하였던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대학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무한한 도전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했던 거죠.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념 중 하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입니다. ‘회복 탄력성’은 실패하거나 거절을 당했을 때 그것으로부터 회복할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히려 이전보다 더 탄력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사회 곳곳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개인과 조직, 사회와 국가의 회복탄력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이 거절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가장 단단한 개인적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시절에 무모해보이는 도전을 통해 작은 실패들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 실패로부터 회복하면서 나를 단단하게 하고 오히려 발전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위원님이 읽었던 책이나 영화 중에서 위원님의 삶을 바꿔놓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2015년도에 개봉한 개빈후드 감독의 ‘Eye in the sky’라는 영국 영화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간단한 영화의 내용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자살폭탄테러를 준비하는 사람의 정보가 입수되어 드론을 통한 폭탄 투하로 테러범을 피살하는 작전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침 폭탄을 투하하기로 한 장소에 근처에 사는 한 여자아이가 빵을 팔기 위해 나타나고 작전을 진행하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그 소녀의 죽음과 폭탄 테러범이 장소를 이탈하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작전을 진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해 관련 장관들이 난상토론을 진행하는 한편, 집행팀에서는 작전을 진행하게 될 경우 아이가 죽을 확률을 계산합니다. 영화의 결론을 미리 말씀 드리자면, 결국 계산된 확률에 따라 폭탄 투하 작전은 실행되고 소녀는 사망합니다.
정책 결정은 종종 이와 같은 선택의 딜레마에 당면하게 되는 데, 이 영화는 과연 누가, 어떠한 기준과 절차를 통해 이와 같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우리의 결정이 지게 될 책임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도록 하는 영화이지요.
또 다른 영화는 2020년 개봉한 와드 알 카팁 감독의 ‘사마에게’라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시리아 내전 중 영화 감독의 딸 ‘사마’가 태어나고 비참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이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담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의 참담한 장면을 담아내면서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탄생의 기쁨과 소소한 행복을 살아내는 개인의 삶을 여성 감독의 렌즈를 통해 선명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전쟁, 기근, 그리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전염병 등과 같은 사건들이 의사결정자들에게는 승리와 패배라는 단순한 결론이지만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서사적인 이야기이면서도 다양한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한권의 사진첩과 같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는 용기를 가지고 버티어 나갑니다. 여러분도 난민 캠프나 빈민가 쓰레기더미에서도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공공분야에서의 정책결정에 대해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이 두 영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성공 또는 실패, 승리와 패배의 확률과 통계적 수치로 환원하여 결정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 단순한 수치 뒤에 감추어진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는 예리한 섬세함과 따스한 힘을 잃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인생은 점들이 연속돼 만들어진 선’이라는 말과 같이, 위원님이 ‘점’이라고 생각한 경험이 지나고 보니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경험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점’들은 제 삶의 순간순간에 제가 만난 사람들입니다. 연구나 교육의 현장에서 그동안 만나온 제자들, 개발도상국에서 만난 현지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정책현장에서, 또 감사원에서 저와 함께 고민하며 일하 분들이 제 인생의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점들입니다.
저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계량적 연구자로서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와 같은 연구 방법을 점점 더 많이 적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만났던 분들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깨닫게 하는 스승이자 제가 가진 ‘human library’입니다. 이러한 ‘점’들과의 만남이 모여서 제 인생의 ‘선’을 이루게 되겠지요.
