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아카데미 이슈브리프] 1. 일본 스가 요시히데 정권 출범과 한일관계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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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정권 출범과 한일관계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

 

1. 총리가 된 최장수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2019년 5월 1일 새로운 천황의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막을 올렸다. 살아있는 동안 천황이 퇴위한 것은 약 200년 만인데, 즉위 한 달 전인 4월 1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된 새로운 원호(元號)를 발표한 사람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었다.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은 내각의 중요 정책 결정이나 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총리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측근 중의 측근이라 할 수 있다. 하루에 두 번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질의 응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가장의 그늘 뒤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표가 나지 않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스가 관방장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가지 특이할 만 한 것은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약 7년 8개월(2,822일)간 아베 총리가 일본 근대정치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최장수 관방장관으로서 아베 총리를 보좌했다는 점이다. 1989년 쇼와(昭和) 천황의 사망과 함께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시대 개막 이후 5년 5개월 재직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 총리를 제외하고 1-2년의 단명으로 끝난 총리를 28명의 관방장관이 보좌했는데, 그 가운데 총리가 된 사람은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아베 신조에 이어 스가가 네 번째다.

1948년 12월 동북지방의 아키타현에서 태어난 스가 총리는 1975년 자민당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들어와 요코하마 시의원을 두 번 역임한 뒤 1996년 10월 48세의 나이에 처음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1991년 외상을 역임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급사(急死)한 뒤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7월 38세에 처음 중의원이 된 아베 신조보다 정계 입문은 3년이나 늦으며, 2006년 9월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된 아베(제1차 아베 내각)와 달리 스가는 71세에 총리가 되었다.

 

2. 자민당 파벌정치의 재연

2017년 3월 5일 열린 자민당 정기 당대회에서 총재 임기에 관한 당칙이 개정되어 ‘연속 2회 6년’에서 ‘연속 3회 9년’으로 변경되었다. 2015년 9월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된 아베는 2018년 9월의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를 누르고 3선에 성공해 2021년 9월까지 재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8월 28일 지병의 재발을 이유로 아베가 중도 사임하면서 스가 총리는 원칙적으로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의 잔여 임기까지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

9월 1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대회 대신 중의원과 참의원 394명과 도도부현 대표 141명이 참여하는 약식 선거로 치러졌다. 당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스가가 아베 정권에서 4년 8개월간 외무대신을 역임한 기시다 후미오 정책조사회장과 당내 반(反) 아베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누르고 총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98명의 국회의원이 소속한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를 비롯한 5개 파벌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94명 가운데 5개 파벌 소속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67%(264명)에 달해 총재 선거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의 종식과 때를 같이해 일본에서 버블경제가 붕괴해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고 정치개혁이 화두로 부상한다. 자민당의 금권부패정치, 파벌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자민당 내에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일부 의원들은 탈당해 신당을 결성했다. 1993년 7월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과반수를 얻지 못해 1955년 결당 이후 38년 만에 하야했으나 불과 10개월여 뒤 자민당은 사회당과 사키가케와 연립정권을 수립해 정권을 되찾아왔으며, 이후 2009년 9월부터 3년 3개월 민주당(당시)에 정권을 빼앗겼던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권좌에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야당이 사분오열하는 사이 ‘자민당 일강(一强)’ 체제가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관료에 대한 정치 우위와 총리관저 주도의 정책 결정이 정착되었지만,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주창했던 ‘파벌정치 해체’는 흔적 없이 사라져 이번에도 총재 선거와 내각과 당의 중요 포스트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민당 파벌정치의 폐해와 국민과의 온도차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3. 문재인-아베 정권의 한일관계 – 역사·경제·안보의 복합갈등시대

2012년 12월 제2기 아베 정권 출범 이후의 한일관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사문제였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국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결정 이후 어렵게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당국 간 합의를 이뤄냈다. 그렇지만,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잘못된 합의라고 비판하면서 사실상 합의를 파기하여 일본 측의 불신을 샀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서 한국인을 강제동원 했던 일본 기업에 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것은 같은 취지로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렸던 2012년 5월의 대법원 판결에 일본 기업이 불복했던 것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최종 결정이 되었다.

우리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 기간에 발생한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의 청산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며 일본은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일본 정부는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의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며, 국교수립 이후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의 근간에 저촉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 합의를 뒤집고 삼권분립을 이유로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본 측의 불신은 2019년 7월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로 이어졌다. 안전보장상의 궁색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출관리규제 강화는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했으며 한국 정부는 8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의 종료를 일본 측에 통보했다. 역사문제를 발단으로 한 한일 갈등은 경제와 안보 분야로 확대되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2019년 11월 23일 지소미아 종료 6시간 전에 한일 양국은 수출관리 당국 간의 정책 대화를 재개하는 대신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통보했던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와 일본을 상대로 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의 중지에 합의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고육지책의 타협이었지만, 2019년과 2020년 두 번의 수출 당국 간 정책 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 측의 수출규제 원상회복 요구를 거부하자 한국 정부는 6월 18일 WTO에 한일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패널 설치를 요구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9월 16일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스가 총리는 이날 밤에 열린 취임 후 첫 번째 기자회견과 각의(閣議)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을 캐치프레이즈로 제시하면서 아베 정권의 정책 계승 의사를 밝혔다. 1965년의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 불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한 한일관계 개선이 과제라 할 수 있다.

