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2기 A조 이나영 이사장 인터뷰

안준현, 임지현, 김주연 2021.11.05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A조는 마포구에 위치한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나영 교수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사회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 문제에 참여를 중시하는 참여형 학자로서 현재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에 재임 중이다. 이하는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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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정의기억연대의 이사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는 이나영입니다.

 

  •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계신대, 정의기억연대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역점 사업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1990년에 당시 37개의 여성·종교·시민·학생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15년 한일합의의 부당성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2016년 설립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통합되어 2018년 출범하였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분쟁 하 여성인권 침해 및 성착취 문제 해결에 앞장서며, 평화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핵심 사업으로는 피해자 지원과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이 우선 있고요, 거의 매일 전화 드리고 매월 전국의 피해생존자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돌봄뿐 아니라 의료지원, 법률지원, 장례지원 등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하게는 수요집회(수요시위)가 있습니다. 공식 명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되었고, 내년 2022년 1월에 3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피해자들과 활동가들, 시민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수요시위 현장에 나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인정 등 문제 해결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했습니다.

그간 수요시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 활동을 지속적으로 알려내는 공간이자, 피해자와 시민이 연대하는 장소,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공간,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장, 국경을 넘어선 연대의 장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국내외 단체가 함께 주관하여,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폴란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필리핀, 태국, 미얀마 등 전 세계 약 23개국 60여 개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해 온 수요시위는 세계연대의 소중한 매개체입니다.

8월 14일이 되면 김학순 할머니 공개증언을 기리기 위한 ‘전 세계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도 합니다. 전 세계 관련 단체들과 행사를 주관하며 문화제도 하고요. 또 평화비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평화비는 수요시위 7대 과제 중 하나였던 기림사업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에 꾸준히 건립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시민들의 순수 모금을 통해 2011년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것이 시작입니다. 2021년 10월 현재, 국내 144기, 국외 16기(철거 제외)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피해경험에 대한 추모를 넘어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했던 피해당사자들을 역사의 주체로서 기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베를린 소녀상처럼 현재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평화비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전쟁과 분쟁, 남성중심주의와 인종주의를 넘어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의 정신을 확산하고 실천하는 국제 연대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평화비의 경우, 제작과 이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 활동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법적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1990년 12월, 김학순 할머니가 강제 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도쿄에서 제기한 게 첫 번째 소송이었고요, 그 외 역사부정세력 대응, 헌법소원, 국내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등도 지원해 왔습니다.

이 운동은 앞서 말했듯 37개 단체가 연대해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로 시작했기 때문에 관련 연대 단체들도 많고, 30여년 역사가 넘는 운동이라 참여한 시민들도 국내외 많이 계십니다. 해서 연대 단체와 연대 대상국이 많은 것이지요. 대부분 여성·인권·평화 단체들이라 상호 연대와 지지를 통해 활동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비기금이 있는데요, 나비기금은 2012년에 3.8 여성의 날에 만들어졌습니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께서 세계를 다니며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고 이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피력해 오셨는데요. 그래서 일본의 배상금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선(先) 기부를 하시고 시민들이 그 뜻을 이어 기부한 기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수 이효리 씨가 1호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주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거나 피해자 지원 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에 쓰입니다. 아프리카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팔레스타인, 베트남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의 자활 등에 사용됩니다. 피해자가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에 공감하고 손잡는, 어쩌면 운동을 한 단계 승화시킨 뜻깊은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있습니다. 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 개관한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리고 교육하는 장소일뿐만 아니라 분쟁 하 여성인권 문제를 성찰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은 전시뿐 아니라 자료 수집, 정리, 보관, 해제, 수장고 관리 등이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 외에도 출판이나 영상 제작 등 컨텐츠 제작, 홍보, 교육, 장학사업도 있습니다. 관련 활동가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김복동 평화인권상, 연구를 지원하는 김복동 연구지원 사업 등도 진행 중입니다. 한일 청년 교류 사업도 진행 중이고 성공회대 교양에 일본군‘위안부’ 강의 개설 등 교육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향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은 자료수집과 기록관리, 컨텐츠화, 이에 기반한 연구와 교육, 컨텐츠 사업입니다. 이제 피해생존자가 13분밖에 안 남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우리 곁을 떠나실 텐데, 미래세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하고 실천할 것인지,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 중입니다.

