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 in Love 1기 C조 태영호 국회의원 인터뷰

임혁, 김규진, 김예진, 이현웅 2021.08.11

평화와민주주의 연구소 인터뷰 팀 ‘폴인러브’ C조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진로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정치외교학 분야에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신 태영호 국회의원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2016년 8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서 지금까지 탈북 외교관 중 최고위급 인사였던 태영호 의원의 탈북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태영호 의원은 4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대한민국 보수의 상징과도 같은 강남구 갑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탈북민, 엘리트, 강남 국회의원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이력들과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3월 5일,’폴인러브’ C조는 위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그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태영호 국회의원은 1962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국제관계대학과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93년부터 북한 주 덴마크·스웨덴 북한대사관 서기관과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를 역임하고, 탈북 이후 2016년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을 역임하고 현재는 강남구(갑) 제 21대 국회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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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폴인러브(Pol In Love)> 사업팀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1대 국회에서 국민의 힘, 강남(갑)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는 태영호입니다. ” 

 

– 구체적으로 북한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에서는 외교관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곳이 1996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이었고, 2년 후 스웨덴의 스톡홀롬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4년 영국에서 공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런던에서 주로 외교관 생활을 했습니다. ” 

 

– 북한 외교관으로서 대한민국 외교관을 만난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 외교관으로 살다보면 대한민국 외교관들과 조우할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외교관 생활을 들여다보면 각 대사관에서 각 국의 국경절과 관련된 연회도 하고 리셉션도 하기에, 같이 포도주도 마시면서 어울리고 대화 나누는 일이 일상입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면 2001년도에 영국에서 대한민국 대사를 처음 만났었을 때 일입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도 없고, 또 공격할 일도 없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남과 북이 편히 손잡고  같이 좀 잘 살아보자.” 그러시면서 “지금 영국에 북한 유학생이 한 명도 없는데, 만약 북한에서 영국에 유학생들을 보내주겠다고 한다면, 재정적인 부담을 우리 대한민국이 다 할 수 있 다. 그러니까 학생들을 좀 보내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말만 들어도 북한의 정치 엘리트라는 느낌이 드는데, 북한에서는 정치 엘리트를 어떻게 양 성하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에서는 우선 정치 엘리트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출신입니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야 엘리트가 된다.’ 이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본인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그리고 자기가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정치인, 외교관, 판사, 검사’ 이렇게 (그게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그걸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꿈을 펼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나는 뭘 할 것인가’가 벌써 출신에 정해져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저는 핵심계층에서 태 어났습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주로 세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그런데 일부 직종들은 핵심계층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외교관이라든가, 군 장성 이라든가, 우리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검사, 판사, 변호사, 또 당(黨)일꾼, 경찰 이런 직업들, 즉 국가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중추 기관들은 오직 핵심계층만이 들어가 일할 수 있고, 핵심계층 자녀들만이 그런 엘리트들을 키우는 대학에 가서 (물론 시험은 칩니다만) 공부할 수 있습 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처럼 북한에는 행정고시 제도가 없습니다. ‘너는 어디서 일해, 너 는 어디서 일해’ 이렇게 국가가 직업을 지정해주는 것이 우리나라와의 큰 차이점입니다.” 

 

– 의원님 망명 이후에도 조성길 대사대리와 류현우 대사대리께서 망명하셨는데, 아무래도북 한 사회에서 나와서 자유민주주의를 접한 게 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망명을 결심하셨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북한 외교관으로서 망명을 결심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왜 힘든 일인가 하면, 망명하는 과정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망명을 결심하게 될 때까지의 대단히 많은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매우 힘듭니다). 세부적인 단계로 나누어본다면, 우선 사상적으로 북한의 소위 주체사상,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신념만을 믿는 사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북한에서 북한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기 때문에,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내 자 신이 누굴까’라는 것을 저는 잘 몰랐습니다. 북한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육에 의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평등해져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평등해지는 방법은 재산에 대한 사적소유권이 없어져서, 모든 사람들이 재산에서의 균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라는 걸 운영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북한에서는 “개별적인 인간들이 혼자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데,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것이 바로 정치조직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정치조직에 망라돼서 생활하게 되며 그 정치조직의 최고책임자는 수령이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개인이 자기한테 모든 선택이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 과 권리, 이 모든 주권은 수령님한테 바치고, 수령이 모든 걸 지정해줘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북한에서 가르치고 있는 삶의 방식인데, 유럽에 나와서 유럽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까 제가 거기서 제일 부러운 것이 자유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넌 뭘 해야 해’하고 국가가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 또 가보고 싶은 나라,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하면서도 또 역시 하나의 국가라는 범주 내에서 서로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모습이 저한테는 제일 부러웠습니다. ” 