특히 그 중에서도 제자들과 만남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지난 1년간 한국장학재단에서 10명의 여대생 멘티들과의 멘토링 경험도 그러한 특별한 만남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학생들과의 만남은 ‘화살표를 가진 선’을 만들어낼 수 있어 더욱 특별합니다. 제 수업이나 멘토링을 통해 만난 학생들이 미래의 학자, 활동가, 국회의원, 대통령 등으로서 미래 사회의 각처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될 텐데 그들의 성장 여정이 그려내는 화살표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잠시라도 제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스럽고 뜻 깊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화살표들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마음껏 뻗어나가는 데 저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 한국과 미국, 그리고 다양한 국가에서 하버드대학과 매스제네널 병원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연구원, 이화여대 행정학전공 교수, 감사원 감사위원, 개발협력 사업 평가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오신 이유나 계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첫째는 호기심이 많았고, 두 번째로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은 특별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면 여행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오도록 권합니다. 특히 낯선 곳일수록 좋습니다. 다른 나라는 음식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측통행을 하는 곳도 있고, 전압이 다르고, 인사하는 법, 여성과 아이, 노약자에 대한 태도나 관습이 다릅니다. 그러한 차이를 알게 되면서 소위 ‘정답’을 찾던 나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로서의 생활에서 합의제 기구인 감사위원회의의 일원으로서 지난4년간의 경험은 획기적인 내적 성장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합의제의 경험이 특별합니다. 현재 감사위원 일곱 분은 법조인, 감사원, 정부부처,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사위원회의를 진행할 때 간혹 격론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일곱 분 각각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들이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동안 여러 사건과 사례들에 대해 심의하고 토론하면서 어느 쟁점도 흑백논리로 구분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면서, 다양한 관점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명의 개인도 세상의 모든 지혜를 독차지할 수 없으며,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진솔하게 표명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중될 때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최대한 많은 경험을 통해 폭넓은 시선과 관점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또 운이 좋아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안에 남아있는 아직 깨어지지 않은 고정관념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제 마음의 창이 보다 활짝 열리고 ‘차이’와 ‘다름’을 겸손하고 즐겁게 이해하는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최초의 여성 감사위원’이라는 수식어로 인해 부담감을 느끼신 적이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4년간 늘 어깨가 무거운 부담감과 책임감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감사원은 신라시대 659년 사정부로 시작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어사대와 사헌부 등으로 이어지며 1000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기관입니다. 1963년부터 심계원과 감찰위원회가 합쳐지면서 오늘과 같은 형태의 감사원이 되었고, 이후 총 94명의 감사위원이 재직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감사위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는 제게 늘 말할 수 없는 영광이자 부담인 것이 사실입니다.
최초 여성 감사위원으로서의 제 역할은 무엇보다도 다양성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위원회의에서 저는 국민의 안전, 환경, 젠더,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마도 여성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가지게 되고 감수성이 좀더 높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감사원내 여성 인력의 리더십 성장,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논의하는 코칭과 멘토링 체계의 구축 등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지난 4년동안 여성 최초의 감사위원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이 되었고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 여성가족부 자문위원,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외교부 혁신 태스크포스(TF) 자문위원,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등 국가실무행정 분야에서 많이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가의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시는 가치(기준)은 무엇인가요?
정책결정과 평가 차원에서 종종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로서는 효율성을 들 수 있습니다. 감사원 업무를 예를 들어 설명 드리자면, 감사의 종류에는 합법성 감사와 성과 감사가 있는 데, 먼저 합법성 감사는 법을 잘 지켰는가, 규정 위반이 있었는가 그 여부와 정보를 살펴보고, 성과 감사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정책이나 사업이 의도했던 성과를 달성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때 성과 감사는 3E [efficiency(효율성), effectiveness (효과성), economy (경제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책학 분야에서 그 동안 정책과 사업의 성과를 평가해온 연구자로서 저는 사실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세가지 기준에는 “누구에게, 혹은 누구의 관점에서”라는 질문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정된 자원으로 목표하는 성과를 달성하려면 집행과정 중의 적법성과 효율성, 경제성이 도모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통해 달성된 성과와 혜택을 누가 누리느냐 하는 결과적 기준은 과정적 적합성 기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정책 수립 시 효율성 기준에 주어져왔던 가중치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달리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서 말씀 드린 ‘회복 탄력성’의 차원에서 봤을 때 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지요. (놀랍게도) 회복탄력성에 관한 문헌에서 강조하는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중복성’과 ‘다양성’입니다. 그동안 낭비로 간주되었던 중복, 다양성과 잉여는 재난과 같은 국가적인 어려움이 왔을 때 사람들이 그러한 어려움으로부터 회복하고 탄력성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지요. 국가 정책 수립에서 비용 효과성이나 효율성만이 아닌 가외성(redundancy)와 다양성도 함께 고려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성만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때는 간과하게 되는 소외된 부분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화여대 ECC 건물 2층에는 학생들이 잉여계단이라고 부르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학생들이 앉아서 쉬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효율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유와 공유를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데.. 정책학자에게 다소 이상적인 바램일까요?