 

4. 스가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한일관계

스가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반 정도 지났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이 스가 정권을 흔들고 있다. 각 분야 과학자들이 정부에 다양한 조언과 제언을 하는 ‘일본학술회의’의 추천을 받은 신규 회원 후보 가운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6명의 임명을 스가 총리가 거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 달 사이에 스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10% 포인트 이상 줄었다.

총리 취임 당일 밤에 열린 각의에서 결정된 ‘기본방침’은 “미일동맹 기축,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추진, 중국 등 이웃 나라와의 안정적 관계 구축, 전후 외교의 총결산(특히 납치문제 해결), 긴급사태·위기에 대한 신속하고 적확한 대처” 등을 외교·안보(위기관리) 분야의 목표 혹은 과제로 제시했다. 스가 총리는 10월 26일 국회 소신표명연설에서 정권의 정책 방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지만, 한국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납치문제 해결을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밝혔지만,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정체와 코로나 상황 등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보다는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의 정서를 고려한 정치적 배려의 성격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아주 중요한 이웃 나라’로 표현하면서 현재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건전한’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입각해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베 정권과 마찬가지로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며, 1965년 국교수립 이후의 양국 관계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즉,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아베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과거 한국을 지칭하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2020년 1월 20일 정기국회 개원 연설(시정방침연설)에서 아베는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이며 “국가와의 약속을 지키고 미래지향의 양국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절실히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원래’라는 수식어가 없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전한 한일관계인데, 강제징용문제의 해결 없이는 그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일본 정부의 기본인식이다.

연설에서 스가 총리는 ASEAN, 호주, 인도, 유럽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계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후자와 관련해 지난 10월 6일 도쿄에서 쿼드(Quad)라 불리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작년 뉴욕에서 열린 데 이어 두 번째인데, 중국과의 사실상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면서 군사적인 대중국 포위망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과 나머지 세 나라의 입장이 완전히 같은 입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네 나라의 연계와 협력은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또한, 한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사이 일본이 ASEAN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가 총리는 지난 10월 18일부터 4일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교통로(Sea Lane)에 있는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으며, ASEAN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는 자원이 풍부하고 시장이란 측면에서 중요하다. ASEAN 10개국의 인구는 일본의 약 5배(약 6.6억 명)이며, 일본의 무역총액(2019년)에서 ASEAN이 차지하는 비율은 15.0%로 중국(21.3%)과 미국(15.4%)에 이어 3위로 한국(5.3%)의 약 3배다. ASEAN 무역총액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은 수출 7.8%, 수입 8.3%로 한국(수출 4.3%, 수입 7.0%)보다 높아 ASEAN에서 한국과 일본은 경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방위성이 매년 발간하는 방위백서에서는 동맹국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과의 안전보장협력을 다룬 장에서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서술되어 있던 한국은 2018년부터 호주, 인도, ASEAN에 이어 네 번째로 밀려났다. 2013년 12월 처음 만들어진 ‘국가안전보장전략’이라는 정책문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내외의 국가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보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한국, 호주, ASEAN, 인도’ 순으로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지적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과의 소원해진 관계,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역사문제 이외 분야로 갈등이 확대된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향후 한일관계 전망과 제언

9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가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는 서한에서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일본 정부와 언제든지 마주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9월 24일에는 20분간 전화회담도 실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내 한국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을 요청했지만, 스가 총리는 징용공문제의 해결이 전제조건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와 이에 반발한 중국 내 대규모 반일시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 등이 원인이 되어 2013년과 2014년, 2016년과 2017년 4차례 열리지 못했다.

2019년 12월 청두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세 나라의 협력은 지역 및 세계의 경제성장은 물론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더구나 지금 세계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감염자는 4500만 명을 넘었으며 사망자는 119만 명을 넘었다. 세계가 직면한 미증유의 위기 극복을 위해 3국은 협력해야 하며,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한중 및 중일 간의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해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일제 강제동원 배상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2년이 지났으며, 종료 6시간 전에 애매하게 봉합된 지소미아는 1년마다 연장한다는 협정상의 개념은 적용되지 않아 언제든지 우리 정부가 종료할 수 있다는 애매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교착상태가 장기화하고 한일관계가 악화함에 따라 한미일 협력도 약화되었다. 미중의 전방위적 대립과 불투명성이 증가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선거,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가 등 한반도와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은 엄중해지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간의 갈등 지속은 양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작동 중지 상태인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개를 위해서도 일본의 협력은 불가결하며, 일본을 적극적으로 관여시킬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인권존중 경향 증가에 비춰보면 일본 정부의 국제법 만능주의나 우리 정부의 삼권분립에 입각한 사법부의 판단 존중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양국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상대방이 한발 물러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며, 이것은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과 국민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2017년 7월 함부르크 G20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합의한 대로 한일 정상 간의 셔틀외교도 복원해야 하며, 스가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담 출석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이 우려를 표명해온 압류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절차가 더 진행되지 않도록 피해자 측을 설득하고 이해를 얻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11월 중순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포함한 간부들의 도쿄 방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서훈 국가안보실장이나 대통령 특사를 파견해 자민당과 일본 정부 수뇌부에 문재인 대통령의 진의를 직접 전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집필: 2020년 11월 2일)