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1기 A조 박선경 교수, 송종호 기자 인터뷰

안준현 2021.08.07

고려대학교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폴인러브’ A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진로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고려대 선배이자 현재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선경 교수, 그리고 서울경제 정치부 기자인 송종호 기자를 인천 송도의 자택에서 찾아 뵈었다. 박선경 교수와 송종호 기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 중 만나 커플이 되었고, 현재는 슬하에 귀여운 아들을 둔 부부가 되었다. 대학원 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들과 함께 현재는 각자 정치외교학 교수와 정치부 기자로서, 또 이제는 여생을 함께할 부부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선경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00학번으로, 학사 졸업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 2007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8년 뉴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입학, 2016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였고, 2017년부터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투표이론, 정치경제, 한국정치, 정치학방법론 등이다.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99학번으로, 학사 졸업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2006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는 서울경제의 정치부 국회팀 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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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선경 교수) “안녕하세요.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는 박선경이라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학부, 석사과정과 뉴욕대를 거쳐서, 고려대학교에서 잠깐 강의를 했었고, 지금은 인천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 입니다.”

(송종호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경제학과 99학번 송종호입니다. 대학원은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마쳤고, 지금은 서울경제에서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정치외교학을 공부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송종호 기자) “저는 사회과학을 공부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학부 때는 경제학을 공부했었고,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려고도 했는데, 정치학과 수업을 들으며, 정치학은 여러 가지 행위자들에 대한 것을 모두 고려하면서 분석을 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부 때부터 기자가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단, 여러 다양한 행위자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의 변수들이 어떤 사회현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분석할 때 유리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치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박선경 교수)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치 현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중고등학생때 읽었던 소설책도 조금 더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책을 많이 읽었고, 자연스럽게 신문 기사 보면서 어떤 이슈들이 있는지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을 들어올 때 정외과를 가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대학을 수능 현실에 맞추어가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영문학과에 들어와서 정치학 이중 전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외과 수업을 들으면서, 정치학 공부를 확실히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건, 뛰어난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면서였습니다. 수업하시면 교수님들이 수업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우리가 세상을 다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치학 공부를 시작했고, 20년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우신 것들이 선택하신 진로, 실무에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선경 교수) “저는 정치외교학 교수이고, 정치학이 좋아서 공부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송종호 기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치학은 여러 행위자들이 하는 것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실제로 기자를 해 보니, 어떤 대상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여러 사람, 여러 기관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훈련을 학부 때부터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박선경 교수에게 한 개별질문이다.

–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맨 처음을 생각해보면, 저도 학부졸업을 할 때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 방황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학이 좋아서 왔지만, 정치학이 실용적인 학문은 아니기 때문에, 고시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직업을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던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을 가까이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평생 책을 읽고, 그에 관해 말하고 글을 쓰는 직업은 교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교수가 되는 게 가능할까? 라는 고민으로 학부 시절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제가 학부 학생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학생들이 꿈이 없거나, 꿈이 있어도 그것이 된다는 확신을 갖지 못 해서 힘들어합니다. 저도 그런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라는 꿈을 갖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내영 교수님께 분석적 사고, 논리적 주장, 다양한 각도로 보기를 배웠었고, 권혁용 교수님께 방법론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치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최고의 학자들이 있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고, 덕분에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도 어렵지 않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기보단, 어떤 일을 해야 스스로 가장 뿌듯함을 느낄까를 생각하다 보니,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 정치외교학을 배우는 학생에서 가르치는 교수님이 되셨는데요, 교수님의 입장에서 학부생이었던 과거의 교수님을 생각했을 때,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학부 때 학업보다는 사회운동에 더 집중했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이미 운동권은 지나갔을 때라, 운동권은 아니었고요. 시민단체나, 정당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언제 가장 뿌듯함을 느끼십니까?
“두 가지가 경우가 있습니다. 교수는 선생님이면서, 학자입니다. 학자일 때 가장 뿌듯할 때는, 누군가 내 논문을 읽고, 좋다고 해주거나, 토론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선생님으로서 가장 좋을 때는 학생들에게 카톡이 올 때입니다. 학생들과 평상시에 안부를 주고받고, 마음을 주고받을 때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 좋은 교수는 어떤 교수인가요?
“역시 답은 두 가지 입니다. 학자로서의 교수와 선생으로서의 교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학자로서의 교수는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선생으로서 좋은 교수는 계속 고민이 됩니다. 제가 가장 젊은 교수였을 때는, 학생들이 비교적 마음을 쉽게 열어 주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학생들과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도 고민이 되고요. 그래서 좋은 선생으로서의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정의 내리지 못하겠지만, 지금 드는 생각이 좋은 선생이 되려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교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송종호 기자에게 한 개별질문이다.

