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1기 C조 임혁백 교수 인터뷰
평화와민주주의 연구소 인터뷰 팀 ‘폴인러브’ C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진로를 소개하기 위해 임혁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폴인러브’ C조는 교수님께서 기존에 진행하신 인터뷰와 저서를 찾아보며,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궁금해 할 내용을 위주로 인터뷰 질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교수님이 정치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정치학 도서, 그리고 검찰 개혁 논평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인터뷰로 담아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혁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경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지냈다. 고려대학교를 비롯해, 이화여자대학교,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미국 듀크대학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또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통일부 정책평가위원, 국방부 국방정책 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치학회 명예이사, 세계지역학회 부회장,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소장 및 정책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및 GIST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퇴임 이후에도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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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폴인러브(Pol In Love)> 사업팀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지금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로 있고, 광주에 있는 광주과학기술원, GIST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 교수님께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제가 고등학교를 경기고등학교 나왔습니다. 1971년에 경기고등학교는, 요즘 어떤 고등학교보다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480명 중에 400명 정도가 이제 서울대로 진학을 했습니다. 거기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이 법학과, 경제학과, 정치학과, 외교학과, 그리고 경영학과였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기 전에 입학 상담을 했습니다. 담임선생께서 정치학과나 외교학과 중 아무 데나 진학하면 된다고 하셔서, 외교학과보다는 정치학과가 마음에 들어서 정치학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 정치학을 박사까지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박사까지 공부하게 된 계기는 당시 시대 상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 대학을 다닐 당시 대한민국은 완전히 격동기였습니다. 제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군사 교육 훈련인 교련을 반대하는 데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교련 반대 데모를 하는데 1학기는 다 보냈고, 2학기 들어가니까 그 71년도에 윤필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고대에 진입을 해서, 고대 학생들을 다 잡아 간 사건입니다. 윤필용 사태가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일대 위수령을 선포를 했습니다. 학교를 강제로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71년도는 그 위수령 때문에 학교에 가고 싶어도 학교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71년도에는 위수령으로 학교 문을 닫았습니다. 그다음 해 10월에는 유신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0월 유신이 나자마자 전국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가 진입을 하고 학교가 또 문 닫았습니다. 72년에도 학교를 잘 다니지 못했습니다. 73년에는 민청학련사건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인해서 이제 시위가 막 벌어지자 또 학교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71년, 72년, 73년, 74년 모두 학교를 잘 다니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인 사태로 학업이 중단되고,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면서 정치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화, 권위주의, 전체주의 독재와 같은 정치체제의 문제와 함께 근대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하는 해인 1978년 1월에 부인이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해외유학 지원을 해준다는 공보가 났다는 소식을 알려주어서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SK 창업주인 최종현 회장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으로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정치학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 정치학이라는 게 다른 학문에 비해서 어떤 우위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항상 이야기하듯이 아트(art; 기술(技術))라는 것입니다. 자기 기술을 뽐내는 것, 음악 하는 것처럼 혼자 뽐내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아트(art)가 정치학입니다.
정치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집단에 대하여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심리학은 개인에 대해 공부하고, 경제학도 기본 개념은 개인이죠. 하지만 정치학은 집단적인 향상을 위한 공부입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만 알아서는 안 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플라톤은 정치학을 로얄 사이언스(loyal science)라고 하고, 동양에서도 흔히 제왕학이라고 하죠.
요즘 보면 정치학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경영이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학부 학생들에게는 정치학이 추상적이고 돈 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정치학과 경제학과가 양대지주(兩大支柱)이고, 로스쿨 진학생도 정치학과 출신이 대세죠.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 정원은 천 명이 넘습니다. 유명한 샌델(Michael Sandel; 하버드대학교 교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저자) 교수도 정치학과 교수지요. 거창한 이야기보다도 정치학이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한 학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 만약 교수님께서 지금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신다면 어떤 강의를 하고 싶으신가요?
“ 강의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는데, 원래 제 전공이 민주주의 이론입니다. 고려대학교에 최장집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민주주의 이론은 양보하고 저는 국가와 시민사회론과 정치경제론을 강의했습니다.