 

  • 다음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단체가 맞이하는 문제와 과제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이 사실인정과 진상규명, 이에 기반한 진정어린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운동 내외부에 누적된 피로가 상당하다고 봅니다. 물론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성장했고, 역사적으로 일본군 성노예제가 있었다는 사실, 이에 일본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피해자 명예회복도 일정정도 되었기에 운동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일본이 사과를 하던 안 하던 우리가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책임을 알게 모르게 지게 되면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분쟁 하 여성 인권침해라는 개념도 만들면서 국제인권규범도 바꾸어 왔습니다. 탈식민, 탈군사주의, 여성인권평화의 관점에서 활동하는 세계 시민들과 연대를 확장해 왔지요.

그럼에도 최근 조직적 백래쉬 확산, 국내외 역사부정 세력들의 확장 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램지어 사건도 있었죠. 2020년 9월 설립된 독일 베를린 평화비 사례처럼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 단체들의 조직적인 평화비 철거와 설치 방해 공세 또한 도를 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탈진실의 시대,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작년 5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이사장으로 출근한 지 하루 만에 발생한 일이라 저로서는 큰 충격이었고, 대응을 위한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큰 해일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적었지만, 확장된 역사 부정 세력과 작년 사태가 결합하면서 역사적 진실 자체에 의구심을 던지고, 운동을 공격하는 일이 빈번해 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수요시위에서 사람들이 감정을 나누고 연대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가운데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죄와 진상규명, 법적 배상을 간절히 바라던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은 급속히 세상을 떠나고 계십니다.

 

  •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방법? 운동 초기에는 민족의 딸들이 고통을 받았다면서 민족주의 세력이 동원되었다가, 주제를 전쟁 당시의 여성 인권, 평화로 전환하였는데, 지금처럼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조금 더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관심과 지지를 끌어낼 방안이 있을까요?

초기부터 이 운동을 만들고 활동했던 사람들은 민족, 여성, 계급의 중층적 문제로 위안부 문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힘으로 제국주의 식민주의 냉전체제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돌파하고자 했지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외면한 한국 정부의 문제, 한국 특유의 가부장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소위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문제를 일제의 만행을 고발할 가장 중요한 사례로 주목했지요. 이들이 사용했던 언설이 외부에서는 운동 내부의 관점인 것처럼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대협은 출범 당시부터 젠더를 출발점으로 생각했으며 초국적 여성연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내외 많은 시민들과 연대해 왔습니다. 1992년부터 유엔 인권위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제기를 하고 이후 각종 국제기구에 호소해 왔습니다. 물론 아시아연대회의 등을 조직하면서 각 국의 시민단체, 개인,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연대하면서요. 그 당시 보스니아 사태가 터지면서 국제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지점과 맞물렸지요. 전시 성폭력 개념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니 위안부 문제 해결을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 있죠.

 

  • 작년 이용수 할머니께서 인터뷰하면서, 내가 왜 성노예냐, 이 단어에 대한 반감을 갖고 정의연은 공식적으로 늘 있던 입장, 일본군 성노예가 가해자와 피해 사실을 언급할 수 있는 단어라서 성노예가 올바르다고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싫다는데 저희가 너무 그 분들의 피해 회복과 치유에는 너무 소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용어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계속 변화했습니다. 운동 초기 문건들을 보면, ‘정신대’, ‘종군위안부’, ‘위안부’, ‘군대 위안부’, ‘군 성노예’, ‘일본 군대 성노예’ 등의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정신대는 ‘국가(천황)’를 위해 솔선해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본이 노동력을 동원할 때 자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 보도 자료들을 보면 정신대가 강제동원의 대명사처럼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근로정신대’ 혹은 ‘여자정신대’는 원칙적으로 여성에 대한 노무동원을 지칭하지만, 제도와 운용 상 ‘군 위안부’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공식 문서상으로도 그렇고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증언에서도 제도상 혼란과 혼용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처녀공출’과 ‘정신대’를 같은 것으로 이해했던 사람들도 많고, 실제 정신대로 간다고 생각했다가 위안소로 끌려 간 피해자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위안부’라는 용어는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용어이며 폭력성과 강제성을 감추는 부정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고 있지요.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용어는 1992년부터 국제사회에 사용되기 시작해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mmaraswamy) 보고서가 “전시하 군대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라고 명확히 규정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즉, 일본군‘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 국가가 전시에 여성을 강압적으로 동원하여 집단적인 성폭력을 가한 것이고 피해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노예’와 같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후 유엔 기구뿐만 아니라 각국 의회에서도 일제가 저지른 최악의 여성인권유린 행위이자 성노예 제도였다고 인식해 왔습니다.