–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굉장히 거창하게 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멋있기도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린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또 지금 기자를 하다 보니, 저에게 굉장히 딱 맞는 직업인 것 같아요.”

 

–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무엇인가요?
“특종이라고, 어떤 주제에 대해 가장 먼저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긴 한데요, 사실 기자는 당장 내일 쓸 기사가 없다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그 생각 때문에, 내일 쓰는 기사가 저에게 가장 중요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 학부생 때 기자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시민단체 인턴도 한 적 있고요, 또 고대신문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얻었던 경험과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여러 조언이 저를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도 기자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기자라는 직업은 매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혹여나 내가 글을 쓰는 능력이 있고,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흔히 말하는 메이저 매체에 가는 것이 힘들 수 있어요. 그렇다고 작은 매체에 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싶고, 기자가 되고 싶다는 소명감이 있다면, 그냥 먼저 기자가 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학점보다는,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귀 기울이는 자세를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기자는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시면 됩니다. 다만, 매체력을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이 직업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교수님께서 뉴욕으로 유학을 하러 가시면서, 두 분이 롱디커플(장거리 연애)이 되셨는데, 그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박선경 교수) “저랑 기자님은 대학원 때부터 교제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유학을 하러 가고 기자님은 군대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롱디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유학에 가면 굉장히 신경 쓸게 많아서, 롱디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평소 연애하는 것처럼 했습니다.”

(송종호 기자님) “병사로 군인 신분일 때는 열심히 군 생활을 했고요. 군 생활이 끝나고 취업 준비를 할 때, 그리고 취업을 해서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박 교수님은 저에게 굉장히 든든한 존재에요.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할 때 굉장히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서로 간의 믿음이 굉장히 커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내 기사의 첫 독자는 네가 되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 결혼에 정치관은 어느 정도 차지한다고 차지하는 것 같나요?
(박선경 교수님) “100에 80 정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저는 항상 누군가와 교제를 할 때 첫 번째로 정치관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정치적 색이라기보단, 세계관과 그 사람의 철학이 정치관으로 표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이 송 기자님과 굉장히 잘 맞습니다. 같이 시간을 보낼 때 항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한테는 정치관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송종호 기자님) “저는 항상 박 교수님께 동반자가 되어 주겠다고 말을 했는데요, 정치관이 다르더라도,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정치관이 완벽하게 똑같을 순 없거든요. 박 교수님은 저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받아주었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우리가 가족이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선경 교수님) “저는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굉장히 권장합니다. 정치학을 공부해서 나아갈 수 있는 진로 중에 굉장히 넓은 분야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정치학 전공을 하는 친구들 중에 기자의 자질이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날카로운 시선이 있고, 상대방과의 친화력이 좋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세상에 관한 관심도 있기 때문에 기자를 하기에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요즘은 기자를 비하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에 빛을 비추고, 분석하고, 매일매일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매우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기자에 대한 일반론적인 생각이고요, 부인으로서 기자인 남편을 봤을 때는,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는 글을 쓰는 것이 신나고 재밌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것 자체는 괜찮아 보이는데, 단기간에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매일 마감이 있는 것이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기자가 안 맞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매일매일 마감이 있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인 것 같아요. 교수는 단기적인 마감이 없고 장기 레이스를 하는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송 기자를 보면 굉장히 잘 맞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바뀌는 틀에 굉장히 잘 적응하는 능력 있는 기자인 것 같습니다.”