 

– 자유를 갈망하셨군요. 

이런 겁니다. 북한 대학과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도 한국에 와서 국민대 석사과정을 끝냈고 지금 박사과정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제 새 학기 시작되면 과목이 쫙 있어서, 이슈 과목은 뭐고 점수 좋은 과목은 뭐냐, 자기가 보고 ‘아 나는 올해는 이거 듣고파.’ 이걸 선택하고 그 시간이 되면 그 교실에 가서 앉아 교우들 만나고 공부하고 시험 쳐서 상점 벌고(학점  받고) 이런 식으로 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이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대학에 들어가면 학급이 정해져 있습니다. ‘너는 1학년 1반.’ 하면 1학년 1반 교실이  있고, 우리 지금 초등학교처럼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이 앉으면, 그 교실에서 하루 3개 과목을 배운다면 3개 과목이 그 교실에서 교수만 들어왔다 나왔다 하고 학생들은 거기서 앉아있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배우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평양에  있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다’ 하면 과목을 지정해줍니다. 세계사 세계철학사 (등등). 이렇게 찍어주면 그걸 무조건 배워서 점수를 맞춰야 하고, (수업방식도) 교수가 들어와서 강의하고  나갑니다, 한국에서는 과목 선택할 때는 기다렸다가 ‘시작!’하면 막 들어가서 (수강신청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면, 국가가 ‘너는 어디 가서 일해’라고 지정해줍니다. 이렇게 자기 삶을, 국가와 정치권력의 최고 통수권자가 지정해주는 게 북한이라면, 결국은 제가 북한이라는 나라를 벗어나서 유럽에 가보니까  남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뭐지’ 그 때부터 생각이 변한 거죠. 

그런데 제 애들이 영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점점 크면서 그들이 느끼는 거 하고 제가 보는 것 하고 또 달랐습니다. 왜 그렇냐 하면 저는 북한에서 첫 외교관 생활을 할 때가 96년도, 34살 때였으니까, 그러니까 34살 되도록 저는 북한의 이러한 교육시스템에서 북한이 진리라고 믿었 는데, 우리 애들은 태어나서부터 영국에서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니다가 (외교관 생활은 3년 을 주기로 평양에서 살다가 또 런던에 가서 살고 또 3년 되면 다시 평양에 가고 그러니까) 한 3년은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받다가, 또 3년 지나면 북한에 가서 북한 학교에 가서 북한 교육 을 받다가 또 3년 되면 유럽에 가서 유럽 학교를 가고, 이 평양과 유럽을 계속 다녔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자식들 속에서는 아이 때부터 ‘과연 인간이란 어떤 삶을 살아야 되고, 이 자유 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왔다갔다하면서 비교개념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장하는 애들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해줄까 이렇게 가만 보니까, “부모가 자식 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며, 훌륭한 아파트 한 채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다. 애들에게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부모가 애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전 이렇게 생각하고, 결국은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 

 

