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슈브리프 No.7] 기시다 정권의 한반도 정책 향방
PDF 파일 다운로드 : [우당이슈브리프7호]기시다 정권의 한반도 정책 향방(이기완, 2021년 10월)
기시다 정권의 한반도 정책 향방
이기완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2021년 10월 4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의 뒤를 이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이 출범하였다. 스가 총리의 퇴임 선언 직후,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 담당상이 자민당 총재 후보로 유력시되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지원을 받은 기시다가 2차 결선투표에서 고노를 이기고 선출되었다.
기시다 총리는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에서 외상으로 임명되어 북한과 2014년 ‘스톡홀름 합의’ 및 한국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끌었던 온건한 정치인이다.1 하지만 기시다 내각에는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리의 측근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2 특히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경제산업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재무상 등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강경한 주장을 표명해 왔으며 극우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기시다 정권의 ‘출범 과정과 각료 구성’의 특수성으로 인해 기시다 내각에서도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갈등을 관리하면서 타협·화해를 모색하기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결박’되어 강경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냉각된 한일관계를 해소하고 답보상태에 빠진 북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한일 및 북일 간에 놓여 있는 갈등 구조의 내용과 정치적 의미를 살펴본 후, 한일관계의 비정상성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의 자세를 제시한다.
기시다 정권의 한국 정책과 한일관계
10월 8일 기시다 총리는 국회 연설을 통해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며, 양국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하여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갈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3 이러한 기시다 총리의 연설 내용을 봤을 때, 일본은 종래의 아베·스가 정권이 견지해 온 대(對)한국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일 갈등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내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과 한국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이 맞물려 시작되어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 문제,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와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일 경제제재 조치와 함께 지소미아의 종료 선언 등 다양한 이슈와 연동되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4 또한 이러한 갈등의 지속에도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국이 요구하는 주장을 수용하는 것을 ‘굴욕 외교’로 간주하면서 상대방의 양보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2021년 9월 23일 뉴욕에서 개최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외상 간 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5 정의용 장관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과 해법 마련, 그리고 수출규제 조치의 조속한 철회 등을 일본 측에 요구하였지만, 모테기 외상은 강제 징용 및 위안부 배상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적절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맞대응하였다.
이처럼 미해결의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인식 차로 인해 냉각된 한일관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국정연설에서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 ‘신뢰’가 매우 중요한 가치임을 강조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협상 책임자였던 기시다는 위안부 문제가 재차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이것이 2019년 8월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0월부터 인정하는 백신접종 증명서 발행국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일본의 부정적인 인식은 “한국이 국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 간 미해결의 정치적 쟁점을 활용하고 있다.”라는 주장으로까지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기시다 총리의 국정연설과 기시다 정권의 한국 정책을 봤을 때, 한일 갈등의 원인이 한국 측에 있으므로 1965년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은 강제 징용 및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 측이 종래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이상, 양국관계가 상당히 훼손되더라도 한국과 시시비비를 따져, 종국적으로 ‘과거사’의 결박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10월 17일 기시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마사카키’라는 공물을 봉납한 것도 이러한 정치적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기시다 총리는 종래의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호주·인도·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표명하였다.6 일본은 한국과의 갈등이 지속되면 한·미·일 공조 체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협력체제 구축을 통해 평화와 번영, 그리고 안전을 추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시다 정권의 한국 정책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고 하겠다. 일본은 과거에는 양국 간 미해결의 정치적 문제를 소극적으로 제기하였고, 한국 측이 반발하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양국 간 갈등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은 채 미봉적으로 봉합되곤 하였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미해결의 정치적 쟁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미해결의 정치적 쟁점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하였던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보수 우경화와 민족주의적 국가전략의 대두 속에서 주변국과의 갈등 요인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던 것에 있다고 하겠다.7 이 때문에 한일 간 갈등 구조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근원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일본의 ‘한국 적대’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완화하기는커녕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가시화된다면, 한일관계는 종래의 ‘시지프스 신화’를 넘어 파국적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시다 정권의 북한 정책과 북일관계