다만 성노예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일반적인 운동의 장에서는 크게 사용되지 않다가 2015년 한일합의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할머니들과 논의를 하고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용수 할머니의 인터뷰에서 ‘나는 성노예가 아니라 이용수다’는 의미는, 단순히 피해자로 고착시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의미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으로 존엄한 존재, 이용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피해자 치유와 회복 부분은 처음 정대협이 생기고 피해자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입니다. 너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살고 계신 할머니들의 일상을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돕는 사업을 1991년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나 사회가 아무도 관심 없을 시기부터요. 피해자 지원 모금 활동도 그때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요. 한국정부에 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하라고 압력을 넣고 실제 법 제정까지 이끈 것도 정대협이었지요.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대한민국 정부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시급하게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정치적 외교적 상황에 휘둘리며 우왕좌왕하기도 했지요. 우선,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체계적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내 위안소 터들도 아직 존재하고, 증언자들도 고령이지만 아직 살아계십니다. 국내 자료 수집과 보존, 확산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또한 기존에 드러난 국내외 자료들, 가령 연합국 아카이브에 있는 자료들, 연구자들이 밝혀낸 자료들, 고노담화 시 일본정부가 찾아낸 자료들,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등 관련 자료의 체계적 수집과 연결, 보관이 필요하겠지요. 또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의미를 계승하고 차세대 연구·교육자를 육성해야죠.

동시에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 되었다 돌아오지 못 한 분들의 흔적을 찾고 기록·기념하며, 원폭피해자와 야스쿠니 신사 유골 반환 등의 문제를 보편적 인권문제로 접근하면서 풀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일제 식민지배와 관련된 과거사 문제를 하나하나 풀면서 위안부 문제 또한 차근차근 해결하는 방법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일본 신임 총리로 기시다 후미오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본의 정치 변화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연결해서 보자면?

총리 후보들 중에선 유연하다고 평가받는 고노 다로가 되길 바랐지만, 기시다도 상대적으로 중도파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다만 기시다는 2015년 한일합의 당시 외무상이었고, 현재 내각 구성도 아베 정권 내 주요 인물들이 재등용 되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해서 말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아베-스가 노선은 물론, 위안부 문제 해결 접근에도 큰 변화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7가지 원칙은 사실 1990년대 초부터 제기되어 왔고 수요시위에서 30여 년 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요. 이는 아시아연대회의 등 국내외 피해자단체들이 협의해 도출된 안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번복될 수 없는 공식적이고 진정어린 사죄일 것이고요, 진상규명과 범죄사실에 대한 책임 인정이겠지요. 교육이나 기림사업 등은 부차적 문제라고 봅니다. 고노 담화를 출발점 삼아 구체적 실천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도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섣부른 해결, 일괄 타결 같은 구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내년 당선될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일본 정부의 눈치만 보거나 외교적 관점으로만 이 문제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이고 전시성폭력의 주요한 사례로 국제사회에 이미 확인되었으니, 앞서 제시했듯 내부적 할 일부터 챙기고 실천하면서 기억과 계승에 힘써야겠지요.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아시아 여성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하는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어요. 가령 아시아의 여성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구요. 인권과 평화에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가고, 평가는 미래 세대에게 맡기면 됩니다.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위한 무장을 다시 하겠다는 일본 정부가 과연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다룰 자격이 있는지, 세계 평화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후세대가 평가할 것이고요. 한국 정부 스스로 열심히 하면서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전 세계가 어떻게 평가할지 더 큰 차원에서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북한과도 강제 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협력하면 좋구요.

 

  •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냉전체제의 그림자가 너무 짙은 상황에서 우선 남북 간 적대적 긴장관계를 해소해야죠. 평화로운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이 이루어지면서 독립된 국가로서 신뢰를 차분히 쌓아나가면 좋겠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전쟁 위협 해소가 우선이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지만 물론 쉽지 않은 문제에요. 미국도 있고,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요. 그렇지만 어쨌든 남북 간 적대적 긴장관계 해소가 전 세계 평화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미국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겠지요. 대한민국, 더 너르게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궁극적인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보다 장기적 차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