– 긴 여정 끝에 지난해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탈북자이자 국회의원이라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두 성격을 가지고 정치에 도전하셨는데, 국회의원이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정치에 전혀 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11월에 아주 특이한 일이 대한민국에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이냐 하면, 북한에서 청년 어부 두 명이 배를 타고 한국에 왔거든요. 왔는데 우리 당국에서 조사해보니까 북한에서 엄청난 범죄를 범하고 온 흉악범이다. 이게  밝혀졌었습니다. 그래서 ‘흉악범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남겨두면 우리 국민에게 불안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며 강제로, 본인들은 북한에 돌아가지 않겠 다고 발버둥질 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인대를 매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보내는 강제 북송사건이 2019년에 일어났습니다. 이게 보도에 나오는 순간,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결국은 자유를 찾아온 사람을 강제로 결박하고, 인대를 이렇게 눈도 못 보게  해가지고, 강제로 북한으로 보낼 수 있을까” 해서,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정부 측과 대논쟁 을 벌였습니다. 제가 신문에 사설도 쓰고. 

그때 대한민국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흉악범이기 때문에 북한에 보내야 된다’는 사람들과, ‘우리는 헌법적 가치와 국제조약 가입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지닌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두 파로 갈렸는데, 저는 그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북한도 역시 대한민국 영토고,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입니다. 우리는 속인주의 국가이거든요, 그렇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나라에 가서 범죄를 범했다고 해도 그가 만약 우리나라로 와서 그 사실이 밝혀졌다 하면 우리 법에 따라서 그거를 재판해서 형을 줍니다. 그러면 북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왔는데, ‘북한에서 어떤 죄를 범했다’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거기로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법적인 시스템에서 재판하고 거기다 형을 내려야 합니다. 이게 헌법에서 규정한 한 겁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이게 ‘헌법에 어긋난다’라고 제가 주장하니, 정부 쪽에서는 ‘흉악범이기 때문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국제조약에 견지해서 보면, 우리나라는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입니다.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은 아무리 범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경우, 거기서 고문을 받고 처형까지 당할 수 있는 나라이면 돌려보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사법적 판단 을 받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고문방지협약 (가입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와중에, ‘아니 법에도 다 이렇게 되어있는데 왜 행정권력이 이렇게 헌법에 어긋나게 했을까’라고 보니까, 헌법과 우리 구체적인 시행령이 대단히 애매모호하게 되어있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출입국관리법 같은 것, 이런 것도.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바로 잡을까’ 하고 보니까 많은 분들이 그거는 국회가 입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기관에 들어가서 이 애매모호한 법률을 전부 세부적으로 입법하는 방법으로 법을 만들어야 그걸 이행하기 위한 시행령도 세부화될 수 있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 국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 

 

– 북한 전문가이시기도 한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이 가진 장점과 맹점에 대해 간략하게 의견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최근에 정권교체가 좌와 우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에서. 그런데 외교와 대북정책 문제에서는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관 성이 보장되어야 우리 정책이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 하면요. 한 길로 가다가, 다음 정부가 ‘그 전 정부가 한 건 다 잘못됐다’라고 비판하고 새로운  것으로 가닥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결국은 계속 왔다갔다 하고 우리가 전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은 ‘대북정책’이라고 합니다. 또 외교정책. 정부는, 행정권은 정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정책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면 이게 대단히 큰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정책일까, 아니면 정치일까’라고 보면 저 같은 사람은 ‘이건 정책이 아니라 정치다.’ 이렇게 판단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이렇게 판단하는가 하면, 국가와 국가들 사이에 또 남과 북 사이에 서로 협의 하고 토의하고 또 북한이 힘들어할 때는 우리한테 여유가 있는 것을 같은 동포로서 줄 수도 있고 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상대측이 잘못했을 때는, 따끔히 ‘이건 정말 잘못된 거다’라고 따끔히 지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우의가 보장되려면, 물론 “나 너 좋아해”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가 진짜 잘못됐을 때는 따끔히 말해야 됩니다. “나는 이건 아니다. 너 이렇게 하면 우리 같이 친구로 지낼 수 없어. 그러니까 네가 제발 이런 건 고쳐라” 이렇게 해서 서로 부족한 걸, 잘못한 걸 지적해줘서 고쳐야 진정한 우의가 보장되는데, 지금 보시면 북한이 지난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했습니다. 또 우리 국가공무원을 사살하고 불에 태웠습니다. 또 우리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완전히 ‘저 오지랖 넓은 중재자’ 등 온갖 욕설 다 합니다. 그럼 이럴 때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아무리 대화가 중요해도 잘못했을 땐 잘못했다고 따끔히 지적하고,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를 향해서 그렇게 이야기할 때 따끔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도 우리 국방부를 보고 ‘특급머저리’라고 했는데,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이런 말 안 쓰고, 또 남과 북 같은 동포 끼리, 대화 파트너끼리 “너 특급머저리야”를 듣고 허허 웃으면 이거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 말씀 필요하다고도 해주셨는데, 또 저희 정부 입장에서도 많이 고쳐야할 게 있을 것 같습니다. 탈북민들을 일컬어서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셨는데, 먼저 온 통일을 방치하면 앞으로 올 통일도 잡을 수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재  3만 5천명에 달하는 탈북민에 대해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보완되어야 할까요? 

