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슈브리프 No.10] 세계질서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2022.02.14

PDF 파일 다운로드 : [우당이슈브리프10호]세계질서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전재성, 2022년 2월)

세계질서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세게질서의 근본적 변화와 약화되는 미국의 리더십

2022년 세계질서 전망은 밝지 않다. 인류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코로나 사태로 현실화된 이후 환경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 간 전쟁 위협, 핵무기 확산과 테러리즘의 위협도 여전하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양국 간 군사충돌의 가능성을 두고 무성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들려오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임박한 전쟁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합의가 여전히 요원한 가운데, 북한은 1월 19일 정치국 회의에서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겠다고 하여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 재개도 예고하고 있다.

과연 세계질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구거버넌스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이끌던 단극적 패권 질서는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도 확신할 수 없다. 지구적 공공재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는 지금, 한 국가가 패권의 역할을 떠맡아 세계질서의 안정을 이룰 수 있는가도 의문의 대상이다.

미국의 리더십이 미래에 유지될 수 있을지 문제제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온 미국 내부의 자유민주주의는 유례없는 모습으로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고, 미국 패권을 떠받치는 중산층도 붕괴되고 있다. 미국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내세우며 리더십의 재건을 외치고 있지만 바이든 정부 1년의 외교성적표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남은 2년 임기의 동력도 상실할 위험이 크다.

중국 역시 올해 후반기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고 유례없는 시진핑 3기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와 경제성장률 하락, 권위주의 정권에서 비롯된 인권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 등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미중 모두 패권을 추구하지만 복잡한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고 무엇보다 국내 취약성이 두 국가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중 양국이 패권경쟁에 골몰해 있는 동안 유럽연합, 러시아, 일본, 인도 등 다른 국가들 역시 다극체제를 지향하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래 국제정치의 세력배분 구조는 당분간 패권경쟁의 모습을 띠겠지만 패권 안정보다는 다극 경쟁의 모습으로 규정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는 세계질서의 혼란상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바이든 정부에게 외교적 딜레마를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은 2014 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유럽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강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해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추가 공세를 막고자 했지만 지금 드러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군사력으로 러시아를 충분히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8,500 명의 미군을 준비시키고 있지만 작년 1 년 바이든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볼 때 직접 파병은 생각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막지 못한다면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는 저하될 것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많은 공격을 받은 미국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종결했지만 이후 아프간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면 내부 혼란이 가중되고 테러리스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할 수도 있다. 파키스탄을 통한 인도에 대한 안보 위협도 가중될 수 있고 이는 인도를 전략적 파트너로 중시하는 미국에게 외교적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다. 난민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고,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또한 아프간을 중심으로 강화될 수 있다. 미국의 국가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으면 충분한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커질 때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미국이 제시한 외교대전략을 추진할 충분한 외교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증가할 것이다. 미국은 나토를 통해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추구하겠지만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방법은 경제적, 외교적 억지전략이 주된 노력이다. 미국은 현재까지 나토의 동진 확대 방지를 요구하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노드스트림II에 대한 제재를 실시하려고 한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이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에 대한 핵심 금융망인 SWIFT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푸틴 대통령의 주요 측근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군사적 저항과 인권 위기, 우크라이나를 축으로 한 러시아의 지중해 및 동유럽 진출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우크라이나 위기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다. 오바마 정부 때를 회고해 보면 2013 년 6 월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간 전략적 협력관계를 도모하기로 했지만 2014 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전략, 혹은 아시아 중시 전략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군사위기로 번질 경우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력을 투입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의 군사력 약화는 매우 우려되는 바이다. 인도 역시 현재 미국의 대중 견제에 핵심적인 파트너인데 인도와 러시아의 긴밀한 관계 역시 미국에게는 부담이다.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방역 협력은 물론 최근 방공 미사일 방어체제 S-400을 도입하여 초기분이 전달된 상태이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협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데 인도에 대한 미국의 적절한 배려가 없다면 인도태평양 국면에서 미-인도 협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고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경제제재가 강화될 경우 러시아는 중국의 경제적 도움을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중국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협으로 보는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적대국이 연대할 경우 여러 지역에서 미국의 딜레마는 악화된다.