그런데 BK21 연구단장이 되어서 한국연구재단에 프로포절을 내면서 부족했던 것을 알아보니 우리 정치외교학과에서는 한국정치론을 아무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대학의 정치학과에서는 한국정치론이 주과목인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은 미국정치론이 주 과목이었는데 반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는 비교정치학이 주 과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재를 마련하고 10년 동안 한국정치론을 가르치면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코어(core; 핵심(核心)) 과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BK연구교육단으로 선정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새로운 과목을 개설한다면 이 민주주의론, 국가론, 자본주의론을 포괄하는 교양과목이 어떨까합니다. 1994년에 발간한 『시장, 국가, 민주주의』가 텍스트가 될 수 있겠지요. ”
-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출판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김영사라는 출판사에서 삼일문화재단과 새로운 사업으로 정치학이나 경제학, 역사와 관련해서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 이상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프로젝트 <굿모닝 굿나잇>을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산과 강은 바다에서 만나고』도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 교양 도서로 선정된 지중해 역사문화 여행기입니다. 학술 서적은 아니지만 재미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도 추천드립니다. 이 책은 한국 근대 정치의 다중적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를 시간에 따라 추적하면서 서로 다른 다중적 시간들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책으로 2015년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상, 2015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상을 받았고 2018년 IASC라는 아시아 학자 세계 대회에서 우수저서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두꺼워서 베개로 쓰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웃음). 제가 이 책을 권하는 건 이 책을 보면 한국 정치의 중요한 순간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서술이 담겨있어서 그렇습니다. ”
- 현실정치에 관한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요, 교수님께서 작성하셨던 브라질 사법 쿠데타에 대한 논평과 연관해 그간 이슈였던 검찰 개혁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 브라질의 사법 쿠데타에 대한 논평을 쓰게 된 계기는 지도교수와의 대화였습니다. 제 지도교수님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아담 쉐보르스키 (Adam Przeworski) 교수인데, 그분이 어느 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하나가 브라질의 이야기였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연방 판사가 수사권과 재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루(Sergio Moro)라는 연방판사가 있었는데, 이 판사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소위 ‘세차작전’ (Operation Car Wash) 으로 정경유착을 척결한 수사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실바(Luiz Inacio Lula de Silva; 룰라 前 대통령)와 그 후계자를 수사하면서 다음 대선에 못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한국의 전 검찰총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라질 사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1974년 이래 진행되어온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역류에 부딪치고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의 제1차 물결이 종결되었으나 곧 파시즘의 등장으로 제1차 역류가 있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후 신생독립국가에서 민주화의 제2의 물결이 일어났으나 군부쿠데타에 의해 제2의 역류를 맞았습니다. 제3차 민주화 물결은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으로부터 시작되어 남유럽, 남미, 동아시아, 동구와 러시아를 민주화시킨 글로벌 민주화 물결입니다. 제3차 민주화 물결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고 역류가 없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제3차 민주화의 물결이 현재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의 특징은 군부쿠데타나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민주정부가 전복되는 것이 아니라, 스텔스(stealth)적으로 모르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제도가 침식되고 뒷걸음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한국이 실질적으로 그런 위기에 빠져있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위기가 올 수 있고,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는 ‘가디언의 지배’ (guardianship) 현상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지배하는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가디언(guardian; 수호자 – 플라톤이 말한 지배계급, 지혜 있는 자)들 즉, 선출되지 않고 임명된 전문가 집단이 선출된 대표의 영역을 침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산을 짜는 것과 규제를 하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국가의 일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선출된 대표가 해야 하고,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구체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 전문성을 가진 관료를 임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명된 관료가 전문성을 무기로 선출된 대표로부터 자율적이 되어 선출된 대표의 권력을 침식하고 관료집단과 이익집단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국민의 지배’ (rule of people)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실현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존 민주주의의 위기는 과거처럼 군부나 파시스트들의 폭력적인 민주정부 전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디언 전문가 집단의 지배’ (guardianship)에 기인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
-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평화와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모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평화롭게 공동체의 공익을 실현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근대 대규모 영토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를 발명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투표를 통한 선거를 통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총칼과 돌을 던져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했지만,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는 투표지라는 종이 돌(paper stones)을 던져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요.
러스토우 (D. Rustow)교수가 이야기 했듯이 민주주의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제도적 장치입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것은 현대에서는 뗄 수 없는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데에 대한 합의입니다. 이것이 국제정치이론으로 발전해서 칸트가 주장한 민주평화론과도 연결되는 것이지요.
남북한의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북한도 민주화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김정은에게 권력에 남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북한이 민주화되면 미국의 제재도 해제되고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방해요소로서 김정은이 걱정하는 것은 권력의 상실입니다. 권력을 잃으면 김정은은 북한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에게 권력을 보장해주는 인센티브(incentive; 유인(誘因))를 주면서 정치적 경쟁을 도입하여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도모하고, 민주화가 되면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 평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저도 이를 주제로 『한반도에서 평화의 가능성』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2017) 책을 발간했습니다. “
- 마지막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는 해방 이후 최초로 생긴 정치외교학과입니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단연 1위, 세계적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는 우수한 교수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렇게 훌륭한 교수님들로부터 정치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정년퇴직 후에도 항상 고려대학생들의 눈망울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연세대학교 학생보다 굉장히 사회적 문제의식이 있고 정의감이 강하고 진리를 탐구하려고 하는 그런 열의가 넘치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지). 그래서 항상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들이 쌓은 위업, 그리고 그 명성에 금이 가지 않게 스스로 갈고닦아 학문에 정진하고 실제 생활에서도 학문을 배운 길을 실천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공부를 학생들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