(송종호 기자님) “기자는 누군가를 만날 때, 밥을 대접받는 경우가 많은데, 유일하게 밥을 사주지 않는 집단이 교수진입니다. (농담) 제가 거의 항상 새벽에 들어오는데, 항상 박 교수님은 공부를 하고 계세요. 그래서 기자는 아까 말해 주셨듯이, 단타로 치고 나가는 삶이라면, 교수는 커다란 댐을 만드는 직업 같아요. 제가 농담으로 가끔 오늘 마감했어? 라고 물어보면, 마감이 없다고 대답을 하는데,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마감이 있어서 기자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내는 것인데, 어떻게 마감 없이 매일 무언가를 쓰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그래서 교수라는 직업은 굉장히 큰 댐을 만드는 직업인 것 같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는 어떤 공간인가요?
(박선경 교수님) “고대 정외과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제가 안암동에서 7년 정도 생활하고 뉴욕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고 나서야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가 저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정외과에서 들었던 수업, 정경관의 공간들이 항상 떠오를 때가 있어요. 제가 지금 있는 대학교에서도 고대에 있었을 때의 습관들이 나올 때가 있어요. 나도 모르게 과 사무실을 가야지 하고 계단을 내려간다든지 하는 거요.”

(송종호 기자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뿐만 아니라 고대 전체가 그렇지만, 고대끼리 모였을 때는, 정파 간 충돌 같은 것이 전혀 없어요. 특히 고대 정치외교학과에는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들로서, 정의당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민주당, 국민의 힘에서 일하는 선배들, 동기들을 만났을 때 정말 학문적이고 학구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발생했다면, 예를 들어 여야 간 충돌이 발생했다면, 이게 단순히 말다툼이 아니라, 어떤 철학적 근거에 의한 것인지. 어떤 체계에 따른 것인지를 이야기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고대 정치외교학과라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의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서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선경 교수님) “짧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고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가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종호 기자님)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저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같아요.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평화가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여야, 정파 또 공부할 때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을 텐데, 그 다음 세대들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도 다음 세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해? 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진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학사 또는 석사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수업과 교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송종호 기자님) “저는 지도교수님이셨던 조정남 교수님이 하신 민족주의 관련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조정남 교수님은 소수민족을 공부하셨고, 다문화주의라는 개념을 한국에서 처음 도입하고 소개하신 분입니다. 갈수록 다양한 사람들과 생활하는 다문화주의가 중요한데, 우린 그걸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학에서는 다문화주의에 대해서 많이 고려하지 않고 있고, 국제질서나 이해관계나 충돌 같은 것들을 이해할 때 다문화주의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요즘 언론에서도 다문화주의에 관심을 두고 있고요. 저는 초기에 교수님께 다문화주의에 대해 배워서, 다문화주의가 이제 많이 쓰이는 용
어가 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항상 기뻤던 생각이 납니다.”

(박선경 교수님) “저도 지도교수님이셨던 이내영 교수님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도교수님이기 때문에 수업이 재밌는 게 아니라. 교수님의 수업이 재미있어서, 그분이 제 지도교수님이 되시는 거잖아요. 선거와 정당 수업을 그때도 하셨는데, 제가 이내영 교수님 수업을 들었을 때, 선거가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주요 정당을 돌아다니시며, 선거전략에 대해 듣는 이벤트도 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경험들이 내가 공부한 것들을 사회적 관심에서 끝내지 않고, 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고요. 그리고 대학원을 들어와서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대학원에서는 강의를 듣는 것이 중요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토론하고, 내 논문을 쓰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논문을 쓰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논리적인 사고, 그것을 글로 쓰는 법, 또 그것을 증명해 내는 법,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공부했습니다. 또 유학을 하러 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처음 유학을 하러 갔을 때 되게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영어로 표현을 충분히 못 했지만, 제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교수님과 동기들에게 의견이 좋다는 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게 모두 고대에서 잘 훈련을 받아서인 것 같아요.”

 

– 박선경 교수님께서는 뉴욕으로 유학을 하러 가셨는데요. 뉴욕에서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정말 많아요. 일단, 뉴욕 생활의 장점은, 제가 다녔던 학교와 집이 걸어서 30분 거리였는데, 굉장히 유명한 공원들을 많이 지나쳐 갑니다. 그때 항상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소에 있으면 안암동이랑 똑같은데, 밖에 나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거, 그게 굉장히 장점이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친구들과 많이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 마지막으로 정치외교학과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종호 기자님) “어른들을 어려워하고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90년대생이 온다는 책도 인기가 있는데, 그 친구들이 눈치를 봅니다. 아닌 것 같지만, 눈치를 보고, 겉도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데 그러지 말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선경 교수님)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항상 안 될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래서 될 것 같은 것으로 너무 빨리 타협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다 된다고 보장되는 것은 없거든요. 그래서 괜히 지레 겁먹지 말자, 이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