기시다 정권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대북 정책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시다 총리가 10월 8일 국정연설에서 “납치 문제는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하루라도 빨리 모든 납치 피해자의 귀국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8 이러한 기시다 총리의 연설 내용은 종래의 아베·스가 정권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나갈 것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시다 정권은 아베 내각만큼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아베 전 총리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조기에 구출하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에서 활동해 온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를 납치문제담당상으로 임명하여 납치 문제 해결의 의지를 피력하였다.9 하지만 기시다 정권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겠다. 다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대북 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걸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인 납치 문제는 국내적으로는 선거 전략으로, 대외적으로는 북일 수교 과정에서 유리한 협상 선점의 조건으로 활용할 만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선거 전략적 측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는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제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인의 북한에 대한 관심 사항 중 일본인 납치 문제가 첫 번째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10 이러한 연유로 여·야당을 불문하고 각 정당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발표하고, 내각 수반이 되면 총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만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다. 특히 총리의 경우, 이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 표명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외교적 측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는 향후 수교 과정에서 북한이 제기할 수 있는 과거사 관련 요구 사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 즉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권 문제로 집중 부각시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북한이 요구할 수 있는 보상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일본은 현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납치 문제 해결 명분하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와의 조건 없는 만남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의 우선성으로 인해 2006년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북한 인권법’을 제정하고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지만,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현재까지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의도와 함께 ‘일본 외교의 특수성’으로 인해 해결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하겠다.11 일본의 대북 접근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같은 안보적 요인에 의해 상당한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한, 미국을 우회하여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대북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이 납치 문제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요구 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위반 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의 비정상성 극복을 위한 일본의 자세
현 동북아 국제질서는 미중 간 강(强) 대 강(强)의 대결 구도가 가속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재화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안보상의 문제에 대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동북아 지역에서 한일 갈등의 지속은 미국의 외교적 선택의 폭을 협소화시키는 동시에 한·미·일 공조 체제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을 저해함으로써 한일 양국이 직면한 현안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한국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에서 한일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은 강제 징용 및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의 인권 유린에 대한 진실 규명 및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 측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인권법을 토대로 북한 측에 집중적으로 제기하겠다는 모순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 접근 방식은 동북아 주변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주장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일관계의 비정상성은 일본이 일제 강점기 한국인이 당하였던 혹독한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심성을 함양하고 동시에 과거사의 아픈 기억을 가진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신중한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해결 가능하고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이기완, “스톡홀름 합의와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의 배경,” 『국제정치연구』 제17권 2호(2014), pp. 177-196.
- 박명훈, “‘극우세력의 놀이터’ 기시다 내각… 몰락으로 치닫는 일본,” 오마이뉴스, 2021년 10월 22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1175 (검색일: 2021년 10월 22일).
- “第二百五回国会における岸田内閣総理大臣所信表演説,” 2021년 10월 8일, https://www.kantei.go.jp/jp/100_kishida/statement/2021/1008shoshinhyomei.html (검색일: 2021년 10월 8일).
-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기완, “한일 갈등의 기원과 쟁점,” 이기완(편), 『동북아 국제질서와 한국』 (창원: 창원대 출판부, 2021), pp. 233-280.
- 일본 외무부, “日韓外相会談.” 2021년 9월 23일, https://www.mofa.go.jp/mofaj/a_o/na/kr/page1_001050.html (검색일: 2021년 9월 26일).
- 일본 외무부, “菅内閣総理大臣の米国訪問,” 2021년 4월 13일, https://www.mofa.go.jp/mofaj/na/na1/us/page6_000544.html (검색일: 2021년 9월 17일); 外務省(編),『外交青書 2021』 (東京: 日経印刷株式会社, 2021), p. 33.
- 권철현, “한일협력관계의 새로운 도약 모색,” 『외교』 제87호(2008), p. 14.
- “第二百五回国会における岸田内閣総理大臣所信表演説,” 2021년 10월 8일, https://www.kantei.go.jp/jp/100_kishida/statement/2021/1008shoshinhyomei.html (검색일: 2021년 10월 8일).
- 이기완, “일본의 정치변화와 북일관계,” 『국제관계연구』 제18권 2호(2013), pp. 143-161.
- 内閣府大臣官房政府広報室, 『外交に関する世論調査』 (東京: 内閣府大臣官房政府広報室, 2021).
- 이기완, “일본의 국가이익과 북일관계,” 남광규(편),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대북 국가이익』 (서울: 아연출판부, (2021), pp. 173-207.
(집필일: 2021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