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1기 B조 오준 전 UN 대사 인터뷰

박효정, 김사빈, 정효린 2021.08.08

평화와민주주의 연구소 인터뷰 팀 ‘폴인러브 B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외교와 관련된 다양한 진로를 소개하기 위해 오준 전 UN 대사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진행 전 폴인러브 B조는 대사님께서 기존에 진행하신 인터뷰와 서적을 찾아보며, 기존의 인터뷰와 차별성을 둘 수 있는 질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대사님의 UN대사로서의 삶과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 대한 조언 그리고 대사님의 ‘꿈’에 대해 여쭤보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준 전 유엔 한국 대사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해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석사를 했다. 78년 외교부에 입부해 대부분의 외교관 생활을 UN에서 활동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UN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14년 12월 22일 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아무나가 아니다”라는 연설을 진행해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석좌교수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세이브 더 칠드런 코리아 (Save the children Korea)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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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께서 대학 시절 밴드 활동과 같이 다양한 경험을 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로와 관련된 활동이 아니더라도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활동이나, 경험이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대학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독서나 음악과 같은 취미활동보다는 자기성찰(soul searching)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제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학업 이외에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 2년 동안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경험을 통해 맞춰진 틀 속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밴드 활동은 어디까지나 내가 왜 그동안 학업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을까 하고 반발하고 저항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인간의 가치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기탐구 활동에 집중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기존에 살아온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너무 한 가지에 몰입하게 되면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할까요. 저도 밴드 활동을 하느라 학업은 뒷전이었던 시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한 가지 활동에만 너무 빠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대사님이 읽었던 책이나 영화 중에서 대사님의 삶을 바꿔 놓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가지만 고르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자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이 책의 부제인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라는 명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감명 깊게 본 영화 중에서는 워렌 비티 감독의 영화인 ‘레즈(‘Reds)’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내 공산주의 운동을 다룬 영화로 1982년도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가 공산주의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습니다. 영화는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존 리드’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는데, 내용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영화로서의 완성도도 높다고 생각되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적인 요소인데 대사님만의 영어 공부 비법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들이 완벽하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영미권 국가에서 자라 영어를 편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영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 모두가 한국어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주변에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좋은’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좋은 영어 표현을 많이 듣고, 그 표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좋은 영어를 들을 수 있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표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모인다면 회화를 위한 영어를 넘어 ‘좋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Korea)’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많은 국제기구 중 이 단체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동은 인류의 미래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서 보장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어린이가 아니었던 어른은 없습니다. 현재 젊은 여러분을 포함해서 우리 세대의 50년 후를 예상해 본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 간에 현역에서 물러나 사회의 주역이 아닐 것입니다. 즉, 50년 후 사회의 주역은 바로 현재의 어린아이들일 것입니다. 현재 5살인 어린이는 50년 후에는 55살이 되어 우리나라와 세계를 이끌어 갈 세상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이 주역이 된 다음 세대가 이끌어 가는 세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현재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아동학대와 방임 속에 성장하게 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게 한다면, 50년 후 미래의 세계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우리가 그들을 좀 더 제대로 성장시키고 교육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세계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과 방향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아동의 권리와 복지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 되는 셈이죠. 제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활동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머님의 고향이 개성인 것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외에도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북한 인권 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헤어진 가족이나 친척이 북한에 있거나, 가족들 중에도 북한 출신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세대 사람들은 북한 인권 문제가 자신의 가족이나 형제 그리고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여러분도 미얀마 시위와 관련한 인권 유린 기사를 접했을 때 그들이 우리와 관계없는 외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분노하거나,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감정은 더 커질 수밖에 없겠죠.

인권 문제는 단순히 수치화할 수 있는 어떤 통계가 아니고, 나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일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문을 당하거나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당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북한 인권 문제가 자신과 무관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도 한국 전쟁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세대의 여러분이 북한 사람을 나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북한 주민에 대하여 기성세대와 같은 감정을 갖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권유할 수 있는 것은, 76년 전까지만 해도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자 같은 역사를 공유한 하나의 나라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생각과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 세계 평화를 위한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두 사안을 병행할 수 없다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북한의 비핵화와 인도적 지원이 대립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핵문제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적 지원은 식량 지원 약품 제공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경제협력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재 하에서도 가능합니다. 반면에 대북 경제협력은 국제적 제재의 위반이고 그렇기에 현재 핵문제가 해소되기 전에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도 언젠가는 경제발전을 통해 자국민의 삶을 개선시키고 보다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어야만 국가로서 계속적인 존립이 가능함이 것이 분명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기가 되면 북한 지도층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발전을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 지도층이 핵무기가 아닌 경제발전을 택할 수 있도록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핵화를 이루게 되면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미래의 청사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면서, 비핵화 없이는 해결방안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북한의 인권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앞으로 한반도에서 어떻게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제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많이 안정화되어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성숙한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단계의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정치가 국민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자칫 잘못해서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든 개인이든 이 세상에 항상 옳은 것은 없습니다. 국민들이 어떠한 문제를 볼 때 상대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 절대적인 시각으로 한 방향으로만 생각이 국한된다면, 나중에 돌이켜 볼 때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지속적으로 균형되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나치 독일군인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내내 지켜본 저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선천적인 악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책에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행동을 옹호한 것이 아니고, 책의 부제처럼 ‘악의 평범성’, 즉 아이히만의 ‘참여자(joiner)’적인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참여자’의 삶을 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나는 독일 군인이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인 히틀러가 명령하는 것을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고 생각한 아이히만과 같은 참여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참여자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 성찰(soul searching)’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대학 생활을 통해 내가 사는 삶의 의미와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고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충분히 가지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참여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