우선 저는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대한민국 정부와 또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우리 탈북민들이 오면 정부의 정착정책에  따라서 정착금도 나오고 또 정부임대 주택도 나오고, 이렇게 와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부(차원의) 혜택도 많고, 또 탈북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학비도 국가가 해주고, 혜택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탈북민들을 보고 ‘먼저 온 통일이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좀 (적극적인 노력을) 정부가 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에 온 지금 탈북민들 속에서는 북한에서 여러 직종에 있던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외교관을 하다 왔고, 검사 하다 온 분도 있고, 또 군대 장교 하다가 온 분들도 있고, 각양 직종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들이 생계를 위해서 다른 직종에서 일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앞으로 잘 수련시켜서 앞으로 남과 북이 통일될 수 있을 때, 진짜 그들이 ‘먼저 온 통일’처럼 북한에 가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여러 일들을 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문제가 생겨서) 체제전이 일어날 경우, 그걸 우리가 중국과 같은 대 국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우리 식으로 이렇게 (주체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런 준비는 우리가 하고 있을까’라고 보면 그런 준비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1989년 11월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이후)인  1990년 3월에 동부 독일에서 총선거가 벌어졌고, 총선거를 앞두고 동부 독일에서는 여러 정치 정당들이 결성되어서 자유총선거를 벌였고, 3월 18일. 자유총선거에 따라서 4월에 동부 독일 국회가 구성됐고, 국회에서 원래 있던 동부 독일 헌법을 바꾸었고, 헌법을 바꾸면서 서부  독일과의 통일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통일을 합의제의 원칙으로, 그 운명의 주인인 동부 독일 주민들의 자체의 결정에 의해서 통일이 이루어졌는데, 그러면 우리도 북한도 그렇게 되기 위해 준비를 하려면 탈북민들이 북한에 가서 우리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그런 질서, 우리의 가치관을 알려줘서 “한국과 빨리 이 기회에 손을 잡고 가자”라는 걸 선전하고 전도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이 저로서는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 

 

– 대한민국의 평화 및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 이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 한국의 평화와 보장. 앞으로 통일문제에서 김정은 정권을 주체로 보겠느냐 아니면 북한 주민을 주체로 보겠느냐. 여기에 따라서 앞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 경우, 독일 같은 경우에도 보면, 서부 독일이 동부 독일 정권을 주체로 본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살고 있는 동부 독일 주민을 주체로 보고 정책을 그렇게 펴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그렇게 보지 않고, ‘김정은 정권과 무엇을 합의하고 해결하고 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건 통일을 향한 국가 철학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우리가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고, 또 통일로 가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고, 그 주민들이  우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관을 어떻게 지지하게 만들 것인가. 또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 우리 주민들을 같은 동족, 같은 혈육, 같은 동포로 어떻게 하면 (보게) 만들 것인가.’  여기에 우리가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의원님의 꿈과 더불어서 마지막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대단히 중요한 과목을 이제 배우고 있어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분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외교부나 여러 정책 연구소들, 국가기관들에서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마음과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가에 따라서 향후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으로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더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훌륭한 대한민국을 건설해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