- 감사위원으로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지난 4개월간 권한대행 일을 맡아 활동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선 감사원의 구성원들과 감사위원들께서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협력해 주신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신뢰와 원칙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또한, 권한대행 기간 동안 국정감사와 국회 예결산위원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과거에는 학자로서 국가 행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이해하였다면, 국회 예결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던져지는 진지하면서도 신랄한 질문들을 통해 민주주의에서 견제와 균형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편, 정책을 처리하고 집행하는 과정에는 언제든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정책을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정책실행으로 나타난 결과는 국민, 그리고 향후 미래 세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국회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주인인 청년여러분들이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그 결과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때 진정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학교에 돌아가면 이러한 관심이 실천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학생들과 진지하게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 감사원 감사관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과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 감사원에서 감사관의 역량에 관한 모델을 개발하였습니다. 그 모델에 기반하여 설명하자면, 감사 지식, 감사 실무의 역량 그리고 감사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3가지의 큰 특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감사 지식은 법령이나 감사 환경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이해의 정도를 의미합니다. 감사 실무는 실제로 감사를 기획해서 문제를 발굴하는 역량을 의미합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주어진 주제나 분야에 대해 얼마나 핵심적이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입니다. 창의적 접근으로 문제를 발굴한 사례로서, 층간 소음에 관한 감사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상 층간 소음 문제는 그동안 거주자들의 성격 차이와 인내심의 문제로 인식되었던 사항이었지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해보니 규정상 지정되었던 바닥의 두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왔던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문제점들에 대해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색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또한, 문제점에 대해 조사하고 인과관계를 밝히고 조사결과에 대해 좋은 보고서를 쓰는 등에 관한 것도 감사 실무 역량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역량은 감사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로서 공직자로서의 사명감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감사관은 자신이 수행한 감사를 통해 국가, 행정, 정부의 질이 높아진다는 사명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다 보면, 자칫 자기 생각의 상자에 갇힐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주요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어떠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의 문제점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갈등, 세대 간 갈등의 문제, 분노의 문제 등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거꾸로 한국의 강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꼽고 싶은 한국의 강점은 개인과 국가의 ‘회복 탄력성’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일제 식민, 한국전쟁 그 이후로도 다양한 위기와 재난을 겪었지만 의연하게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탄력적으로 일어났고요. 그러한 회복 탄력성은 우리 국민 개개인이 가진 좋은 품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 태안반도에서 기름 유출 사건이 있었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걸레를 들고 해변가의 조약돌을 다 닦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런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작은 일이라도 참여해야 한다는 적극성, 그러한 품성들이 대한민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마음들이 잘 지켜지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의 어려운 시기 역시 우리는 함께 잘 이겨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의 평화‧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헌법기관에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있습니다. 더하여, 우리 국민들도 각자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으로서 함께, 또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진정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려면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흔히 얘기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수의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이 들릴 수 있을 때 비로서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과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는 것, 즉 다양성에 관해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경력개발센터 원장시절 얻었든 가장 큰 교훈은 ‘학생은 다양하다’입니다. 그들의 다양함을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위원님의 과거의 꿈과 현재의 꿈 그리고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50대 중반인 저에게 꿈이 있는지 질문을 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저런 꿈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중고등학교 시절 이후 특별한 꿈이 없었던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던 같습니다.
다행이 지금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이화여대의 설립 이념과 관련되어 있기도 한데, ‘한 사람의 여성도 소외되지 않으며 교육받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기여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관습의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며 인간의 기본적 권한인 출생등록이 되어있지 않고, 읽기와 쓰기를 배우지 못하며, 자신의 꿈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여가나 취미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이들과 여성들을 만나보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4년 동안은 감사위원 업무 때문에 개발 현장에 가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로 다시 돌아가면 다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아직도 가슴이 뛰는 꿈을 가질 수 있어 너무나도 좋습니다. 또 하나의 꿈은 저의 후배나 제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제가 마음껏 지원해줄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생 여러분들께서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co-creation, 즉, ‘함께 만들어가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증강현실, 메타버스 등등 새로운 기술들은 자칫 인류의 삶에 위협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수에게 한정되어 있던 창조와 생산의 기회나 자원이 좀더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 여러분들께서 그러한 기회를 적극 요구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성 세대가 불편해 할 질문을 많이 던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하는 도발적 질문들을 던져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항상 무엇이 도발적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용감하게 그런 질문들을 던져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기회이자 책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