최근의 카자흐스탄 문제에서도 러시아는 집단 안보조약기구(CSTO)의 역사상 최초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토카예프 대통령을 지원한 바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 역시 상하이조약기구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에 대한 지원을 추구했다. 이미 중러간 여러 지역에서 미국을 대상으로 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한반도의 미래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국제정치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은 여러 차례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두 권위주의 강대국,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핵확산, 그리고 테러리즘을 주요 안보위기로 제시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로 삼고 있다. 중국이 보여온 군사력과 경제력의 성장세, 그리고 향후 발전 잠재력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전략적 가정이다. 문제는 중국 견제 전략과 다른 위협에 대처하는 전략이 어떻게 조율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이 정책자원을 대중 전략에 총동원하는 동안 지구적 리더 국가로서 다른 지역의 위기와 문제를 관리할 여력이 없다면 대중 전략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중국에 집중하는 미국의 전략적 틈새를 타고 근외(Near Abroad)전략을 통해 주변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이란은 2015년 체결된 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회담에서 여전히 미국과 합의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고 있으며 협상이 종료될 위기를 수시로 맞고 있다. 문제는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이 전략적 위협으로 제시한 국가들 간 제휴와 연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러 전략 협력 관계는 안보, 경제, 외교 등 전방위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이란 핵 문제에서 러시아는 이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은 올해 초 발표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대외문제에 대해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협상 추진과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조건 제시 등 한미 양국의 노력에 아무런 응답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략적 무시 전략을 추구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국 정부의 중재자 능력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작년 북한의 여러 성명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현재 국제정치 국면을 미중 간 신냉전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국제정세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단극패권체제 하에서 북한의 생존과 정권안보를 위해 미국과 협상에 집중하고 있던 노선에서 점차 미중 전략 경쟁 관계에서 생존을 도모하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은 한국의 군비증강과 미국의 소위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주변 지역의 군사적 세력균형의 변화, 여러 국가들의 군비증강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이 비단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 역시 군비증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그럴 충분한 정당성이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시비를 떠나 북한은 장기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체제 하에서 군사, 외교, 경제 등 각 분야의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핵협상을 통해 경제제재 해제를 추진하고 경제발전을 꾀하기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현재 국면을 타결하고 장기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의미 있는 행위자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다.

길게 보면 이러한 노선 변화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경쟁하고 다극화된 국제정치를 원하는 권위주의 강대국들은 이란과 북한 등 미국에 반감을 가진 국가들과 연대하여 향후 국제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의 반대와 제재에 직면해 있지만 향후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고 중국의 입지가 커질 경우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란 핵문제, 대만 문제 등 여러 문제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실패를 거듭할 때 북한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전략

세계질서의 변화가 근본적이고 다면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은 한국의 전략에도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질서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중요하다. 주권국가의 권능이 약화되고 지구적 거버넌스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위기들의 존재는 21세기 전반을 통해 세계질서의 변화를 이끌 것이다. 세계질서의 기본적인 조직원리의 변화로 소위 베스트팔렌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의 리더십 약화와 세력배분구조의 다극화는 이보다는 덜 근본적인 변화이다. 미중 전략 경쟁과 다른 강대국들의 전략적 향방을 장기적으로 살펴 세계질서의 변화를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 역시 중장기 국제정치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대처하고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이 추진해온 그간의 대북 전략을 근본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한미동맹이나 한중 전략 동반자 관계와 같은 핵심적인 대외관계는 같은 이름으로 지속되겠지만 국제정치구조가 바뀌는 이상 내용은 매우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한국의 전략 자산이지만 이를 어떻게 재정의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미동맹은 중요한 전략 자산이지만 새로운 안보위협과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그 기능과 임무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재규정해야 한다.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된 상황에서 동맹을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벌어졌던 자주성 논쟁은 무의미 해졌다. 한국이 원하지 않아도 한국의 비중과 역할을 커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주적인 결정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국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세계질서관을 가지고 한미동맹을 주도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국내 논쟁구도는 상당 부분 변화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지구 거버넌스에서 하나의 국가로서, 그리고 지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려면 단순한 국익을 넘어 고도의 지식과 전문성, 그리고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경제적 세계화는 많은 문제를 초래하여 흔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시공이 압축된 하나의 정치단위로 나아가고 있다. 그간 한국이 추구해온 중견국 외교전략의 모델을 토대로 지구 거버넌스에서 비전과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국가의 면모를 가다듬어야 한다.

(집필일: 2022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